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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계수와 인구조사 결과
민 26:42-56
42 단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라 수함에게서 수함 종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단 종족들이라
43 수함 모든 종족의 계수된 자가 육만 사천사백 명이었더라
44 아셀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 임나에게서 난 임나 종족과 이스위에게서 난 이스위 종족과 브리아에게서 난 브리아 종족이며
45 브리아의 자손 중 헤벨에게서 난 헤벨 종족과 말기엘에게서 난 말기엘 종족이며
46 아셀의 딸의 이름은 세라라
47 이는 아셀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된 자가 오만 삼천사백 명이었더라
48 납달리 자손은 그들의 종족대로 이러하니 야셀에게서 난 야셀 종족과 구니에게서 난 구니 종족과
49 예셀에게서 난 예셀 종족과 실렘에게서 난 실렘 종족이라
50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납달리 종족들이니 계수된 자가 사만 오천사백 명이었더라
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3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55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56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민 26:42-56 / 단에게서 퍼져 나간 씨족은 다음과 같다. 단의 아들 수함을 씨족의 시조로 모시고 있는 수함 씨족이 씨족별로 병적부에 오른 단 지파의 유일한 씨족인데 43) 단 지파에 딸려 있는 수함 씨족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남자는 모두 6만 4400명이었다. 44) 야셀에게서 퍼져 나간 씨족은 다음과 같다. 아셀의 아들 임나에게서는 임나 씨족이, 이스위에게서는 이스위 씨족이, 브리아에게서는 브리아 씨족이 퍼져 나갔다. 45) 또한 브리아가 둔 아들 가운데에서도 퍼져 나간 씨족이 있다. 브리아의 아들인 헤벨에게서 헤벨 씨족이, 말기멜에게서 말기엘 씨족이 퍼져 나갔다. 46) 또 아셀에게는 세라라고 하는 딸도 있었다. 47) 이들 씨족은 모두 아셀에게서 퍼져 나갔으며 이들 중에 병적부에 오른 남자는 모두 5만 3400명이었다. 48) 납달리에게서 퍼져 나간 씨족은 다음과 같다. 납달리의 아들 야셀에게서는 야셀 씨족이, 구니에게서는 구니 씨족이, 490 예셀에게서는 예셀 씨족이, 실렘에게서는 실렘 씨족이 퍼져 나갔다. 50) 이들 씨족은 모두 납달리에게서 퍼져 나갔으며 이들 중에 병적부에 오른 남자는 모두 4만 5400명이었다. 51) 이렇게 병적부에 오른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60만 1730명이었다. 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53) `모세야, 이렇게 이스라엘의 인구 수를 세었으니 그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어 그 땅이 대대로 그들의 몫이 되게 하여라. 54) 그들에게 땅을 각 지파의 인구 수대로 나누도록 하여라. 사람이 많은 지파는 넓은 땅을, 또 적은 지파는 좁은 땅을 차지하도록 하여라. 55) 땅을 나눌 때에는 제비를 뽑아서 나누고 각 지파가 차지한 땅에는 대대로 내려온 그 지파의 이름을 붙여라. 56) 차지할 땅이 많든 적든간에 꼭 제비를 뽑아서 어느 지파가 어떤 땅을 차지할 것인가를 결정하여라.'
계속해서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계수가 이어지고, 각 지파의 인구에 비례해서 공평하게 기업을 분배할 것을 말씀합니다.
단 지파의 계수(42-43) 단은 라헬의 종 빌하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창 30:6). 가나안 정복 시 최북방 지역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수 19:47; 삿 18:29).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사 시대에 제일 먼저 우상 숭배를 시작한 지파입니다(삿 18:30; 왕상 12:28-30). 단 지파는 1차 조사 때 장정들이 62,700명이었는데, 2차 조사 때에는 64,400명으로 1,700명이 증가하였습니다.
아셀 지파의 계수(44-47)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창 30:13). 가나안 정착 시 야곱의 축복선언(창 49:20)과 모세의 예언(신 33:24)을 따라 지중해 해변의 가장 기름진 땅을 배정받았습니다. 아셀 지파는 1차 조사 때 장정들이 41,500명이었는데, 2차 조사 때에는 53,400명으로 11,900명이 증가하였습니다.
납달리 지파의 계수(48-50)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입니다(창 30:7-8). 가나안 정착 시 갈릴리 호수 서안과 요단 강 상류 서 북쪽에 정착하였으나(수 19:32-39), 원주민들과 함께 동거하여 쉽게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1차 조사 때 장정들이 53,400명이었는데, 2차 조사 때에는 45,400명으로 8,000명이 감소하였습니다.
