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나들이
함양 상림 : 천연기념물 154호 함양읍내 서북쪽에는 함양(咸陽) 고을이 자랑하는 상림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인 상림(上林) 일대로 넓이는 6만여 평, 숲의 길이는 1.6km, 폭은 80~200m에 달한다. '고향은 잊어도 상림은 잊지 못한다'는 함양 사람들의 소중한 휴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이며, 함양의 젖줄인 위천(渭川)이 늘 어루만져주어 오랜 세월을 걸쳐 지금까지도 푸르름을 간직한다.
상림은 신라 후기 대학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 ?)이 조성했다고 전한다. (그런 연유로 근래에 최치원 공원이란 이름도 지니게 되었음) 그는 12세에 부친의 등살에 못이겨 당나라로 건너가 6년 동안 공부에 파묻힌 끝에 18세에 외국인 과거시험인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했다. 황소(黃巢)의 난 때는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이름 석자를 천하에 떨치며, 당나라에서 무척이나 전성기를 누렸으나 885년 이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진성여왕(眞聖女王)의 소환을 받아 신라 조정에 진출하게 된다.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올리며 기울어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했으나, 망조(亡兆)가 단단히 든 나라의 현실에 실망하여 외직(外職)을 자처하게 된다. 청산가곡의 보배로운 준비위원님들 모습이다^*^ 청산가곡 음악회의 시작은 이 세분의 공헌이 지대하였으니~~ 인산가 연수원의 약식 산상힐링콘서트를 마치고, 8월 23일~24일(금~ 토) 지리산상 힐링콘서트 유치를 김윤세 회장과 협의 결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상림에 들렸다.
종이 같은 나무도 아닌 다른 나무끼리 사랑을 맺었으니 연리지 사랑 이련가^*^
전국을 다니다 보면 연리지 나무는 종종 보이는데 진도의 접도 섬산행때도 만났었다.
아무튼 사랑나무의 사연은 위의 안내글을 참고 하시라^*^ 관광차가 몰려올 정도이니 산책중인 사람들도 많은데 길손이 담아준 사진 치고는 꽤 잘 담았다.
함화루 좌측에 자리한 약수터이며 다시 고운 선생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지금의 함양인 천령군(天嶺郡) 태수로 부임한 그는 고을을 살피다가 홍수에 크게 취약함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함양은 분지(盆地)를 이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를 위천이 관통하여 흐르고 있어 홍수의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던 것이다. 실제로도 자주 홍수가 터져 고을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동원해 강물의 줄기를 지금의 위치로 만들고 둑을 쌓았으며, 둑에는 나무를 가득 심어 호안림(護岸林)을 조성하여 대관림(大館林)이라 하니 그게 바로 상림이다. 숲이 무성해지면서 홍수의 피해는 크게 줄었으나, 위천의 흐름보다 더 두려운 세월의 장대한 흐름 속에 숲의 가운데 부분이 휩쓸려 파괴되면서 상림과 하림(下林)으로 나눠졌으며, 그나마 하림은 거의 사라지고(일부 복원됨) 상림만 남아있다.
이곳에는 120여 종에 달하는 나무들로 수해(樹海)를 이루는 상림은 숲이 얼마나 무성한지 정말 정글이 따로 없으며 여름 제국(帝國)의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인다. 숲 그늘에 돗자리를 피고 한숨 청하면 정말 신선(神仙)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여름의 눈치와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해방된 곳이다. 그리고 위천의 물줄기가 숲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지나가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상림의 시냇물은 녹음벽수(綠陰碧水)를 이루어 공원 곳곳을 누벼 여름 제국의 침범을 경계한다.
