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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통과혁신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백련강
6·2 지방선거 평가와 진보개혁진영의 과제
홍재우, 조성대(인제대, 한신대 교수)
지방선거가 닷새 지났다. 더 오래 기뻐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일은 민망한 일이다. 6.2 지방 선거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 보자.
이런 일들이 먼저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이후 지난 정부 10년 동안 성장시켜온 민주주의를 비롯한 모든 성과를 거역해 왔다. 검경과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은 정치보복과 충성경쟁에 몰두하였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고 ‘의자’의 잘못을 전직 총리에게 뒤집어 씌웠다.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사회, 문화, 교육 분야의 반대자들을 몰아내었고 불순한 연예인들의 밥줄을 끊었다. 소통하자는 국민 앞에 컨테이너 산성을 쌓았으며 방송을 장악하고 국민을 명예훼손죄로 교육시키려 했다. 인권과 시민의 자유를 우습게 알았고 길거리를 지나는 이들의 가방을 함부로 뒤지겠다는 음란함마저 보였다. 궤변과 미행으로 유엔과 국제사면위원회가 파견한 조사관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경제, 언론, 교육, 복지, 의료 분야에서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부끄럼 없이 시행해 왔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전국을 삽질과 토목 천국을 만들고 세종 시 원안을 포기하여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수도권 공화국을 만들었다. 소통에는 귀를 막고 대한민국을 일개 회사처럼 운영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북포용정책을 버리고 자주국방을 포기하며 재벌을 위해 공군 활주로를 변경한 안보 무능을 자처했으며, 심지어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전쟁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학교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만들었으며 청년실업의 원인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눈만 높은 개인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오만하기 끝이 없었다. 잘못된 여론조사를 맹신했고 소설쓰기를 밥 먹듯 하는 신문들의 비호를 받으며 방자하게 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나중에 일어났다. 승리를 확신한 대통령은 선거 아침 미소를 지었고 말투가 얄미운 전직검사 출신 여당의원은 압승 후 4대강과 세종시를 강하게 추진하겠다고 입방정을 떨었다. 출구조사가 발표된 6시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야당은 한나라당의 텃밭에서도 승리하거나 선전했다. 서울과 경기도는 여소야대로 바뀌었고 서울 시장은 강남특별구청장이라 불려도 될 만했다. 폐족들은 도백이 되어 금의환향했고 무지하게만 보였던 리틀 노무현의 꾸준한 구애는 결국 경상도의 심금을 울렸다. 호남을 포위하던 선거 지도는 경남을 제외한 영남을 포위하는 지도로 바뀌었다. 진보적 교육감들은 교육 시장주의자들을 몰아냈다. 국민은 민주화 세력에게 2004년 이후 첫 전국적 승리를 선사했다. 다 아는 이야기지 않은가? 솔직히 결과로만 보면 그래도 얼마나 관대한 국민들인가? 선거 직전까지 진보언론의 지면을 장식한 글들은 참여하지 않고 정부의 안보 노름에 휘둘리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각개전투에 나선 무기력한 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 일색이었고 그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애달픈 독려였다. 그러나 민중의 선택은 두렵고 경이로웠다. 그들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들이었고 직관적으로 권력의 남용을 제어하고 균형을 맞추는 현명한 존재였다. 상식을 넘나드는 권력의 거짓과 오만을 꾸짖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민심에 대한 두려움이 여의도를 흔들었고 그들이 만든 변화는 정치를 재미있고 신나는 것으로 만들었다. 시민은 스스로를 놀라게 하고 일깨웠다. 세상을 바꿔본 경험이 없던 젊은 유권자들은 깨달았다. “아, 우리가 이런 힘을 가졌구나!”
6.2 동시지방 선거의 결과에 대한 의미, 평가, 전망 그리고 뒷이야기들은 이번 달 중순까지는 온갖 언론기사와 세미나를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거와 관련된 여러 현상에 대한 의미 부여는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시시콜콜한 어림짐작들일 테고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것들은 당연한 이야기들의 다양한 변주이거나 아니면 부분적으로만 옳거나 부분적으로 틀린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글들을 읽고 즐기고 고민하자. 그러나 앞으로 남은 과제들이 더 어렵고 엄중하다는 사실만은 기억하자.
