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까먹은 신부님 : 입학후 따사한 봄날 C관에서 서예전시회가 있었다. 몇년간 종로바닥에서 먹물무친 솜씨로 한점 붙였는디 모르는 선배언니가(후에들으니 장면박사님 따님이시라고) 신부님한분(춘향전으로 짱 하신분) 델꼬 날 찾는다. 내꺼 제일맘에드니 팔란다. 난처하데. 그냥 가지십사했는디 돈줄테니 더 써달라신다. 햐 막걸리마시기두 바뿌구 하늘하늘 이쁜 각씨들 허리구갱하기도 모자라는 놀자판에 붓들시간이 어디 있간디. 정중히사절 - 세월이 한참 지난후 이신부님 예쁜 부자각씨만나 신부옷 벗으셨다고.
길로련 신부님 : 온통 멋과 낭만으로 웃음짓던분. 여행중에 홍천에서 밥먹구 들린 다방. 담배한대태우겠읍니다 하며 꺼낸 담배갑을보며 (안돼)하는 교수님호통에 구석에서 신부님이 손짓해 부르신다 가보니 씩웃으시며 (여기서 피워)- 감격 짱이다.(40에 성공)의 씩씩한 친구가 모셔갔지.수석입학을 체육실기땀시 점수깎여 딴놈주구 난 손두크고발두크고 날좋아하는 남학생은 없나봐요 하드니만 신부님을 모셔갈줄은 상상두못할 이변. 군대먼저갔다온눔이 비낀 커텐사이로 두사람 뽀뽀하는걸 봤다고 숨이 헐레벌떡 실험실로 뛰어왔다. 임마 닌 입꽉다물구 가만있어 - 으름짱을 놨다. 영문과고참언니가 웃으면서 후배들이 씩씩 댄단다-사모하면서도 말두못끄낸 심부님을 쌔까만 후배가 채갔다구-언니들아 갸 우리동긴디 착하구 좋은친군디 이쁘게들 봐주라 하며 껄껄댔었지 - 참으로 멋찐 분이셨다.
프라이스신부님 : 우린 값아버지라 불러드렸었다. auctioneeer였던 경력으로 따발총쏘는 영어에는 기가질려버렸었지. 이름따라 노동의 값어치를 높이시느라 많은 노력을 하셨다. 이 cafe에서 키러기공과 Julliana여사님의 애석해하는 얼굴을 보았다. 선배는 뉴욕에서부터 모금운동이 대륙을 횡단하는디 이 땡초는 거지라서 비껴간다꼬 - 디기 섭하든디
트레이시신부님 : 부모님이 이곳 벤추라에 사셔서 자주 오셨다. 여기 사시던 어느 선배님과 친하셔서 오실때마다 뵈었는데 신선하시고 깔끔하시고 청렴결백하셔서 고물카메라 부서진걸 테이프를붙혀 아직도 잘찍혀 하시기에 얼른 새걸 사다 드리고 선배님은 새양복도 한벌해드렸다. 아버님장례치르고떠나신후엔 뵐기회가없었다.
데일리신부님 : 학장실 책상너머로 흐르는 날카로운 눈매 - 가히 piercing eye -치만 한일자 쭉벌려 웃으실땐 영락없이 맘좋은 시굴 할아버지모습이시다. LA에서 제자들 찾아오는기 더 반갑다고 오라는 고향땅도 마다하신다. 선배언니가 이곳에 올때는 가끔 운전수역활을한다. 신부님사진도 한장 내책상위에.
번부럭신부님 : 이분은 키러기공, 영원공 같히 맑은 영혼만을 사랑하셔 이 땡초는 잘모른다
그리고 로빈후드같히 당당한 몸매에 영어가 상당히 알아듣기 힘든 신부님계셨는데.
또한 Mr. Hart - 재밌던분
박고영신부님 : 햐 참 여학생만 좋아하시고. 왜 하느님이 계시단걸 증명하셔야하는지 까맣게 칠판을 장식하셨지. 출석끝나면 살짝 빠져나와 푸른하늘 쳐다보는기 훨씬 좋았었지. 초생달 학점도 감지덕지. 후엔 탁구를 치셨는데 멀찍 떨어져 cut로 모든걸 다 받아내시던걸. 암만 smashing을 햐 때려봐도 싱글벙글 받아내시든디 - 얄밉드라 - 쬠 져주시지두 안쿠 - 그때 그분께 신학공부좀 더 배울껄 아쉽다
오수사님 : 이분 또 명물이시다 서강의 막일꾼들이 혀를 내두르며 이분께는 꼼짝두 못했다.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셨는지. 사투리까지도 완벽히 하셨으니까. 존경할만한 분이시다
Loyola성인의 깃발아래 생을 바쳐 우리를 위해 애쓰셨던분들.
내가슴속에 곱게 모시고 항상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공감대의 현이 울립니다. 추억하면 할 수록 고마운 분들이지요!
Quirey 신부 였던가.. 나도 이름이 가물가물.. 박신부는 여학생 한테만 잘하고 어지간한 남학생들 상대를 안하던 특이한 분..그렇지만 신이 나면 이북 사투리 껴서 "그치, 저치..(그 사람 저사람)" 하고 많이 떠 들던 분,, 하여튼 다 고마운 분들.. 참 우리 졸업 뒤에 신문 방송학과 맡앝던 미국분 청순한 하조대 아가씨
만나서 파계하고 내가 있던 Guam 도 에 잠시 계셧다가 Hongkong 新界 쪽 대학에 교수 자리 잡고 떠난 기억.. 내가 잊을 수없는 분은 Mr. Hart. 회화 크럽 지도하고 한국말 유난히 빨리 배우시던 분..지금 미국 어디 있다고 들었는데.. 진성만(?) 신부님은 내게 셰례를 주었고..다 감사 감사 감사...
맞으이 퀴어리신부님이셨어. 하조대아가씨는 뉜고? Mr. Hart 는 어드메 계신지 궁금타! steve공이 영세를 받은건 새로운 사실
Mr. Hart 하와인가에서 일년인가 한국어 강습받고 한국어로 철학강의 하셨었지. 칠판에는 영어로 적으며
박신부와 김열규 교수의 공통점: 여학생들을 너무 좋아했다..
우리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겠지. 그분들께서는 공평히 대하였다고 하실께야.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못난이들이였든모양이지 - 특히 국문학과하고 영원공이 다닌 신학과에서. 김열규교수님강의 좋았든걸루 기억되는데- 다 까먹었지만.
청량리 뒷골목 판자집 동네에 가서 싸구려 뺀드맨과 악기를 실어다 행사를 도와 주신분. 길로런 신부님 늘 큰형님 같던 그분, 그 분의 큰 손이 그립다.
길신부..내가 Citibank 있을때 어느날 저녁 이영자씨와 은행 파티에 참석..미국에서 돌아와 흰 머리에 직장 찾고 있던 중..고민하다 대건 신학교 갈때 부터 흰머리 많이 났고..
까마귀고기 먹어 다 잊어버린 옛날얘기.. 흐릿한 옛적 흑백영화 뉴스 보는 듯.. 모두모두 감사하신 분들.. "Jesuit Fathers"... 그리운 신부님들..
Father Query changed his name to Mr. Cleary and became a father of two sons and a husband of one lady later in New York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