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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인류의 기원을 찾아서
한국인의 기원을 찾는 일은 인류학의 한 부분이며, 인류학은 사람들의 형태, 유전자, 언어,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주변 학문들을 종합하여 살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나는 졸저 <한국인의 기원>(우리역사연구재단 간, 2011)에서 유전학을 중심으로 현생인류의 역사와 한국인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재구성해 보았다. 유전학적 결과는 관련 학문에서 얻은 결과와 틈새가 없이 잘 맞아들어가야 하였기 때문에, 결국 새 가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결론은 마지막 빙하기에 알타이산맥 지역에서 바이칼호에 이르는 지역에서 형성된 원-몽골리안이 빙하기 이후 남방으로 내려와 남방계의 (원)주민들과 만나 한국인 문화의 원형이 되는 요하문명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이 알타이어의 고향, 즉 우리말의 고향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론은
1)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였고, 동남아시아 해안을 따로 동아시아로 이동해 왔다는 것,
2) 이들이 해부학적으로는 현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현대적 행동양식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는 것,
3) 후기구석기문화가 시베리아-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
4) 이것은 현생인류가 마지막 빙하기에 시베리아의 어느 곳에서 현대적인 행동양식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
5) 한국인‧일본인‧중국북부인이 가진 유전자들이 거의 같다는 것,
6) 신석기문화가 동아시아 북부에서 발달하기 시작해 남진하였다는 것,
7) 우리 말이 비성조언어이며, 중국어에는 북방(알타이)어에서 차용해간 말이 많다는 것
등을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설명은 유럽-아시아-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나타나는 미토콘드리아DNA 유전형 분포와 Y염색체의 유전형 분포도를 설명하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1. 유전체학의 발전이 가져온 인류학 혁명
1986년 인류학에 혁명이 일어난다. 소위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의 등장이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알란 윌슨 등이 미토콘드리아DNA의 유전형을 분석해 보니, 현재 지구상에 살고있는 모든 인류는 약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던 여성의 후손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구석기 시대부터 세계 각 지역에서 문화를 발전시켜왔으리라는 기존 이론-다지역 기원설-을 무력화시켰다. 고고학자들도 서서히 이 이론을 수용해 갔고, 유전체 연구가 발달되면서 이론은 점점 강해 갔다. 그런데 21세기가 되면서 유전체학은 새로운 혁명을 불러 왔다. 그 중심에는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파보가 있다. 그의 연구팀은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춘 네안데르탈인 (중석기 문화의 주인공들이다)의 유전체를 조사해 보고, 현생인류의 그것과 비교하니 약 2.5%의 인간 유전체가 그들에게서 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학자들의 연구도 그들의 연구와 일치하였다.
2012년이 되면서 이들은 더 놀라운 결과를 발표한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스반테 파보 박사팀의 마티아스 마이어는 소위 데니소바인 유전체의 전모와 현생인류 및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를 발표하였다. 결과는 1) 데니소바인이 네안데르탈인의 사촌쯤에 해당하며, 2) 인류와는 약 80만년 전에 나뉘었던 인류의 사촌이며, 3) 이후 멸종하였지만, 4) 그 유전자의 일부가 현생인류 유전체 안에서 발견되는데 동북아시아인이나 유럽인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파푸아뉴기니인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서 5%에 달하는 높은 빈도로 발견되며, 5)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들이 유럽인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혼혈이 중동지역과 동아시아 어느 곳 두 곳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으며, 6) 데니소바인은 아프리카에서 나온 현생인류가 어떤 다른 인류 (직립인, Homo erectus?)과 혼혈되며 태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한 점이다. 이 이론은 느슨한 대체(leaky replacement) 이론으로 불리고 있다. (그림 1)
2. 고고학의 발달과 시베리아에서 후기구석기 문화의 형성
한편 고고학적 발견, 특히 냉전으로 서방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고 있던 구소련 고고학자들이 이루어낸 성과는 새로운 시각을 불러왔다. 데니소바인의 유골이 발견된 데니소바 동굴을 발굴한 사람은 소련 고고학자, 데레비안코 박사팀이었다. 이러한 혼혈과정에서 새로운 인류가 생겨난 것이 아마도 후기 구석기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의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증거들이 많다. 2013년 대영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Ice age art; arrival of the modern mind를 보면 그 실체를 느낄 수 있다. 테드 괴벨이 정리한 그림 2는 그 실체를 잘 보여 준다.
