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한팀장님.. 저, 미팅을 미룰 수 있을까요? 아...네. 조금 아파서요, 죄송합니다."
너는 핸드폰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피곤한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 네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도 약속을 조정할 수 있을만큼 당당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는 반면
어디가 아픈건지, 나 때문인지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었다.
약을 사다줘야 하나? 아니,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르는데. 병원에 데려가? 그러다가 나 때문에 둘러댄 거면 어떡해야 해.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곤란해하고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신차리고 보니 너는 이미 카페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은아."
애타는 마음에 벌떡 일어나 네게 최대한 빨리 걸어간다. 잡아야해. 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지은아, 나는 말이야."
우뚝 멈춰선 네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짓껄이고 있는 거지? 그냥, 아무말않고 안아주기만 해도 너는 좋아했을 텐데.
하찮은 말따위에, 변명따위에 얽매이는 걸 제일 싫어했던 너인네.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야.
"예전에 네가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다? 원래 그런거 잘 안믿는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네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
툭. 네가 눈물을 떨궜다.
"그 때, 나는 네가 참 좋았어, 그리고 무서웠어. 너무 좋아한 만큼 빨리 헤어지게 될까봐. 그래서 널 놓아줬어.
아마 내가 더 너와 사귀고 있었다면 난 널 가둬버렸을지도 몰라. 아무데도 못가게, 아무도 못보게."
널 울렸다는 것에 당황해서 아무말이나 해댔다. 무슨 말을 한건지 모르겠었다.
나는 4년 후에도 등신이고, 바보였다.
"아무 필요없어."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이미 지난 일 가지고. 권진서 너랑 나랑 이미 끝났잖아. 네가 나를 버렸잖아."
그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상처받은 마음이 담은 네 말에 가슴이 저려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아.
나는 무슨 짓을 했었고, 또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지금까지도 이 여자를 놓지를 못해 상처만 주고 있는 걸까.
나는 어째서 항상 이렇게 서툰걸까. 등신, 제발 제대로 하란말이야.
"버린 게 아니야. 그땐 어려서 그게 정답인 줄 알았어. 사랑하면 놔주기도 해야하는 지 알았다, 사실 사랑한다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건데."
말하면서도 이제 아무소용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4년전. 그때 너를 놓지 말았어야 했었다. 난 이제 너를 잡을 자격이 없다.
"4년 전 후회를 내게 털어놓지마. 가슴만 아프니까."
쿵. 가슴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땅이 내려앉아서 모든게 암흑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야. 가슴 아픈 인정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격도 없는 내가 흘리는 눈물을 네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네게 매달려본다.
"지은아, 제발. 제발 나 한번만 봐줘. 한번만 네가 정말 내 영혼의 반쪽이라고 말해주라."
넌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카페를 나간 네 뒤로 나만이 남아있다. 눈물이 멈출 수도 없이 흐르는데 머릿속에는 아직도 잡아야한다는 생각뿐이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앞세워 카페문을 열어 밖으로 나간다.
연인과 친구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홀로 상처받아 울고 있을 너를 찾아 걷는다.
아마 나는 몇년, 아니 몇십년 동안 너를 놓지 못할 것 같다. 계속 네 흔적만을 맴돌겠지.
너의 연인,친구..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네 곁만 맴돌겠지. 하지만 그렇다해도 괜찮아. 내가 네게 준 상처보다야 덜할거야.
홀로 고개숙여 울고 있는 네가 보여 그곳으로 달려간다.
네 손목을 잡고 아무말 않고 서있는다. 고개숙인 네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걸 보는 것도 두려워 가만히 서있는다. 나도 모르게 네가 아무말이나 해주길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젓는다. 이제 네게 기대지는 않을 것이다. 연인으로서든 친구로서든, 그저 널 쫓아다니는 방해물로서든.
"지은아."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네가 깨져버릴까 봐, 그게 두려워서 네 옆에 있질 못하겠다.
지은아. 넌 날 버려도 돼. 버리고 밟고 던져버려도 나는 상관없어.
그렇지만 넌 그 누구도, 나조차도 손댈 수 없어. 내가 아무리 망가져도 나는 너를 홀로 두고, 버려둘 수 없어.
예전의 나는 네 자유로움에 반했지만, 지금 나는 그냥 네가 좋아.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
내 실수에 얼룩진 우리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좋다. 이런 나쁜 놈이니까 넌 그냥 나를 버려.
나는 네 옆에서 죽은 듯이 떠돌아도 충분한 상처를 네게 줬..."
"그만."
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충분해. 이제 아무말 필요없어. 그냥... 그냥 나 좀 안아줘."
-
널 품에 안고서
북적거리는 거리의 소음 속에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안녕, 지은아. 나의 소울메이트, 안녕. 오랜만이야."
애타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안녕이라는 말만 그렇게 되뇌었다.
-
이제 우리에게 안녕은 작별의 의미가 아니었다.
p.s 와, 드디어 번외가 하나 나왔어요!!
이제 엔딩만 내면 되요! 아이고, 스토리 짜는 것도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