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지붕 밑에 모인다
나무와 고양이와 새들도
빈집과 짧은 여름과 기나긴 밤들도
우산처럼 지붕도 펴고 닫는다면
언제든지 가방 속에 휴대하고 다닌다면
누구든지 필요할 때 지붕을 꺼내 들 수 있다면
좋겠지, 지붕이 우산이 된다면
좋겠네, 지붕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것들이 한 움큼 국자 속에서 찰랑인다
언제까지 비는 하나의 자세로 떨어질 것인가
우산을 펼치려는 마음이
낙하하는 순간
-『경북매일/이성혁의 열린 시세상』2023.03.20. -
떠돌아다니거나 한곳에 붙박여 살아야 하는 존재자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지붕 밑에서 만난다. “짧은 여름과 기나긴 밤들”까지도(이들 속에는 시인 역시 포함될 테다).
그런 지붕이 “누구든지 필요할 때” “꺼내 들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화자의 바람은, “모든 것들이 한 움큼 국자 속에서 찰랑”이는 시간에 대한 희구와 연결된다. 이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끼리 ‘맛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희구다.
〈이성혁 / 문학평론가〉
Céline Moinet - Schumann Romances: 3 Romanzen, Op. 94: III. - Nicht schnell | Offizielles Musik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