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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제 맛을 잃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2023년 가해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오 5,13-16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빛과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이미 빛과 소금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빛과 소금은 나의 빛과 짠맛으로 무언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영향을 주는 일이 ‘착한 행실’,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있을까요? 짜지 않은 소금이 있을까요? 그런데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이 어제의 ‘행복 선언’에 이어진다는 것에 착안해야 합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란 행복을 잃은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얻는 자존감의 상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 때부터 이미 빛과 소금입니다. 하느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령으로 생기고 자랍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곧 행복입니다. 행복을 잃은 사람은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착한 행실을 보여주려 해도 주님을 찬미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뤽 벡송이 감독한 ‘레옹’(1994)은 매우 다른 두 캐릭터, 즉 고독하고 감정이 없는 암살자 레옹(장 르노)과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사이의 깊고 특이한 관계에 관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매우 상징적인 소재가 등장하는데, 레옹이 즐겨 마시는 우유와 화분입니다. 우유는 아직 레옹이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의미하고, 화분은 그 이유가 땅에 뿌리 박지 못한 식물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레옹은 어렸을 때 살인을 저지르고 더는 성장하지 못한 화분에 심어진 아이와 같은 킬러입니다.
아이와 같은 레옹에게 가족을 잃은 마틸다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틸다는 어린애입니다. 처음에 레옹은 마틸다를 꺼렸지만, 그녀를 받아들이고 복수를 원하는 그녀에게 살인 방법도 알려줍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살인 하면 더는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레옹의 말을 듣지 않고 원수를 죽이러 가고 그 과정에서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레옹은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오히려 식물은 화분이 아니라 땅에 뿌리 박고 살아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마틸다가 레옹에게 영향을 준 것입니다. 레옹은 글도 읽을 줄 모르지만, 마틸다는 읽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더 큰 사람에게서 성장한다는 것을 압니다. 레옹은 오히려 마틸다에게 사랑을 배우고 희생을 배웠습니다. 마틸다는 레옹으로 상징 되는 화분의 식물을 땅에 심습니다.
마틸다는 자신이 땅에 심어져야 거기에서 영양분을 얻고 자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레옹은 아닙니다.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화분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땅에 심어진 식물은 저절로 자랍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려면 화분에 심어진 식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군가의 도움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땅에 심어진 식물은 크게 자라서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화분에 심어진 사람이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누구도 짜게 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리나 채프먼은 원숭이들에게 길러졌습니다. 원숭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만큼 마리나를 키웠습니다. 그가 사냥꾼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사창가의 몸 파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수준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엔 사랑 가득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내가 어느 땅에 심어지느냐에 따라 제 맛을 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정해집니다.
내가 뿌리 박고 있는 땅이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그리스도로 만드는, 내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는 성령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만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주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심어진 소금은 제 맛을 잃지 않습니다. 그 맛이 곧 자기 정체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교리서는 말합니다.
“(사제는 누구입니까. 그는)…. 하느님이 될 것이고 다른 이를 하느님이 되게 할 것입니다.”(CCC, 1589)
내가 하느님께 뿌리를 박고 있다면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신 것을 먼저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되어감에 행복할 것입니다. 이 맛을 잃으면 화분에 심어진 식물입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내가 하느님이 되었음을 믿읍시다. 식물은 땅과 하나 입니다. 이 믿음만이 내가 소금이되 짠맛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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