공정한 분배(51-56) 열두 지파에 속한 장정들의 제2차 인구 조사를 마친 결과 총 601,73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38년 전 성막 봉헌 후 1차 인구 조사 때에 비하면 1,820명이 감소한 수치입니다(1:46). 1차 조사 때의 600,000여 명이 가데스 바네아의 큰 범죄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지만(14:29-32), 가나안 정복을 위해 필요한 군사 600,000여 명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 결과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인구수에 따라 땅을 분배할 것과, 각 지파가 차지할 땅을 제비뽑기로 결정하여 각 지파별로 발생될 분쟁을 미리 예방한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인구수에 비례하여 토지를 나누어주는 공정한 분배원칙을 지킴으로 다툼의 요소를 제거하였습니다. 당신 안에서 다툼의 요소를 제거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오래 엎드려 있던 새는 반드시 놓아 날고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진다”-홍자성.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늦게 이루어지는 것에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봄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너무 초조해 하지 마세요.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을 피우면 될 테니까요. 기업 분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행하심은 위치 결정에 따른 잡음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설 교 >
601,730명
민 26장 51~ 절 / 강문호 목사
70명이 애급으로 들어간 야곱의 가족은 애급에서 40년간 살면서 200만명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광야 생활은 40년이었습니다. 자주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민수기는 인구조사를 하는 책입니다. 애급에서 나오자 말자 인구가 얼마인가 조사한 것이 민수기 2장입니다. 20세 이상된 남자가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지파라 따로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일개월 이상된 남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22,373명이었습니다. 그 후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한 지파에 한 명씩 정탐군을 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조사하여 나오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정탐군을 파송할 때에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탐군을 보내어 모든 정보를 알아 보자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팽배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에 모세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말했습니다. <왜 정탐군을 보내려고 하느냐?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분명히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무가내로 정탐군을 꼭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 물어 보고 하겠다고 성막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모세야! 백성들이 정탐군을 보내자고 하는 데 너도 동의하느냐?> 모세가 <하나님! 나는 하나님께서 저 땅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주실 줄로 믿습니다.그래서 나는 정탐군을 보내지 않아도 하나님은 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원한다면 보내라> 그래서 12 지파에서 한 명씩을 선택하였습니다. 레위 지파만은 정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지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탐군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40일간 정탐한 정탐군들은 2449년 아브월 8일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12명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10 명은 가면 큰 일나겠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성도 크고 사람도 크고, 무기도 많아서 우리가 저들을 쳐들어 갔다가는 메뚜기가 잡히는 것처럼 잡힐 것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보고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괜히 나왔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려 질 것이라.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하는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 하리라>(민14;27-30) 어느 덧 세월이 약 40년 정확하게는 38년이 흘렀습니다. 인구를 다시 조사하였습니다. 그 장이 바로 오늘 봉독한 민수기 26장입니다. 수를 세어 보니 이상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총수가 601,730명이었습니다. 1,820명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23,000명이었습니다. 727명이 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1. 징계하시는 하나님 본문에서 우리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한 명도 들어 가지 못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줄었습니다. 38년 지나서 인구가 줄었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약 200만명이 38년간 죽었다면 계산하여 보니 매일 150명 가량이 죽은 셈입니다. 한 가족을 5명 씩만 잡아도 매일 750명이 가족이 죽는 아픔을 가진 셈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중요한 영적 법칙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무서운 사실입니다. 다윗이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다윗이 궁중을 한가하게 거닐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궁중 산책 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성밖에 한 집안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데려다가 간음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나단이란 선지자가 가서 다윗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다윗은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 나단이 다윗의 이 말을 듣고 한 말씀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삼하12;13-15) 하나님은 다윗의 죄는 용서하셨어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이 금식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결국은 그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없이 용서하셨지만 믿지 못 하고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모조리 데리고 가셨습니다.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심리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목회하는 것을 보고 목회가 싫었습니다. 가장 싫은 것은 이사 많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심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매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상담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매일 죽은 남편이 칼을 입에 물고 들어와 괴롭히기에 잠을 잘 수 없는 여인 상담, 꿈에 피를 토하고 죽는 귀신을 만난 사람 상담, 무덤을 파헤치며 송장을 먹는 귀신을 만나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사람들의 상담이 연일 계속 되었습니다. 그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른 상담학 교수를 찾아 가서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반드시 죄에는 징계가 있음을 본문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씨앗만 심으며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죄는 용서받아도 징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2. 회복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본문에서 회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만명을 광야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1,820명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 150명 가량이 죽었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40년 동안 하루에 거의 150명 정도씩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대단한 역사입니다. 성경에 조사된 수는 다 군사수입니다. 하나님은 군사수를 비슷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하나님이라고 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 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욥5;18-21)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3;3-4) 하나님의 성격은 회복입니다. 크게는 잃어 버린 에덴 동산을 회복하는 것이 성경의 역사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실낙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복락원하시고 요한 계시록의 역사를 끝내시는 것이 성경역사입니다. 