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선수가 수영 중 가장 속도가 빠른 남자 자유형에서 올림픽 메달을 딴 것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대사건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자유형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던 일본의 데라다 노보루 이후 처음이었다. 자유형이 아닌 다른 남자 종목의 경우엔 일본의 기타지마 고스케가 2004아테네올림픽 평영 2관왕을 하는 등 지금까지 간간이 챔피언들을 배출해 왔다. 여자 자유형에서도 아시아 출신 올림픽 우승자(시바타 아이·일본·2004아테네올림픽 800m)가 있었다. 하지만 남자 자유형, 그 중에서도 400m에선 박태환이 유일한 올림픽 우승자다. 그만큼 서양 선수들의 지배가 길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선수는 2000·2004올림픽에서 2연속 우승을 했던 호주의 이언 소프(은퇴).
박태환의 10일 결선 레이스는 필요에 따라 호흡 방향을 바꿔가며 경쟁자들의 레이스를 살핀 그의 능력이 돋보였다. 출발부터 가장 빨랐다. 반응시간 0.69초. 3번 레인에 자리잡은 박태환은 올해 세계랭킹 1위 그랜트 해킷(호주)이 초반부터 치고 나가자 "절대 밀려선 안 된다"는 노민상 감독의 당부를 떠올렸다. 2번 레인의 해킷이 오른쪽에 있을 땐 오른쪽으로, 턴을 한 뒤 해킷이 왼쪽에 있을 땐 왼쪽으로 호흡을 하며 견제했다. 반면 해킷은 오른쪽 호흡만 했다.
세계 정상권 선수라면 양쪽 호흡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 호흡도 편한 방향이 있게 마련이다. 박태환은 왼쪽 호흡만 하면서 헤엄칠 때의 속도가 초속 1.78m, 오른쪽은 초속 1.74m(측정거리 35m 기준·한국체육과학연구원 자료)다. 팔을 젓는 스트로크 자세도 왼쪽 호흡을 할 때가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좌우의 균형을 맞춰 경기 운영에 융통성을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양쪽 호흡 훈련에 신경을 써 왔다.
박태환은 150m 지점에서 해킷을 0.03초 차이로 제쳤고, 200m까지 0.04초 차 선두를 유지하자 스퍼트를 시작했다. 작년 호주 멜버른 세계선수권처럼 마지막 50m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는 작전은 너무 불안하다고 보고 중반부터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박태환의 키(1m82)는 서양의 라이벌들에 비해 10㎝ 안팎이 작지만 대신 가슴 두께가 얇고 엉덩이가 작아 전체적으로 굴곡이 적다. 경주용 보트나 서핑 보드처럼 물의 저항을 덜 받는 체형에 균형이 잡힌 영법, 24주간의 집중훈련 덕분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박태환은 지난달 태릉선수촌에서 두 번 실시한 모의 경기 시뮬레이션 결과 3분41초대의 예상 성적표를 받았다. 오전에 열리는 결선에 대비해 소변을 보고, 수영복을 입고, 음악을 듣는 것까지 일치시켰다. 체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400m를 한 번에 헤엄치지 않고 네 구간(200m· 100m·50m·50m)으로 잘랐고, 한 구간이 끝날 때마다 5초씩을 쉬었다. 휴식 시간을 고려해 대표팀 노민상 감독이 추정한 기록이 3분41초대였던 것이다(
본보 9일자 참조). 그래서 전날 예선에선 있는 힘을 다 쏟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최고기록이던 3분43초59를 0.24초 앞당기며 전체 3위(3분43초35)로 결선에 올랐다.
박태환은 300m 지점에선 2위 해킷과의 차이를 0.9초로 벌렸다. 350m가 가까워지면서 오버 페이스를 하던 해킷이 뒤처지고 라슨 젠슨(미국)과 장린(중국)이 거리를 좁혀왔다. 장린을 응원하는 중국 관중의 함성이 급격하게 커졌다. 박태환은 마지막 구간에서 왼쪽의 해킷은 더 이상 보지 않고 반대편에서 무섭게 쫓아오는 두 추격자 쪽에 시선을 맞췄다. 장린과 젠슨은 시종일관 오른쪽으로만 호흡하느라 막판엔 박태환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3분41초 동안의 드라마를 쓴 박태환은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수영연맹 관계자들로부터 태극기 두 개를 받아 흔들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기자 회견장에서 한 중국기자는 박태환에게 "당신을 한국의 류상(중국·육상 110m 허들의 세계적인 강자)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도 했다. 한국의 박태환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자랑'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자유영? 자유형!
박태환이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종목은 자유형이다. 경영 부문의 네 가지 경기 중 하나다. 접영(蝶泳·butterfly)과 배영(背泳·backstroke), 평영(平泳· breaststroke)은 팔을 어떻게 휘두르고, 발차기를 어떻게 해서 헤엄쳐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이 있다. 하지만 자유형은 말 그대로 프리 스타일이다. 자유롭게 영법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수영 자유형 선수 대부분은 어깨를 돌려 팔을 머리 앞쪽으로 휘두르고 다리를 아래 위로 차는 크롤(crawl·혹은 front crawl) 영법을 쓴다. 가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1800년대 후반 존 아서 트루젠(Trudgen)이 남아메리카 여행 중 현지 원주민들의 수영을 보면서 착안, 영국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루젠이 소개한 이 오버헤드(overhead) 영법은 나중에 '물속을 뚫고 기어가는 듯하다'는 이유로 점차 크롤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됐다.
첫댓글 너무 너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수영모 위로 커다란 헤드폰을 쓴 채 입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