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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11. 큐티
에스겔 41:12 ~ 20
서쪽 건물과 성전의 넓이
관찰 :
1) 새 성전의 전체 규모
- 12절. “서쪽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너비는 일흔 척이요 길이는 아흔 척이며 그 사방 벽의 두께는 다섯 척이더라”
a. 성전 서쪽에 위치한 부속 건물의 규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건물의 너비는 일흔 척, 약 37.2m였고 길이는 아흔 척, 약 47.8m였습니다. 또한 이 건물 벽의 두께는 다섯 척, 약 2.6m로 매우 두꺼운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뒤편의 부속 건물의 길이가 아흔 척에 북편과 남편의 벽 두께만 열 척을 합하면 백 척이 되었습니다. 또한 부속 건물의 너비 일흔 척에 성전 뒤편 뜰의 너비인 스무 척을 더하고 역시 북편과 남편의 벽 두께인 열 척을 합해도 백 척이 되었습니다. 부속 건물도 뒤편 뜰의 너비와 자신의 벽의 두께를 더하면 길이와 너비가 모두 백 척인 정방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 뒤편 공간의 너비와 길이가 모두 백 척인 것은 성전 앞 면 즉 동쪽 안뜰의 너비와 길이가 40:47과 41:14에 언급된 것처럼 백 척의 정방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동일합니다.
b. 성전 뒤편의 뜰은 성전과 분리된 곳으로 성전에서 나오는 일체의 폐기물들을 버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c. 본 절의 의미는 뜰 뒤편의 서쪽 끝과 부속 건물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전 본 건물의 뒤편에 지어진 건물은 성전과 외부 세계의 경계를 짓는 외부 담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누구도 성전 뒤편에서 성전으로 나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즉 이 건물의 건축 목적은 하나님 뒤편에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뜰 뒤의 건물에는 출입구나 창문이 전혀 없으므로 이 건물을 다른 용도나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 13절. “그가 성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백 척이요 또 서쪽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향하여 길이는 백 척이요”
a. 성전 본 건물과 성전의 앞 뒤에 있는 부속 건물과 공간의 규모에 관한 내용입니다.
b. 성전의 너비가 백 척이었으므로 안뜰과 성전과 뒤뜰은 모두 길이와 너비가 각각 백 척 즉 약 53m에 이르는 세 개의 정방형이 이어지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c. 세 개의 정방형의 구조와 그 구조 한 가운데 정방형 성전이 있으며 성전의 가장 안쪽에 정방형의 지성소를 배치한 성전의 구조는 성전 특히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신성한 곳이며 완전한 장소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14절. “성전 앞면의 너비는 백 척이요 그 앞 동쪽을 향한 뜰의 너비로 그러하며”
a. 성전 본 건물의 너비는 지성소의 너비가 스무 척이라는 4절의 내용과 성전 벽의 두께가 여섯 척이고 골방의 너비가 네 척이라는 5절의 내용과 골방 바깥벽의 두께가 다섯 척이라는 9절의 내용과 골방 외벽을 두루고 있는 빈 터가 다섯 척이라는 11절의 내용과 빈 터 옆의 뜰의 너비가 스무 척이라는 10절의 내용을 종합하면 백 척이라는 너비가 나오게 됩니다.
b. 성전 내벽과 골방과 외벽과 빈 터와 뜰의 너비를 더한 사십 척은 남쪽과 북쪽에 모두 있으므로 이를 곱하면 팔십 척이 되고 여기에 스무 척인 지성소의 너비를 더하면 백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성전의 너비와 맞대응 되는 성전 뒤편의 부속 건물이 구십 척의 너비에 다섯 척의 벽 두께를 두 곱을 열 척을 더하면 백 척이 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c. 뜰의 너비가 백 척이라고 했는데 이는 40:47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 15절. “그가 뒤뜰 너머 있는 건물을 측량하니 그 좌우편 회랑까지 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a. 성전 뒤편의 건물과 성전 본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b. 성전 뒤편 건물은 그 좌우편 회랑까지 백 척이었습니다. 여기서 “회랑”(앗투케하)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본 절에서만 단 한 번 사용된 단어입니다. “회랑”은 일종의 발코니를 가리킵니다. 즉 성전에 딸린 골방이 삼 층의 구조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전 뒤편에 있는 부속 건물이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좁아져 아래 층과 위 층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2) 새 성전 본체 건물 내외의 널판자 장식의 식양
- 16절. “문 통로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회랑은 문 통로 안쪽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자로 가렸고(창은 이미 닫혔더라)”
a. 성전과 골방의 내부가 모두 그룹들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판자로 잇대어져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b. “문 통로 벽”(핫씹펌)은 ‘문지방’이라는 의미입니다. “닫힌 창”은 격자 모양의 나무 창살로 막힌 창문을 의미합니다. “삼면에 둘려 있는 회랑”에서 삼면은 성전의 동쪽과 북쪽과 남편을 가리키고 회랑은 성전을 둘러 있던 다락을 의미합니다.