하나님은 200만명을 멸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그 분을 지금 영접하시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혈루증은 여자들이 앓는 병중에 부정한 병입니다. 피가 흐르는 병입니다. 그래서 그런 병이 있는 동안에는 성전을 출입하지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앉은 자리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몸이 닿으면 닿은 사람도 부정하여 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댄 물건을 대기만 하여도 부정하여 집니다. 하나님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집에 감금시켜 놓고 치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2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12 년을 예배를 드리지 못 하고 12년을 사람들과 접하지 못 하고 산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옷 자락을 몰래 붙들었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이제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정하여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 들어오더니 그 여자의 혈루병을 회복시키시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은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지금 병든 몸을 건강한 몸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영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18년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하여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 가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술마시고 취하여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엘리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 이 말을 듣고 한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삼상1;18) 그리고 집에 돌아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다는 열등감이나 아픔이 다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지금 회복시켜 주시고 계심을 믿으십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돌아 가십시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거대한 조각이 <모세>를 만들 때에 이야기입니다. 큰 바위덩어리를 집으로 날랐습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바위를 깨끗이 닦고 쪼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위에서 떨어진 돌과 먼지가 주변을 더럽히자 사람들은 이사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각이 쌓일 수록 멋 진 모습이 들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바위가 보였고 먼지가 보였고 조각들이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바위속에 <모세>가 들어 있었습니다. 먼지와 돌조각은 조각을 만드는 데 필수품입니다. 오늘 여러분 옆에 먼지가 일어도 미래에는 놀랍게 회복될 것을 믿고 나가십시오. 승리가 올 것입니다. 3. 축복하시는 하나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두 지파의 인구증가입니다. 레위 지파와 유다지파가 인구가 늘었습니다. 레위지파는 38년전에 인구조사할 때 22,273명이었었는 데 지금은 23,000명으로 727명이 늘었습니다. 그릭호 유다지파는 74,600명이었었는 데 지금은 76,500명으로 1,900명이 늘었습니다. 레위 지파가 늘어 난 것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레위지파는 늘 성막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가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킬 지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공로로 레위 지파를 늘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지파 수를 늘려 주셨습니다. 왜 유다지파 군사수를 늘려 주신 것일까요? 다른 지파는 줄어도 유다지파수는 늘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늘 앞장 서서 행진하며 일하였던 지파가 유다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일곱 족속을 다 죽이거나 내쫓거나 종으로 삼아야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전쟁을 하여야 합니다. 100여년을 전쟁을 하여 그 땅을 통일 왕국으로 만든이가 바로 다윗왕입니다. 그런데 100여년간 전쟁할 때 언제나 앞장 선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였습니다. 앞장 섰고 앞장 서려고 하니까 하나님은 유다지파 수를 늘려 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른 지파는 줄어도 유다지파는 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고 나서야 합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기드온은 농사짓는 무명의 농사꾼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밀타작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기드온이 농삿군이 자기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갑자기 큰 용사라고 부르니까 당황하여 물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5)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가 미디안과 싸워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지난 주간 169기 성막 쎄미나를 마쳤습니다 미국에서 29명, 태국에서, 일본에서도 오셨습니다. 국제적인 쎄미나였습니다. 지난 주간으로 이제 28,000명이 넘었습니다. 나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나는 성막 공부를 하면서 매일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어 책읽는 것이나 한국책 읽는 것이나 같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12345 꿈을 이루고 말 것입니다. 1- 한국 유일의 교회, 2-2천 교회 개착하는 교회, 3-3천 성도 교회, 4, 4만명 방문 교회, 5. 5억을 선교비로 주는 교회가 우리의 꿈입니다. 이 중표 목사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면서 교문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교문을 나선 사람중에 가장 큰 교회를 이루는 목회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지 35년만에 기장에서는 가장 큰 교회를 이루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자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을 확실히 믿고 교회문을 나서기를 바랍니다. 레위 지파는 인구가 늘고, 유다지파도 늘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나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징계의 하나님이십니다. 2.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3.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공평하게 주심
민수기 26:52-55 / 이지원 목사(김포상도교회)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 각 가정들에게 기업을 나누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업’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부모나 근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의 재산이나 사업을 뜻하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경에서 기업을 다르게 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 받은, 가문의 소유로 인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별로, 각 가정별로,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정하여 받게 됩니까?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 장면을 통하여, 각 지파의 기업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저 남쪽에 헤브론 지역은 유다지파의 땅이요.
저 북쪽은 단 지파의 땅이요..
정말 중요한 순간이 아닐수 없습니다.
앞으로 대대로, 각 지파가 가질, 땅의 크기와 위치가 정하여지는 중요한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 전체를 12등분 하여,
12로 나누어, 각 지파별로 똑같이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파는 많이 받았고, 어떤 지파는 적게 받았던 것입니다.
많이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아니, 앞으로 대대로 후손들이 넓은 땅에서 잘 살수 있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적게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은 기분문제 뿐만 아닙니다.
앞으로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갈 때, 땅이 적으니까 힘들지 않겠습니까?
자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이신데, 왜 어떤 지파는 기업 많이 주시고, 어떤 지파는 기업을 적게 주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니 그 기업을 받은 지파들도 불평을 할수 없었습니다.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많은 기업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십니다.
