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의 동정(東征)시 이 곳(해성, 海城)의 서남쪽에 다다렀을 때 고려대장 연개소문은10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당태종을 잡으러 오고 있었다. 이세민이 당황하여 말고삐를 당겨달아나는데 연개소문이 긴창을 곧추 세우고 뒤에서 추격을 해왔다.
어느 순간 말이 멈춰서서보니 앞에는 길고 넓고 깊은 진흙뻘강인 어니하(淤泥河)이 있었는데 당태종은 우습게 생각하고설마 당나라가 운세가 다해 고구려에 물려주고 고구려의 신하가 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고구려 장군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말고삐를 당겨 달아나려는데 "이세민이다"라는함성과 함께 들리면 쫒아 오니 말의 네 다리가 세자도 넘는 진흙뻘강으로 빠져들어 빠져 나올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게 진흙수렁속으로 빠지게 되어 연개소문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연개소문 : 당나라 왕아 ! 네가 항복을 하면 내 너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노라.
당태종은 이 말을 듣고 " 당나라의 땅은 넓고 물자는 풍부하고 진귀한 보물은 황실에 가득가득한데 상은 무슨 상을 준단 말이냐? 내 비록 오늘 지형을 잘 살피고 준비를 못하고추격을 당해 이 곳까지 와 진흙구덩이에 빠졌지만 백만당병을 거느리고 남김없이 쓸어버릴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개소문은 활과 화살을 잡고 당태종을 조준하고 수하에게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 명한 뒤 당왕에게 항복문서를 쓰라고 명령했다. 만약 항복문서를 쓰지않는다면 화살 한 방에 죽을 것이다. 당왕은 항복문서를 앞에 놓고 통곡을 하였다.
이 때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벽력과 같은 함성이 들리는데 " 왕께서는 마음 놓으시오,신(臣) 설인귀가 구하러 왔습니다. 연개소문 너 어디에 있느냐? " 라고 하여, 보니 흰 옷과 흰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긴 창을 꼬나들고 젊은 장수가 산 위에서 말을 달려 나는 듯이 달려 와서 연개소문의 10만대군을 물리쳤다.
연개소문은 옷을 붙잡고 혼비백산하여 멀리 도망을 쳤다. 설인귀는 왕을 구하려고 장창으로 말의 배 밑을 푹 찔러 양 어깨로 힘을 써서 사람과 말을 강 위로 끌어 올렸다. 당왕은기뻐하며 젊은 장수에게 유격장군으로 삼고 훗날 안동도호부에 봉하고 요동을 다스리도록 했다. 이 이야기는 "어니하(淤泥河)에서 왕을 구한 설인귀"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상이 위 원문을 번역해 본 것이며 이 이야기는 근대에 일본이 요동을 침략했을 때 의용군으로 참전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경극에 나오는 이야기를 각색해서 고붕(高鵬)이라는 자가 병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위의 의용군연의 또한 연극(경극)용 소설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한족 입장에서 쓴 이야기이며 실제 경극에 나오는 이야기도 위의 내용과 흡사합니다.
한족들이 아마도 이 것을 쓴 목적은 당태종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늘이 돕는 황제이며 고구려를 물리친 설인귀의 무용담을 기리기 위해서 각색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위의 지명 어니하(淤泥河)는 실지로 있으며 어디인가에 대해서 찾아 보았는데,대륙 각 성 마다 어니하(淤泥河)라는 곳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바로 섬서성 서안 즉 장안 가까운 곳에 어니하가 있었고 산서성 대동(大同)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에서도 서안을 둘러 본 소감에서도 나오듯이 그 쪽 지역은
평시에는 흙먼지 날리는 메마른 땅이다가도 비가 오면 완전 갯벌처럼 푹푹 빠지는 진흙뻘밭이 된다는 이야기로 보면 우리의 전설속에 연개소문이 섬서성 장안(서안)을 점령하고 당태종에게 항복문서를 받고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고조 유방과 더불어 차이나 역대 최고의 황제라고 일컫는 당태종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극에서 연개소문에게 붙잡혀 항복문서 쓰기를 강요당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요?
