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이멜을 읽어보고 다행스러움과 안타까움을 같이 느꼈습니다.
저로 인해 방황과 고통을 자처하시지나 않을까 라는 걱정이 조금 덜게 되어 다행 스러웠스며, 파수대의 주장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ㅇ형님! 진리를 구분하시려면 비판과 의심, 이성과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ㅇ형님께서는 저의 견해에 대해서는 그 모든 것을 사용해서 살펴보시면서 협회의 견해에는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되네요.
파수대 2011년 11월호의 주전 607년에 관한 기사에 대한 저의 견해를 문의 하신 것의 답신 입니다.
저는 파수대의 반박은 매우 빈약하고 비겁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 증거들을 논하자면 협회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들을 밝히고 토론하자는 태도가 아니라, 그저 반대되는 증거들과 연구들의 흠집 내기일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증거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기원전 586년 경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협회도 파수대에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협회는 그 증거들 가운데 한 두개의 증거들이 의심스럽다 하면서 모든 증거들을 무효화 시키려 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주장입니다.
더군다나 그 증거가 '거짓되었다' 가 아니고 단지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였는데, 그것으로 모든 증거들을 믿을 수 없는 조작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패한 정치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협회는 기원전 607년이 성서 연대기이기 때문에 의심스런 역사적 증거들 보단 성서를 신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엔 한가지 바탕이 참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즉 기원전 607년이 성서 연대기 인가를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성서에서 다른 연대기를 말하고 있으며 그 연대기가 세속 역사의 증거와도 일치 한다면 이 모든 논쟁이 사라 질 것입니다.
또한 고고학 증거로 정면 승부를 보고자 한다면 비겁한 흠집내기가 아니라 기원전 607년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쪽 증거가 더 명확하고 더 많은지를 논하는 것이 정당할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엔 아무 증거도 대지 못하면서, 상대의 증거에 반박도 못하고 흠집 내기만 하면서 무슨 반박이 되겠으며 논쟁이 되겠습니까?
아니 협회는 한가지 증거를 내놓았지요. Vat 4956에 대한 내용을 학계의 저명한 학자의 연구로 소개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학자는 누구 입니까? 그 학자의 주장에 다른 학자들도 동의 합니까?
그 학자는 Furuli 입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 교수이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장로 입니다. Furuli의 연구는 객관적 입장에서 쓰여진 논문으로 보기에는 신분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으로 그의 주장을 학계에서는 받아 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Vat 4956의 천문 관찰 일지가 일치하는 날에 대한 Furuli의 주장의 허점은 파수대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 하려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증명해 봐야할 것입니다.
ㅇ형님도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힌트는 7월 15일 입니다.
월식이 일어난 날짜를 기원전 588년 7월 15일에 맞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수대 11/11 기사 17번 각주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서 입니다.
1) 파수대가 말한 것 처럼 어떤 증거 보다도 우리에게 중요 한 것은 성서에서 예루살렘 멸망 이후 70년 에 회복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면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2) 그리고 성서에서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이미 칠십년을 세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3) 또한 예루살렘의 회복 이후에도 여전히 칠십년을 아직도 세고 있었다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a) 역대하 36:21 이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하여, 마침내 땅이 그 안식을 다 갚게 하려는 것이었다. 황폐해 있는 모든 날 동안 땅이 안식을 지켜, 칠십 년을 채웠다.
b) 예레미야 25:11,12. 이 온 땅이 황폐한 곳, 심한 놀라움의 대상이 되겠고, 이 나라들은 반드시 칠십 년 동안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칠십 년이 다 차면 내가 바빌론 왕과 그 나라에, 칼데아 사람들의 땅에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그 땅을 한정 없는 때까지 황무지로 만들고야 말겠다.
c) 예레미야 29:10.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다 차는 대로, 내가 너희에게 주의를 돌릴 것이며,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굳게 세워 너희를 이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
d) 스가랴 1:12.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예루살렘과 유다 도시들에 언제까지 자비를 보이지 않으실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진노하신 지 70년이나 되었습니다."
e) 스가랴 7:5,6. 이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단식하며 통곡하되, 칠십 년 동안 그렇게 하였는데, 정말 나를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하여 단식하였느냐? 너희가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먹는 자는 너희가 아니었으며 마시는 자는 너희가 아니었느냐?
