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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9일 화요일 아침.
출근길이 험하다. 하사 고개 넘어서 차 세우고 수리한 카메라를 처음으로 꺼내었다.
음… 그림이 안 되는군. 눈은 대부분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도로만 빙판이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카메라 개시 삼아서 몇 장 찍어보는 것이 좋겠는데.
안 그럼 김은희 같은 지리산닷컴 주민이 게시판에서 깽판을 칠 것인데…
몇 년 전이었다면 아침 일찍 훨씬 낡은 차를 끌고 훨씬 낡은 카메라를 들고 산동으로
올라가서 설경에 산수유 빨간 열매 찍겠다고 무모한 운전을 했을 것이다.
일단 오미동으로 가자. 난로 불 붙여 놓고 생각해 볼 일이다. 난 쉰 넷이니까. -,.-
오미동 겨울은 항상 바람과 함께 한다. 봄이 올 때까지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마을이다.
난로 불 붙여 놓고 옥상에 올라 셔터 몇 번 누르고 내려오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웠다.
매우 춥군. 이런 날은 짱 박혀 커피나 볶고 난로 앞에 앉아서 인생을 반성하는 것이 맞다.
출근하면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반복적인 동선을 그대로 수행하는데 아로니아 동생의 문자.
- 눈 내리는 날은 짬뽕으로_?
- 그래 와라.
그리고 피아골 사는 여동생의 다급하고 예고 없던 입장. 추우니까 빨리 뛰어들고 싶겠지.
그리고 피아골 여동생의 방문 목적을 전달하러 온 노을 형수의 입장.
그리고 노을 형수를 찾으러 온 K형의 입장.
그리고 정작 가장 뒤늦은 아로니아 동생의 입장. 그렇게 모이고 보니,
토란탕 점심을 제안했던 노을 형수를 제외하고 4인의 짬뽕원정대가 결성되었다.
시골에서 겨울 난로 주변은 항상 이렇게 예상치 못한 모험과 활극이 발생한다.
통상, 아침에 일을 시작하지 못하면 나는 그 하루를 그냥 공치는 경우가 열에 열한번이다.
수다는 안부로 시작해서 세계 유가 전망과 정금나무 묘목 구매까지 종횡으로 날아다니고
난로는 더 뜨거워지고 엉덩이는 더 무거워진다.
하루 전(월요일) 점심 무렵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나는 스스로 쳐 놓은 그물이 많은 사람이다.
그 그물들은 당연히 나의 프레임이고 간혹 그 프레임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눈발 날리고 약간 우울하고 글을 쓰고 싶은데 또 사람들 신산하게 만들 소리들이나
주절거릴 키워드 몇 개가 머릿속에 우두커니 서 있어 그냥 난로 앞에 앉아있다.
며칠, 내가 먹고 살아가야 할 방향과 방식에 관해서 생각을 했다.
거창하게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
해야 할 짓 보다, 해서는 안 되는 짓에 대한 기준과 입장을 정해 둔 것이 많은 편이다.
그것이 내가 친 담이거나 내가 친 그물이거나 여하튼 외부의 침탈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책을 내고 나면 매번 이런저런 매체에서 연락이 오곤 한다.
상식적인 제안이나 접근도 있고 희한한 제안과 접근도 있다.
대부분 거절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러하고 과정에서 나 역시 사람인지라 간혹 고민하기도 한다.
그냥 거절하는 것과 고민하다가 거절하는 것은 다르다.
이전에도 시위를 할 때 주변에서 구경하던 애들은 다음 시위에 참여하기 마련이었다.
고민하는 나를 자각하면 내가 쳐 둔 그물과 담을 확인한다.
내가 이런 말을 했었지. 내가 쓴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네…
거절해야 해. 거절하는 것이 옳다. 거절해야만 해. 거절해 버리자…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세수하고 옷 입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다.
여성이다. 젊다. 서울말이다. 내 이름을 확인한다. 돈 빌려가라는 전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통상 매체다. 그리고 몇 초 이내로 내 머리는 이미 예측을 끝낸다.
종이매체가 아니라 방송이고 이 사람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작가다.
남자가 전화 오면 일간지와 주간지, 여성이면 거의 방송작가 아니면 월간지, 사외보다.