Ⅰ. 이명박 정부는 바뀔 것인가?
선거 바로 다음 날부터 선거결과가 미치는 정치적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붕어의 지능을 가졌는지 전전두엽의 기능 마비로 윤리적 망각이 손쉬운지 알 수 없지만 “괜찮아, 괜찮아 잘하고 있다”를 외치던 보수신문들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소통 부족을 꼬집었다. 여소야대의 지방정부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중앙정부와 교육감들의 정책적 차이에 의한 갈등을 전망했다. 무엇보다도 4대강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중지와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도 솔솔 흘러나왔다. 법적으로 선거에 절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대통령실장이 사임했다. 그러나 결점이 명백하고 주변의 반대가 하늘에 닿아도 자기 사람만을 고집하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 봤을 때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선거 이후 잠시 소강과 유화 국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쟁점 부분을 검토해보자.
4대강 사업은 이미 상당부분 공사가 진행되었다. 소신공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름이 바뀔지는 몰라도, 잠시 속도조절을 할지는 몰라도, 보를 조금 낮출지는 몰라도 언제든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 시 문제도 정운찬 총리의 유임을 시사하는 상황으로 봐서 크게 양보할 생각이 없다. 물론 단물을 다 빼 먹고 반박(反朴)이라는 효용가치가 떨어진 총리를 계속 끼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세종 시는 장기적으로 말을 바꾸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원안도 수정안도 모두 진척을 안 시키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4대강은 공사를 하는 게 목적이지만 세종 시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은 충청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어떤 기상천외한 꼼수가 등장할지 사뭇 기대되는 부분이다.
검경과 언론을 통한 공안 분위기 조성과 아젠다 장악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대통령에게까지 반항하는 조짐을 보인 검찰에 대해 내부적으로 단속하겠지만 권력의 도구로서 버릴 생각은 전혀 없을 것이다. 선거직후 한 전총리 수사 재개와 선거사범 수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불공정한 정치적 권력행사를 계속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런 권력 기관을 사용하는 방식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다른 부분은 직접적인 명령이나 기획 혹은 지도가 없더라도 권력기관이 알아서 정치적 역할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권력기관 뿐 아니라 모든 정부조직 내에서 과도한 충성경쟁이 상식의 선을 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BBK 수사, 용산참사, 노무현 수사 등 밖에서 보면 논란을 일으키고 사고를 친 것이라 생각되는 사안에도 충성에 대한 충분한 대가가 분명히 제공된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이것이 정상적 정부에서는 주어지지 않는 출세와 경제적 이익 등 사리사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심검문 강화 등 민주주의 시대를 의심하게 하는 입법과 행정조치들이 계속 해서 줄을 이을 것이다.
언론과 여론 장악 역시 계속될 것이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와 같이 세 부분으로 지속될 것이다. 하나는 비우호적이었던 방송을 보다 완전히 장악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세종 시, 4대강, 천안함, 지방선거 보도에 이르기까지 방송이 보여준 무기력함과 수동적 태도는 집권세력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일 것이다. 가끔 튀어나오는 코미디나 음악 프로에까지 미치는 몰상식한 간섭은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니라 방송장악을 그 만큼 완벽하게 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치기의 한 예이다. 두 번째는 언론재벌의 방송 진출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KBS 시청률 인상과 더불어 마련된 광고재원을 이들의 방송 시장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사용할 계획은 이미 공식화된 것이다.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언론재벌 간의 경쟁은 더욱 점입가경일 것이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동아일보의 유아적 친정부 논조는 앞으로도 상식의 경계 밖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등 비전통적 개인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촛불부터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인터넷 등을 통한 불순한 배후세력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선거일 즈음하여 정부 고위관료가 트위터 등의 한국지사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선거이후 정부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천안함 사건으로 판을 너무 키운 대북문제이다. 우선 처절한 상황에서 몸부림치는 자존심 강한 북한을 너무 궁지로 몰아넣어 지난 10년간 점점 남쪽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켜왔던 북을 완전히 중국으로 기울게 하였다. 천안함 사건은 초기의 비교적 차분했던 접근이 결국 강경파에 휘둘려 정치적 계산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강한 북풍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건을 국제화하다보니 이제는 쉽게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중국의 비협조와 러시아의 의구심 속에 이제 어느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궁극적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목표는 있는지, 그 목표가 현실성이 있으며 국민의 검증을 받은 것인지, 또 일련의 정책들은 그 목표를 위해서 나아가는 계획된 단계인지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최근 정부의 조잡하고 단순한 대북정책은 북한을 다룰 수 있는 많은 도구를 상실케 한 셈이다. 