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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 이야기
전라북도 r김제시 금산면 금산리290-1
1908년 4윌 설립 1997년 7윌에 전라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았다가 근래에 국가문화재로 지정 받음.
금산교회가 설립되게 된 것은 한국 교회사적으로 매우 감동적인 것으로,
이야기의 내용은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사이에 얽힌 사연이다.
조덕삼은 금산면에서 덕망 있는 부호였고,
이자익은 경남남해 출신으로 조실 부모하고
어린 나이에 살길을 찾아 전라도 땅을 헤매다가
조 덕삼을 만나 그 수하에서 꼴머슴으로 자라난 사람이다.
이자익은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글공부를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1900년대 초) 전라도 지역의 선교를 담당하던 테이트(Lewis B.Tate)는
조덕삼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고,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조덕삼은 머슴인 이자익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1908년도에 금산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후 교인이 많아져 당회 구성을 위하여 한 명의 장로 선임 투표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주인인 조덕삼이 아니라, 머슴인 이자익이 장로로 당선되었다.
나이도 훨씬 젊고 또 머슴인 이자익이 장로로 당선된 것에 대해
주인인 조덕삼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장로로 선임된 이자익은 장로의 역할과 영수(지금의 전임 전도사 역활과 비슷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였는데, 이때 주인인 조덕삼은
무릎을 꿇고 이자익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조덕삼이 이자익을 장로와 영수로 섬기고, 집에서는 이자익이 조덕삼을
주인으로 섬기는 정말 감동적인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후에 조덕삼은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보내어 목사가 되도록 후원하였고,
목사가 된 후에는 금산교회의 초대 목사로 청빙하여, 다음번에 장로가된 조덕삼은
이자익 목사를 극진히 섬겨, 금산교회는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자익 목사는 전라지역과 충청지역에 많은 교회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교파분령 전) 총회장을 3회나 역임하는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 자손들까지 축복받은 신앙 >
금산교회는 100년째 아름다운 신앙의 뿌리를 이어오고 있다.
조덕삼의 아들이 2대째 금산교회 장로로 섬겼고, 그의 아들도 3대째 이 교회를 섬기고 있다.
바로 4선의 국회의원,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 장로다. 그는 한달에 한번 금산교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린다.
조 장로는 "부친에게서 들은 조부는 성경적 삶을 사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시며 새벽마다 자식들을 깨워 과수원에서 일하도록 했고, 부지런함과 근면 성실을 가르치셨다.
1919년 12월 돌아가시면서도 할아버지는 '예수를 잘 믿어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셨고, 찬송가 525장(주 믿은 형제들)을 4절까지 모두 부르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이자익 목사에 대해선 "부드러운 음성으로 쉽게 복음을 들려주신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앉아 예배를 드리다가, 여자석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 '조르륵' 강단을 지나 어머님께 가곤 했다"면서 "그럴 때면 이 목사님은 '세형아, 조용히 앉아 예배를 드려야지'라며 인자하게 타일렀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자익 목사의 후손은 목회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고분자화학의 권위자인 이규완 장로가 손자다. 그는 2004년부터 중국 옌볜과학기술대학교에서 교육을 통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동생 이규석 목사는 조부가 설립한 대전신학대를 졸업하고 장신대학원을 나와 청주 동막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