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담 호스티스 04
2. 농아학교와 장애인으로서의 생활
저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쭉 소꿉친구이자 친한 친구인 미유키가 있습니다. 소꿉친구라기보다는 피로 연결되지 않은 자매, 거의 가족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와는 동갑이며 집도 바로 이웃이고 노는 것도 배우러 다니는 것도 무엇을 해도 함께였습니다.
저는 자신만 귀가 들리지 않고 함께 놀고 있는 미유키나 오빠에게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상황을 어렸을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자 점점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만 미유키나 오빠가 가지 않는 농아학교(현재의 특수학교)의 유치부에 다니게 된 것입니다.
농아학교는 난청인들이 장애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습관을 길러주는 곳입니다. 연령에 따라 국어나 산수 등의 일반적인 학력도 익혀 나갑니다. 단 4명밖에 없는 반 친구들과 함께 원활하게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노하우와 장애인으로서 자립하여 살아가는 힘을 배우는 것입니다.
농아학교에서는 수화를 가르치지는 않았어요. 당시의 농아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난청인에게 수화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교육 방침으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 문자와 말을 이해하도록 발성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동급생과 재회해도 현재 목소리를 내고 있는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알아듣기 쉬운 발성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발성을 하다 보면 사정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는 모습으로 우리를 보는 거죠. 그렇게 보시는 분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역시 부끄럽게 생각하는 청각 장애인도 많습니다.
스스로 수화를 배워 대화를 하고 있는 당시의 친구도 있습니다. 한편, 저처럼 수화를 배우지 않고 주로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20살 정도 무렵, 어떤 분의 소개로 요약필기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강습회를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요약필기사라는 것은 저와 같은 난청인들이 내뱉는 말을 알아듣고 그것을 간결하게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써서 알려주는 자원봉사자분들입니다. 우리 난청인에게는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제가 도와드린 내용은 자신의 성장과 경험을 15분 정도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저의 말소리를 요약필기사 초보자 분들이 듣고 요약 필기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즉 간단히 말하면, 제 발성으로 요약 필기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도 제가 하는 말은 비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의 의사소통은 어떻게든 할 수 있어도 그 이외의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난청인의 발성 현실입니다.
저는 농아학교에 다니면서 글자와 말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이렇게 스스로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아름다운 발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는 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3 "일어나라"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농아학교와 병행해서 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월요일은 농학교, 화요일은 어린이집, 수요일은 유치원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농아로서 필요한 것을 배우게 하고 평범한 생활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부모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니는 3개 중에 제일 좋아했던 게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어린이집만 낮잠 시간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였어요. 그런 아주 좋아하는 낮잠시간이었지만, 어린 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항상 아무도 저를 깨워주지 않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다른 아이들은 보육교사 선생님의 말소리에 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저에게는 물론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이불을 치우고 다음 준비에 착수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문득 눈을 뜨니 다른 아이들은 행동을 시작하고 있고, 이불에서 자고 있는 것은 자신뿐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생각했어요.
"왜 선생님은 나를 깨워주지 않을까? 왜 주변 아이들은 나를 깨워주지 않을까?" 저는 귀찮은 장애인으로 방치되어 있는 것일까? 심술을 당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지금으로서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건 기억해요. "남들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전하지 못했어요.
● 필담 호스티스 05
4. 학원의 학습, 서예의 즐거움
초등학교에 올라가기 전부터 저는 정말 많은 학원을 다녔어요. 수영, 피아노, 서예, 발레, 도예교실 등 너무 많은 학원을 다니다 보니 도대체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어져 버리는 것에도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학원에는 대개 오빠나 소꿉친구 미유키와 함께였습니다. 제가 뭔가 새로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미유키도 바로 그 학원을 다니는 식입니다. 피아노와 전자오르긴을 배우고 있을 때는 미유키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커플 드레스를 입고 발표회에 참가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저에게는 피아노 연습을 해도 재미가 없었고 성과도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칠 때는 소리를 듣는 대신 마음속으로 리듬을 마추어야 하는데 잘 치고 있는지 스스로는 조금도 모르는 거죠. 결국 도중에 그만 두었으며, 그 후로는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건반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나에게 피아노 따위를 배우게 해도 소용없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입니다. 겨우 리듬감이 조금 붙은 정도이기 때문에,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저는 많은 연습을 귀찮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만큼 어떤 일이든 체험을 시켜주고 싶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 부모 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연습뿐만 아니라 부모님은 여러 곳에 저를 데려가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여름에는 캠핑에, 겨울에는 스키 이런 식입니다.
뭐든지 오빠나 미유키 등의 친구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렵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어디가 다른지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오르지 않았지만 배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학습도 물론 있습니다.
그중 첫째가 서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담이 대화의 중심인 저에게 바르고 예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예는 4살부터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 배웠습니다. 물론 배우기 시작한 계기는 부모님이 권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서예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글의 백발이 섞인 초로의 여성 분으로 기억합니다. 서예는 저 외에 오빠와 미유키, 그리고 미유키의 오빠도 함께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선생님의 지적을 받아 다시 쓰기를 하는 오빠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머금으며 분해 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던 장면입니다. 그런 오빠를 가엽게 생각하면서 다시 쓰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저는 다시 쓰기를 지적 받게 되면 싫은 얼굴을 하거나 마구 화를 내거나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저를 보고 선생님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능숙하게 치켜세워 주시며 서예에 임하게 해주셨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미유키와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리에가 서예는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고집을부리고 있어서, 오빠들은 둘 다 '그럼, 리에가 최고지' 라고 리에를 칭찬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리에가 없는 곳에서는, 오빠들은 '사실은 미유키가 더 잘해' 라고 말해 주었어. 그렇게 말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어. 오빠들은 정말 우리를 잘 다루었지!"
우리 두 사람은 상냥한 오빠들의 보호를 받으며 즐겁게 서예 교실에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귀가 들리지 않는 만큼 서예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먹을 찍고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저에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힘을 줘서 쓰면 굵고 힘찬 글씨가 되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떨리면서 쓰면 지렁이 같은 미덥지 않은 글씨가 되기도 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추거나 튀는 등 여러 가지 기법에 신경을 쓰면서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는 서예는 소리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저를 빠져들게 했습니다.
최근에는 서예를 할 기회가 없었지만 독특한 먹 냄새는 또렷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서예학원 외에는 따로 서예 연습을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서예 2단의 자격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지역 서예 콩쿠르에 응모를 해서 금상을 받고 신문에 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주위 사람들이 쓰던 동그라미 글씨가 귀여워 보여서 모처럼 배운 올바른 아름다운 글씨 쓰는 법을 버렸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큰 수단인 글 쓰기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서예에도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이 있는 것 같아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또 언젠가 본격적으로 서예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쓴 글씨를 통하여 그 사람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담 호스티스라고 불리게 되고 나서부터는 조금이라도 더 예쁜 글씨로 손님을 접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아름다운 글씨를 쓰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