1,100년의 오랜 숙성을 지닌 숲이지만 정작 초창기에 심어지거나 600년 이상 묵은 나무는 없다. 처음 심어진 나무의 후손들이 조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숲을 손질할 때 수명이 다되거나 비리비리한 나무를 뽑아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으면서 여러 차례 물갈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함양의 제일 가는 경승지이자 풍치림(風致林)으로 봄의 신록(新綠), 여름의 녹음(綠陰),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아름다워 읍내 사람은 물론 외지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앞다투어 찾아오는 전국적인 명소이다. 함양에 발을 들였다면 꼭 둘러봐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함화루 - 경남 지방유형문화재 258호 다볕당 북쪽에는 고색이 짙은 2층 누각 함화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누각은 원래 함양읍성의 남문(南門)이었는데, 원래 이름은 큰 산인 지리산(智異山)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악루(望嶽樓)였다. 왜정에 의해 읍성(邑城)이 파괴되고 망악루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던 중, 1932년 함양읍에 살던 노덕영(盧悳泳)이 구입하여 지금에 자리로 옮겨 함화루로 이름을 갈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성문(城門) 시절에는 벽과 문짝이 있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기둥에서 그 흔적을 아련히 더듬어 볼 수 있다. 지금은 공원을 수식하는 누각이 되었다. 넓은 공원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함화루와 사운정, 화수정, 초선정 등의 온갖 누각과 정자가 있어 나그네의 지친 발을 쉬게 해주며 최치원선생신도비, 이은리석불, 대원군척화비, 읍내에서 옮겨온 비석군(碑石群) 등의 오랜 문화유산이 곳곳에 숨어있어 보물찾기를 하듯 공원을 둘러보면 더욱 영양가 높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 게다가 함양이 낳은 인물들의 흉상(胸像)이 담긴 역사인물공원이 위천 변에 조성되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공원 동쪽에는 1만여 평에 거대한 연지(蓮池)가 있어 여름의 제국시절에 는 연꽃의 화려한 향연이 아낌없이 펼쳐진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상림공원의 산책로는 대체로 위천 둑방길(숲 서쪽), 숲길, 연지와 맞닿은 숲 동쪽 길 등 3가지가 있다. 공원에 자리한 문화유산은 대부분 숲길에 있으며, 위천 둑방길을 따라가라면 역사인물공원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숲 동쪽 길은 연지와 살을 대고 있어 연꽃의 향기가 그윽하다.
숲 한복판에 자리한 드넓은 잔디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야외강당인 다볕당이 자리해 있는데 다볕당은 함양(咸陽)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함(咸)은 '모두','다'의 뜻이, 양(陽)은 '볕'이란 뜻이 있음>
상림 산책로(숲길) - 한더위에 거닐면 땀이 나 살려라 도망을 친다. 그만큼 시원한 기운이 산책로를 거니는 나그네를 휘감는다.
위천이라는 이 곳의 범람하는 수해로 부터 함양읍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림이 탄생 하였다.
그런데 갈길은 멀고 해는 저물고 이곳을 다 둘러 보려면 하루 종일 다녀도 힘들것 같고, 여기서 발길을 되돌리며 연꽃지로 향한다.
상림 동쪽의 상동마을은 옛부터 연꽃밭을 뜻하는 연밭머리라 불려 옛날부터 연꽃의 보금자리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함양군은 이를 근거로 상림 동쪽에 66,000㎡에 달하는 연지(蓮池)를 만들고 백련과 홍련, 황련(黃蓮), 분홍련, 수련을 심어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다. 안그래도 아름답고 장쾌한 상림을 더욱 아름답게 수식하여 상림의 이름 2자를 천하에 떨치고 있으며, 연꽃의 절정기인 여름에는 연꽃의 즐거운 향연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1년 가까운 와신상담을 거쳐 화사한 꽃잎을 펼쳐보인 연꽃의 아름다운 물결, 마치 심청(沈淸)이 나올 것 같은 연꽃의 자태는 뭇 사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나도 한방 찍어줘~~~잉^*^
장대한 홍련(紅蓮)의 물결 ~ 홍련지 홍련지에서 청산가곡 준비위원님들 한방씩^*^ 말 없이 성실하게 청산가곡을 가꾸는 고운님들이다.
연지 남쪽에는 서양 수중식물을 풀어놓은 연못이 있다.
이름하여 머루 터널인데 머루가 주저리 주저리 많이도 달렸다.
상림 중간을 흐르는 물줄기도 시원하다.
머루가 있으면 다래도 있기 마련이라~~^*^
다래 터널에는 아직 열매가 보이지를 않는다^*^
안내판의 모습을 크게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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