그러나 돗자리를 자랑할 수는 없고 일단 들어주어야 한다. 듣는다.
그녀의 용건은 예측한 그 목적으로 진행하고 나는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 나의 거절 버전을
짧은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
거절1.0(나긋함)이냐 거절2.0(퉁명함)이냐 거절3.0(화를 낸다)이냐는 결정이다.
보통은 거절1.0을 당연히 제시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거절2.0을 보여주고 통화를 끝낸다.
나 역시 월급쟁이로서 그들의 처지를 존중하기에 거절3.0은 잘 구사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도 거절1.0이 먹히질 않아서 거절2.0을 구사하고 통화를 끝냈다.
매체 종사자 신입사원들의 공통점은 인터뷰어의 거절에 대해 어리둥절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머릿속에서 그림을 모두 그려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목소리만으로는 내 아들보다 몇 살 정도 더 많을 것으로 짐작이 되니 약간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하루 전 밤, 월인정원의 이야기를 듣고 경기도에서 빵집 하는 어느 젊은 친구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
******방송이 나간 후 자그마한 빵집 '*****'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항상 웃음과 서로의 안부를 그리고 빵에 대한 진솔한 소개와 이야기들이 풍성했던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없어진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항상 긴장과 빵을 여유롭게 사가시지 못하는 분들의 불평 그리고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는
저의 미숙함과 미안함. 그리고 사방에 문을 닫고 폐쇄적이게 이튿날 빵을 준비해야 할 때면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이 아파 빵이 다 나간다 하여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체력의 한계선에서 빵을 열심히 만들어 왔던터라,
쉽지 않았지만 방송 후에는 밤을 새는 건 다반사이고,
한분이라도 빵을 조금 더 드려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체력은 한없이 지쳐만 갔습니다.
……
지난 11월 7일 밤. 화개 <달의 부엌>에서 이 친구를 처음 보았다. 그 전 1년 동안
조금씩의 밀가루를 나누어서 이 친구의 업장으로 배송했었다. 물론 농부 홍순영의 밀가루였다.
너무 젊고 착한 부부여서 조금 놀랬다. 구례에서는 젊은 부부를 보기 힘들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날 밤을 달려 매장으로 올라가야 할 젊은 친구들이라 나에게 귀엣말로,
“이장님, 냉장고 케이크 통 안에 한우 좀 넣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볼까봐…”
한우에 홀딱 넘어 간 나는 웃음을 흘리며 이 친구들은 무조건 좋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종편의 거지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아니 그런 양아치 같은 새끼가 하는 프로그램에는 뭐하러…” 였다.
매체는, 특히 그런 양아치 같은 프로그램은 단지 그들의 소모품을 필요로 할 뿐이다.
방송 후 한 달이 못되어 결국 가게 문을 닫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나쁜 일로 출연한 것도 아니고, 출연 자체를 전향서 쓰는 것과 가름하는 나 같은
스타일도 아닌데 방송 후 결과가 엉뚱한 경우를 가끔 본다.
근본이 어차피 더욱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친구들이지만 지금이 아픈 것이다.
나는 가급이면 시스템이 나를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물 밖에 내가 존재하기를 원했다.
시골 살면서 특히나 내가 조심하거나 거부해야할 일들은 관의 지원과 매체에 노출되는 일이었다.
이것은 나의 방침이 옳거나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매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하는 일이다.
가급이면 내가 정한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다.
2년 정도 전부터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정치 상황과 매체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2015년에 ‘어쩔 수 없이(어 얼마나 궁색한 변명인가)’ 공중파 두 곳 촬영을 끝내고 내려오면서
다시는 이딴 짓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편이나 공중파가 의미가 없어진 매체 환경에서 조중동 프레임 따위는 과거지사고
메인스트림의 모든 매체를 거부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강동원이나 정우성이 아닌 관계로 그런 머릿속 생각은 몇 개월에 한 번씩 그들로부터
제안을 받으면 처음 하는 고민인양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이다.
욕을 먹어도 확장된 영역에서 개싸움을 하는 것이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야! 욕도 먹고 생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계속 지리산닷컴 주민들만 뭘 사야 해?
몰라.
젠장.
그럼?
살던 대로. 그냥 그대로.
지리산닷컴 이장 이 자리, 케이비에스 사장 안 부러운 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