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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바이칼
바이칼이 시베리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수 노영심은 올 여름 6월초에 바이칼 호수 샤먼(Shaman)의 성소인 알혼섬에 가서 야외 콘서트를 열 예정이고 서태지도 바이칼에서 대형 락 콘서트를 기획했다가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발해를 꿈꾸며'의 현장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5월초 공연을 갖기로 했다. 이것은 무슨 징후일까? 시대를 호흡하는 대중가수들에게도 한반도의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이 매력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필자는 2001년 6월 처음으로 바이칼 호수를 방문하였고 다음해에는 3월, 6월, 8월, 12월 등 무려 4차례나 신들린 듯 답사에 나섰다. 작년 6월 그간의 답사 결과들을 모아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란 책을 펴냈더니 바로 그 해 여름에만 약 5천여명(여행사집계)의 한국인들이 바이칼 지역을 탐방하는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
이는 물론 언론사들의 기획이나 홍보, 관련서의 출간 등도 한몫 했겠지만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처럼 우리와 무역이 빈번한 경제활성지역이 전혀 아닌 시베리아 한복판의 바이칼 호수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작년부터 쏠렸다함은 순전히 경제외적인 정신문화적 동기가 그 저변에 깔려있는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2001년 처음 바이칼에 갔을 때 한국인 방문객은 300명도 채 안되었다. 불과 2년만에 수 천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올해도 바이칼 방문의 열기가 벌써 감지되고 있다. 바이칼 매니아인 나 역시 두세번의 답사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이제 잠시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열풍의 진원지를 명상해본다.
바이칼 답사를 작정한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나는 십년이상 계룡산에서 봉우 권태훈(1900-1994)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우리의선도(仙道)를 공부해왔다. 선도란 무엇인가? 이는 화랑도이자 조의선인이며 국선으로 수 천년이상 내려오는 우리 조상들의 얼이요 정신체계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정신사에 선도의 맥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선생님께 늘 머릿골 박히도록 들었던
말씀이 우리 선도의 뿌리는 단군 할아버지시고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에 있으며 특히 만주 백두산과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가 우리 겨레의 정혼(精魂)이 형성된 핵심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봉우선생님은 청년기인 1920년대에 이미 만주와 몽골,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 일대를 발로 뛰어 답사하셨기에 그분의 북방담론은 너무 생생했고 개인의 피부적 경험이 녹아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늘 넘쳐났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민족의 시작을 알려면 저 북방으로 가야한다는 얘기였고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북방진출이 활발해져 북쪽에서 비롯된 우리 고대문화의 진정한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고 신화로 치부되온 고대 정신문화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리라는 예언이자 신념이었다. 아무튼 바이칼은 언제고 가야 할 나의 숙명이었지만 막상 행장을 꾸리려니 모든게 수월하질 않았다.
우리 문화전반의 풍토가 늘 그렇듯이 일부 구미권의 정보는 넘쳐 흘러도 이곳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은 그 누구도 쉽사리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좌충우돌 다니다보니 벗님들도 생기고 동지들도 모였다. 이렇게 해서 각계각층의 20명이 넘는 바이칼 첫 답사대가 이루어졌다.
바이칼로 가는 길은 몽골 울란바타르를 거쳐 시베리아의 수도 이르쿠츠크로 들어가는 길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하거나 중국 심양을 통해 가는 등 여러 길들을 다 다녀 보았지만 몽골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인상이 남는다.
몽골의 초원이 또한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비행기 스케줄이 울란바토르에서 바로 바이칼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공항에서 가까운 명승지 테렐지로 가서 온종일 몽골의 산야를 느끼며 승마를 즐길 수 있었다. 매번 답사때마다 느끼지만 한국인들처럼 말 타는 일에 그토록 즉각적으로 본능적 흥미를 느끼고 열광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현지 몽골인들도 놀랜다. 미국인이나 유럽인, 일본인들은 절대
즉흥적으로 말을 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나 대부분의 친구들은 말 주인의 간단한 설명만 들은 채 곧바로 말을 타기 시작했고 한시간도 안되어 벌써 "츄츄!" 소리를 질러대며 초원을 질주하는 쾌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좀 경솔한 짓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무모함 이야말로 유목민의 유전인자에서 분출되는 아지못할 용기라고 보고싶다.
