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情은 山情에 안기다
주 재순
신기하고 놀랍다. 세월도 동심은 빼앗아 가지는 못한는 것인지. 어린시
절 소풍 전날밤의 그 설레임이 되살아나 잠을 설쳤다. 차라리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어디로인가 탈출, 홀가분한 나그네가 되어 떠나고 싶었나
보다.
오후, 수안보에서 수필창작반이 공부하는 날이다. 관광지 콘도에서 처음
갖는 이동수업. 가벼운 흥분마저 일었다. 약속된 장소에 우리가 모인 것
은 오후 3시경, 우선 준비된 점심부터 먹었다. 푸짐한 상차림은 허기를 유
혹했다. 고실고실한 쌀밥, 얼큰한 육개장, 산채나물, 깻잎, 장아찌, 명태조
림, 싱싱한 김치는 그 옛날 할머니가 밥상에 자주 올려 놔 주시던 먹거리
이다.
“청와대 식탁까지 올라가는 깻잎, 맛보세요.”이 말에 모락모락 김이 나
는 밥 한수저에 깻잎 한 장을 얹어 먹었다.
참 희안한 일이다. 어쩌다 집어서 먹던 그 맛이 아니고, 입안에서 저작
(咀嚼)되는 깻잎 맛은 또 다른 맛으로 입맛을 돋우었다.
음식이란 여럿이 함께 먹어야 제맛을 내는 것이리라. 하기야 '시장이 반
찬.' 이란 말도 있지만, 주린자에겐 음식이 꿀맛으로 따르고, 배부른자에겐
식상함이 오는 것이니, 진실한 맛은 가난한 자가 누릴 수 있는 것 아닌지.
맛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
겨울철 온가족이 즐겨먹을 밑반찬을 밤늦게까지 장만하시던 어머니, 세
상을 덮은 백설이 허리까지 쌓여, 교통이 두절 되었을 때, 가족의 입맛을
잃지 않게 해 주지 않았던가. 요즈음 아이들은 농촌사람들이 주로 먹는
깻잎이나, 콩자반 같은 콤콤한 냄새를 싫어한다. 서구식 음식과 가공식품
에 길들어, 깊고 순연(然)한 우리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해 가는 것이 퍽
안타깝다.
포만감으로 느긋한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콧
노래부터 시작. 키타까지 등장하였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
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가야지.” 우리들의 애
절한 마음을 ‘이별의 노래’에 담아 합창을 하였다. 이때 J여사의 하모니카
연주는 키타소리와 근사한 합주가 되었다.
바로 그 때, 슬그머니 하모니카를 잡은 K교수의 독주는 단연 오늘의 특
종기사감이었다.
“동네 너럭바위에 누워, 갑순이를 꼬셨던 솜씨이지요!”누군가 던진 이
말에 방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어진 토론 수업은 학생작품 발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K교수의 ‘그리
운 고향' 낭독이 있었다.
“오늘만이라도 모든 상념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고향같은 여인이 그리
워 몸부림치는 가을 남자가 되고 싶다.”
이 마지막 구절은 나까지 덩달아 고독하지 않고 못 배기는 가을남자로
붙잡아 두지 않던가. 나이가 즐면 즐수록 더욱 회상(回想)에 잠기는 그리
운 고향. 이름 지을 수 없는 숱한 그리움이 험난한 인생역정에, 애수같은
그림자를 띄우고 초점 잃은 눈망울로, 영원한 나의 요람을 헤맨다. 낯익은
옛벗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 버린 뒤의 그리운 고향의 냇가에서 퍽이나 외
로워진 내 마음을 달랜다. 문득 타다만 짚더미와 흙냄새 그윽한 농촌의
초가에서 다시 그 옛날과 같이 오래토록 잊혀진 옛동무들의 얼굴을 만난
다.
저녁 때, 자유토론시간으로 이어졌다. 문학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정생활,
학교생활, 작은 상처 이야기까지 등장, 서로 마음을 활짝 열었다. 모든 응
어리는 용서, 격려, 화해로 녹아 내렸고 가로 막혔던 벽이 허물어져 내렸
다.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여흥은 절정에 달했고 그누가 처음으로 선보인
‘단속곳 살짝춤“은 너무 요염했다. 어디서 저런 요절 복통할 춤이 나온것
일까?…
여기서 보낸 더불어 삶은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들 속에서 살
아가며, 그안에서만이 삶의 의미가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한 시공 안에서 호흡하고, 서로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하고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더구
나 뜻이 같은 사람끼리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길은, 어찌 신나는 길이 아
니랴.
떠나 올 때 산정(山情)에 안겼던 우리들의 유정(有情)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석별의 손을 잡았던 순간은 오래토록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으
리라. 초청자 M여사의 우정어린 사랑에 답하는 편지를 오늘밤에 띄어 보
내고 싶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지는 돌아오는 길에서 저만치 보이는 시내 불빛이
오늘따라 찬란하다. 살아있다는 진실한 아우성이다.
1998. 11
첫댓글 단속곳 살짝춤“은 너무 요염했다. 어디서 저런 요절 복통할 춤이 나온것
일까?…
여기서 보낸 더불어 삶은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들 속에서 살
아가며, 그안에서만이 삶의 의미가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한 시공 안에서 호흡하고, 서로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하고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더불어 삶은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들 속에서 살아가며, 그안에서만이 삶의 의미가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한 시공 안에서 호흡하고, 서로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하고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더구나 뜻이 같은 사람끼리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길은, 어찌 신나는 길이 아니랴. 떠나 올 때 산정(山情)에 안겼던 우리들의 유정(有情)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석별의 손을 잡았던 순간은 오래토록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으리라.
떠나 올 때 산정(山情)에 안겼던 우리들의 유정(有情)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석별의 손을 잡았던 순간은 오래토록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으
리라. 초청자 M여사의 우정어린 사랑에 답하는 편지를 오늘밤에 띄어 보
내고 싶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지는 돌아오는 길에서 저만치 보이는 시내 불빛이
오늘따라 찬란하다. 살아있다는 진실한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