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등의 개혁 정책에도 불구하고, 1990년 들어 소련의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경제 성장은 1990년 마이너스 8퍼센트, 1991년 마이너스 20퍼센트를 기록했다. 생산과 분배 시스템은 사실상 붕괴했고, 물가는 급등했으며, 만성적인 물자 부족 상태가 야기됐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개혁파와 보수파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자본주의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급진 개혁파는 고르바초프가 과감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보수파는 그가 공산당을 약화시키고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시민들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그 책임을 물었다.
결정적으로 당과 정부의 보수파 지도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는 시민들의 반발과 군대의 명령 거부로 3일 만에 실패했지만, 이후 당과 고르바초프의 권위는 완전히 추락했다. 한편 쿠데타에 적극 저항했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설상가상으로 소련 내 여러 공화국들이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다.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연방 조약을 맺어 공화국들의 불만을 다독이려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연방에서 탈퇴했고, 옐친의 주도로 15개 중 11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을 따로 결성했다.
마침내 소련은 해체돼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이로써 세계 사회주의 체제는 와해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가 본격화됐다.
소련이 붕괴하였을 때 소련 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고르바쵸프를 감금하고 러시아 두마를 장악했었다.
문제는 딱 거기서 끝이라는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자 소비에트가 가지고 있던 막대한 국영 기업들이 공중 분해되었다.
주인이 사라진 소련의 거대한 국영 기업들은 기업의 주식을 바우쳐 형태로 시민들에게 분배하였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허점을 꿰뚫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이 바우처를 헐 값에 사들이기 시작했고 러시아 마피아, 러시아 부패한 관료들과 연계하여 거대한 소비에트 경제 유산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게 "올리가르히" 라고 알려진 러시아 재벌임
말 그대로 몇명의 소수 엘리트들이
정부 관료 + 러시아 마피아와 짜고
소비에트의 거대한 에너지 산업 등을 강탈하고 독점한 것이다.
이들이 모여서 사실상 러시아 정계를 움직였고 옐친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과두정치 형태를 만들었다.
이 지경이니 당연히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관공서의 공무원은 뇌물을 줘야 움직이고
군인들은 탱크 잠수함 심지어 미사일까지 빼돌려 팔았다.
외국인 투자와 기본적인 비즈니스 조차 불가능한 것이 관세를 내야 하는데 각 공무원들 마다 뇌물이 다르니
어떤 공무원을 통하는가에 따라 러시아 관세가 전부 달랐음
심지어 이걸 대놓고 공식적으로 함
이런 개판에서 당연히 경제도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기업들은 최소한의 예측도 안되니 계획을 짤 수가 없고 시장이 망가지니 암시장과 마피아가 성행하며 치안과 사회 질서도 전부 막장이 되어 버렸다.
그럼 대통령인 옐친은 뭘 하고 있었는가?
응 매일 술만 퍼먹고 있었다.
알콜중독자로 외국 정상과의 공식 행사장에서도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렸을 정도이며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을 정도로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의 정상회담 생방송이었다.
옐친은 어김없이 또 술에 잔득 취해서 공식 석상에 나왔고 전 세계가 지켜 보는 가운데 술 주정을 하다가
미국 대통령에게 조롱에 가까운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 생방송으로 러시아 전 국민에게 중계가 된 것이다.
과거 세계를 양분했다고 자부한 초 강대국의 자존심이 그렇게 밑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고 큰 수치심을 안겨줬다.
그리고 러시아는 체첸 내전에서 심지어 패전까지 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푸틴이라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이 패기 넘치는 젊은 총리는 발탁이 되자 직접 전투기를 몰고 체첸으로 날아가 군인들을 독려했고
체첸 내전을 러시아의 승리로 마무리 지었음
KGB 출신에 전투기를 모는 영웅적인 정치인의 등장에 러시아 국민들이 모두 열광을 하였고 그렇게 푸틴은 옐친을 이어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