바이칼을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라 부른다 진주처럼 영롱한 생명의 빛을 발하는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칼호는 세계의 생태과학자들에게 이미 지구상의 유일한 살아있는 생물진화박물관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1500여종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그중 75%가 고유토종임이 이를 증명한다. 바이칼은 생물학, 진화학, 지질학등이 서로 만나 연결고리를 만드는 생태계조건으로 볼 때 '또 하나의 지구'가 된다.
또한 이곳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태동지이자 성스러운 샤먼의 바다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이칼을 다니며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는 전통 샤먼들이며,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의 민속학자들이며, 고고학자, 역사학자, 문학연구자들과 항구의 어부들, 여름철 휴가를 바이칼호변에서 즐기는 평범한 시민들, 겨울 산속에서 만난 곰사냥꾼들, 바이칼 가는 길목 '쿠다(어디로?)'마을에서 딸을 태우고 어디론가 질주하던 말썰매의 주인 아저씨와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굴 아랫마을'의 어귀에 바구니 가득 산딸기며, 산머루, 손바닥만한 버섯들을 따놓고 신기한 눈동자로 똑같이 생긴 이방인들을 응시하던 부리야트 사람들, 우리를 태우고 운전하다 오색천이 걸린 서낭당이 나오면 차를 잠시 세우고 동전 몇닢, 담배 한가치라도 바쳐야만 직성이 풀리던 어느 러시아 운전기사……. 끝없이 떠오르는 숱하게 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 샤먼의 바다, 바이칼의 대변자들이다.
샤먼은 누구인가? 샤먼은 아득히 먼 옛날 하늘과 땅이 열리던 그 시절부터 우리의 삶을 같이해온 존재이다. 지금은 우리곁의 음침하고 그늘진 잔영으로 남기워진 무당, 무속인들이 바로 그 후예들이다. 하지만 샤먼의 원래모습은 동북아시아 북방의 한가운데 우뚝선 단군왕검의 모습 바로 샤먼킹(Shaman King)이었다. 단군은 또 누구던가? 우리 겨레의 첫새벽을 열었고 뭍 생명의 터전을 일구었던 홍익인간의 선지자로서 우리 정신의 원형질로 각인되어온 영혼의 스승, 바로 그 아니었던가? 우리 옛 조상들의 정신적 유전자를 쫓다보면 예수님이 성서에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그대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여지없이 적용됨을 절감하곤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이는 단순히 한국인의 지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유전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지워진 영원한 화두가 되는 것이다. 바이칼에 가면 우리 모두는 돌아온 탕자의 심경으로 환원된, 그리하여 각자의 본래면목을 응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놀랜다. 알혼섬 샤먼의 바위 그 앞에 서보라! 그 앞에 펼쳐진 호수 아니 망망대해의 푸르름 속에 자신을 던져보라. 그리하면 그 어떤 무심한 사내도, 여인도 대체 이 '내'가 뭣꼬하는 근원적 의문의 엄숙한 기운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여기에 바이칼 우주를 지배하는 섭리의 신 겟세르나 부르한(여기말로 하느님, 하나님)께 올리는 하늘제사에 동참하면 더할나위 없이 그는 바이칼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바이칼에 가면 과거의 나를 비우고 거듭 새로 날 수 있다. 바이칼 샤머니즘은 원래 상고시대의 추수감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의 샤먼은 공동체의 우두머리요, 우리의 삶이 비롯된 하늘의 주재자를 대리하는 선지자였으므로 온 무리들의 중요한 삶의 고비마다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 중 가장 큰 행사가 역시 우리의 먹거리를 수확하는 추수기에 베풀어졌다. 이 유풍은 지금도 바이칼 원주민들에게 "타일라간"이란 이름으로 행해진다. 바이칼의 샤먼은 우리 곁의 무당처럼 퇴영의 상징물이 아니라 당당히 공동체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행사한다.
찬란한 햇살과 맑고 밝은 기운이 감도는 어느 여름날 우리는 샤먼바위(혹은 부르한바위)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서 준비해간 오곡과 미역, 바이칼의 청정수-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다-를 떠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여기에 현지 바이칼 샤먼도 동참했다. 하늘제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가 되어 천지자연과 부합했으며, 인위적 모순으로 가득찬 일상의 때를 공적(空寂)으로 돌리고 원시의 평정을 회복했다. 하여 모두가 대아(大我)로 돌아가니 하느님 혹은 하나님 아버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공자님 그 어느 것도 다 괜찮았다.
