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소원
빌3:10-14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엇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잇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잇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의 말씀은 상당히 왜곡되고 곡해 되어온 말씀들이다 주로 세부류로 나타나는데 구원의 문제와 부활의 문제그리고 성화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구원의 문제로 말하는 자는 구원이 계속하여 이루어 가야한다고 하고 부활로 접근한 자는 죽어서 육체의 부활을 말하 성화로 본 자는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말씀이 난해하고 어렵습니다
저는 빌립보서을 문맥으로 보면서 그간 다르게 보앗습니다 때문에 제가 깨달은 것들을 조금은 댓글로 햇는데 요번에 어떤 분께서 저보고 묵상해 보라고 하여서 그간 묵상해 두엇던 것을 이번에 그 분과 더불어 나눌까 합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 잇으면서 쓴 편지 입니다 바울은 옥중에 잇으면서도 열열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한가지 유일한 소원은 자기 민족이 에수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9:1-3 > ...나에게 큰 근심이 잇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않는 고통이 잇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리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마치 구약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로 다 죽게 될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담보로 용서함을 구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옥중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만큼 구원의 열정이 남달랏습니다
바울은 일평생 두가지를 자랑하여 살앗는데 첫째는 십자가을 자랑했고 두번째는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10절에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부활의 권능을 맛 보앗듯이 자기도 예수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11절 어떻하든지 자신도 예수처럼 죽음밖에서 부활의 권능을 맛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일찌기 성자로 알려진 성프랜시스는 자신도 에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을 맛보고 싶다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죽음의 고통이 어쩐지를 경험햇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사모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이 감옥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부활의 권능을 경험해 보기를 그토록 바랫을까요 그것은 이것입니다
바울이 죽은자로 죄인의 괴수로 있을때 에수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을 경험하엿습니다
때문에 바울 편에서 다른 사람을 살릴려면 자기도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에수처럼 십자가의 고난으로 죽음에 넘겨져야 부활시킬수 잇다는 원리를 깨달앗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또는 죽음에 넘긴다라고 하엿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 부활시킬려면 자기가 십자가에서 예수처럼 죽어야 다른 사람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16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셧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각 절마다 보겟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놓치지 않습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엇다함도 아니라는 말은 바울 자신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예수 십자가로 인도하여 구원을 얻게 해야하는데 지금 옥중에 갇혀잇어서 꼼짝 할수도 없으니 이미 얻엇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구원도 예수께 붙들려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아직 예수를 모르고 구원받지 못하여 갈망하는 자를 찾아 예수처럼 붙잡아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맹수가 울부짖으며 쫒아가듯 자기도 그런 사람을 향하여 울부짓으며 쫒아 달려간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바울이 또 구원을 갈망하는 자를 붙잡기 위하여 도둑놈을 잡기 위하여 쫒아가듯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13절에 말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잇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잇는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구원이 완성될려면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다 순교하며 갓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오직 한 일 뒤에 것은 잊어 버리며 오늘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지 않으면 자기의 구원도 없다는 마음으로 감옥에서도 달렷습니다
14절 앞에 잇는 푯대를 향하여 자기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합니다 부름의 상에서 상은 헬라어 미스도스#로 구원의 상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상을 말할때는 구원의 상입니다 밥상도 우수상 특별상도 아닙니다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구원의 상입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에게는 아직 부르신 부름대로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구원을 얻게 할 일이 남아 잇어 다 된 것이 아니다 때문에 나의 구원은 이미 얻은 것도 온전히 이룬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뒤로하고 구원의 상을 위하여 앞으로 얼마남지 않는 남은 인생을 구원을 갈망하는 자에게 푯대를 맞추고 예수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겟다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15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합니다... 12절에서는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15절에서는 ..온전히 이룬자란 말이 나옵니다 때문에 이미나 아직으로 해석하여 보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이룬자는 어떤 자입니까 그것은 구원의 완성을 말하며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로 살아난 자를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펴 보앗습니다 구원이 온전히 이룬자, 바울처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로 온전히 이룬자, 하나님 아들로 하나님 형상으로 거듭나서 온전히 이룬 자들은 하나님의 온전함같이 온전해진 자로서< 이미나 아직>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바울처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한 자들로 온전한 자들이 되엇으니 바울처럼 부름의 상을 위하여 앞으로 푯대를 향하여 남은 인생 달려가야 할 것 입니다 여기 카폐에 드나드는 모든 분들이 바울처럼 온전히 이룬자로 되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마칩니다
첫댓글 행20: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에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헤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요일 3:16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셧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각자에게 십자가를 주십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님의 댓글 화답에 감사합니다 님도 십자가의 원리에 대하여 아시는 분 같아 반갑습니다
십자가는 열십자로 위 아래로는 수직 기둥 옆으로는 수평 기둥으로 되 잇습니다
때문에 십자가의 도를 알고 십자가의 원리를 알려면 먼저 수직 기둥이 반석위에 튼튼히 확실하게
흔들리지 않게 세워져 잇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기본원리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판에 십자가 기둥이 밖혀 잇는 자가 하나님과 화평케 된자요 아들이 된 자입니다
그래서 이랗게 된 자를 두고 십자가를 경험한자요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자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렇게 자기가 없어지고 하나님 마음을 받ㅇ
@아담 하나님 마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아직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이웃을 향하여 십자가 복음을 들고 수평기둥이 되어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예수의 생명을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처럼 그 사람을 대신하여 희생 제믈이 되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죽은 사람을 살려 부활시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남을 살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잡혀 죽을 줄 알면서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살려 부활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던 것을 봅니다
@아담 십자가를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요란하게 말씀하실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말씀을 행하는 중 핍박 받으며 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원리입니다.
