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인 계수
민 26:57-65
57 레위인으로 계수된 자들의 종족들은 이러하니 게르손에게서 난 게르손 종족과 고핫에게서 난 고핫 종족과 므라리에게서 난 므라리 종족이며
58 레위 종족들은 이러하니 립니 종족과 헤브론 종족과 말리 종족과 무시 종족과 고라 종족이라 고핫은 아므람을 낳았으며
59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60 아론에게서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났더니
61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62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레위인의 모든 남자는 이만 삼천 명이었더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준 기업이 없음이었더라
63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64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6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민 26:57-65 / [레위 지파 아론과 모세의 집안] 레위 지파는 크게 나누어 게르손에게서 퍼져 나간 게르손 씨족과 고핫에게서 퍼져 나간 고핫 씨족과 므라리에게서 퍼져 나간 므라리 씨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씨족의 시조인 세 사람은 모두 레위의 아들이다. 58-61) 고핫은 아므람의 아버지이다. 아므람은 애굽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아론과 모세 두 아들과 미리암이란 딸을 두었다. 아론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는데 이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여호와께 분향제사를 올렸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또한 레위 지파는 립니 씨족과 헤브론 씨족과 말리 씨족과 무시 씨족과 고라 씨족으로 갈라졌다. 62) 이렇게 수를 세어 보니 태어난지 한달 이상된 레위 지파의 남자는 모두 2만 3천 명이었다. 이 레위인들은 전체 이스라엘 인구수에 넣지 않았다. 레위인들은 그들 몫으로 땅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63) 이렇게 모세와 엘르아살 제사장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가에 있는 모압 평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었는데 이들 속에는 64) 모세와 아론 제사장이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셀 때 들어 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65)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남아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광야에서 죽고 말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다 죽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제사와 성막 봉사만을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계수한 말씀입니다.
레위 지파의 계수(57-62) 레위는 레아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셋째 아들입니다(창 29:34). 이 지파는 시내 산에서 헌신한 후(출 32:26-29) 성직의 임무를 부여받고 다른 지파들 가운데서 구별되었습니다(3:1-39). 레위 지파의 특징은 첫째, 일반인들을 계수할 때는 20세 이상 된 남자들만 계수하였으나, 레위인은 1개월 이상의 모든 남자들을 계수하였습니다(3:40-51). 둘째, 다른 지파들에게는 기업이 있었지만 레위 지파에는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열두 지파를 통해서 소산의 일부를 받아 생활하였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재역할을 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출 28:1; 민 18:17; 수 14:4). 또한 이스라엘은 요셉과 레위 지파를 대신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를 포함시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26:28-37). 그리고 레위 지파에 요게벳의 이름과 그의 역사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반면에 하나님의 징벌로 죽은 나답과 아비후의 이름을 다시금 언급하여 후손들에게 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23,000명이었으나 이스라엘 총 인구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계수되었던 자들의 멸망(63-65)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출애굽의 1세대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14:22). 그래서 40여년의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14:33-34). 특히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자들의 사명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인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명의 정탐꾼들은 이를 따르지 못했고 이스라엘 내에 반목과 불신앙을 조장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나님을 원망하며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14:1-4).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이며(창 15:6-7; 17:7-8),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수 2:8-11).
적용: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믿음 안에서 변함없이 성취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뜻을 올바르게 행하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피그말리온 효과란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대를 받으면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며 믿어준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보답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일을 성취하실 때 원망하는 자들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보여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성패는 얼마나 진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 설 교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민 26:63-65 / 피영민 목사
서 론
백성의 숫자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의 민수기는 1장에서 애굽에서 나와 둘째 해인 2월 1일에 백성들의 수를 계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1차 인구조사입니다. 레위인을 제외하고 전쟁에 나가 싸울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계수했을 때 603,550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6장에 기록된 것처럼 40년간의 광야 방황생활을 마친 후, 모압평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인구조사를 합니다. 이것을 2차 인구조사라 할 수 있는데 601,730명이 계수되었습니다. 1차 계수와 2차 계수의 차이가 1,820명입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에는 인구가 70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430년 만에 남자 장정만 603,550명이 되었을 정도로 자손이 번성했지만, 광야 40년 동안에는 인구가 증가되지 않고 도리어 1,820명이 감소했습니다.