다만 우리는 온 인류가 싸움질 좀 그만하고 모두 사이 좋게 평화로이 살도록 도와주십시요 하고 간절히 빌었을 뿐이었다.
사실 하늘제사, 천제(天祭)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 삶의 냉엄한 존재원리를 깨닫고 온몸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유배객으로서의 숙명을 지니게 된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지구로 유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올바른 유배생활을 위해서는 하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반드시 땅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하늘제사란 바로 자신의 숙명을 깨달은 이들이 그 천지자연의 원리에 순응하고 나아가 그것을 완전히 체득하여 즐겼음을 보여주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러하니 제사를 올리는 우리들의 마음이 사뭇 경건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날 저녁 우리는 제사를 함께 드린 옐란치 마을의 샤먼 발렌찐(48세)과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해지기전 미리 크고 잘생긴 고목 한그루를 신목(神木)으로 정하고 나무 밑을 돌며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 그날 밤 발렌찐이 우리에게 해주었던 신비로운 바이칼의 노래 구절이다.
*
제一, 우리가 듣고 집중합니다. 지금 수 천년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설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앞에 먹구름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요? 쏘아진 화살을 따라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무에 있을까요?
우리의 조상들, 전사들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분 마음에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9일낮 9일밤을 불렀던 긴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10만 절귀가 넘는 본곡중 처음의
짧은 부분입니다. ……아주 긴 시간을 따라갑니다. 어두운 가운데 아주 어두운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태초의 그 어둠속으로 천지를 창조한 신의 의지를 따라서
들어갑니다. 전 우주가 창조되었습니다. 가장 처음의 처음시간에 그 때 너무나
조용한 시간에 하늘의 빛도 없고 아주 자욱한 안개가 꽉 차있던 그 때, 딱딱한 땅이
아니라 물 같은 땅일 때,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기 전일 때, 물들이 처음 채워지기도
전입니다. 해도 없고 달도 없고 동그란 지구도 없을 때, 위대한 어머니이신 그
어두운 시간이 날기 시작했죠. 우주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수백만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겟세르가
모든 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내려왔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샤먼 발렌찐이
북을 치며 눈을 감은 채 한시간 내내 쏟아놓은 말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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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발렌찐은 낙천적이고 유머가 있는 재미난 사람이다. 그는 손가락이 육손인 세습샤먼이지만 러시아 군대(포병)를 다녀오고 울란우데(바이칼호 동부도시)의 5년제 문화대학을 졸업한뒤 비교종교학 석사까지 밟은 진보적 학자이자 시인이다. 몇 년전 시카고트리뷴지 와의 인터뷰에서 "샤먼은 종교적 역할 이상의 사회적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내가 오로지 주술만을 걸고 비오기나 빌어댄다면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바이칼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 몽골족으로 자기 마을에서 민족박물관을 운영하며 샤머니즘 연구에 몰두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민족사, 종교, 언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겨울 어느날 나는 그의 집에 머물며 가족들과 지냈다. 발렌찐의 가족은 아내와 두 아들, 딸 하나, 검은 돼지 3마리, 커다란 시베리안허스키 개 한마리, 검고 퉁퉁한 고양이 한마리 등이다.
그는 애들같이 천진난만하다. 아침부터 눈 내리는 어둡고 흐린 날 그와 함께 근처 바이칼 호숫가로 나갔다. 호숫가는 많이 얼어 있었으나 아직 한복판은 덜 얼었다며 그는 덩치에 안어울리게 덜덜 떨며 조심스레 걸어나갔다. 뚱뚱한 거구의 발렌찐이 얼음위를 밟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나며 금이 간다. 한참 걸어나가니 저 멀리 얼음판 위에 사람 몇이 웅크리고 있는게 보였다. 겨울 바이칼호의 강태공들이다.