상대의 탈출구도 우리의 탈출구도 만들지 않는 아마추어의 외교정책은 반통일주의자를 통일부장관으로 앉힌 순간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이란 단어를 통치권자가 함부로 입에 담았다는 점도 놀랍지만 이제 와서 전쟁 가능성이 없다는 말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로 믿고 있는 게 더 놀랍다. 아무리 ‘마사지’를 잘하는 청와대홍보수석이라도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국민에게 설명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결국 비록 지방선거에서 패배라는 쓴 잔을 맛보았다고 하나 현 정부의 소통부재의 일방적 정국운영은 불을 보듯 뻔하고 민주주의의 퇴행은 결과물로 우리 앞에 제시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야권이 지방선거의 승리에 도취해 자만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의 당면과제가 더욱 엄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Ⅱ.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합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에서 진보진영이 살펴야할 가장 중요한 분야는 야권연대다. 87년 이후 민주화 세력의 연대가 이 정도 규모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비록 서울 시장과 경기도지사에서 패했지만 경남, 강원, 충남북, 인천 광역 단체장에서 승리했고 기초단체장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교육감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이번 야권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일종의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데 있다. 대통령중심제와 비슷한 우리의 지방자치단체 권력구조로 볼 때 연립정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당 간 권력공유는 제도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실제 최근 세계적으로 대통령제에서도 연립정권의 예가 드물지 않고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지방단위에서 연합정치는 2012년 총선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승리를 위해서 또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하며 특히 소수파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연대한 지역을 중심으로 연합정치를 위한 일종의 모형을 창출해내고 제도 설계를 위한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민주당과 민노당 등을 중심으로 도정협의회의 설치 등이 이야기 되고 있으나 이번 5+5회담이나 5+4회담을 통해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했다.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선거에 임한 고양시에서 ‘시민거버넌스위원회’가 설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황에서 당선자가 얼마나 힘을 실어줄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연립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에 준하는 정치적 타협과 배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선거 후 모호한 협력에 대한 구두 약속이 아니라 각 정책협상의 내용에 관련한 분야에 대한 책임자 임명, 위원회 설치, 자치단체 설립 공사 기관장 임명 등, 지자체 권한이 허용하는 모든 분야를 이용하여 권력공유에 대한 내용이 가능한 구체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자리 나눠먹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자리를 나누는 것이 구체적 정책결과를 만들어내고 책임을 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특히 소수파인 진보정당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성과물을 안겨주는 방법이다. 연합정치가 진보적 정당들 간의 차이를 매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과 규모를 강화하는데 성공한다면 오히려 협상과 경쟁의 과정에서 차이는 보다 명확해 질 것이다. 연합정치는 진보세력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가 되는 동시에 자기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명확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정치적 성과물을 나누는 문제가 반드시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연합정치의 성패는 민주당에게 달렸다. 연합정치가 실패한다면 민주당도 실패할 것이다. 작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고 한다면 다음 선거에서의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민주당 당직자들은 선거 승리가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데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경기도 선거운동 과정에 완전히 화학적으로 동화되지 않았고 서울에서도 선거준비를 하긴 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정부 여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데도 실패했고 야권연대를 명확히 이끌지도 못했다. 야권 승리의 절반이 넘는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의 승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향력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 국민이 민주당에게 표를 준 것이 민주당이 잘해서 그런 것인가? 대답이 자명한 상식적인 질문이 아닐까? 지금 민주당은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고 당내 주류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나 할 때가 아니다. 민주당도 그 지도부도 모두 아직 사상누각에 앉아 있다. 국민 앞에 납작 엎드리고, 죽어야 다시 산다는 각오로 싸워나가고 무엇보다 연합정치의 틀 내에서 나눔에 옹색하지 않아야 한다. 민주당이 2012년 총선까지 덩치 값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민주진영은 다시금 정치적 재편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길거나 성공적이지 못하면 연합정치의 틀은 완전히 깨질 것이고 민주 세력은 다시금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바꿔봐야 그놈이 그놈이다”를 “바꾸니까 정말 다르구나!”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앞날 뿐 아니라 범 민주 진영, 진보 세력의 앞날도 밝지 않다.