52절 5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주시면, 대대로 그것이 내려갑니다.
그렇지요. 논과 밭을 어느 할아버지가 사면, 그 논과 밭은 그 자식들이 되어 지지요.
자식들은 논과 밭을 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것이니까 상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바로 상속되어지고, 영원히 효력이 없어지지 않는,
‘기업’의 특징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기업이 되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대대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그대로 이어서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나중에 이삭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이삭아 이리와서 내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너에게 물려 준다.”
그러면 이삭이 그 축복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삭이 나중에 그 축복을 또 그대로 물려 주게 되지요.
“애서야, 너는 장자니까...내가 물려 받은 축복을 너에게 물려 주겠다.”
그러자 애서는 어떻게 합니까?
“에게...장자, 그까지껏...필요없어요.” 하나님의 축복을 경홀히 여깁니다.
동생에게 말합니다.
“그래, 나의 장자의 명분을 니가 가져라. 그리고 팟죽 한그릇을 대신 내가 먹겠다.”
팟죽 한그릇의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은 동생 야곱에게 흘러 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시기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든 받으려고 애쓰시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 팟죽 한 그릇에 팔았다고 금방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장난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그까지껏...
그런데 나중에는 완전히 틀려지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다 축복의 사람이 되었고, 축복의 지파가 되었고,
요셉은 총리대신이 되었고...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져 가나안 땅을 모두 물려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후손들에게 물려줄 축복을, 내가 하나님께 받아 내어야 하겠다.
정말 목표를 세우시고, 사모하여, 아브라함 처럼 받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주십니다.
53절 5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지나갔습니다만, 추석 새해가 되면, 설날...이 명절에 절대로 해서는 않되는 말이 있다고 하지요.
결혼해라...결혼이야기 절대하면 않됩니다.
직장이야기...언제 좋은 직장 들어가려느냐?
학생들에 점수나 등수를 물으면 절대로 않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산 돈 이야기는 절대로 해서는 않된다고 하지요.
그렇게 보면 만나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강조합니다만, 세상에 오래만에 친구를 만나도..
아니, 바로 옆에 살아가는 이웃을 만나도,
참으로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전하고, 예수님 높이는 말을 열심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더 나가서, 나중에 예수님께 열심히 전도하였다고 칭찬받게 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는,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받으면 기업이 됩니다.
영원히 내것이 되어 집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하나님앞에기업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받은 기업을 비교해 보니, 똑같이 12등분이 아니라,
어떤 지파는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지파는 적게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가 무엇입니까? 백성을 수를 세어서 기록하였다고 ‘민수기’ 이지요.
오늘 26장에서 각 지파별로 꼼꼼히 한명씩 세도록 합니다.
그래서 오늘 26장 1절부터 50절 까지가 바로 지파별 세어서 기록한 결과입니다.
지파별로 다 숫자를 세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데, 각 명수대로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게 하라.
그러면서 54절에서 말씀합니다.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그렇습니다.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주셨던 것입니다.
수가 적은 자에게는 공평하게 기업도 적게 주셨던 것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신약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달란트 받은 청지기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달랑 한달란트만 가지고 달랑달랑 주인에게 찾아오자.
주인은 그 한달란트를 빼앗아, 다섯달란트를 두배로 남겨 열달란트가 된 종에게 보태어 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리라 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자 여기에서 한번 단어를 넣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있는자는? 받아 풍족하게 됩니까?
무엇이 없는자는? 있는것 까지 빼앗기게 됩니까?
믿음, 복음, 열심, 충성, 헌신....
그런데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이 비유를 볼 것은, 바로 마태복음 24장,25장은 복음서에 요한계시록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장이지요.
즉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이 마태복음 24장,
마지막 때에 대한 세가지 비유가 바로 마태복음 25장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시는데, 숫자적 공평으로 기업을 주시지 않습니다.
믿음의 공평으로
헌신의 공평으로
열심의 공평으로...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볼 필요가 없습니다. 왼손이 하는일을 오른손이 몰라줘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 헌신하면 헌신하는 만큼, 예수님께서 기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 눈물흘리며 기도하면, 기도한 만큼, 예수님께 응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 온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리면, 드린만큼, 하나님께서 기업을내려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지파는 많은데, 어떤 지파는 수가 적지만...
하나님께서 기업을 나눠주신다는데, 대충해도 공평하게 똑같이 떨어지겠지...
어떤 지파는 신경도 않씁니다.
그런데 결과의 날이 오자.. 결과는 분명하였습니다.
“앞으로 대대로 이 기업을 그대로 물려 받을 것이니, 명수가 많은 대로 많게 받고,
명수가 적은 지파는 적게 주어라..”
결정되는의 날..
어떻게 보면 ‘심판의 그림자’입니다.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번달 ‘60예배주일’도 바로 다음 주일입니다.
이번에 우리 김포상도교회도 식구들도, 우리가정은 모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자.
힘쓰시기 바랍니다.
