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글 : 박동수
우리는 놀음에 대한 독특한 점을 갖고 있는 민족인 것 같다.
그 중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만
이 갖고 있는 놀이가 바로 윷놀이다.
편을 갈라서 하는 놀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민족성이
뚜렷하게 배어있는 특이한 놀이다. 서양의 주사위 같은 것의
숫자놀이엔 사면에 부여된 숫자엔 하나의 독자적인 운명이
결정이 되지만 우리의 윷은 그런 독자적인 숫자란 게 없다.
네 개의 가락이 던져지고 그 네 개의 숫자가 합해져야 수의
성립을 인정 하는 것이다. 즉 도는 세 개가 엎어지고 하나가
제켜질 때 그 합의 행위에서 도의 성립을 인정 한다는 것이다.
바로 말해서 주사위는 홀로의 운명이지만 윷은 서로서로
연계가 되어있는 운명의 법칙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백성들의 운명적 관례가 서려있다. 개인적 영웅주의의
서구와는 달리 우리는 연계적 즉 집단적 운명론이 이 윷가
락 놀음에서 볼 수 있다. 끈끈한 가문계통 내림의 운명에서
부터 어떤 연연의 즉 학연 지연 등의 줄타기의 인연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우리의 풍습 같은 요소가 스며있는 놀음, 윷놀이가
설날의 행사이고 자나간 날의 우리의 그리운 추억이 되고 있다.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에서부터 라고 한다. 농가의 행사로
윷점법이었다고 한다. (최남선 씨의 말)
농가의 노름으로 편을 갈라 한쪽은 산 농 한쪽은 수경이 되어
그 이기고 짐에서 그 해의 농사가 고지에서 잘 될지 저지에서
잘될지 판가름하는 윷점 법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그 뜻이
없어지고 그저 흥겨운 놀이로 만 전해오고 있다.
짝을 지워 만든 집단적 공동심리로 이루는 윷가락의 숫자로 잘
나가는 앞의 말을 잡아 제키는 어떠한 타협도 없는 승리 적 쾌
감을 느끼게 하는 놀이에 현실의 우리생활의 단면이 그려있음
을 느낀다.
집단적인 처세
파당으로 쓸어져 간 이씨 조선의 역사를 우리는 뼈저리게 공부
했고 공산주의 민주주의 집단화 때문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
아직 그 잔 설움을 마무리 짓지 않았고 무슨 당 무슨 당하며
무리지어 물어뜯고 짝패를 이루며 너, 나의 허물을 들쳐 내며
정치싸움에 파당을 짓고 있는 틈에 불쌍한 민초들은 거리로
지하철 밑으로 노숙자가 되어가고 있지만 윷가락의 운명처럼
코드 찾기에 바쁜 세상이니 어찌 윷가락의 운명이 아니라 누가
부인하랴.
그 틈새에서 살아나는 것은 뜻 모를 은거 인으로 산다든가
공해에 찌든 강변에 낚시 대를 들고 나서는 숱한 명인들은
얼마일까 소주 한 잔에 몸을 맡긴 체 투정거리며 한탄의 소리
가 도시의 공기를 달구는 것이 오늘이면 고향을 잊은 체
노숙의 신세에 시달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모두 정쟁(政爭)
의 윷놀이 희생에서 벗어나서 진정 즐거운 고향의 윷놀이
에 참여되는 따뜻한 이 한 해가 왔으면 좋겠다.
이념적 분단과 정쟁으로 인한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우리들의
형제들에게 서로가 믿고 사는 순박한 고향에서 윷놀이에 같이
하는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께 빌어본다.
출처 : 사색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