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으스스한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소리 속에서 느껴져 오는 빛과 어둠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혼잡하게 깊어가는 밤이 없는 어둠의 소리와 그 모습들 속에서 힘들지만 변함없이 새벽을 열어가는 거룩한 얘기다.
나는 이 소리를 20년 이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일정한 그 시간에 들어왔다. 그것은 3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피곤하고 지친 발자국 소리다. 곤한 잠을 반쯤 달고 힘들게 발을 옮겨 놓으며 터덕-터덕 올라오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다. 그 소리는 가까워질수록 멈출 듯 멈출듯하지만 한발 한발간의 차이가 숨 고르며 쉬어지는 것 뿐 힘겹고 숨찬 발자국 소리는 그래도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조용한 가운데 또렷이 깨어 있는 이 소리는 일정한 간격이나 다수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드물게 드물게 새벽 고요한 계단 공간을 타고 올라와 예배당 출입문 앞에 멈춘다. 이윽고 예배당 출입문을 여닫고 조심조심 자리에 와 앉는 소리까지다.
우리 교회 예배당은 별로 크지 않는 4층 건물에 위치해 있다. 외부에서 보면 중랑천변 한천로 길가로 나란히 서서 좀 긴 듯한 한 건물로 보이지만 그 건물 중앙으로 입구가 있고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중심으로 한 쪽에 30평씩 건물은 나뉘어져 있다. 계단 각 층마다 출입문은 서로 마주보며 대면해 있고 각 층 사이 칸 마다 화장실이 있다. 이 건물에 우리 예배당은 3층에 위치해 있다. 건물 밖 길가에서 쳐다볼 때 왼쪽 3층이다. 빛바랜 간판과 썬팅 글씨가 보인다. 우리가 이 건물에 임대로 들어 온지도 벌써 21년째다. 남은 벌써 확장 이전해 갔어도 몇 번 갈 기간이고 예배당을 지어도 최소한 우리 예배당이 들어 있는 전체 건물보다 배 이상은 크게 지었을 텐데 우리 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누가 보아도 부흥 못한 교회다. 아는 선후배 목사님들이 “아니 여기서만 21년 째 란 말이요!?”하고 놀란 듯이 어이가 없는 듯이 모호한 표정으로 말할 때면 나도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하고 모호할 뿐이다. 나는 가끔씩 “다른데 갈 데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하고 무능해서 그렇습니다. 주인이 나가라 하지 않으니 계속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 성장 기준의 입장에서 비춰 볼 때 나는 실로 무능하기 짝이 없다. 성공한다고 하는 목회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하나 2층 이상 건물에다 개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마치 목회 기본 원칙처럼 되어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 재고 따지고 할 형편도 못되었다. 당시 이 동네에 유일한 건물은 지금 있는 이 건물이었고 마침 당구장 하다가 되질 않아 비어 있는 칸이 바로 3층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무엇보다 내 중심에는 그런 것 보고 오는 교인들을 모으려고 건물을 얻고 예배당을 꾸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게는 도봉산 꼭대기에 예배당을 세워 놓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면 올라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꽉 막힌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3층이라도 꾸준히 올라오는 성도들로 교회 모습을 이루어가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새벽 계단 소리는 이들의 소리다. 이 소리를 듣는 시간은 언제나 새벽 4시30분쯤부터 예배 시간인 5시전 까지다. 나는 항상 그 시간에 먼저와 강대상 뒤에 엎드려 묵상 기도하며 그 소리를 기다린다. 점점 연로해져가는 권사님들의 무겁고 힘든 발자국 소리, 그 소리는 1층에서부터 작게 시작하여 3층까지 점점 커지면서 올라오는데 그 소리는 한참이나 걸리고 길게 느껴진다. 밤늦게 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부업으로 봉재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올라오려고 애쓰는 몇몇 집사님들, 그리고 늘 바삐 장사하는 집사님, 가내 공장하는 집사님, 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언제나 매우 곤하고 지쳐있다“터덕-터덕.” 그리고 이 속에는 우리 집사람의 조용한 발소리도 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달이가고 해가 가도 꾸준히 올라오는 이들의 소리가 10명도 채 못 되지만 나는 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날마다 순서 없이 뒤바뀌어 들려와도 나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어느 정도 구분해 듣는다. 위로 막힌 계단 층 공간을 타고 조용한 새벽 시간을 울리면서 들려오는 계단 발자국 소리는 예배당 출입문 틈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온다. 나는 새벽 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우리 성도들의 발자국 소리를 구분하면서 저들의 고된 세월을 느끼고 삶의 현실을 들으며 저들의 신앙을 느낀다. 신령한 교통의 시간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소리를 간절히 기다리며 머리 조아리게 되었다. 나의 새벽 시간은 이렇게 시작되고 우리는 함께 먼저 하나님을 기념하며 그 나라를 삶에 실현시켜 가기 위해 머리 조아린다. 하루의 삶이 구별되는 경건된 시간이다.