위의 성구들의 얼마는 이전 이멜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ㅇ형님께서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이제 각 성구들을 읽어 보시고 그 성구들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각각 다른 것을 말한 것인지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a성구는 무엇의 멸망과 회복에 대해 말한 것입니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에 대한 간단한 기록들이 있으므로 칠십년간의 예루살렘의 황폐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후 문맥을 고려한 이해일 뿐이지 성서의 내용은 아닙니다.
칠십년에 대한 역대기하의 기록은 땅이 안식을 칠십년 채웠다는 내용이며 그 말씀이 오해되지 않게 출처도 밝혀져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록이 칠십년에 대한 근거가 됩니다.
그러면 b와 c의 예레미야의 성구에서는 칠십년의 대상이 누구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까?
우선 b성구는 바벨론에 의해 황폐 되어질 모든 나라의 땅이- 온 땅이- 70년간 황폐 될 것을 말합니다.
칠십년이 정해진 대상은 나라들이며 바벨론의 지배와 관련되어 있는 예언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에만 국한지어진 칠십년이 아닙니다. 25장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면 그 점을 확실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제1년에 임한 예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도시들, 이집트, 우스 땅의 왕들, 블레셋, 아스글론, 가자, 에그론, 아스돗, 에돔, 모압, 암몬, 티레, 시돈 등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나라들로 예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예언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자신의 시대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c성구입니다.
C성구는 바벨론이 시드기야를 왕으로 앉힌 뒤 4년 되는 해에 발한 말씀입니다. 즉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되기 약 6년 전입니다. 그 당시 하나냐라는 예언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면서 곧 바벨론이 멸망되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라고 사람들을 미혹하자 예레미야는 그렇지 않음을 밝히는 말씀이 예레미야 29의 내용입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그곳에 정착해서 살것을 권하면서, 그 이유가 바벨론이 멸망 되어 포로 상태에서 돌아 올려면 하나냐의 거짓 예언처럼 2년 안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바벨론에서 70년이 다 차야 그 일이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임을 c성구에서 예레미야는 말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레미야는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70년의 계수를 이미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직 멸망되지 않은 시점에서 예레미야는 십여년 전에 이미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다 차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니 그곳에서 정착하여 마음잡고 살아야지 하나냐의 거짓예언에 이끌려 들떠있지 말것을 권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b성구에서 칠십년의 예언을 할 때 그 대상이 예루살렘이 아니었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칠십년 예언을 적용해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의 시기가 주전 607년과 주전 586년 둘 중에 어느해가 더 성서 연대기에 적합 할까요?
협회의 주장대로 주전 607년을 대입한다면 바벨론의 멸망까지 c성구를 들은 유배자들은 십여년을 포로로 살아 왔고 앞으로 76년을 더 기다려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다 차면'이 아니라 칠십년이 훨씬 넘쳐 90년 가까이 기다리는 것이며, 그들에게 한 c성구의 여호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전 607년의 주장은 이와같이 성서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협회의 주장대로 주전 607년은 성서 연대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주전 586년은 어떠합니까?
예루살렘 멸망의 시기를 고고학 증거들을 근거로한 주전 586년으로 잡아 놓을 경우 일차 바벨론 포로시기는 주전 605년이 됩니다. 그러면 일차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온 때는 70년 후인 주전 535년이 되어야 합니다. 바벨론이 멸망 된 주전 539년 이후 고레스의 칙명으로 그들은 고토에 538년 또는 537년경에 돌아 왔을 것입니다. (협회는 바벨론의 유대인인들이 고토로 돌아오는데 칙령이 내려진후 2년정도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돌아온 시기를 537년으로 잡습니다. 이 역시 추측에 기반한 어림수입니다.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칙령이 내려진후 일년 후인 538년에 고토로 돌아 왔다고 가정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칠십년이 아니라 67년 또는 68년 정도 유배 생활을 한거라 정밀하고 정직하게 따지자면 이 역시도 성서적이다 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레미야의 예언인 b와 c성구에 비추어 볼 때, 일차 포로로 잡혀간 유배자들의 입장에서 70년의 약속을 받고 90년을 기다리는 것과 67년 또는 68년을 기다리는 것 중에서 어느 연도가 더 성서적이겠습니까?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에스라서에 그들이 돌아온 후의 활동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에스라 3:8의 기록은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참 하느님의 집에 온 지 이 년째 되는 해,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나머지 형제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온 모든 사람들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때에 그들은 스무 살부터 그 이상인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집 일의 감독으로 일하도록 세웠다. "
에스라의 기록은 주전 537년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추정할 경우 주전 535년경에 성전의 기초가 놓이기 시작 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가 일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에서 70년이 지나간 주전 535년이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 일은 -성전을 짓기 시작한 시기와 마치는 시기와 관련하여- 칠십년의 회복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성전은 유대인의 영적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으로 살펴본다면 예레미야서의 b와 c성구의 성서 연대가 70년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동일한 관점은 스가랴서의 d와 e성구의 성서 연대에서도 정확히 70년으로 적용 됩니다.