다, ‘생명책 출석부’에 기록되어 질 줄로 믿습니다.
여기있는 사람은 누구도 아직 천당에 가보지 못해서, 우리가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천국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공평하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마 25:23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
또 누가복음 19장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것은 천국에 그림자인 줄로 믿습니다.
주신사명 열심으로 감당하면, 천국에서 열고을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8:18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3. 기업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5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어떤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천둥과 번개가 치고, 바닷물이 넘칠 것이며
홍수와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자 설교를 듣던 꼬마가 엄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 그 날은 학교 안 가도, 되는 거지?"
자 유아기적 사고라는 것이 있지요.
천친난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마지막 날이 오면, 학교가는 것이 문제입니까?
하지만, 현재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오히려 눈이 닫혀서....
현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아기적 질문을 하고 맙니다.
아닙니다. 성숙한 사람은, 멀리 보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현재 받는 칭찬과 상급은, 천국의 그림자인줄 믿습니다.
영원한 영광과 족비 비교할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주십니다.
있는 그대로, 기업을 주시고, 있는 그대로 칭찬과 상급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큰 칭찬을 받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큰 기업을 받고,
이 가을에 이렇게 좋은 것을 다 받는 , 믿음의 가정들,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복된 후대를 위한 말씀
민 26:52-56 / 이한규 목사
< 복된 후대를 위한 말씀 >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서 군사력 점검을 위해 각 지파별로 인구 계수를 실시했다. 그러자 전체 싸울 수 있는 군사로 계수된 자가 601,730명이었다. 인구 계수 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그 땅을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할 때 3가지 원칙을 따르도록 말씀하셨다. 후대를 복되게 만들려면 그 3가지 말씀을 따라 삶의 모범을 보이며 지혜롭게 교훈하라. 그 3가지 말씀이 무엇인가?
1. 공평하게 살라
하나님은 각 지파의 인구수에 따라 인구가 많으면 땅도 넓게 주고 인구가 적으면 땅도 적게 주면서 공평하게 나누라고 하셨다(53-54절). 그것은 특정 지파에 치우치거나 편애를 삼가고 의롭고 공평하게 살라는 도전이다. 복된 삶을 살려면 편애를 주의하라. 자녀와 후대와 제자에게 공평 의식을 힘써 심어 주라. 본인의 능력이나 인성과 관련 없이 연줄로 인해 편애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편애를 받으면 현실 극복 능력이 저하된다. 세월이 흐르면 편애의 순간은 지나간다. 그때를 대비시키며 혹은 대비하며 살라.
어떤 부자는 자녀가 학교에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도록 학교에 많은 재정과 물품을 기증한다. 어떤 권력자는 자녀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도록 자기 자녀를 위해 최적화된 입시 제도를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만든다. 그처럼 부모가 자녀의 장애물을 대신 걷어주면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보다 오히려 패배적인 삶을 산다. 사람에게는 실패의 경험도 필요하다. 실패를 잘 승화시켜야 현실 극복 능력이 커진다. 그 사실을 알기에 대기업 회장도 현명한 회장은 아들에게 바로 회장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밑바닥부터 경영수업을 시킨다.
밑바닥의 삶을 경험해 보아야 어려운 난관을 침착하게 극복할 수 있고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놓아야 실제 문제가 닥칠 때 비참하게 꺾이지 않는다. 언젠가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 그것을 아는 부모는 자녀에게 고생이 없는 순탄한 환경만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가지 방법과 공평 의식을 일깨우는 말씀 교육을 통해 힘든 장벽을 대비시킨다. 그런 모습을 갖춘 현명한 부모와 자녀가 많은 공동체가 복을 받는다.
2. 평화롭게 살라
하나님은 땅 위치 분배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도록 제비 뽑아 나누라고 하셨다(55-56절). 즉 땅 크기는 인구비례 원칙을 따라 나누고 땅 위치는 제비뽑기를 통해 나누게 하셨다. 그러지 않으면 곳곳에서 “왜 우리에게 나쁜 땅을 주느냐?”라는 불평이 생겨날 것이다. 욕망과 욕망이 첨예하게 부딪치면 제비뽑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성경과 성령이란 하나님의 지침을 받는 통로가 구약시대보다 명확히 주어졌기에 어떤 결정을 할 때는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보다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평화롭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
또한 평화롭게 살도록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소외된 사람에게는 더 관심을 가지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옆에 서 주라. 남의 속사정을 알고 어떤 행동이 이해되면 시각과 반응이 너그러워진다. 내가 좋은 환경에서만 자랐다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다. 남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나의 강점으로 남의 단점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 내가 그 환경에 처하면 더 나쁜 태도가 나왔을 수도 있다. 내게 있는 어떤 강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음을 잊지 말라.
사람은 누구나 잠깐은 나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나의 나쁜 모습이 나의 전체 이미지로 보일 수 있음을 인식해서 행동을 주의하고 반대로 남의 나쁜 모습이 남의 전체 이미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해서 비판을 주의하라. 사람은 때로 나쁜 모습을 보일 날을 가질 권리가 있다. 늘 완벽하게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언어가 거칠어지고 인상을 쓰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다 연약한 존재다. 그러므로 남의 약점을 비판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긍휼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라.