그러던 새벽 계단 소리에 혼란이 찾아들어왔다. 우리 교회 예배당과 마주보는 건물 칸에 PC방이 생기고서부터다. 시도 때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후다다닥 3층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오는 소리, 쿵쾅 거리며 힘차게 올라오는 소리, 몇 명인지 선착순이라도 하듯 줄 다름 치며 올라오는 소리, 요란하게 문 여닫는 소리, 반 층 아래에 있는 화장실을 잽싸게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소리가 계단 층 공간을 꽉 채워 어지럽게 울리며 틈을 찾아 시끄럽게 스며든다. 아이들 소리, 학생들 소리, 청년들 소리, 때로는 아저씨도 보이고 아주머니도 보인다.
새벽 그 시간에 나가 예배당 문을 열기 전에 전자 잡음이 나는 PC방 쪽을 돌아볼 것 같으면 언제 들어와 있는지 많은 젊은이들이 푸르딩딩한 조명아래 줄지어 앉아 컴퓨터 앞에 자리하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음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새벽이 없다. 희미한 어둠뿐이다.
그동안 조용했던 건물은 이들로 인해 시끄러워졌고 화장실과 계단은 담배꽁초로, 종이컵이나 휴지조각, 시켜먹은 음식 그릇으로 지저분해졌다. 이미 3층 계단 공간과 화장실은 담배 연기로 찌들어 냄새가 가시질 않고 때론 지린내로 역하다. 그동안 고요한 우리만의 새벽 계단 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불협화음처럼 혼란스럽다. 너무 대조적이다. PC방과 교회 예배당이 같은 3층에 있지만 각각으로 향해 올라오는 소리가 대조적이다. 영적이냐 세상적이냐다. 이제 그것으로 나는 구분해야 했다.
무엇이 저들을 미친 듯이 단숨에 뛰어 올라오게 하는 것인가? 무엇이 밤도 새벽도 없이 저들을 끌어 모으고 3층 높은 곳이지만 빨려들듯이 순식간에 올라가게 하는 것인가?
PC방이 생기기전 그 건물에는 상호가 여러 번 바뀌었다. 독서실도 했었고 고시방도 했었고 비어도 있었고 치과도 했었다. 그러나 모두가 얼마가지 못했다. 단지가 크지 않은 재개발된 아파트 담 밖의 건물에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은 외면당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PC방이 들어오고 부터는 전혀 딴판이었다. 알아서 찾아왔다. 그곳은 상권도 없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 곳인데도 PC방이 생기자 어디서인지 초등학생들로부터 중고생, 대학 청년, 그리고 어른들까지 구분 없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낮과 밤이 구분 없었다. 내가 나오는 새벽 그 시간에도, 우리 성도들이 올라오는 그 시간에도 PC방으로 오는 자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계단을 2~3칸씩을 뛰어서 겅중겅중 올라갈 정도였다. 이들이 돈까지 내가면서 이렇게 3층 까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게 되는 데는 분명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이었다. 며칠씩 PC방에서 게임만 하다가 죽는 일이 종종 보도 되고 있고 게임에 졌다고 상대를 찾아가 죽이고 린치를 가하기도 하고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구분 못하고 컴퓨터가 있는 방에 틀어박혀 게임에 미쳐있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 무서운 어둠의 미혹이다.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더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고 밤새워 해도 피곤함 모르고 지치지도 않게 하는 게임의 마력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근간에는 PC방이 있는 아래 1층에 성인 오락실이 하나 더 생겼다. 24시간 열어놓고 삐리릭 삐리릭 사람들을 부른다. 생명도 존귀함도 없는 것들이 더욱 인기다. 요란하고 유혹적이다.
새벽이 없는 세대, 야경이 꽃피는 밤 문화에 취해가는 이 세대, 생활의 리듬이 끊기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진노의 인생들이 서로 조성해가는 어둠 속이다. 새벽이 사라지고 있다. 새벽예배도 점점 없어져 간다. 새벽예배가 없는 교회들이 생겨졌다. 어둡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함께 뒹굴며 취해서 잠자는 세대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의 모습, 큰 것과 일락만 좋아한다. 아주 드물게 보이는 새벽예배 가는 연로한 신도들, 저들의 세대가 희미하다. 그런데도 깜짝 이벤트 식으로 교회를 세운다고 하니 불을 보듯 뻔한 앞으로가 염려스럽다.
