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참 쉽기도 하지만 어려운 퍼즐이다. 누구도 심지어 국가나 교회도 지켜주지 못하는
한 개인을 지켜주기 위해 서로 희생을 하지만 또한 가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하는
짐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에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또한 가족주의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양육과 교육, 심지어 노년의
문제까지도 가족이 챔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특별히 한국사람들이 가지는 가족애는 특별하다. 그러다보니 부부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경제적인 문제는 국가나 사회에서 책임져주지 못하다 보니 가족내에 갈등으로 발생하고, 애정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문제와 이로인한 서로의 역할과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다보니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우리는 책임을 한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다. 아니 또한 한 가족에게
물을 수 만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결혼까지 시켜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기에 혼수까지 가족의 몫이다. 그러고나면 당연히
자신의 노년을 가족이 챙겨주길 원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산업화 되기 이전까지는 물론 가족의 몫이 일정부분
있었지만 마을에서 서로가 함께 책임지고 있었다. 산업화 되어지고 가장인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서는
그 가장을 지켜(?)주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게 바로 가족주의이다.
수능철만 되면 각 종교마다 부모들로 넘쳐난다. 자녀의 합격을 바라기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모임 수 많은 부모들.
경쟁체제 내에서 내 자녀가 합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떨어져야 하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각 종교에서는 이를 조장한다. 종교들에서는 누가 합격해야 하는지, 누가 떨어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냥 이들이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들은 가족단위의 교인들에 출석을 원하기 때문에
가족주의를 조장할 수 밖에 없다. 가족들의 종교적 자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따르면 온 성도들이 한 가족이고, 온 교회가 다 하나의 집이다. 내 식구 남 식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한 가족의 문제는 그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교회의 문제여야 하고, 온 성도의
문제이며, 모두의 기도 제목 일 수 밖에 없다. 내 자녀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홉살인 윤지가 가족을 애기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미 가족주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혈연적 가족만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온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신앙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국 교회에서 이루어 지는 교육, 부모들이 보여주는 삶...그리고 기도...이게 전부이지 않을까~...
그래도 천국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땅에 민중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는 천국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