모든 드러난 모습 이면에는 어떤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커튼 뒤에서 일어난 남의 일을 알 수 없다. 누군가 고통과 상처로 신음할 때 내가 그를 치료해 줄 사람이 될 수 있다.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해 줄 수도 있고 함께 식사 교제를 할 수도 있고 전략적인 교육 목적으로 잠시 멀리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도할 수 있다. 내가 정죄하는 일을 그치고 치유하는 일에 나서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녀도 타인 감수성이 넘치는 건강한 자녀로 잘 자랄 것이다.
3. 명예롭게 살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배할 땅이 제비뽑기로 결정되면 각 지파 조상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하라고 하셨다(55절). 이 말씀을 족보를 중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가정과 가문을 명예롭게 만들라는 뜻이다. 가나안 땅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남을 비판할 때는 늘 나부터 먼저 성찰하라. 또한 그때 나의 인격과 명예가 그만큼 떨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비판하라. 비판할 때는 명예와 인격을 걸어야 하기에 신중히 하고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앞세우라.
두 종류의 비판자가 있다. 비판거리가 많은 자기 약점은 보지 못하고 남의 약점부터 보는 습관적인 비판자와 비판거리가 많은 자기 약점은 보지 않고 남의 약점만 보는 편견적인 비판자다. 습관적인 비판도 주의해야 하지만 편견적인 비판은 자기 의에 도취된 모습이기에 더 주의해야 한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더 해가 되는 것은 약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도취된 것이다. 세상에는 남을 자신 있게 비판할 만한 충분한 인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없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자기 의를 버리고 자기 인격을 겸손하게 나타내면서 명예롭게 살라.
어떤 회사에 학력이 부족한 차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서에 부장 자리가 비었어도 그는 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부장 직무대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비교적 젊은 명문대 출신이 스카우트되어 부장 자리에 앉았다. 차장은 회사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얼마 후 회사를 떠났다. 그러자 그 부서의 총 책임자인 상무가 그 차장의 학력과 인성을 거론하며 편견이 섞인 욕을 뒤에서 해댔다.
그 장면을 지켜본 젊은 직원이 생각했다. “뒤에서 인성 문제를 거론하는 상무님의 인성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 그분 자신은 그 사실을 왜 모를까. 명예롭지 못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사고가 경직되는 것일까. 앞으로 살면서 나는 화석화된 사고와 편견적인 언어를 힘써 버리자.” 곧 그 젊은 직원도 회사를 사직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가 후대가 보기에 고착화된 모습이나 편견적인 모습이 되지 않도록 힘썼고 부족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자비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수시로 기도했다.
<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살라. 하나님이 나의 언행을 달아보고 계심을 잊지 말라. 늘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용서를 앞세우며 교육적인 목적으로 잠시 멀리할 때도 남의 존재 자체를 배타하지는 말라. 또한 인맥과 연줄로 세상을 나누는 무자비함에는 가담하지 말라. 하나님은 성도가 자비롭게 되길 원하신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처럼 마음을 쓰라.
자기 의에 대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나타나지 않게 하라. 나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까지 무수히 받았다는 생각과 감사가 삶에서 결핍되지 않게 하라. 부족한 사람을 전략적인 교육 목적으로 멀리하거나 정당하게 비판할 때도 결코 정죄하거나 따돌리지는 말라. 특히 경멸의 눈빛을 보내거나 편견으로 매도하는 말은 더욱 삼가라.
사랑과 용서를 앞세워 누군가를 품으면 그 영혼도 살아나지만 내 영혼도 살아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선한 의지도 살아난다. 편견과 편 가르기에 가담하며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라. 인생에서 잠시 소외되는 순간도 필요하다. 소외될 때 하나님을 꼭 붙잡으면 더 좋은 앞날이 준비된다. 후대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은 인맥과 연줄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연줄을 붙잡고 살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러 문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회복되는 문제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가지라. 사랑이 없는 중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다. 사랑을 회복하고 사랑으로 변화되라. 남이 내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가 남에게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지 말라. 감정보다 말씀을 앞세우며 나의 삶에 하나님이 임하실 공간을 기도를 통해 마련하라.
분노와 미움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기도하라. “하나님! 제게 침착함을 주소서.” 순간적인 기도를 활용하면 분노와 믿음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인내심과 침착함이 발휘된다. 자녀에게 고난과 시련과 원수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라. 그때 자녀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환대하며 소리 없이 헌신하는 삶의 틀이 형성되고 폭력적인 모습을 극복한 비폭력의 사랑이 넘치게 될 것이다. 늘 믿음과 사랑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복 받는 길을 예비하라.