또한, 차이나의 각 성의 당 태종의 전설에서 보면 연개소문에게 쫒기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또 쫒기고 살아나는 어떻게 보면 아주 도망만 다닌 군주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또한 강소성 염성의 몽롱탑 전설에서도 당 태종이 어니하에 빠져 우물 속에 숨고
산동성 즉묵시에서도 쫒기고 산동성 봉래에서는 도망치다 개울에 숨는 등
온통 어딘가에 숨고 진흙땅에 빠지고 도망다니는 그런 존재입니다.
덧붙여서 위의 이야기에서 설인귀가 흰 옷과 흰 갑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설인귀는 백호장군(白虎將軍)이며 연개소문은 청룡장군(靑龍將軍)으로 나옵니다.
청룡과 백호는 고구려의 사신도에서 보듯이 청룡은 동방의 상징이요, 백호는 서방을
상징하는 수호신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대륙을 동쪽은 연개소문 즉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고, 서쪽은 설인귀 즉 당나라가 차지해 전체대륙을 고구려와 당이 양분하여
그야말로 용호상박의 형국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성립이 될 것입니다.
당태종이 연개소문에게 항복문서를 바쳤다는 것과 더불어 그 넓은 대륙을 고구려와 당이 양분하고 있었다는 (어쩌면 고구려의 영토가 더 클 수도 있음) 사실을 고증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며 고구려가 일개 변강의 소수정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 [펌]몽롱탑(朦朧塔)의 전설 - 당태종이 우물에 숨은 사연 ▒
안녕하십니까?
강소성의 중동부 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염성(鹽城)의 건호(建湖)현에 있는
몽롱탑(朦朧塔)의 전설에 대하여 소개를 할까 합니다.
당태종 이세민이 군대를 거느리고 동정(東征)을 할 때에 염성일대에 병사를 주둔하였다.어느 달빛이 몽롱한(희미한) 늦은 밤, 이세민은 단기필마로 병영을 순찰하다가
적 진영을 염탐하기 위해 적 진영에 다가갈 즈음 조심을 안해 진흙탕뻘에 다달았다. 마침 적 진영을 순찰 중이던 연개소문 장군에게 발각이 되자 연개소문 장군은 말을 달려 칼을 휘두르며 쫓아왔다.
이세민은 황급히 말을 재촉하여 달아나는데 말이 길을 잘 못드는 바람에 그만 진흙탕뻘에 빠지게 되었다. 이세민은 말에서 뒤어 내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가다가 문득 한 개의 마른 우물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우물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연개소문이 추격을 하다가 우물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하였을 때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우물을 보니 우물 안에는 가지런한 거미줄이 걸려 있어 사람이 그 안에 있을 거라고는 헤아리지 않았다. 다시 말을 돌려 군영으로 돌아갔다.
후에 이세민이 왕이 되었을 때 거미줄이 목숨을 살려준 은공을 잊지 못해 감격하여 우물이 있던 곳에 하나의 탑을 세웠다. 어둡고 어려움(蒙)에 처해 있을 때 우물 속의 거미줄이 몸을 보호해줘 목슴을 건진데서 "몽롱(朦朧)"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리하여 이 탑이 "몽롱보탑(朦朧寶塔)" 이라 불려졌다. 더불어 탑을 세운 후 비교적 큰 정혜사(淨慧寺)라는 절을 세웠다.
현재 이 탑의 동북방에는 세니하(洗泥河)가 있는데 당태종이 말과 함께 진흙탕뻘에 빠지고 위험을 벗어난 후 말을 씻었던 곳에서 유래한다.
중국 사람들은 이 탑을 보고 전설을 들으면서 당태종이 거미줄의 도움으로 천운이 있어 목숨을 건진 진룡천자(眞龍天子)라고 생각하겠지만,이 곳 염성지방에서도 고구려 연개소문과 당태종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염성전투의 결과는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나고 당태종이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줄행랑을 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