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탄핵 다큐영화 검찰자료와 국과수증거자료 공개
이 다큐 영화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과 형사재판의 불법, 부당성을 기록하는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형사사건의 변호인단과 법대 교수·정치학 교수들의 인터뷰, 그리고 사건 현장에 대한 촬영을 근거로 화면을 구성했다.탄핵 정국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투기자본감시센터 고발장의 진실은 검찰 수사기록을 통해, JTBC의 태블릿PC 보도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포렌식 결과를 통해 규명했다.
프로젝트 의도
영화 <위대한 침묵>은 힘들게 힘들게 제작사 및 여러분의 마음을 담아 제작이 완성되었고 이제 다큐멘터리 영화로 편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많은 영화관 확보가 실질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부디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에서 나오는 증거자료들을 온 국민이 함께 인지할 수 있도록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개봉관을 통해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탄핵이전 그리고 탄핵이후 재판 과정에 드러난 깜짝 놀랄만한 증거들이 전국의 수많은 국민들 앞에 공개되어
편향된 지식에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든 국민들이 정확한 사실을 인지하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제작 배경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라는 발표에 일부 국민들은 환호했지만, 반면 많은 국민들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날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불법탄핵에 항의하던 대한민국 국민 5명이 사망했다. 4명은 압사하고, 1명은 머리 위에 떨어진 경찰 스피커에 맞아 즉사했다. 수십 명의 국민들은 부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현직 대통령 탄핵과 형사재판은 주장만 무성할 뿐, 증거가 없었다. 언론과 검찰, 특검이 의도적으로 공개한 내용들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검찰 수사기록과 법정 녹취록을 근거로 역사의 진실을 기록했고, 온 국민은 이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다큐 영화는 월간조선 편집위원이었던 우종창 기자가 쓴 ‘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 1권과 2권, ‘어둠과 위선의 기록/박근혜 탄핵백서’를 근거로 제작되었다.
# 제작 의도
편향 보도된 왜곡을 바로 잡고, 국민들에게 양쪽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정보 제공의 목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포렌식 보고서, 검찰이 은폐한 관련자들의 신문조서, 변호인단이 육성으로 증언하는 위법, 부당한 내용들을 기반으로 제작했다.
추측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들을 화면에 담았다. ‘한쪽 귀로 들었으나, 미처 들리지 못해서 듣지 못한 이야기까지… 마저 들어보고 진정으로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해보자는 것’ 이다.
# 영화 개요
2012년 12월 19일, 51.6%의 지지율로 당선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그리고 활발한 해외 외교 활동으로 대한민국의 성장과 개혁을 이끈 대통령.
2015년 7월 9일, 새누리당 이헌재 의원은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민노총은 이 법에 원샷법이라는 구호를 붙여 국민을 혼란시켰다.
그리고 2016년 9월 29일에는 민노총과 행동을 같이하는 투기자본 감시센터라는 단체가 현직 대통령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대한민국 중견기업 회장과 대표 86명을 뇌물죄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것이 탄핵의 불을 붙이는 제1차 도화선이었다.
이 고발장 제출을 시작으로, 촛불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며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둠과 위선의 기록 서막이다.
본격적인 음모의 사냥을 위해 던져진 미끼는 최순실과 미르재단, 그리고 태블릿PC였다. 언론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제1부. 국민행복시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취임으로 1963년 2월부터 청와대에서 살기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서거로 스물 둘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게 되었고, 5년 후에는 10.26 사태로 청와대를 떠났다. 1979년 11월 21일 서울 신당동 집으로 돌아온 후, 평범한 자연인 박근혜로 살았다.
청와대를 떠난 날부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온 1998년까지, 박근혜는 국민의 뇌리 속에 잊힌 존재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분명한 소신이 있는 강단 있는 지도자로 성장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전이되면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북한의 핵 위협에 의한 안보위기가 혼재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 경제, 내수와 수출 균형경제 등 3대 핵심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누구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펼친 대북정책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움직였던 여러 정황들과 북한 신문자료들을 공개한다
제2부. 거짓의 산
일명 “원샷법”이 발표된 이후 서서히 진행되는 민노총, 전교조, 통진당의 은밀한 움직임.최순실, 고영태, 이성한의 승용차 안 밀담, 그리고 이어지는 언론의 허위 폭로들..
검찰의 수사대상은 처음부터 청와대였다. 서울중앙지검장 이영렬이 현직 대통령을 최서원과 안종범의 ‘공범’이라고 발표한 날은 2016년 11월 20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전이어서 대통령은 엄연한 현직 대통령으로서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현직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공소장에 못 박았지만, ‘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만나, 무슨 내용을, 어떻게 공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못했다. 이 공범이라는 표현은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탄핵의 2차 도화선으로 작용한 JTBC의 태블릿PC 보도... “3족을 멸하겠다”는 특검의 강압 수사...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은 최순실, 고영태, 이성한의 차안 밀담 녹음내용, 최순실의 출입국기록,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태블릿PC 포렌식 결과를 낱낱이 공개한다.
제3부. 거리로 나선 태극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주심 재판관 강일원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대통령 측과 진검승부를 하겠다”며 탄핵심판을 무리하게 밀어 부쳤다. 이에 맞서 매주 토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서울역 앞에는 우리공화당, 시청 앞에는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 동아면세점 앞에는 일파만파가 등장했다. “저게 사실이야?” 라며 깜짝 놀랄만한 자료들이 공개된다.
법정에서 재판거부를 선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육성 또한 공개된다.
첫댓글
닭그네 탄핵에,,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이 먼저 서명,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xPb9nGbO0f0
뉴스영상,
탄핵에 찬성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62명, 반대 56명,
새누리당의원들 끼리만 투표 했어도 닭그네 탄핵 됨!!!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5W_xb1bIWgQ
뉴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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