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 기념비(春園 李光洙 記念碑)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0[부평리 255]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춘원 이광수를 기념하여 세운 비.
[개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1944년 3월부터 1948년 8월까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의 광릉 지역과 사릉에서 머물며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1946년 9월 2일 광동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신용철의 연구에 따르면 “일과 후 숲속을 거닐며 초목과 대화하고 죽은 새도 묻어 주었다. 염불하고 경전 읽으며 좌선하는 불제자로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라고 한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春園 李光洙 記念碑)는 1976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이광수를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건립 경위]
춘원 이광수 기념비는 이광수가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사릉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은거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광동중·고등학교에 기념비 건립이 추진되었다. 근처의 봉선사는 이광수가 4개월 정도 수도 생활을 한 곳으로, 기념비 제막 당시 봉선사 주지 승려 운허는 이광수의 팔촌 동생이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는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 등 유족에 의하여 건립이 계획되었고, 허영숙이 1975년 미국에서 귀국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9월 7일 사망하였다. 그 후 아들 이영근, 딸 이정난·이정화 등 남은 유족에 의하여 완공되었다. 제막식은 1976년 5월 29일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의 봉선사 구내에서 개최되었으며 150여 명의 인사가 참석하였다.
[위치]
춘원 이광수 기념비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번지 봉선사 경내에 있다.
[형태]
춘원 이광수 기념비의 재질은 화강석으로, 건립 당시에는 용의 무늬를 새겨 넣은 이수가 비석의 머리로 장식되었으나 현재는 이수가 망실되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정면에는 한글로 ‘춘원이광수기념비’라고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주요한의 글이 김기승의 글씨로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좌우 측면에는 이광수가 남긴 글들이 김기승의 글씨로 음각되어 있다.
[금석문]
춘원 이광수 기념비에는 「졸업하는 형제여, 자매여」[『동광』31, 1932. 3.] 등 이광수의 작품 및 추모 글이 총 1,371자로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춘원 이광수 기념비는 광복 직후 은거하던 이광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유적이다.
친일 이력 때문에 해방 무렵 갈 곳이 없었던 이광수를 거둬준 이가 운허였는데 그는 이광수가 인근 사릉 근처에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이광수는 사릉에서 1944~1948년까지 살았는데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운허의 도움으로 봉선사에 들어가 은거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사릉과 봉선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광수가 쓴 작품이 <도산 안창호>, <나의 고백>, <돌베개>이다.
기념비는 이광수의 전처인 허영숙이 세운 것으로 그녀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고 말년인 19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였는데 납북된 이광수의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되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1975년 5월 귀국하였는데 갑자기 여러 병을 얻어 기념비를 세우기 직전인 9월에 사망하였다. 사실 이런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알기 어려운데 경기도에서 친일 문화 잔재 청산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고 이 기념비가 경기도에 소재한 대표적인 친일 잔재물로 꼽히고 있어 향후 청산 대상이 될 지, 보존 대상이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봉선사 경내에 있는
춘원 이광수 기념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