@아담 에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속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대속의 원리란 한 사람이 죽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원리로 이 원리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없는
오직 기독교 만의 내가 죽으므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원리 입니다
에수님이 오신 것은 죄와 사망의 법에 이끌려 인질로 잡혀있는 죄인들을 풀어주고
자유케 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새로은 피조물로 만들려고 오셧습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님에게는 간단한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결코 간단하지 않는 십자가 원리 입니다
@아담 원리 또한 간단합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셨고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뜻을 행하며 사랑을 이루면 되는 겁니다.
@아담 때문에 십자가 없는 사랑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십자가를 우습게 보거나 간단하게 보는 사람은
아직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모르고 십자가를 모르니
나오는 것이 사랑합시다 용서합시다 라는 말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원리는 대속의 원리요 사랑의 원리 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 안에 이런 십자가가 세워져 잇는지 살펴야 합니다
나의 구속의 십자가 , 나의 영생의 십자가, 나의 옛 사람 종말의 십자가 , 나의 새 사람 시작의 십자가
나의 죽음의 십자가 , 나의 부활의 십자가 나의 의의 십자가 ...
그대가 에수 생명을 받앗다면 그대와 나는 본대로 예수처럼
@아담 예수가 행했던 같은 방법으로 말하고 살다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부활 승천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 1: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아담 늘 이론만 앞세울 뿐 행함은 포기할 것이 많고 괴로움이 따르니
행함은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다 합리화 시키며 뒷전으로 팽개치고
이론으로 십자가를 대신하니 모든 것이 복잡해질 뿐 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함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님이나 저나 모두 죽을자 입니다.
님은 이제 보니 성경을 한쪽으로만 치우쳐 보는군요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가 누구라고 나옵니까 그 자는 두려워 하는 자라 합니다
두려워 하는 자는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워 하지 않는 자는 온전히 이루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님은 어떻게 알고 잇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한 번 물어 보니 답변 부탁합니다
첫째 성경에서 온전히 이루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 입니까
둘째 두려워 하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아담 그것 역시 간단하지요. 왜 모든걸 복잡하게만 생각하십니까?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하는 것은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이며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 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쫒나니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아담 님은 뭐라 생각하십니까?
질문만 하려 하지 마시고 님의 의견도 제시해 보십시요.
@진리의 나팔 앞에서도 그러셨지여 저는 님이 제 글에 의의를 제기 하길래
도데체 님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잇기에 그러신가 하고 혹시 말로만
들은 풍월로 아니면 님의 신념으로하는 말인지 확인차 묻고 잇는 것입니다
때문에 님은 제 물음에 성실히 님이 알고 잇는것을 답하여 오해를 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님이 제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저는 님이 들은 풍월로 혹은 말씀을 부적처럼 사용하여 님의 생각으로
말하고 잇다고 생각 할 것입니다 저는 몸통으로 게시글을 올렷기에 제 나름의 답은 이미 가지고 잇습니다
따라서 님의 알고 잇는 것을 듣고 난 다음에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다 할 때 저는 말하겠습니다
@아담 늘 그렇지요. 토론이 아닌 질문만을 하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고 가시는 님의 방식.
그러나, 저는 답해주겠습니다.
사랑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늘 실천하며
그 사랑을 온전히 마음속에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성령에게서 배운 것을 말할 뿐 입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님의 답에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오는 군요
님도 알다시피 대화하다가 중단 하면 세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첫쩨는 말문이 막혀서 일 것입니다 ..상대방 말에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하도 얼척이 없어서 일 것입니다 상대방이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서로 우김질을 하다 보니 더 이상 나가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해서 일 것입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는 대화는 모르겠고 혹여 저하고 대화 할때는 염두해 두시면 좋겟습니다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다하고 이루어 가는 것하고는 다르지 않는가요
@아담 당연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말대로 우리는 사랑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날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겁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디모데전서 4장
@진리의 나팔 그랗다면 일단 님은 현재 온전한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이루어 가기 위해 연습한다는 말이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님에게는 아직 온전한 사랑이 없다는 말인데 님에게 없는 사랑이 연습하고 훈련하면 생기게 됩니까 그리고 연습한다는데 어떻게 연습하고 계십니까
@아담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연습하는 것이고
그 연습은 일상에서 누군가처럼 비방하고 모욕하고 욕하거나 나를 넘어뜨리려는 자들을
용서하고 덮어주고 참아내며 행하는 중에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요란하게 변개하려는 자들은 논리만 따지며
행함은 자기 의를 세움이라며 제쳐두고 십자가 타령만 하는 겁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그러면 사랑과 경건은 같아서 사랑도 연습하고 경건도 연습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지인과 만나기위하여 자리 비웁니다 낮 식사하고 뵙겟습니다
@아담 사랑이 경건이 아니면 뭘까요?