민수기 26:38-56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고대 근동에서 인구를 조사하는 일은 일정 조직을 갖춘 나라에게 필수적인 행정절차였습니다. 이는 전쟁에 동원할 병력과 온갖 사회적 활동을 위한 노동력 확인을 목적으로 하였고, 무엇보다 세금 부과를 위한 준비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민수기에 기록된 인구 조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과거 이집트 노예였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된 조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적을 가진 명령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민수기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활동이었으나, 후대(삼하 24장)에 벌어질 다윗의 인구조사는 세상의 다른 나라들이 갖는 전쟁과 노동력, 세금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힘을 의지했던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민수기 1장에 있는 첫 번째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으로부터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알리는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한 이렇게 시작한 광야의 여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에게 반역을 하였고, 그 결과 광야 1세대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민수기 26장에 있는 두 번째 인구조사 명단은 광야 1세대의 아들과 딸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대의 시작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의 특징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첫 번째 인구 조사에 계수된 사람 중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은 것인데, 이는 불평과 반역을 일삼았던 구세대의 퇴장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을 보여줍니다. 어제 살펴본 본문들에 이어서 오늘은 베냐민 지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38-41절입니다.
[지파별 인구 조사의 결과 (38-51)]
[(38-41) 베냐민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 벨라에게서 난 벨라 종족과 아스벨에게서 난 아스벨 종족과 아히람에게서 난 아히람 종족과 스부밤에게서 난 스부밤 종족과 후밤에게서 난 후밤 종족이며 벨라의 아들들은 아릇과 나아만이라 아릇에게서 아릇 종족과 나아만에게서 나아만 종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베냐민 자손이라 계수된 자가 사만 오천육백 명이었더라]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번째 아들로 라헬의 둘째 아들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가나안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벧엘과 에브랏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49장에 나타나는 야곱의 유언에서는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로 표현하고 있으며, 신명기 33장에 나타나는 모세의 마지막 축복에서는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라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지키실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훗날 땅을 분배 받을 때는 유다와 에브라임 사이의 중앙 산악 지역을 분배 받았고, 사사시대에 베냐민 지파에서, 에훗과 같은 훌륭한 사사도 나왔지만 레위인 첩 살인사건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는 나머지 지파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 전체가 완전히 사라질 뻔하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쇠약한 위치에 있었으나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이 왕이 됨으로써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건국으로 세력을 잃고, 특별한 역할 없이 다윗 왕조에 반대하는 몇 번의 시도만이 기록에 남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의 가족으로는 벨라 가족, 아스벨 가족, 아히람 가족, 스부밤 가족, 후밤 가족등이 있습니다. 또한 벨라의 아들을 통해 아룻 가족과 나아만 가족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첫 번째 인구 조사 결과 3만 5,400명이 계수되었고 두 번째 인구 조사 결과 4만 5,600명이 계수되어 총 1만 200명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는 첫 인구 조사 인구 순위인 열한 번째에서 일곱 번째가 되는 변화였습니다. 다음은 단 지파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는 42-43절입니다.
[(42-43) 단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라 수함에게서 수함 종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단 종족들이라 수함 모든 종족의 계수된 자가 육만 사천사백 명이었더라]
단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이며 라헬의 몸종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입니다.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야곱의 형제 중 나쁜 평가를 받은 지파였습니다. 야곱의 유언에서는 단을 가리켜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라고 단 지파를 평가하였으며, 모세의 축복에서는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라고 말하면서 바산 지역을 차지할 강한 지파라고 말합니다. 이후 지중해 연안 지역을 분배 받았지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토를 버리고 북쪽 라이스 성을 점령하고 그 이름을 지파의 이름을 따서 단으로 불렀습니다. 이렇게 단 지파가 세운 도시는 훗날 여로보암의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신전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책망을 받는 우상숭배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그 결과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의 표식인 인치심을 받은 12지파의 목록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단 지파의 가족으로는 수함 가족이 있었습니다. 단 지파는 첫 번째 인구조사에서 6만 2,700명이 계수되었고, 두 번째 인구 조사에서도 1,700명이 증가한 6만 4,400명이 계수되었습니다. 이러한 규모는 유다 지파 다음가는 규모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역할을 감당한 만한 크기였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떠난 지파는 그 힘이 강하여도 하나님의 쓰임받는 도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음 44절부터 47절은 아셀 지파에 대한 기록입니다.