이곳 주민들인데 겨울내 할 일도 없으니 거의 매일 호숫가로 출근, 드릴로 얼음구멍을 조그맣게 뚫고 실지렁이 같은 것으로 낚시밥을 써서 고기를 낚는다. 다가가 인사하며 소주를 권했더니 소주맛이 밍밍하다고 영 별로라는 눈치다. 그래도 술잔을 주고 받으니 내게 낚시를 권한다. 한시간 가량 앉아 있는데 한마리도 안걸린다. 다른 이들은 짬짬이 잘 잡는데 왜 나는 안잡히나? 아무튼 눈 내리는 겨울 호숫가에 얼음을
뚫고 쩡쩡 혹은 꿩꿩 울려대는 괴이한 바이칼 얼음소리를 배경으로 낚시삼매에 잠겨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선했다.
재작년 여름 이르쿠츠크 대학에서 열렸던 한민족시원세미나에서 여러 러시아 학자들을 만났다. 세미나와 답사가 끝나고 시내의 근사한 러시아 레스토랑에서 고별만찬이 있었다. 러시아측 좌장인 원로 고고학자 메드베제프 교수의 고별사를 듣노라니 웬지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러시아인들은 겉 모습은 퉁명스러워도 며칠만 함께 지내면 바로 마음을 열고 속 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후에 지질학자 우핌체프 노인이 자신이 직접 소나무에 조각한 바이칼 민속인형들을 하나씩 한국의 참석자 전원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성의와 우정에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노래도 정말 잘 불렀고 조각도 잘하는, 과학자라기보다 예술가인 사람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뭉클한 인간적 감정이었다. 메말라진 우리의 학문적 정서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북방의 학자들과 자주 지속적 인간관계를 맺는게 필요할 듯 싶다.
이번 세미나에 만난 또 한사람의 인상적인 학자는 바로 고려인 김용화 교수(화학과)였다. 그는 바이칼 알혼섬 현장답사를 가는 버스안에서 독특한 "고추론"을 펼쳐 인기를 끌었다. 고추론이란 한국인의 뿌리를 고추로 상징 삼아 전개하는 담론으로 옛날에 에벤키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헝가리로 가고, 하나는 바이칼에 남고 나머지 하나는 한반도까지 갔다는 내용인데 얘기가 아주 코믹하여 좌중의 배꼽을 잡았다. 다시 만나 듣고픈 얘기이다.
김용화 교수는 부친이 충남 강경 사람으로 일제 때 징용당해 사할린에 와서 자신을 낳았다고 한다. 쏘비에트 시절 사할린에서 이르쿠츠크로 와서 갖은 고생끝에 대학에 들어가 한국인으로 화학박사까지 취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우리 답사 일행을 위해바이칼호 특산 물고기 "오물"을 몇광주리 사다가 직접 회를 떠서 고추장 양념으로 회무침을 만들어 보드카 파티를 열어주었다.
바이칼지역의 민속학자로는 이르쿠츠크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민속박물관 부관장인 스비닌 박사가 있다. 70의 나이에 하얀 수염을 길게 드리운 그야말로 바이칼 신령같이 생긴 사람인데, 가계가 독특했다. 아버지는 부리야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이었고 어머니는 에벤키인과 러시아인 혼혈이었는데 바이칼지역의 역사와 민속 특히 샤머니즘에 남다른 연구가 깊었다. 그의 제자인 레나를 함께 만났는데 그녀는 부리야트인으로서 민속학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러시아지배하에서도 자신의 민족문화를 보존하기위해 열심이었다.
스비닌교수는 부리야트족 연구가 역사기록이 하나도 없고 구전자료밖에 없어서 참 힘들다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같은 몽골리안으로서 자신도 혼혈이며 양국간에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 서로 교류하기 위해 한국인과 부리야트 청춘남녀들이 결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부리야트 조상신들이 여러분들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라고 축원해주었다.
바이칼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은 우리가 아는 시베리아라는 춥고 어두운 유형의 땅이란 선입견을 단호히 깨부순다. 길고 긴 겨울조차도 이 한반도의 나그네에겐 황홀한 백설의 향연으로 지워질 수 없는 청명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바이칼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그 위대한 풍광, 천혜의 절경들과 맑고 투명한 물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바이칼은 살아있는 우주이며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뭍 생명들의 귀의를 받아들이는 지구의 큰 영혼이다. 해마다 바이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조물주에 감사한다. 우리의 이웃 시베리아에 이토록 위대한 안식의 성지를 베풀어 주신데 대하여 정녕 찬양과 찬송의 기도를 마음속 깊이 봉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