c. (창은 이미 닫혔더라)를 괄호로 표시한 이유는 원어 성경의 관주에 해당하는 부분이 중복 오사, 즉 동일한 단어를 실수로 반복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 절의 원문은 성전 안에 있던 창문에 대해 닫혔다는 의미의 단어가 세 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d. 에스겔은 성전 내부가 완전히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판자로 막혔다는 사실과 더불어 창문은 나무 판자로 가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 창문이 나무 판자로 가려지지 않은 이유를 ‘막다’, ‘덧대다’, 혹은 ‘뒤덮다’라는 유사한 단어를 세 번씩이나 사용하여 이미 나무로 막아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막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e. 성전 내부를 하나님의 거룩을 상징하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나무로 완전히 막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와 외부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스겔은 천사가 보여준 성전 내부에서 유일하게 막지 않은 창문도 격자 나무 창살로 가려져 있었다는 점을 묘사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이 창문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 17절. “문 통로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방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측량한 크기대로며”
a. 에스겔은 다시 한 번 내전과 외전의 사방 벽도 다 나무로 막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b. 왕상 6:29-31에서 솔로몬 성전 성소의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을 새겼고 마루에는 금을 입혔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짝에도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왕상 6:23-28에서는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는 그룹이 종료나무로 만들어진 뒤에 금으로 입혀져 있었고 내부 벽에는 그룹이나 종려나무를 새기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과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성전을 비교하면 금이 사용되지 않고 나무로만 되어있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한 나무에 다른 문양이 사용되지 않았고 그룹과 종려나무만이 새겨져 있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지성소와 성소가 모두 일관성 있게 장식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리하자면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성소와 지성소는 성전의 다른 곳과도 다르고 솔로몬 성전과도 다르게 장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독특한 장식은 그룹과 종려나무만이 새겨진 나무로 내부의 모든 면들을 막았습니다.
c. 성소와 지성소와 문 통로와 그 벽에 이르기까지 온통 장식된 그룹은 에스겔이 본 첫 성전 환상이 기록된 10장에 등장했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에서 떠나는 내용을 기록한 10:1-20에서도 그룹이라는 단어가 13, 17절을 제외하고 매절마다 사용될 정도로 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본 두 번째 환상, 즉 하나님께서 세우실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에서도 그룹은 강조되었습니다.
d. 첫 번째 환상과 두 번째 환상에서 모두 강조된 그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성전 환상에서는 그룹들 위에 계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심이 묘사되었 반면 두 번째 성전 환상에서는 그룹들로 장식된 성전 내부에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돌아옴이 특정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즉 첫 번째 성전 환상을 기록한 9, 10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10:1-20은 그룹들 위에 계신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 싸여서 성전을 떠나가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성전 환상을 기록한 40-43장에서 가장 주용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43장을 보면 첫 번째 성전 환상에서 떠나신 하나님의 영광이 새롭게 세워진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새 성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에 대해 묘사하면서 43:3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모양이 자신이 그전에 본 환상 곧 9, 10장에서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에스겔은 41:16-18절에서 새 성전의 내부를 그룹이 장식된 나무 판자가 뒤덮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이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첫 번째 환상에서 그룹들에 싸여 성전을 떠나신 여호와의 영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입니다. 또한 이 기억을 통해 자신이 40-41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새 성전이 과거의 성전에서 떠난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임할 장소로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그 백성들 가운데 임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입니다.
- 18절. “널판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각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a.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널판자에 어떤 내용이 새겨져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b. 본 절에 강조된 그룹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절에 의하면 그룹의 한 얼굴은 사람의 모양이었고 다른 한 얼굴은 어린 사자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개의 그룹 사이에 한 개의 종려나무가 새겨졌는데 사람의 얼굴은 안 쪽 즉 종려나무 쪽을 향하고 있었고, 어린 사자의 얼굴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룹의 두 얼굴은 서로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19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쪽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쪽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성전 사방이 다 그러하여”
a. 본 절은 성전 내부에 덧대어진 나무 판자에 새겨진 그룹들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모양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양이 온 성전 내부에 골고루 새겨져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 1장에 나오는 사람, 사자, 소, 독수리 형상 중 성전 내부의 문양에는 사람과 사자의 모습만 나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수와 일치시키기 위해 네 생물의 대표격인 두 개의 생물만 새긴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 의미는 성전 내부의 벽에 새겨진 사람과 사자의 모양을 통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봉헌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c. 그룹에 새겨진 사람의 얼굴은 이성과 지혜를, 사자의 얼굴은 힘과 용기를 상징하며 종려나무는 다산과 생명, 승리와 형통 등을 상징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사람과 사자의 얼굴이 종려나무를 향하고 있는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기와 힘을 통해 최종 승리와 생명, 형통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 20절. “땅에서부터 문 통로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a. 그룹과 종려나무의 문양이 성전 내부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골고루 새겨져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b. "성전 벽“은 ‘성전의 내부 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부터 문 통로 위에까지“라는 표현은 성전의 바닥과 천장을 제외한 온 벽에 그룹들과 종려나무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을 기록하는 목적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전에 새겨진 그룹 천사와 종려나무의 문양은 피조세계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앙망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만이 이 세상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유일한 것이 됨을 새 성전 자체가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새 성전이 그러하다는 것은 성막과 솔로몬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자 한 것이 그것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환상 가운데 에스겔이 성전에 대한 너무나도 깊은 내용을 천사를 따라다니며, 그가 치수를 재는 것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서 설명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
3)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았습니다.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환상이 스룹바벨 성전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 모든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을 통해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질서를 개편하여 새로운 질서를 이루시고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그룹 천사의 두 얼굴, 곧 사람과 사자의 얼굴이 종려나무를 바라보는 문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된 것이 성취되는 것을 이루시게 될 것입니다.
적용 :
1) 에스겔이 본 새 성전 환상이 품고 있는 의미가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황금이 아니라 나무판에 새겨진 문양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의미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아야 보이는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놀라운 관점을 성도가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조금 다가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하나님의 깊은 관점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말세를 꿰뚫어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큰 일을 깨닫게 하시고, 그 놀라운 일에 동참케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또한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