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부터 아파트 비리를 취재하면서 "우리 아파트에서 관리비 빼먹는 사람들 조사 좀 해달라"는 부탁을 수도 없이 받았다. 10년 가까이 구청, 경찰서, 검찰청 문턱을 드나들었지만 성가신 민원인 취급만 받았다는 70대 노인은 책 몇권 분량은 됨 직한 자료철을 들고 찾아왔고,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그러겠다는 아파트 주민이 있었다.
경찰이 지난 6월부터 벌인 아파트 수사에선 주민들의 말대로 공사 뒷돈, 관리비·보험금·장기수선충당금 횡령에 정부 눈까지 속여 국가 보조금을 타내는 온갖 유형의 아파트 비리가 드러났다.
길게는 몇년씩 야금야금 주민 호주머니를 털어 온 직업 동대표와 관리소장들의 비리를 찾아내기란 경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581명 입건이라는 수사 결과는 전국 경찰이 5개월간 진행한 기획 수사(특별 단속) 결과치고는 너무 옹색한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주민이 느끼고 말하는 '아파트 비리 체감 지수'에 비해 그렇다.
경찰의 아파트 비리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엔 대통령 지시로 전국 경찰이 총동원돼 5838명을 입건했고, 서울경찰청도 2010년 79명을 적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앞으로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아파트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2010년엔 주민 신고와 제보를 받겠다면서 '아파트 관리 비리 신고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신고센터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사라졌고, '강력하고 지속적인' 아파트 비리 수사는 지난 몇 년간 잊힌 얘기였다. 경찰은 17일 보도자료에도 "아파트 비리 지속적 단속 예정" "국민의 적극적인 비리 신고 당부"라고 적었다. 경찰의 약속을 믿고 싶다. 아파트 비리에 분개하며 먼 길 마다 않고 기자에게까지 찾아온 주민이 한둘 아닌 것을 보면, 신고나 제보는 차고 넘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