민수기 외에도 사무엘하 24장에 다윗도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인구조사를 두 번씩이나 하고도 혼나지 않았지만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역병으로 칠만명이나 죽이시는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인구조사지만 동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서의 1차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광야에서 질서 있는 행군을 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었고, 2차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효율적으로 전쟁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조사는 이와 다릅니다. 다윗은 통치 말기에 국가가 번영하고 백성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땅이 확장되면서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방력을 과시하고 싶은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시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다윗의 동기를 싫어하셨기 때문에 진노하셔서 무려 칠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역병으로 치셨던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동기는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올바른 동기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의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전쟁에 나가서 싸울만한 남자만 계수했습니다. 여자와 20세 이하, 그리고 레위인은 모두 제외됐습니다. 1차와 2차 계수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미 언급한대로 인구가 1,820명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1차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생을 하고난 직후에 시행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장자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인구는 왕성하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에는 불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부패하였고, 하나님께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과 핍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핍박과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더욱 부흥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내부적인 부패는 큰 문제가 됩니다. 내부적인 부패가 있을 때 교회는 약화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성하도록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내부적인 부패가 있으면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과 고난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죄악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고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내부적인 부패와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내부의 부패와 죄악, 그리고 동기를 살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를 비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가운데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변화한 것
먼저 이스라엘 구성원 전체가 바뀌었다는 것이 변화된 사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두 죽었습니다. 국가의 구성원 전체가 다 바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이 있었기 때문에 40년 안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다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히 9:27)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모세는 광야 40년의 경험을 시편에서 이와 같이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여기서 ‘신속히 간다’는 말은 영어성경에서는 ‘soon cut off’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이것은 부정해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평번하지만 엄청난 진리를 기억하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둘째,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습니다. 언제 죽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모든 해답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대할 때에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fear of death)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가 불행하고 어두운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가 더 행복하고 영원한 세계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만큼이나 현실적인 세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그 아름다운 세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들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아름다운 세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대가 바뀌는 것도 유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지금 이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보다 세대가 바뀌는 과정들이 유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1세대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대마다 할 일이 다릅니다. 세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김일성이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히틀러가 지금도 독일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는 것은 유익이 있습니다. 세대는 흘러왔다가 다시 흘러가고 이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번째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얼마나 학벌이 좋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죽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봉사하고 일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봉사는 현세를 넘어서 내세까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명예와 권력은 내세의 효과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은 내세에 영원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은 모두 바뀝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불변성의 교리(Immutability of God)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라기서에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I the Lord do not change)”(말 3:6)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에도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6-27)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성, 그리고 작정하신 목적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언약도 불변하십니다. 우리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교회입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에서 백성들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국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켜서 광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영원하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죽었을 때에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울고, 장정들은 엎드려서 슬피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어도 광야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론은 죽었지만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살이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고, 모세는 죽었지만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는 어떤 면에서 모세보다 부족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수종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각각 특성있게 사용하셨습니다. 모세가 책의 사람(the man of the book)이었다면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계시를 받아서 위대한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쳐서 멸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였던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 인물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도 새 사명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의 목사가 바뀌고, 장로가 바뀌고, 집사가 바뀌어도 교회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현세로부터 내세까지 영원히 지속됩니다. 건물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졌듯이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도 우리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교회 출석을 강력하게 권면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비해 오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능력이 좋아서 입니까? 아니면 똑똑해서입니까? 똑똑해서라면 왜 과거 반만년동안에는 이와 같은 성장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똑똑해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교회를 세우고 기도하며 전도하는데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새벽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민족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데 그 축복의 비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 할 것을 늘 강력하게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 나와서 교회를 채워줘야 우리의 세대가 지나가도 다가오는 세대에 또 다시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전쟁터에서 싸웠던 용장들인데 왜 생명을 위협받을만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화살의 위험, 질병의 위험, 칼의 위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필요성
변화해야 될 존재이면서도 변함없이 2차 계수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에 관해서 세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면제됩니다. 아무리 죄가 많을지라도 지옥행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언제 죽어도 갈 곳은 지옥뿐이라는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죽으면 심판이 집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면 그 판결이 무시되고 죄사함과 영생과 천국의 소망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라는 확실한 고백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도 보고 특권을 누려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1-2)고 했습니다.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기적을 목도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 부어져도 믿음으로 화합해서 받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단코 멸망치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에서 죽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며, 부활하여 지금보다도 억 만 배 행복한 내세를 받게 될것입니다.
