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비로소 나는 굴러가는 잎사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새파랗던 것들도 멍이 들어/ 이름과 비바람에 앉은뱅이가 된다/ 소리 없는 악기가/ 수선화를 흔들고 있다/ 드디어 나는 굴러가는 잎사귀에서/ 티끌도 남지 않은 손때의 혀 바닥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생명력이 타다 남은 흔적으로/ 모든 음악이 불려지고 남은 악기로/ 땅 위에서 흔들린다/ 이제 나는 연주가 되지 않을 악보를 읽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악보를 그린 존재들 앞에/ 잊힌 이름, 사랑/ 누가 썼는지 필적을 모른 채 외고 있었다 _「비오는 밤에」 전문 소설과 두권의 시집 술 취한 밤은 모슬포로 향하고 있다, 그 잔인한 사랑, 그 속성에 대하여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김나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각시붓꽃 목에 슬픈 낮달이 뜨다(도서출판 심지)를 냈다. 55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시어와 이미지, 상징들이 서로 뒤엉겨 소용돌이치며 혼류하고 있다. 이러한 서정적 율동은 다소 난해하고 명제가 또렷이 드러나지 않아 불편함이 따를 수 있지만 심미주의 세계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시인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의 전 시집은 시인의 감정과 사고를 시의 형틀에 맞춰 풀었다면 이번 각시붓꽃 목에 슬픈 낮달이 뜨다는 숨고르기와 본질적인 정체성에 코드를 맞추었다. 오준 평론가는 해설에서 “김나인의 시는 인간 사이에서 사랑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의 과정을 많은 방식과 언어로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보여주었다. 사랑이라는 핑계로 과잉되어 도착, 탐미, 변태가 되거나, 반대로 결핍되어 비명, 주정, 절규, 저주가 된 것은 사랑 그 자체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감춰진 본성 때문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라고 평하였다. “밋밋해진 나의 몸을 이끌고 하나씩 사라지는 화살표, 수많은 기호들을 찾아 나선다. 하루는 시장에서, 닭도리탕을 먹으면서, 노숙자를 바라보며, 어린 소녀의 눈동자, 촌부와 과부 그리고 나를 보면서 그 상징성들을 찾다보면 내 몸 어딘가에 그 화살표가 드러나겠지.” 시인의 말처럼 주위의 사물과 많은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는 시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시집 각시붓꽃 목에 슬픈 낮달이 뜨다에는 같은 제목의 시가 없다. 시집에 담겨있는 시 모두 그 제목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시붓꽃의 꽃말의 의미와 낮달의 의미가 결합하여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계의 고독과 슬픔, 외로움등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그동안의 문학적 탐구는 사랑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천착이었다. 그것을 그토록 몸서리치며 처절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라고 평한 오준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시집에는 점점 복잡해지고 난해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출발점을 바로 인간의 본질에서 찾으려 깊이 고민하는 시인이 있다. “시란 인간의 본질과의 끝없는 싸움이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책속에서 들에 피었을 한 송이 꽃이라 불려도 조오타 행려의 무고舞鼓한 발걸음에 으스러지는 그 꽃이라도 조오타 헛된 꿈같이 모든 바람이 사랑으로 곰삭고 시시때때로 모든 만남이 순간이었던 적도 있다만 나는 푸르른 하늘같은 여린 가슴으로 지나간 향기만으로도 족하다 그러니 쓸쓸하다 말며 외로웁다 슬퍼할 일도 아니다 오다가다 스치올 인연 내 삶에 그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들에 무성할 잡초라 불려도 조오타 그리하여 나는 무속巫俗이 없는 자유다 이름 모를 새로 날다가 잊힌다한들 이름 모를 꽃이나 잡초로 한들한들거린다한들 나 스스로의 실소는 아름다운 것 그러하니 초라하거나 약해하거나 괴로워할 일도 조오타 _「무인도」 전문 ■ 시인소개 ㆍ김나인 시인 연락처 : 010-8813-0109 충남 보령 출생.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중. 2004년 ≪순수문학≫에 「배꼽아래」 소설 당선, 2006년 계간 ≪문단≫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배꼽아래, 파리지옥, 개미지옥, 나체주의자의 음란소설, 시집 술 취한 밤은 모슬포로 향하고 있다, 그 잔인한 사랑, 그 속성에 대하여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가 있다. 제39회 경기학술문예 소설부문 우수상, 2007년 아시아 작가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충남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보령지부 회원. ≪작가와문학≫발행인
첫댓글 또 하나 문학의 열매를 세상에 내었구나...축하한다. 나도 그 동안 모아둔 세계 기행시를 출간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