@진리의 나팔 대화하다 죄송합니다 지금 들어 왔습니다
사랑과 경건은 좀 다릅니다 사랑이 타인에게 적용된다면 경건은 자신에게 적용한다고 볼까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속성으로 폭 넓게 보면 같다고 해야 겠지요
어쨋든 님이 경건을 연습한다니 물어 봅니다 사도행전의 로마 장교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햇다고 나오는데 님의 경건연습과 고넬료의 경건연습은 같다고 봐야 합니까 같지 안습니까
@아담 경건은 능력을 행하게 하는 힘 입니다.
경건을 이것 따로 저것 따로 분류하는 것 부터가 현명하지 못합니다.
고넬료는 율법에 의지한 행위이나 하나님께 열심으로 바친 행위를 하며 살은 것이고
저는 오직 하나님이 명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뿐 입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고넬료도 하나님이 명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레19장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님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보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님과 다릅니까 오히려 제가 볼때는 고넬료가 님보다 더 경건한 삶을 위해
연습한것으로 보이는데요 왜냐면 하나님을 경와하ㅇ엿고 백성을 가엽게 여겨 구제했고
항상 기도 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 햇다고 나옵니다
오죽햇으면 하나님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었다고 나오겠습니까
@아담 저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라는 말씀만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오직 사랑하라는 말슴만을 지키려 노력하면 틀렷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오직 사랑하라는 말씀만을 지키려 노력하면 옳다는 말입니까
@아담 윫법이 저주 아래 있음은 님 자신도 잘 압니다.
님의 양심이 증거하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요.
왜 님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율법을 지킨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율법이 왜 저주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예수께서는 율법사에게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여 영생을 얻어라고 했지 않습니까
@아담 성경이 율법을 저주라 했으니 저주라 할 뿐입니다.
님은 성경말씀에 의문을 품습니까?
율법사에게 답 한대로 님도 사랑하시면 됩니다.
@진리의 나팔 성경에 율법을 저주라고 햬으니 저주라 할 뿐이라고요
그렇다면 성경에 율법이 저주라 하지 않앗다면 저주라 하지 않앗겠네요
그러니까 님은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수님 말대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한다는 말 인가요
율법은 저주가 아니고 사랑의 완성이라고 하는데 님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아담 당연히 성경이 저주라 하셨으니 저주라 합니다.
또한,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사랑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율법은 저주인 동시에 사랑의 완성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님은 말씀을 거역하고 행하지 마십시요.
저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겠습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쪼금 흥분해 보이십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성령을 받고 사랑하는 것과 받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잇습니까
@아담 ㅎㅎㅎ
님은 토론에 관심 없습니다.
오직 끊임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화의 본질을 흐리려 할 뿐.
님은 말씀을 거역하고 행하지 마십시요.
저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겠습니다.
님의 양심이 지금 님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압니다.
@진리의 나팔 지금까지 잘 의견을 나누다가 왜 갑자기 그러시는지 모르겟군요
제가 게속 물어 본 것은 님의 답변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제 책임으로 돌리면 되겟습니까 대화는 먼저 님이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자 진정하시고 다시 한번 물어 봅니다 저는 다른 사심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성령을 받고 사랑하는 것과 받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납니까
@아담 ㅎㅎㅎ
@진리의 나팔 여기서 끝내자고 웃습니까 그렇게 누구처럼 헛된 웃음으로 얼머부려 애써 넘어 가실 렵니까
평소 님답지 않는 행동입니다 저와의 대화가 힘에 겨워 그러십니까 아니면 두려우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다시 묻습니다
성령을 받고 사랑하는 것과 받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무슨 차이 입니까
님은 잘 알것 아닙니까 성령 받기 전에 사랑햇던 것과 님이 성령을 받앗다고 그러시니
받은 후의 사랑을 비교하면 쉽게 저에게 차이를 말해 주실 것이라 봅니다
저는 지금 님과의 대화가 유익합니다 님이 믿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봅니다
@아담 ㅎㅎㅎ
그 한 말씀은 답변해 드리지요.
성령은 구원의 표요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보증의 표니
성령을 받고 행함은 당연히 하늘나라의 상 이라는 결과가 있으나
성령이 없는 자는 택함받지 못했으니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행한들 결국 버림받을 겁니다.
또한, 성령받지 못한 자는 택함받지 못했으니
애초에 사랑을 행하려 하지도 못하며 행하려 하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믿음이 없으니 자신의 자존심 까지도 포기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지요.
고로, 행함을 배척하는 자는 애초에 택함 받지 못한 자입니다.
@진리의 나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슈바이처나 마더 테례사 석가모니 고넬료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사랑을 행하려고 하지도 않앗고 행하는 것조차 거부햇다고 봅니까
사랑은 명사입니까 동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