결 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에 자신의 삶을 투자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투자는 망하고 실패할지 몰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 투자하면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얻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뿌린 만큼 열매를 거둬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얼마나 투자했는가 하는 것만이 영원토록 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를 창시한 도슨 트로트맨(D.E. Trotmann)은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망하지않을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건강과 재물,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과 교회와 말씀에 투자하십시오.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아는 성도들은 이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이와 같이 고백할 것입니다. “내가 썩어질 것에 마음을 쏟을 인생이 아니로구나.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알기 위해, 더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에 더욱 유익을 끼치는 일에 사용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애를 살 것인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러한 믿음이 날로 더해져서 변하지 않는 것을 붙들고 영원한 축복을 향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앙에는 예외가 있다
민 26:63-65 / 강문호 목사
지난 주간에 평택제일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모두 은혜를 받는 것을 보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기뻤습니다.그 교회는 조 명호 감독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40여명이 뻐스를 타고 관광을 가다가 그 뻐스가 강원도 언덕에서 굴렀습니다.몇 바퀴를 구르는 통에 거의 다 죽었습니다.조 감독님 옆에 타고 있고 장로님도 돌아 가셨습니다.조 감독님도 흰 보자기로 덮었습니다.이 때 사고 소식을 듣고 백 문현 목사님이 현장으로 달려가보니 이미 흰 보자기로 덮어 두었습니다.가만히 보니 숨이 약간 남아 있었습니다.백 목사님은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치료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의사들을 다구쳐 치료에 들어 갔습니다.의사들은 말했습니다. "손은 부족하고 살 수 있는 사람부터 치료하여 생명을 건져야지 그 분은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은 막 소리를 지르면 다구쳤습니다.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들에게는 재앙에 예외자가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은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그 때 소돔과 고모라에는 얼마나 살고 있었지 성경적으로 전혀 알길이 없습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롯의 가족 3명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그 중에서도 롯의 가족만 살아 났습니다.재앙에는 예외가 있습니다.그 예외 뒤에는 중보기도자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였습니다.하나님은 여리고성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6;21) 그러나 라합 가정 하나는 살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라합의 믿음을 보시고 그 가정을 살려 주셨습니다.재앙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더 큰 예외가 있습니다.온 세상이 음란과 범죄로 가득찼습니다.하나님은 온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홍수 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생물들이 살 없었습니다.모조리 죽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 8명은 살려 주셨습니다.모든 재앙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외중에 예외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이스라엘에서 나올 때 출애급인구는 장정만 603,550명이었습니다. 모세는 바란광야 가데스 바아네에서 정탐군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40일간 그 땅을 담지하고 돌아온 12명은 온 백성들과 모세앞에서 결과 보고를 하였습니다.10명이 먼저 보고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 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김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13;27-28)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원망의 화살을 던졌고 불평의 언어를 토하며 후회의 샘물을 품어대며 아우성이었습니다.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능히 이기리라>(민13;30)라고 말하며 지금 쳐들어 가자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군은 또 외쳤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 하리라.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을 것이니라>(민13;32-33) 이런 부정적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그들은 도저히 가나안 땅으로 갈 용기가 생기지 아니하였습니다.그래서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 가지 못 하리라......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너희가 그 땅에서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민14;27-35) 이 결과 하나님께서는 첫 인구조사때 조사되었던 모든 장정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일차 인구조사에서 들었던 이는 모두 죽고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남아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30만명에 한 명인 예외입니다. 어떤 이에게 이런 예외의 영광이 찾아 오는 것일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1.입의 사람 하나님은 긍정적인 입술을 가진 이를 예외자로 선택하십니다. 10명의 정탐군은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들이고 성이 견고하여 우리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같다고 보고하였습니다.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시라.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8-9)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어는 <우리가>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주어는 <여호와가>였습니다.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습니다(수14;8-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명을 예외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입이 긍정적인 사람을 하나님은 재앙에서 예외로 취급하십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말을 잘 심어놓으면 말대로 거둔다는 의미입니다.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면서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이삭과 함게 번제를 드리고 내려 오리라> 그리고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번제물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여 놓으셨으리라>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을 오르면서 정말 상황과 다른 말을 두 마디나 하였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꼭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미래를 끌어다가 오늘의 상황에서 선포하는 이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2명의 예외적인 정탐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했습니다.