[(44-47) 아셀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 임나에게서 난 임나 종족과 이스위에게서 난 이스위 종족과 브리아에게서 난 브리아 종족이며 브리아의 자손 중 헤벨에게서 난 헤벨 종족과 말기엘에게서 난 말기엘 종족이며 아셀의 딸의 이름은 세라라 이는 아셀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된 자가 오만 삼천사백 명이었더라]
아셀은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로 레아의 여종 실바의 둘째 아들입니다. 야곱의 유언에 따르면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고 말하며 좋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을 예언하였고, 모세의 축복에서는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라고 하면서 아셀의 미래를 축복하였습니다. 가나안 정복 후 땅을 분배할 때 아셀지파는 두로와 갈멜산에 이르는 지역을 분배 받았는데, 좋은 땅을 분배받은 것에 비해 그 영향력은 미미하였고 드보라의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아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난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셀 지파의 가족으로는 임나 가족과 이스위 가족, 브리아 가족이 있었고 브리아 가족은 다시 헤벨 가족과 말기엘 가족으로 나뉘었습니다. 또한 46절을 보면, 아셀 가족 중 딸인 세라도 이 명단에 포함되어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의 딸들과 같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셀 지파는 첫 번째 인구조사에서는 4만 1,500명이 계수되었고,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는 5만 3,400명이 계수되어 1만 1,900명의 인구가 증가된 발전된 지파였습니다. 다음 48절에서 50절은 납달리 지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8-50) 납달리 자손은 그들의 종족대로 이러하니 야셀에게서 난 야셀 종족과 구니에게서 난 구니 종족과 예셀에게서 난 예셀 종족과 실렘에게서 난 실렘 종족이라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납달리 종족들이니 계수된 자가 사만 오천사백 명이었더라]
납달리는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로 라헬의 여종 빌하의 둘째 아들입니다. 납달리는 야곱의 유언에서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하였고, 모세의 축복에서는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납달리 지파는 요단강 상부 지역의 비옥한 땅을 분배 받았지만 그 지역은 위치상 방어가 어려웠기에 땅이 기름진 것만큼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구약 시대에 소외되었던 납달리 지역은 이사야 9장1절에 나타나는 예언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그 중요성은 신약 시대에 더 강조되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야셀 가족과 구니 가족, 예셀 가족과 실렘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납달리는 처음 인구 조사 때는 5만 3,400명이 계수되었고 두 번째 인구 조사 때는 4만 5,400명이 계수되어 8,000명의 인구가 감소되었습니다. 51절입니다.
[가나안 땅 분배의 원칙 (51-56)]
[(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이렇게 두 번째 인구 조사로 계수된 이스라엘의 인구는 모두 60만 1,730명입니다. 이는 첫 번째 인구 조사 당시 인원인 60만 3,550명보다 1,820명 감소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잘 견디고 무사히 생존했음을 보여줍니다. 추가로 이스라엘의 인구 변화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지파라고 하여, 그 인원이 꼭 늘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고 해서 그 수가 꼭 줄어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보았을 때, 단순히 인원의 증가와 감소로, 한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가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어지는 52절에서 56절에서는 두 번째 인구 조사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땅 분배 원칙에 대해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52-5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땅 분배의 원칙은 사람의 수대로 땅을 나눠주는데, 이는 사람이 많은 지파와 집안에게는 큰 땅을 주고, 숫자가 적은 지파와 집안에게는 작은 땅을 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56절에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어느 지파와 집안이 어느 땅을 차지 할 것인가를 정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일부 번역본들은 56절을 12지파 중 숫자가 많은 지파들의 그룹과 숫자가 적은 지파들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각 그룹별로 제비를 뽑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보면, 지파들의 크고 작음에 상관하지 말고, 먼저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땅의 위치를 할당해 주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12지파를 두 그룹으로 나누라는 뜻이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비를 뽑아야 각 지파별로 땅을 정해 주는 동시에 큰 지파에게는 큰 땅을 주고, 작은 지파에게는 작은 땅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 학자들의 설명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설명은 먼저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차지할 땅을 정하고, 그 다음에 각 지파에게 주어진 땅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그 지파에 속한 각 집안사람들의 수를 고려하여 큰 집안에게는 큰 땅을 주고, 작은 집안에게는 작은 땅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비뽑기와 인구수에 따라 땅을 주는 원리를 병행하면 세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장점은 먼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비뽑기로 땅을 정하였기에 12지파 모두가 땅의 위치와 크기에 대한 불만이 줄어듭니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로 제비뽑기로 각 지파에게 할당되는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선물로 주신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지파에게 할당된 땅의 범위 내에서 집안의 크기에 따라 분배되는 땅의 크기가 비례하면 시기와 불만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 우리의 모든 환경과 삶의 자리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과 환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으로 생각하고 그 곳을 감사하고 그 곳에서 자신의 믿음의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의 일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고, 예수님을 닮는 모습으로 더욱 멋지게 변화될 것입니다. 과거 믿음의 선배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일곱 번씩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일들을 감당하였듯이. 루터나, 멜란히톤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성경이 명령하는 개혁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제비뽑아주신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려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배우고,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일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함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을 날마다 찬양하며, 믿음으로 우리가 해야할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모든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삶의 자리와 환경을 결정하심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먼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하루 일곱 번씩 감사하는 모습을 갖게 해 주옵시고,
우리의 삶의 놓인 다양한 일들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 결과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믿음과 기쁨의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면, 오늘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 중에서,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고 싶은 것을 일곱 가지 고르면 무엇이 있을까요?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믿음으로 감당해야 할 일을 무엇인가요?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혜와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이를 묵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