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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고 뒤도 분모를 만들어서 더 해야 해. 선생님이 그건 어떻게 만든다고 했지?”
“……이, 이렇게……요?”
“그렇지. 그렇게 해서 분모는 분모대로 더해서 분자로 나눠줘야 하는 거란다. 그럼 계산해봐.”
“14요.”
“정답. 그렇게 잘 하면서 시험을 그렇게 엉터리로 쳤니?”
“그게 상옥이 그 가시나가……”
“또 나쁜 욕설!”
“아~ 죄송 예. 상옥이가 내 옷이 지가 책상 가운데 쳐놓은 선을 넘었다고 꼬집어 가꼬, 선생님 설명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여학생에게 주먹질을 했어?”
“그 걸 어떻게……?”
꼬옹~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선생님께서 아프지 않을 정도로 머리통에 알밤을 주면서 웃었다.
“호호, 나는 내가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니가 더 우습다, 요 녀석아.”
나는 알밤을 맞으면서도 잠시 헷갈리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로 선생님과 마주해서 혼나는(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청소가 끝나고 혼자 남겨서 야단을 치는데 분위기는 내가 혼나는 자리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교양미가 철철 넘치는 예쁜 선생님의 사투리도 아닌 표준말도 아닌 묘한 언어의 뉘앙스가 신기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기분 때문이어선지 알밤을 때리려고 팔을 들어 올릴 때 후각을 자극해오는 선생님의 좋고 고운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고 코를 벌름거렸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며 피식 웃으시더니, 미리 당신이 준비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다섯 개의 분수 문제가 쓰여 있는 시험지를 연필과 함께 내밀었다.
“자~ 그럼 이 문제 정도는 풀 수 있겠지~ 한 번 풀어봐.”
그러나 나는 연필을 받기 전 즉석에서 계산을 끝내 문제의 답을 다 불렀고, 선생님은 살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지으면서 문제지를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나는 이제야 끝났나보다 생각하며 빨리 집에 갈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은 당신의 책상에서 숙제 검사용으로 걷어놓은 내 국어공책을 찾았다.
그걸 보면서 나는 또 한 대 얻어 터지겠구나하는 생각에 찔끔했다.
대체로 그 시절 학교에서 내주던 숙제는 주로 국어와 산수가 대부분 이었다.
그리고 국어 숙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기 전 예습용으로 해오는 낱말 뜻 풀이였다.
하지만 그 숙제는 학급 학생들의 빈부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시금석의 하나였는데, 그 단어의 뜻을 찾기 위해선 먼저 국어사전을 찾아야 하든지 아니면 표준전과라는 일종의 참고서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급의 대다수가 극빈가정이며 집안에 상급학교를 다녔거나 글을 배운 사람조차 얼마 되지 않는 가난한 동네에 사전이 있는 집은 열에 하나 정도였고, 표준전과 역시 그중에 좀 형편이 괜찮은 집이나 교육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집의 아이를 제외하곤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사전과 표준전과가 없는 아이들 중 넉살이 좋은 아이들은 의리를 무기삼고 힘이 센 아이들은 위력을 과시해서 전과를 빌리거나 아니면 다른 애들이 해온 숙제를 베끼곤 했다.
그러나 그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부류들은, 아부를 떨던 사정을 하던 각자의 능력대로 숙제를 해서 안도의 한 숨을 쉬든지 아니면 혼이 나곤 했다.
그리고 나는 꼴사납게 아부를 하거나 사정하는 게 싫어, 혼이 날 걸 각오하고 그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숙제를 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내 방식으로 임의로 단어의 뜻풀이를 해서 제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항상 선생님께서 숙제를 꼼꼼하게 검사 하지 않고 대충하다 말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고, 내 어리석은 소망을 무참하게 뭉게시는 분이셨던 것 같다.
“훈이 너, 이 낱말 뜻들을 다 어디서 찾은 거니?”
“……”
“국어사전과 전과는 아닌 것 같은데……맞제?”
찔끔하는 사이에 다시 또 정체불명의 말투를 사용하시는 바람에 긴장이 슬쩍 풀렸다.
“설마……니가, 아니 너 혼자서 생각해서 뜻을 풀이한 거……?”
“맞는데예!”
갑작스런 내 대답에 선생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 역시 살고 있는 동네의 영향으로 충청도어와 경상도어를 혼합해서 사용하는 인류였다.
우리 선생님께선 경상도어와 표준어(서울말)을 혼용하시는 것 같았고.
“응? 뭐……”
“그게……뭐, 동화책이나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책들을 읽다보니까 대충 그런 뜻인 것 같더라고예. 그래서…… 몇 개는 다른 아들 전과에서 베낀 거하고 같은 뜻이던데 다 틀렸습니꺼?”
그런 내 대답에 선생님은 또 한 번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아……아니. 다 틀렸다는 건 아니고 몇 개가, 아니 낱말 뜻 풀이는 반드시 사전이나 전과를 보고 따라해야 한단다. 그건……”
“지도 알고는 있습니더.”
“그런데 전과가 없다고? 엄마가 안 사주셨어?”
“……”
선생님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 것처럼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리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사이 교실 입구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새어들어 왔고, 고개를 숙인 나를 쳐다보던 선생님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하더니 나를 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알겠어. 전과는 내가 어떻게 해 볼 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 봐.”
“……예.”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나는 마음과 달리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면서 고개를 숙이곤 책보를 들었다.
그러자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갑자기 나를 향한 선생님의 박력 넘치게 소리를 쳤다.
“민영훈! 남자가 바보처럼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울면 어떡해! 고개 들어!”
선생님의 음성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던 나는, 어느새 선생님 책상 근처까지 다가온 곱고 화려한(그때의 내 눈에) 한복을 입은 온화한 인상의 아주머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숨어 있다가 고개를 살짝 내밀던 귀여운 꼬마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고.
“……!”
“?”
순간 나는 마치 불맞은 멧돼지처럼 놀라 얼른 책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굴은 마치 곧 터질듯 붉어진 채로. 그런 내 뒤로 들리는 선생님과 아주머니의 말과 꼬마 여자애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서.
“저, 저, 바보……!”
“키익, 킥~”
“추혜석! 너어~”
첫댓글 이런 사랑......다시 하고프다 ㅠㅠ
사랑은 아름다워요
그토록 추혜석을 기다렸는데...
기다렸던 그녀는 도통 안보이고
표준전과 이야기만 본문을 차지한 다음
ㅡ 맨 뒤에 나오네요.
딱 드라마 본편 보여준다음에
내일 예고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