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곶이 탐방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신학기가 시작되어 한 주를 보냈을 삼월 둘째 월요일이다. 각 급 학교가 전국 동시에 개학이 두 주 더 연장되어 문이 닫혔다. 그럼에도 학교는 관리자와 일부 동료들이 출근해 학사일정 공백기를 비상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잠시 벗어나 근무지로 가려고 날이 덜 밝아온 아침 팔룡동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갔다.
매표원에게 고현행 표를 구하려니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코로나 사태로 버스 승객이 줄어 각 노선은 감차 운행이라 고현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 차는 빠져 다음 차를 타려면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했다. 할 수 없어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 진해 용원으로 나가 다시 부산 시내버스로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나가 하단과 연초 사이로 운행하는 2000번 버스를 타고 거제로 건너갔다.
학교는 몇몇 동료들이 출근해 감염병 확산 사태를 대비하느라 긴장 속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남은 두 주간 복무 신청을 올려두고 개학 후 지도할 교재를 펼쳐 살펴보았다. 본부 교무실로 들려 다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가급적 대면 접촉을 줄여야 해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재택근무 격으로 수업에 들어서 지도할 교재를 들고 학교 앞 와실로 왔다.
와실을 청소 정리하고 떡라면을 끓여 점심을 들었다. 늦은 오후 비가 예보되어 그 전에 산책을 나섰다. 마스크를 끼고 휴대용 세정제를 챙겨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구조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와 아주에서 장승포에서 지세포를 돌아갔다. 와현에서 내려 서이말등대로 가는 길로 들었다. 서불약수터를 지나니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에 구조라 포구가 드러났다.
석유비축기지 초소를 지나 지난해 여름날 오후 한 차례 다녀간 숲길을 걸었다. 등대로 가는 길을 벗어나 망산으로 올라갔다. 야트막한 망산 봉우리 정상엔 와현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다. 여러 봉수대를 봤지만 거기 봉수대는 모양이 독특하고 그럴 듯했다. 봉수대를 둘러보고 내려와 서이말등대로 가는 길을 걸었다. 와현에서 초소를 지나 등대까지는 거리가 상당해 시간이 제법 걸렸다.
서이말등대는 거제 남단 대한해협 길목이었다. 해방 직전 불을 밝혔다가 한국전쟁 때 잠시 꺼졌다가 다시 불을 밝혔다는 등대였다. 거기도 코로나 사태로 경내 출입을 통제했다. 서이말등대에서 되돌아 나와 공곶이 가는 길로 들었다. 돌고래 전망대로 내려서니 공고지를 둘러오는 몇몇 탐방객이 있었다. 남녘 해안 식생은 내륙 산간과 달리 동백나무를 비롯한 상록 활엽수들이 우거졌다.
해금강과 외도와 내도가 빤히 바라보인 해안 절벽이 돌고래전망대였다. 늦은 봄부터 여름에 멸치 떼가 몰려오면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돌고래가 출몰하면 관측하기 좋은 곳이었다. 돌고래전망대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걸어 공고지로 나아갔다. 평일이지만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몇몇 보였다. 척박한 땅에 일군 외딴 농원은 제철을 맞은 수선화는 이제 막 노란 꽃을 피우는 즈음이었다.
농장주 강 노인 며느리가 찻집을 운영하며 탐방객을 맞아주었다. 시아버지는 올해 아흔이라고 했다. 근처 예구마을이 친정인 시어머니는 요즘도 낚시를 나가면 고기를 잘 낚는다고 했다. 한 농부가 평생에 걸쳐 조성한 농원이 이제 거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어느 종편 ‘나는 자연이다’의 까마득한 원조가 강 노인이지 싶다. 진주 출신 노인은 청년기에 농업계 학교를 나왔다고 들었다.
너른 농장 여러 화초를 둘러보고 해안을 따라 나오니 예구마을이었다. 봄 한 철 주말이면 공곶이 탐방객들이 몰아올 차량으로 혼잡할 듯했다. 해금강과 구조라가 바라보이는 마을 앞 바다는 양식장 시설물이 보였다. 와현으로 나가는 찻길 길섶에 심어둔 수선화도 화사하게 피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에선 날이 저물도록 참았던 빗방울이 들었다. 와현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2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