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세미나에 곳곳에서 온 800여명의 CEO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세미나를 주최한 게리 스몰리는 테이블 위의 낡은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목 부분이 부러진 채 줄에 매달려 있는 몰골조차 형편없는 바이올린이었다. 스몰리는 청중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고 “이 악기의 가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하고 물었다. 청중은 모두 웃었다. 그리고 몇 사람이 “목 부분을 고쳐 판다고 해도 기껏해야 10∼20달러 정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몰리가 그 바이올린 안쪽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보겠다고 했다. 그가 안쪽의 글을 읽었을 때 참석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1723년 안토닌 스트라디바리우스.”(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 지구상에 600여개 남아 있으며 대당 가격은 30억∼300억원) 스몰리는 세미나 참석자 모두가 그 바이올린을 돌려볼 수 있게 하겠다며 맨 앞줄 첫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는 바이올린을 마치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는 물건이라도 되듯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곳에 모인 CEO들은 숨죽이며 조심스럽게 목이 부러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옮겨가는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스몰리가 그 바이올린을 처음 보여주었을 때 800명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바이올린 안쪽에 새겨진 글 내용을 읽어주는 순간 청중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다. 그 바이올린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물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목이 부러지고 몰골이 형편없는 바이올린 그대로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 당신 주위에 있는 자들이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주위 사람들의 태도와 상관없이 당신은 소중한 자다. 당신은 세계 최고의 명품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당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라. 그리고 계속 믿음의 경주를 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최고의 명품임을 믿는 확신속에 당당히 살고 있는가?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크리스챤의 모습 성경 : 고후 5:14-1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사람이 새롭게 되려면 옛 습관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새로운 습관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마치 더러운 옷을 벗었으면 새옷을 입어야 하듯, 잘못된 옛사람을 벗었으면 예수로 새옷을 입어야 한다. 사람이 삶의 현장 속에서 성숙되어 가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흉내내거나 예수를 분장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닮아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 옛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자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챤의 모습을 세가지 관점에서 정의하며 은혜의 시간을 갖고져 한다. 첫째, 빛나는 얼굴을 소유한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며,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발자크가 말했듯이, 세월이 흘러갈수록 사람의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얼굴모습이 나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죄에 대해 무감각을 보여주는 「굳은 얼굴」(잠 21:29), 외식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스런 얼굴」(잠 7:13), 남에게 자신을 보이게 하여 사람들의 칭찬과 동정을 구하는 「흉한 얼굴」(마 6:16), 「노한 얼굴」(창 4:5), 「창백한 얼굴」(렘 30:6), 「빛난 얼굴」(잠 15:13)등이 있다.
얼굴의 아름다움이 그 마음가짐에 달려 있듯이, 사람은 마음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행 6:15). 또한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감히 사람들은 그를 쳐다 볼 수 없었다 (출 34:29-35)고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자신의 얼굴 모습은 어떠한지 한번 점검해 보기 바란다.
둘째,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 고전 4:2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도 충성이니라 는 말처럼, 책임에 충실한 것은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 사회를 밝고 좋은 사회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량한 교인인 동시에 선량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선량한 교인, 선량한 시민이 되려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책임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다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웃에게 사랑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성도는 이 사랑을 가지고 내게 맡겨진 일들을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란 말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성도는 자유의 존중과 사회 정의 구현과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힘써 노력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이삭의 결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메소포다미아 나홀성에 이르러 여호와여 물 길러 온 처녀에게 물을 달라하여 물을 줄 뿐 아니라 약대에도 마시우라하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이삭의 배필임을 알겠으니 만날 수 있게 하옵소서 (창 24:1-17) 하고 기도한 후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정했다. 이처럼 사리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영광돌림은 물론이요 생명의 면류관, 의로운 면류관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셋째, 옳은 것을 들을 줄 아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둘째 왕 다윗은 간음죄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찾아와 왕의 죄를 지적하자 그 앞에 엎드려 자복하였다. 이것이 다윗 왕의 출중한 점이다. 이처럼 사람이 옳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 계시록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고 했는데,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복된 귀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지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권고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느끼고 자기의 얼굴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 모습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가면서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명언] 기독교인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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