고고학자들의 지적 중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저명한 인류학자 니콜라스 웨이드의 몽골리안의 “유년화, neoteny” 현상이다. 그는 또한 “현대적 두개골”을 가진 인류가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 지구상에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기원이나 분자생물학적 기원은 연구가 없어 추후 연구되어야 할 것이지만, 필자는 빙하기 시베리아의 추운 기후에 적응하며 살면서 몽골리안의 원류가 이런 체질을 얻게 되었다고 추론하였었다.
소련의 고고학자들은 시베리아, 특히 알타이 지역에서 레나강 하류에 이르는 지역이 인류 제 2의 고향이란 말을 하고 있다. 책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후기구석기문화가 나타나는 지역이 시베리아에서 유럽에 걸친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고, 특히 레나강 하류에서 발굴된 듁타이 문화를 중시하고 있다.
그림 2. 테드 괴벨이 2007년 Science(315:194)에 발표한 후기구석기 문화의 분포와 초기 인류의 이동도. 최근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와의 혼혈은 후기구석기 문화의 전파와 시기를 같이한다. (PLoS Genetics, 2012. 8(10): e1002947).
최근 스반테 파아보 연구실에서 보고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비교분석 결과를 보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혼혈은 약 47,000–65,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며, 이 시기는 후기구석기 문화의 형성시기에 해당하며, 현생인류 사이에 나타나는 네안데르탈인 유래 유전형들의 분포를 볼 때, 서부 유라시아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3. 고대 기후
후기구석기 문화와 그 이후의 문화의 발달은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며, 그 배경에는 간빙기 동안 이 지역으로 이동해 들어갔던 인류의 조상들이 빙하기의 추운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던 기후가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지막 빙하기 동안, 그리고 그 후 서쪽으로의 길이 열리면서 새로운 인류가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등장하는 것을 그릴 수 있다. 나는 이들을 몽골리안의 원류라고 추정하고 있다.
4. 언어 문제- 특히 알타이어, 중국어와 일본어
“한국인”을 규정하는데, 우리의 말, 한글은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어의 언어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전통적으로 언어학자들은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에 기반하여 친연성을 발견하고 언어 그룹을 만들었다. 우리 말은 보통 알타이어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나는 언어의 의미론적 엄밀성을 극대화하고, 어휘의 변이를 통계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극히 과학적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밈(meme)’이라는 용어가 있다. ‘유전자- 진(gene)’이라는 용어에 대비해 어떤 행동을 전달하는, 의미를 가리키는 단위, 의사소통의 단위를 가리키기 위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산타페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사족이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연구소가 주도해온 복잡계학(Science of complexity)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주제에 대해 1990년도에 딜레마 게임이라는 자그마한 과학수필집을 낸 바 있다. 또 산타페연구소의 여러 학자들 특히 연구소장을 지낸 조프리 웨스트와 그의 공동연구자들이 발견한 체중과 대사율 사이에 나타나는 일반법칙은 그 독창성과 심오한 점에서 외경의 대상이며, 내가 당뇨병의 발생 기전을 연구하는 초석의 하나가 되었다.
산타 페 연구소에서는 소련 모스크바대학 인문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바벨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산타페연구소 소장을 지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머레이 겔-만과 세계적 비교언어학자인 세르게이 스타로스틴이 만든 인류의 언어진화연구 프로젝트인데, 밈과 진에 대응하는 포님(소리소?, phoneme)을 분석하고 있다. 노암 chatm키에 따르면 포님은 “the smallest contrastive linguistic unit which may bring about a change of meaning"이다. 그들은 어휘통계학(lexicostatistics)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세계 모든 인류가 사용하는 잘 변화하지 않는 50개의 ‘초안정적(ultra-stable)’ 포님을 비교분석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51~100개의 비교도 가능하다) 언어들 사이의 기초적 관계를 구축하고, 다른 언어학적 특성들, 가령 음성학적 특성(phonetic characteristics) 및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해 언어들 사이의 관련성을 복잡계학적 방법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립과학회보(PNAS)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포님 23개를 선택하여 분석하고, 우랄어-인도-유럽어-알타이어 등이 근접하게 위치한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그림 3) 유감스럽게도 한국어-일본어-중국어는 이 연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림 3. Pagel M등이 2013년 PNAS에 발표한 유라시아 언어들 사이의 분포와 그 진화언어학적 관련성. 알타이어(우리 말이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 생겨나고, 인도-유럽어와 친연성이 강하다. 중국어와 캄보디아어 등 남방어는 소위 성조언어로서 우리 말, 인도유럽어의 비성조언어와 구별된다.
