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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사고의 원인은 무궁무진..
눈깜박할 사이에 일어나는 ‘휴먼 에러’
사소한 비닐조각 하나로 일어나는 ‘정상 사고’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냉각수를 거르는 필터가 막힌 것에서 비롯됐다. 필터가 막힌 것 자체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냉각수 차단에 대비한 비상 냉각 시스템 밸브가 그날 따라 열리지 않았고, 밸브 닫힘 표시등이 수리 기록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며, 세 번째 안전장치인 압력조절 밸브가 고장났고, 고장을 알리는 계기마저 작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심각한 문제나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과학자들의 무리한 실험 때문이었고, 후쿠시마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지만, 일본 정부는 평소 후쿠시마 원전이 진도 8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첨단 기술로 이뤄진 시스템은 오히려 모든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없도록 구성됐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소한 문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경우의 재난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정상 사고’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인간이 제어할 수 없다는 것, 단 몇 초간 집중력이 흐려진 사이 발생한 사소한 일이 대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것이 핵발전의 위험성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핵발전 사고는 밝혀진 것만 660회에 육박한다. 지난 1년간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고나 고장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드러난 핵발전 사고 은폐 기록은 다음과 같다.
- 1984년과 1988년에 월성 1호기 냉각수 누출 사고가 1988년 국정감사 때까지 은폐
- 1995년 월성 1호기 방사성물질 누출 1년 뒤에 보도
- 1996년 영광 2호기 냉각재가 누출 몇 주 후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 뒤에야 알려짐
- 2002년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관 절단으로 인한 냉각수 누출사고도 단순 누설사고로 축소 은폐
-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후보부지 예비조사보고서’ 한 달간 미공개 하다가 TV 공개토론회 지적 후 공개
- 2004년 영광 5호기 방사성물질 누출이 감지되었으나 재가동을 강행했고 일주일간 은폐
- 2007년 대전 원자력연구소 핵물질 3kg이 들어있는 우라늄 시료박스가 소각장으로 유출된 사건이 3개월이나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지만 분실된 우라늄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
-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부지조사 보고서는 4년간 은폐
- 2007년 12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허가 당시 안전조사 보고서 공개 거부
- 2012년 2월 고리 1호기 전력공급 중단으로 원자로 온도 상승하였으나 한 달간 은폐
이렇게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핵발전소의 점검 결과는 참담하다.
국내 모든 핵발전소는 지진이 일어나도 자동정지되지 않으며, 월성 1호기에는 수소 제거 시설이 없어서 급히 보완했다. 고리 1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19개 핵발전소 수소제거시설은 그나마 전기로 가동돼, 전기가 끊기면 작동하지 않는다. 울진 1 · 2호기와 월성 1 · 2 · 3 · 4호기에는 수소농도측정기가 없다. 또 고리 1 · 2 · 3 · 4호기의 위치는 해수면보다 겨우 6m 높은 위치에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지진과 쓰나미로 시작돼, 냉각수 차단으로 원자로가 멜트다운되면서 내부의 수소가 폭발한 사고라는 것을 안다면, 현재 한국의 원전은 한 가지 증명된 원인만으로도 핵폭탄과 같은 셈이다.
핵발전 사고 확률은 발전소의 개수, 노후도에 비례한다. 그러나 그 외의 요인들은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얼마 전 고리 핵발전소의 사고를 예로 들자면, 바람에 날린 비닐 조각이 고압선에 걸려 발전이 정지됐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사상 처음이었다고 발표됐는데, 앞으로도 사상 초유의 원인으로 일어나는 핵발전소 사고는 비일비재할 것이다.
▲ 후쿠시마 사고 후, 지역의 소들도 모두 처분됐다. 후쿠시마 농부였던 하세가와 씨는 이 모든 비극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비디오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6월 중순, 이 지역 농부들은 마지막 마을 모임을 열었다. 마을 폐쇄를 뜻하는 송별회였다. 결국 한 농부는 “원전만 아니었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원전을 지지하지 말아 달라”는 유서를 텅 빈 축사에 남기고 자살했다. 이 마을(이이다테 마을)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지 않는 곳이다. |
“핵발전의 평화적 이용은 없다”
핵발전을 포기하는 나라들... “핵발전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독일 “2022년까지 독일 내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겠다”
스위스 “2034년까지 스위스 내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겠다”
덴마크 “핵발전 없는 경제성장, 에너지 수요 증가율 최소화, 경제 70% 성장”
한국, “핵발전 비율을 35.7%에서 2024년까지 48.5%로 끌어올리겠다”
이미 핵발전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고, 탈핵을 선언한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지켜봤음에도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 현상 유지도 모자라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짓겠다며 나서고 있다.
“원전은 안전할 때 꺼야 한다.”
- 독일 17인 위원회(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탈핵과 찬핵을 가르는 기준은 단 하나, ‘탐욕’이다.
찬핵론자들은 “지금 당장 원전을 끌 수는 없다”고 불가피론을 펴고 있지만, 반핵운동가들은 노후한 원전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원전을 짓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점차적으로 탈핵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직 핵발전 의존도가 높지 않을 뿐더러, 시작조차 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대안에너지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전기 소비에 대한 의식 변화, 산업전기와 가정용 전기 사용요금 체계를 바로 잡는 것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에 대한 ‘거짓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대안에너지, 재생에너지도 지금과 같은 체계에서는 여전히 모순을 지닐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대안에너지를 생산하면 송전탑은 사라지지 않는다. 각 지역에서 사용할 전기를 자체 생산하고, 화력, 수력, 조력 등 다양한 에너지 생산 방법을 균형있게 갖추는 정책도 필요하다.
“살려느냐,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20,30)
핵발전 앞에 중립은 없다. 지금 당장 핵발전을 멈추는 것 외에 길은 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