왜 그런지 이제 스가랴서를 살펴 보시죠.
d성구의 말씀이 나온 시기는 스가랴 1장 1절을 보면 다리우스 왕 제 2년으로 나옵니다.
그 때는 주전 520년 입니다. 바벨론이 멸망 된지 19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 때 여호와의 천사가 칠십년을 언급 합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신 지 70년이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언제까지 자비를 보이지 않으실 것인가? 라는 질문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d성구의 개역 한글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킹 제임스 역
"그 때 주의 천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 만군의 주여, 주께서 그들에 대하여 진노를 가지신 지 칠십 년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주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시려나이까?" 하니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돌아와 살게 된지 십여년이 지난 주전 520년에 70년이 되었다는 표현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시기가 언제임을 알려 줄까요?
그리고 e성구인 스가랴 7:5,6은 다리우스 왕 제4년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 때는 주전 518년 입니다.
그 때의 상황은 에스라서에 잘 기록 되어 있습니다.
성전 재건이 주위 나라의 압력과 방해로 중단 되었다가 d 성구의 때인 다리우스 제2년, 주전 520년에 다시 시작 됩니다. 성전 재건은 총 4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주전 516년에 재건 됩니다.
그리고 e성구는 성전 재건 시작 2년 후인 518년에 베델 사람들이 "다섯째 달 단식을 계속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여호와께서 하신 대답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 말씀 하십니까? '칠십년간 해온 단식이 나를 위해 한 것인가' 라는 질문 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협회가 주장하는 주전 607년이 성서적인지 스가랴서의 두 성구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주전 607년 이라면 d성구의 시기인 주전 520년은 87년이 지난 때입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87년이나 지난 시기에 진노하신지 70년이 되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 입니까?
그리고 e성구의 시기인 주전 518년은 89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70년간 단식을 해왔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천사들이 계산이 서툴러서 였든지, 주전 607년의 주장이 성서적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고고학이 증명하는 주전 586년을 예루살렘의 멸망의 해로 설정하면 어떠할까요?
d 성구의 주전 520년에 여호와의 천사가 칠십년을 말하였을 때는 66년 되는 해로 칠십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기 입니다.
그리고 e 성구의 여호와께서 칠십년을 말씀 하셨을 때는 주전 518년으로 68년이 되는 시기 입니다.
결국 주전 516년, 다리우스 왕 제6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 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진 주전 586년에서 정확히 칠십년 후인 주전 516년에 성전 재건이 완공 됩니다.
스가랴 서에서 여호와와 천사가 고토로 돌아온지 십여년 후에 다시 칠십년을 언급한 것은 분명 성전 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전이 칠십년이 되는 해에 재건되는 일이 가능 하려면 예루살렘의 멸망 시기가 주전 607년이 아니라 주전 586년이 되어야 합니다.
스가랴의 d와 e 성구에 비춰 보면 주전 607년은 성서적이지 않으며 고고학적 증거도 없습니다.
반면 주전 586년은 d와 e성구와 부합되며 수많은 고고학 중거들도 뒷받침해 줍니다.
또한 스가랴서의 칠십년이 성전과 관련되어 있음을 더욱 알려 주는 부분은 스가랴 7:3의 베델 사람들의 질문인 다섯째 달의 금식 입니다. 그 다섯째 달의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달입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 유배된 유대인들은 그날의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매해 다섯째 달에 금식을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주전 520년에 재건 공사가 시작 되었고 공사가 반 정도 진척 되었을 주전 518년에 금식에 대해 질문한 것입니다. 성전이 재건 되고 있는 상태에서 다섯째 달에 성전의 무너짐을 슬퍼하는 금식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이, 칠십년간 해온 금식이 나를 위한 것이 었는가? 너희를 위해 한 것이 아닌가? 였던 것입니다.
