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5.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신명30,15-20 루카9,22-25
하루하루 삽시다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세월흘러 나이들어가니 간간히 들리는 부음訃音 소식입니다. 어제 70대 초반의 사촌형과 주고 받은 카톡 내용입니다.
-“어제는 시동리의 초등학교 동창 서울 사는 조대희가 집에서 역기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네. 콜레스톨이 높으면 뇌졸중, 뇌경색, 심장마비가 오지. 핏속에 불순물이 혈관을 타고 돌다가 혈관을 막아 절명하게 만드네. 조심해가며 살아가야 하네.”
“조대희가요! 제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그 나이에 웬 역도인가요. 아마 경찰 근무했지요. 덧없는 인생, 참 허무虛無하네요.”
“그저께 작고하여 어제 경희대 의료원에서 장례를 지냈네. 허무하지. 이렇게 한사람씩 잊혀져 가는 거라네.”-
참 허무한 인생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어제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중 응송 후렴입니다.
“저희가 모르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뉘우치며 살고자 하오니,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아프고 약한 인생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더불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한일전 여자아이스하키 4:1 패배에도 불구하고 격찬이 쏟아졌다 합니다. 감동의 원인은 남북선수 모두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예전 병고病苦중 돌아 간 형이 깊이 공감한 시편 한 구절도 생각납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90,10).
이런 말씀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자각自覺을 갖게 합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짧은 잠언같은 ‘하루만 산다’라는 체험적 고백의 글이 생각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강론을 쓴다/미사를 봉헌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하루만 산다
“아, 감사하다. 하루를 살았다!”/고백하며
하루 마친후/잠자리에 든다
하루하루가/인내와 겸손/비움의 수련이구나-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살 때 환상은 걷쳐 삶은 단순, 투명해집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신명기에서 모세는 우리 모두에게 시공을 초월한 충고 말씀을 주십니다. 무려 ‘오늘’ 이란 말마디가 4회 나옵니다. 하느님께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영원한 오늘’만 있을뿐입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30,19-20ㄴ).
바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 말씀입니다. 생명과 축복은 선물膳物이자 동시에 선택選擇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선물로 주어지는 생명과 축복을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주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매달려야 삽니다.
분도 성인도 그의 규칙에서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마라.’는 말씀과 더불어,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인 기도보다 앞세우지 마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오늘 복음에서 구체적 ‘생명의 길’, ‘축복의 길’, ‘구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사람이 되는 길’, ‘성인聖人이 되는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구원법칙입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린 구원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 사랑’으로 ‘날마다’ 1.자신을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고, 2.제 책임의 십자가, 운명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3.주님을 충실히, 항구히 따르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원의 세요소입니다. 셋 모두가 동사動詞로 이루어진 아주 구체적 수행입니다. 셋 모두여야지 하나 둘만 빠져도 실격입니다. 이 모든 수행의 원동력은 주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야 구원의 나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좌우명 애송시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