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잘 증거되어 있는데..
그렇지만 오늘날 결코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단지 말씀을 그렇게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들이 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발견하며 분별하지 못함으로 인해 사실상 하루 일과 중에 잠시라도 말씀을 사모하고 결단하며 몸부림치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도 많은 현실인 것임을 보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바쁘고 분주하며 피곤하고 복잡한 일상들 속에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을 소원하고 갈망하면서 시간을 쪼개어서 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고, 믿음으로 말씀의 자리를 작정함과 함께 갈수록 말씀의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더 늘려가며, 최대한 어떻게든 가장 소중하고도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려 하고, 특히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묵상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하나님으로 인한 복들이 말씀 그대로 함께 하게 되고, 결코 작을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힘들 수 있고 세상적인 모든 것들로 집중해도 잘 안 되는 사안들에 있어 실제로 선한 일들이 나타날 수 있고, 상상도 못한 역사들도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그에 있어서 크게는 세 가지인 것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그의 온 지경에 하나님으로 인한 선한 열매들이 넘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잎사귀가 마름 같은 손실과 상함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들에 있어서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와 분량은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말씀에 최우선을 두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어느 정도까지 될 수 있느냐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실상 그러한 말씀대로의 믿음이 겨자씨 정도일지라도 하나님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작은 은혜와 역사들일 수가 없는 것으로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이 산을 들어 저기로 옮겨지게 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일들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그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단지 읽고 묵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러 모양의 곤란과 손해와 박해들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말씀대로 전심으로 행하고 실천하며 증거하기 까지 하는 등과 같은 더욱 큰 믿음 가운데에는 더 놀랍고 복된 일들, 생생한 응답과 승리와 역전과 형통과 열매들이 예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만일 요셉과 다니엘, 베드로와 바울 등과 같이 목숨까지 아끼지 않을 정도의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응답과 이적과 복들이 실제로 강렬할 수 있는 것인지는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서 조금도 어렵지 않게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구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에 있어서는 따지고 보면 그 어떤 한계나 제한이나 인색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먹고 마시며 입을 수 있게 되는 것들은 물론 나에 있어서의 가장 작은 것들 부터해서 큰 것들까지, 그리고 가장 힘들 수 있는 일들 부터해서 가장 소원하는 일들까지, 심지어는 가장 절망스러울 수 있거나 불가능의 일들까지도 결코 별개이거나 제외일 수가 없는 것인데..
참으로 그렇게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에 있어서도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 자체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며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모든 중심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의라는 것도 그에 있어서의 모든 근본과 원천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고 절대 진리인 말씀만이 모든 의, 완전한 의일 수가 있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인 것임이 아닐 수 없고, 어느 정도의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의 사안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온갖 은혜와 복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 상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또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며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더군다나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인 것이고 실상 말씀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기록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증거하며 이루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말씀의 신앙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까이하며 온전히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가장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더 나아가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 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 있어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실상은 말씀 한 구절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까이하고 읽으며 묵상함에 있어서 부터도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전적으로 하늘의 힘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실상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과 시험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싸워야 하는 것이며 이길 수도 있는 것이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제대로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충만하심들이,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그와 같은 믿음의 경주들, 경건의 연단들, 성화의 선순환들 속에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되고 더더욱 말씀에 치열해 지고 뜨거워지게 되는 최고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1: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31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