5. 유전학과 언어학 사이의 관계
2003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란은 마이크로세팔린(microcephalin) 유전자가 가령 네안데르탈인 같은 고인류에서 약 37,000년 전 이입되었을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최근에는 언어능력과 관련된 유전자 POXP2를 조절하는 다른 유전자 CNTNAP2(자폐증 유전자로 발견된 바 있다)가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이다. 그 함의는 네안데르탈인 내지 데니소바인으로부터 뇌의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들을 얻게 되면서 사람의 지능이 크게 증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편 ASPM이라는 뇌의 기능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에 변이 (ASPM-D)가 일어난 것이 파키스탄 부근이며 (그림 3의 중심과 일치한다), 비성조언어를 발달시킨 것과 관련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변이가 생긴 시점은 약 5,800년 전으로 제시되었지만, 유전자 시계는 오차가 많아 1만 년 전 일수도 있다. 우리말이 비성조언어 임을 생각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는 주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동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결론: 한국인의 기원
세계 각지 사람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는 신체의 겉모습과도 잘 맞는다. 두개골 모습을 기준으로 보면 동아시아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남방계와 북방계로 지칭할 수 있다. 크리스 터너는 아시아 사람들의 잇발형을 보면 sundadont와 sinodont로 대별하였는데, 남방계와 북방계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원주민에 속하는 조몽인과 한반도를 통해 후에 이동해 들어간 도래계의 야요이인으로 분류하는데, 나는 이들이 북방인-남방인의 2분적 존재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북방을 통해 들어온 어떤 인류의 존재를 강력히 증거한다고 설명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남자를 결정하는 Y염색체 유전형 중에서 O2b형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흔하고, 이 유전형이 중국 남부에 흔하다는 것을 확대해석하여 남자들도 남방에서 유래하였다는 비판이 있으나, 최근 북방루트로 이동하였다는 것이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림 4.
그림 4. 위키피디아에 제시된 세계 각지 사람들이 가진 Y염색체 유전형들의 관련성과 그 이동도. O형이 N형과 같이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이동하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인의 기원”에서 K-NO의 유전형이 아마도 시베리아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즉 그림에서 K-NO의 위치는 그림 2, 3과의 통섭해서 알타이-바이칼 지역으로 올라가야 한다.
배재대학교의 손성태 교수는 우리 민족의 문화 풍습과 아메리카 원주민, 특히 멕시코인 사이에 나타나는 문화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깊이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졸저 ”한국인의 기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와 일본‧중국‧만주‧시베리아‧캄차카반도‧베링대륙(마지막 빙하기에는 툰드라 초원지대였다)에는 북방계의 원-몽골리안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남방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가 베링해를 지나 미 대륙으로 이동해 들어갔다. 이들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A‧B‧C‧D형이 대부분이고, 극히 소수만 X형을 가지고 있다. A~D형은 동남아시아를 통해 이동해온 현생인류가 가진 유전형이다. 아메리카원주민 중 아타파스칸은 바벨탑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면 다른 원주민과 달리 나-덴(Na-Dene)계 언어를 사용한다(http://starling.rinet.ru/new100/trees.htm 참고). 이들은 초기에 이동해 간 남방계 사람들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의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이런 분석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비교하며 이해하는 데 필수라고 느낀다. 다만 여러 사회에서 관찰되는 문화를 언어와 같이 취급해 ‘초안정적 단위’로 만들어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유전학-언어학의 발전에 기반하여 어떤 문화의 독특한 문화소(meme of a culture)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5. 한국인의 형성과 언어들 사이의 관계. 마지막 빙하기 이후 시베리아에서 형성된 원 몽골리안이 남으로 내려와 이미 살고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혼혈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그 처음이 홍산문화로 나타난다. 한 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동해 간 사람들은 그 문화와 언어의 원형을 유지하였으나, 중국으로 이동해 간 사람들은 남방계의 영향을 받아 성조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문화를 발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