이 금식에 대한 내용도 주전 607년의 협회의 주장은 성서적이지 않음을 알려 줍니다. 주전 607년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져 다섯째 달에 금식을 해왔다면, 주전 518년에 여호와께서 답하실 때는 70년간이 아니라 89년간 금식해 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전 586년 예루살렘 멸망은 스가랴서의 성전 재건 시기와 관련하여 칠십년을 예언한 성서적으로 정확하며 고고학적으로 증거들이 명확 합니다.
글의 내용이 길어진 것이 아쉽습니다. 간단히 쓰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주의력을 잃지 않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vat4956의 천문학 일지 고증 자료도 있습니다. 한국의 한 형제가 연구 조사한 내용입니다. 필요하시다면 그 자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성서의 말씀이 고고학적으로도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을 협회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고고학적 증거와 일치하지도 않고 성서의 칠십년에 대한 말씀과도 충돌되는 607년 교리를 끝까지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607년 교리가 무너지면 1914년 교리도 같이 무너 집니다. 그러하면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으로서의 통치체의 권위도 함께 무너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에 대해 언급할 때 그들의 신분을 알려 주는 것은 무엇 이었습니까? 부지런히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잘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분에 대해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증명하려 다른 것에 기대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협회가 100년이 지난 1914년에 매달려 기대려고 하는 이유와 성서적이지도 않고 고고학적 증거도 하나도 없는 주전 607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들의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의 신분에 대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인들이 진리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 충실한 종 이라면 1914년이 무너져도, 607년 교리의 헛점이 드러나도 그것을 당당히 밝히고 깨끗하고 영양가 있는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통치체는 그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들도 자신들이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고자 하기만 할 뿐입니다.
첫댓글 실명이 나오는데 괜찮나요?
제 이름을 잊어버렸나 보내요. 보고도 알아 보지 못했으니.....
아니면 점점 대범해 지던가....
대범하지는 못합니다. 후딱 수정 했으니까요.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보폴라살이 기원전 645년경에 바빌론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였다. [통-1 781-785면 - 통찰, 제1권] ~ BC539년 멸망 총 106년동안 존재
제가 협회의 바빌로니아 왕조와 재위기간을 검토해본 결과 18년이 공석으로 빕니다.
바빌로니아가 18년동안 왕이 없었던 걸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사를 좀 더 조사해 보면 1900년대 초반부터 러셀은 거의 매년 종말을 기대합니다.
1910년 1911년 1913년 그러다가 마침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komin 심지어 1914년에 아무일이 없으면 1915년을 준비했었죠.
러셀의 연도계산
BC610아시리아멸망
BC607년 느부갓네살의 정복전쟁 시작
BC603년 느부갓네살 정복전쟁 종료
이 모든게 7년간 이뤄짐
이로부터 2520년후
1911년 오스만제국 붕괴시작 (이탈리아와의 전쟁)
1914년 1차대전 발발 (이방인의 때의 끝)
1918년 1차대전 종료
이것역시 7년간 이뤄졌습니다.
@타조 아시리아의 마지막왕은 기원전 609년 패망했고 느부갓네살은 605년 갈그미스에서 대승하면서 화려한 정복전쟁의 패자임을 떨쳤던거 아니었나요?
607년에 느부갓네살의 군사기록에 순찰이상의 것은 없어보이는데 굳이 정복전쟁시작의 의미는 어떤 이유로 붙일수있는지요?
603년 또한 궁금합니다.
연구와고찰 많이 하셨네요. 이 정도 연구하시면 누구나 탈관념 할 것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70년의 성취를 이 구조로 생각합니다만 증인들 반론으로 예루살렘 멸망은 기원전 586년이 아니라 587년이라고 하고있으며,
성전 봉헌은 기원전 515년에 무게를 싣고있지않은가..라고도 합니다.
이에대해 515년의 봉헌전에 성전이 숭배의 전당으로서 기능할만한 모습을 516년후반쯤엔갖추게 되었을것이라 합리적으로 추론가능함을 설명할수있을것입니다.
또한 587년이라 설명되지않는가 하는 문제는 간단히 검색으로도 586년에 무게를 싣고있는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관련학계 분위기가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더 무게있게 보고있음을 반영하고있기때문입니다.
이 주제로 증인들중 깊이 이야기하려는 사람과 이야기해본 바였습니다.
유대로 돌아온 사람들이 2년후 성전건축을 시작한다는 부분은 매우 훌륭합니다!
중요한 70의 수를 역사에서 찾아낼수 있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