내가 집에서 예배당까지 가는 길에는 우리 동네에서 오래되고 제법 좀 크다고 할 수 있는 교회가 둘 있다. 나는 날마다 그 교회들 앞을 오가며 느끼는 것이 있는데 교회 규모에 비해 새벽 예배 나오는 자들이 매우 적다는 것이며, 드물게 보이는 자들 또한 대부분 노인 신도들이다. 눈 나쁜 내 시력에도 금새 감이 올 정도로 걸음걸이가 그렇다. 그러다가 1년에 한 두 차례 간혹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는데 특별 새벽기도회라는 반짝 행사 때이다. 그때면 그 교회들 마당이 요란하다. “지금 새벽시간이 맞아?” 내게 스스로 의문이 갈 정도이다. 가족단위로 나오는 자들, 부부로 나오는 자들의 발걸음이 늦을까 시간에 맞추어 나오는 학생들 같고, 일찍 서두르는 직장인들 같이 발걸음들이 부지런하다. 주변 새벽 시간이 웬일로 시끄럽다. 누군가 나와 교통경찰들이 가지고 있는 길고 빨간 조명 등 후레쉬 까지 들고 새벽 예배 오는 차량들을 통제할 정도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들이 한순간 열심으로 종종 걸음치며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뭔가 이들도 순수하지 않는 것에 끌리고 조련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났다. 무엇이 이들을 열심내게 하는 걸까? 의아해진다. 중학생인 우리 둘째 아들 녀석이 자기네 반 아이 중에는 40일 새벽 예배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서 기능이 좋은 신형 MP3을 탔다고 했다.
며칠인지 그 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행 길가 그 예배당 마당엔 썰렁히 적막이 흐르고 간혹 권사님 같은 한 노인네 분이 일찍 나와서인지 그 마당에서 손 체조를 하는 모습만 왠지 쓸쓸하다.
어릴 적 여름성경학교 때가 생각난다. 며칠씩 하는 그때 출석 카드에 도장 찍고 공책 몇 권이나 연필 몇 자루 타려고 새벽 예배까지 나갔었다. 혹 깨나지 못하여 한번이라도 빠질까 부모님께 꼭 깨워 달라며 마음 조렸던 때, 지금 돌이켜 보건데 상품을 타는 기대보다 즐겁게 한다는 행사적 홍보에 더욱 설레임을 가졌던 것 같다. 요란한 분위기 속에 아쉬움만 남기고 또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들이 그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오늘도 거의 그 시간에 일어나 씻고 성경을 끼고 어둑한 골목을 빠져 나와 한순간 요란했다가 오래도록 썰렁한 그 교회들 앞을 지나 우리 예배당으로 향한다. 터벅터벅 삼층으로 오르는 내 발걸음은 예전만 못함을 느낀다. 언 듯 내 발걸음 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20여 년을 올라온 성도들의 발걸음과 엇비슷한 비중을 느낀다. 그때 내가 방해라도 되는 듯 나를 제치고 성큼성큼 앞지르는 발걸음이 있다. 그러고 보니 한 계단 통로에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음을 느낀다. 각자 다른 것에 이끌리어 올라가고 있다. 어둠의 권세와 빛 된 권세가 새벽 한 통로 공간을 울리며 역사되고 있음을 신비스럽게도 감지한다.
나는 강대상 뒤에 엎드려 곧 한 길로 따라 간간히 올라올 우리 성도들의 발걸음 소리를 예민하게 기다리며 이들의 발걸음이 줄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세월이 되길 먼저 기도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오랜 세월의 음악가가 그 많은 악기 소리를 따로따로 구분하여 듣는 것처럼 음을 예리하게 분별하는 전문가의 세월은 못 된다 할지라도 혼란스런 새벽 계단 소리 중에서 우리 성도들의 발걸음 소리를 구별해 내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발걸음 소리에서 거룩한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잠간과 영원한 의미의 소리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벽 계단 소리에 세상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 나는 은혜 속에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새벽길을 왔고 이제 함께 그 길을 가는 교우들과 오늘도 3층을 오른다. “터덕터덕” 4층보다 옥상보다 더 높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새벽이 없는 통로에서 거룩한 새벽 계단 소리를 남긴다.
첫댓글 김명복전도사님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황목사님과 사모님께도 안부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