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봉을 넘어
올처럼 유난히 따뜻한 겨울에도 봄이 오는 지표는 여럿이다. 소한대한 무렵 들녘에 핀 광대나물이나 봄까치 꽃을 봤다. 지리산 계곡 북방산개구리가 올해는 일월 하순 겨울잠에서 깼다는 뉴스를 접했다. 매화나 산수유꽃도 예년보다 이르게 피었다. 엊그제 용추계곡에서 노루귀와 현호색이 핀 것을 봤다. 삼월 하순이나 사월 초에 피는 진달래가 양지 바른 산기슭에는 벌써 피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반송 재리시장이 있다. 떡집이나 횟집도 있고 칼국수와 족발 가게가 알려졌다. 노점에는 과일이나 떡볶이나 김밥을 판다. 노점 할머니가 철 따라 나온 채소를 파는데 거기서도 봄내음을 맡을 수 있다. 최근 반송시장을 지나치다 봄이 온 채소를 셋 만났다. 밭둑에서 캔 쑥이 그것이다. 텃밭에서 잘라온 초벌 부추도 팔았다. 그리고 갓 움이 돋아난 머위 순을 보았다.
삼월 둘째 일요일이다. 가끔 산행을 함께 다니는 대학 동기와 봄기운을 받는 산행을 약속했다.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해 진전면 둔덕으로 가는 76번 녹색버스를 탔다. 어시장을 지날 때면 시장을 봐 가는 할머니들이 더러 탔는데 코로나 여파로 손님이 적었다.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전 면소재지를 지나 진전천을 따라 계곡으로 들었다. 일암과 대정을 지나 의산이었다.
우리 말고 손님이이 한 사람이 더 탄 버스는 둔덕을 앞둔 골옥방에서 이십여 분 머물다 다시 출발했다. 그 산골마을 덩그런 밀양 박씨 여항재는 출향 기업인이 세웠다는 비가 세워져 있었다. 재봉사로 출발해 지금은 굴지의 기업으로 일군 인물로 예전 브랜드가 ‘인디안’이었다. 그분은 평소 지역사회에 자선사업과 경노잔치에도 손이 크다는 평판을 받는 일흔 중반 나이 기업가였다.
둔덕 종점에서 내려 오실골로 드니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수년 째 진행 중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오곡재를 산간 계곡이었다. 거기는 이른 봄 움이 트는 머위가 자랐다. 먼저 당산나무 아래서 곡차를 몇 잔 비웠다. 지난해는 개울 바닥 퇴적물이 휩쓸려 가는 많은 비가 왔던지 흙살이 적어진 생태계 변화가 와 있었다. 그런 속에도 때를 맞춰 돋아나는 머위를 캐 봉지에 담았다.
산중 머위를 캐고 난 뒤 배낭을 추슬러 오곡재로 오르니 미산령 갈림길에는 자동차가 몇 대 보였다. 미산령으로 등산을 가거나 임도에서 쑥을 캐려는 이들이 세워둔 차들인 듯했다. 우리는 오곡재로 오르다가 볕이 바른 자리에 웃자란 쑥을 제법 캤다. 오봉산으로 가는 갈림길인 오곡재에도 길가에 세워둔 차가 여러 대였다. 휴일을 맞아 산행을 나선 이들이 몰아온 자동차들이었다.
우리는 오곡재를 넘지 않고 오른편 산등선으로 올라 가져간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후 산마루를 따라 미산봉으로 향했다. 경사가 가파른 봉우리를 두 개 넘어 미산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낙남정맥이 오봉산에서 여항산으로 건너갔다. 중간에 뫼제비꽃을 봤는데 산정에는 노란 꽃잎을 펼친 복수초를 만나 반가웠다.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복수초는 우아하게 피어나 있었다.
미산봉에서 상데미봉으로 갔다. 헬기장엔 군북에서 올라온 산행객들이 쉬고 있었다. 함안 일대 들판이 훤히 드러났다. 먼저 오른 이 가운데 그곳 지형에 대해 훤한 한 사내는 여항산이 한국전쟁 때 적과 대치하면서 주인이 일곱 번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피바위에 서린 전설을 얘기했다. 오곡에 살던 아리따운 처녀와 구렁이가 변신한 총각 사이 슬픈 사연이었다.
할미꽃이 군락으로 핀 헬기장을 뒤로 하고 바위능선을 따라 피바위로 갔다. 전설처럼 바위는 핏자국으로 붉은색을 띠었다. 여러 개 산봉우리는 넘고 넘어 사촌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가까워진 산기슭에는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었다. 사촌마을에서 군북역까지 걸어 표를 예매해 놓고 시간이 남아 신창마을 가게 평상에서 곡차를 들고 순천에서 오는 열차를 타 터널 구간을 몇 곳 지났다.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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