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자가 친구에게 <나는 자식없이는 못 살아도 남편없이는 살 수 있을 것같아>라고 말했습니다.어느 날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는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자식없어도,남편없어도 못 살 것같아> 말이 씨가 됩니다.입이 긍정적인 사람을 하나님은 재앙에서 예외로 만들어 주십니다. 2.마음의 사람 믿음이 있는 이를 하나님은 예외적으로 사용하십니다.이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그리고 그렇게 말했습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그러니까 믿음으로 그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바다 가운데 조그만 섬이 하나 있습니다.그 섬에는 유명한 감옥이 있습니다.그 감옥에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도망나올 수가 없습니다.사면이 물입니다.물로 빠져 들면 물살이 세고 더구나 상어가 주변에 많아서 상어 밥이 되기에 그 감옥에서 탈출하여 성공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그래서 경계를 그리 강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감옥이기에 최적지였습니다. 그런데 한 죄수가 그 곳을 빠져 나와 수영으로 도망쳤습니다.유일의 사람이었습니다.그가 수영으로 살아 나오자 감옥에 다시 넣지 않으면 말했습니다. <너는 그 곳에서 도망친 유일의 사람이다.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 죄수는 도망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아무리 다른 사람은 실패하였어도 자기는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실히 믿었습니다.꼭 믿음대로 됩니다. 유대인이 경영하는 한 출판사가 있었습니다.다른 회사는 불황이었으나 유독 이 회사만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그 이유는 유대인 사장이 매일 사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여러분! 프로 세일즈맨은 상품이 필요없는 사람에게도 상품을 팔 수 있어야 합니다.에스키모인들에게 총을 파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진정한 세일즈맨은 에스키모인들에게도 제빙기를 팔 수 있어야 합니다.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제빙기를 산 에스키모인이 자신이 산 제빙기로 만족할 수 있게 만들어야 진정한 세일즈맨입니다. 이렇게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나는 지난 주간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그런데 한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춤치다가 붙잡혔습니다.그 도둑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암스트롱은 사형을 면하고 싶어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썼습니다.그는 감수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입니다.마지막으로 왕이 번역한 성경을 읽고 죽고 싶습니다.왕에게 내 뜻을 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자기가 번역한 성경을 다 읽고 죽고 싶다는 것이 기특하여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참으로 기특한 죄수로구나.그에게 성경을 주어라.그리고 그 죄수가 내가 번역한 성경을 다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여라"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는 성경을 하루에 한 절씩 읽었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절수가 모두 31,102절이기 때문입니다.하루에 한 절씩 읽으면 80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제임스 왕은 그 죄수를 풀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이나 읽어라" 믿음을 가진 이이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십니가.사형수이지만 예외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믿어야 합니다.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으니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용기는 시작하게 하고 믿음은 얻게 하고 겸손은 보관하게 하는 최선의 무기입니다. 3.발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땅에 들어 갈 수 있었던 예외의 사람이 된 것은 발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믿을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두 명은 앞장 서서 싸웠습니다.갈렙은 83세 나가서 적군들과 싸웠습니다.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면서 나아갔습니다.민수기는 이렇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민32;11-12) 하나님은 이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얼마전 일년에 1억원 이상의 봉급을 받고 있는 7,000명을 조선일보 기자가 취재하여 주간 조선에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은 7가지 공통점이 있었음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행복한 가정을 유지 이들은 모두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나는 첫 조건은 머리가 비상하다든지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조건을 붙일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우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었습니다. 2.꿈을 시들지 않게 한 이 나이 들어 늙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잃어 늙는 것이라고 늘 말했습니다.그래서 늘 꿈을 항상 신선하게 가졌습니다.4시간 이상을 거의 자지 않고 열심히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어느 분은 경희대시절 연탄이 없었습니다.그는 전기밥솟에 물을 붓고 끓여서 그 수증기를 맞으며 추위를 잊곤 하였습니다.그래도 너무 추우면 일어나 도서관에 가기도 하였습니다.열심히 꿈을 불태운 이들이었습니다. 3.자신을 구조조정 이들은 늘 자신을 업그래이드시켰습니다.좀더 나은 내일이 되기 위하여 혼신을 기울였습니다. (1) 학력을 업그래이드시켰습니다.야간에라도 꼭 학력을 높였습니다.40세에 대학에 도전한 이도 있었습니다. (2) 실력을 업그래이드시켰습니다.늘 책을 가까이 하였습니다.이들이 평균 읽는 책은 한달 5권이었습니다. (3) 물질을 업그래이드시켰습니다.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4.직업을 바꾸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 직업을 더 좋은 직업으로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최선을 다 하여 일하는 데 알아 주지 않는 직장에 미련을 갖지 않고 과감히 떠난 이들이었습니다. <실패한다고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실패도 자산이다.회사가 망하거나 쫓겨 나기 전까지 좋든 싫든 그냥 저냥 보내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5.인맥만들기 자구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그리고 자신을 더 높은 사람들과 교재하여 인맥관계를 넓히고 높였습니다. 6.위기를 정면 돌파 이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위기앞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였던 이들이었습니다.2억 6천만원을 부도내고 <나를 믿어 달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이들이었습니다.첫 경험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장점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나는 첫 경험이기에 성실 열심히 할 터이니 내게 입찰을 달라>고 매달리는 데 매력이 있었습니다. 7.자신감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녔습니다.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습니다.이런 이들은 항상 예외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발로 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에나 예외가 있습니다.예외적인 사람들은 여호수아아 갈렙같이 세 가지 특징을 지녔습니다. 1.입의 사람 2.마음의 사람 3.발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