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팔'이 지난 주말로 끝이 났습니다. '응팔'이 뭐냐고요. '응팔'을
모르시면 아마도
요즘 모임에서
대화가 안
되실 겁니다.
'응답하라 1988'은
tvN에서 방송한
20회짜리 드라마입니다.
1988년을 재현한 드라마입니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나 그 시대를 잘 그려서 추억을 곱씹게 해주었지요. 응답하라 시리즈를
몇 번
보아 <응답하라
1988>이 어떤 내용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처음 몇
회가 방송되던
무렵 주위에서
아직도 '응팔'을 안 보고 있냐고 하면서 마치 '응팔'을
안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핀잔을 주어
보게 된
것이 광팬이
되었습니다.
추억은 언제
팔아도 잘
팔리는 히트
상품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2012년
7월 <응답하라
1997>, 2013년 10월 <응답하라
1994>, 2015년 11월 <응답하라
1988> 연이어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서 과연 추억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래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2013년
9월 9일
자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이라는
제목의 월요편지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Ellen J. Langer 교수의 실험 이야기입니다. 일부를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Ellen J. Langer 교수는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팀원들과
함께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무료한
일상 탈출,
활기찬 노년!>
지원자격 : 70대
후반 80대
초반 남성,
하는 일
: 6박 7일
여행을 하며
추억에 대해
심오한 토론,
회비 : 없음,
혜택 : 모든
여행 경비
무료’ 이
광고를 보고
온 많은
지원자 중에서
8명을 선발하였습니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검버섯
가득한 노인들을
외딴 시골의
낡은 수도원에
모아 놓고
두 가지
규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첫째 20년
전인 1959년으로
되돌아갈 것(20년 전의 정치 사회 스포츠 등을 현재형으로 이야기하기,
1959년 개봉한 영화와 TV 프로그램 시청),
둘째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 직접
할 것.
그들은 1959년
야구 잡지를
보았고 1959년
개봉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보았습니다. 점차 1959년을
현재로 사는
것에 익숙해진
노인들은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계단
오르기 등
운동도 시작하였습니다.
일주일이 끝났습니다.
실험 결과
참가한 8명의
노인들 모두
시력, 청력,
기억력, 지능,
악력 등이
신체 나이
50대 수준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것이 Ellen J. Langer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Counterclockwise study(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입니다. Ellen J. Langer 교수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다듬어 2009.5.19 <Counterclockwise: Mindful
Health and the Power of Possibility>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우리나라에는 2011.4.29 <마음의 시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영국(2010년
9월, BBC의
The Young Ones)과 한국(2013년
5월, EBS의
황혼의 반란)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는데, 실험
결과 참가자
전원이 신체적으로
젊어졌습니다.
저는 당시
월요편지를 쓰면서
똑같은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아이들과
이런 토론을
하였습니다. 당시 월요편지 내용입니다.
"아빠 : 우리도 한번 이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하면
어떨까? 연로하신
할머니를 위해
할머니 집을
옛날 환경으로
바꾸는 거야.
아들 : 아빠
좋아요. 그런데
몇 년도를
기준으로 삼지요.
아빠 : 글쎄
몇 년이
좋을까. 아하!
1988년 어때. 그해에
서울 올림픽이
있었잖아. 다른
해는 잘
기억을 못해도
그해는 누구나
기억하잖아. 그리고 자료 구하기도 쉬울
거야.
딸 : 좋아요.
그런데 그해에
저는 2살이고
정민이는 안
태어났네요.
아빠 : 할머니를
위한 것이니까?
만약 너희들에게도
의미가 있게
하려면 한일
월드컵이 있던
2002년을 기준으로 삼아야겠네.
아들 : 2002년은
나중에 하죠.
아빠 : 윤아야,
무대 디자인이
네 전공이니,
네가 할머니
집을 1988년으로
꾸미거라.
딸 : 드라마
세트 디자인은
무대 디자인과
좀 다르지만
그쪽을 전공한
선배들과 상의해
볼게요. 비용은
아빠가 부담하실
거죠.
아빠 : 당연하지.
소품 위주로
인테리어 해서
비용을 최소화하여라.
엄마 : 벌써
다 만든
것 같네요.
그런데 어머님이
허락하실까요?"
당시 실현해
보지는 못했지만
저희 가족들은
이렇게 토론하며
1988년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에 <응답하라
1988> 덕분에 저희 가족은 2년 전 꿈꾸던 1988년으로의
과거 여행을
하였습니다.
<응답하라 1988>이 시청자에게 준 즐거움이 여러 가지겠지만 저는 다른 각도에서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싶습니다.
모든 시청자들이
Ellen J. Langer 교수가 실험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의
참가자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나마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 동안은
28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십 대 중반 이전의 젊은 분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드라마에 나오는
고3 주인공들보다
더 나이
많은 세대에게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효과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왠지 그 드라마를 보면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우리는 때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헤어집니다.
그 만남에는
미래나 꿈은
없습니다. 오로지
과거와 추억만
있을 뿐이지요.
저는 그런
만남이 어떤
때는 공허하기도
하고 시간
낭비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문득 그들이 보고 싶고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고교 동창이
그리운 것은
단순히 과거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의
결과와 같은
회춘의 효과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2016년에는
고교 동창들을
자주 만나
젊어지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1.18.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