Ⅲ. 진보정치의 전략: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길
서울시장 선거에서 석패한 한명숙 후보에 대한 안타까움이 노회찬 후보와 진보신당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의 완주가 정치적 아쉬움이 될 수는 있어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정당은 자신의 후보를 선거에 내 보낼 권리가 있고 모든 후보는 자신의 정책과 노선의 차별성을 주장하며 완주할 수 있다. 보다 일차적인 책임은 한명숙 후보와 민주당이 더 열심히 하고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검찰 조사 후 지친 한명숙 후보의 빈약한 TV토론과 무상급식 이외 한명숙표 콘텐츠의 부재는 그야말로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제일차적 원인이었다. 이를 배제한 노회찬과 진보신당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다만 진보신당의 억울함을 뒤로 하고 따져봐야 할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어떤 성과를 얻었냐는 것이다. 민노당은 3명의 기초자치단체장과 141명의 광역/기초 의원을 당선시켰다. 출마자 대 당선자 비율은 원내 3당이던 2006년의 10%에서 32%로 올라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민노당이 얻은 자리에 비해 자신의 가치를 실천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연합정치의 틀 속에서 민노당은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진보신당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민노당이 현실을 인정하고 밑바닥부터 착실히 체력을 쌓는 진지전을 택했다면 진보신당은 두 스타 정치인의 공중전에 의지했다. 진보신당의 선택을 인정한다 해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노회찬 후보의 완주와 단일화 협상에서의 탈퇴가 제대로 된 진보정치의 구현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었을까? 정당득표를 위해 시장 후보의 상징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일부 지지자들의 주장은 선거결과를 두고 볼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 국민들은 생각보다 쉽게 ‘줄투표’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노-진보의 분당이 비례대표 배분에서 손해를 가져왔다는 점에 아쉬움이 더 클 뿐이다. 그의 완주는 진보정당의 씨를 뿌린 1997년 대선 당시 권영길의 완주와는 의미가 다르다. 낮은 득표율도 상황에 따라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왜 우리는 노원 구청장 노회찬과 고양 시장 심상정을 상상할 수 없단 말인가? 왜 이 유능한 두 정치인은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잠재적 대권후보로 존재해야 하는가? 기존 진보정당의 지지자들 이외의 일반 국민들에게 이들은 아직 노무현도 아니고 최소한 김두관도 아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들의 정치적 자산은 아직은 초라한 성적표이다. 물론 심상정 후보의 사퇴는 그녀에게 19대 총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눈물의 선택이 아니라 훨씬 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노회찬 후보에게 야권 후보로 단독출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도덕적 만족감을 고집하는 당내의 원칙주의와 이를 주위에서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결백주의 지식인들의 연합정치를 거부한 ‘분리의 선’이 진보정치의 미래를 밝게 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민노당도 기뻐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민주당과 연대로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당의 존재감은 약해졌다. 비례제를 포함해 서울에서 단 한 석의 시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했다. 김두관을 위해 뛴 권영길이나 한명숙을 위해 달린 이정희의 노고가 민주당만 좋은 일 해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민주당에게 민노당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신당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 작은 기득권을 포기해서 다시 진보가 큰 틀 내에서 논쟁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나눠먹기 정치”는 나쁜 의미로 들리지만 정치는 나눔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정치학 교과서에도 가장 첫머리에 나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진보적 가치는 현실적인 나눠먹기를 외면하고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연합정치를 비롯한 선출된 공직을 둘러싼 수많은 정치적 전략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력과 명성을 함께 갖춘 정치인재들을 키워내야 하는 과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