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 ‘물’ 테마로 사색 음악적 형상화 / 주옥같은 대한민국 동요 재즈로 편곡하여 / 우리민족의 서정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려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 美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론 브랜튼’(Ronn Branton)
지난 5월 30일, 美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론 브랜튼’(Ronn Branton)의 소속사 뮤지컬파크(대표 김향란)는 론 브랜튼의 정규앨범인 ‘물’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社를 통해 공식 출시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론 브랜튼은 이미 지난 2001년 4곡의 자작곡과 7곡의 클래식 아리아를 재즈로 편곡하여 수록한 ‘Between the Notes라는 음반을 소프라노 김원정과 공동 출시한바 있다. 2002년에는 <낮에 나온 반달>, <따오기>, <가을밤>, <오빠생각>, <꽃밭에서>, <섬집 아기>, <겨울나무> 등 총 14곡의 주옥같은 한국동요를 재즈로 편곡하여 출시한 재즈 동요 ‘낮에 나온 반달’은 한국문학의 서정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다.
또한 브랜튼이 지난 13년간 계속해온 ‘재즈 크리스마스!’ 공연의 라이브 음반을 찾는 관객들이 많았으나, 브랜튼은 자신이 원하는 녹음여건이 충족될 때까지 음반 출시를 미룬 채 라이브 무대를 고집해왔다.
드디어 ‘론 브랜튼’은 2012년부터 재즈음악 역량을 총결집한 음반출시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심혈을 기울려 작곡한 곡 중 총 9곡을 엄선하여, 지난해 8월 20일 세종문화회관과 동월 24일 예술의전당에서 두 번의 라이브 공연을 가지면서 자작곡들을 재점검하고 관객반응을 살피는 등 치밀하게 녹음을 준비했다.
● 물! 끊임없이 흐르며 무한대의 재탄생
‘물’을 주제로 론 브랜튼이 그 동안 쏟아 부은 음악적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자작곡들로 채워진 음반! 론 브랜튼은 이렇게 반추한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을 거듭하는 어떤 것, 그건 바로 물입니다.
제가 이번 음반에서 선보이는 자작곡들은 모두 물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물의 들판 (Water Fields)’에서 보여지듯 봄 물 가득한 들판에서 발견되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물에서부터 우면산 산사태를 불러왔던 그 지독한 폭우를 보며 작곡한 ‘망할 홍수(Damn The Flood)’에서 보여지는 여름 홍수 때의 그 악의적인 물까지- 물은 때론 아름답게 때론 지극히 악의적이고 파괴적으로 - 제 음악 속에 등장합니다.”
론 브랜튼의 피아노에는 명징한 사운드와 독특한 색채감을 지닌 보이싱(voicing)이 있다. 그리고 짜임새 있는 구조가 있다. 론 브랜튼의 음악은 이번 음반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들이 매우 다선율적이다 보니, 물이라는 컨셉처럼 중복되고 흐르는 멜로디 라인을 표현하기 위해서 피아노, 색소폰, 기타처럼 하모니와 ‘폴리포닉(Polyphonic)’라인들을 모두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을 전면에 내세웠어요. 이렇게 세 악기를 모두 사용함으로써, 선율과 모티브가 흐려지다가 이들이 조화를 이룰 때는 다시 예리해지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멜로디가 두 옥타브 이상 벌어지면 같은 멜로디라도 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요. 각 악기들이 갖는 차이점과 그룹사운드로부터 만들어지는 결의 특징을 묘사하는 듯한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내곤 했죠.” 이는 미국의 유명한 재즈 편곡자겸 작곡자인 ‘스탠 켄튼(Stan Kenton)’의 음악적 테크닉에 지대하게 영향 받는 탓이라 할 수 있다.
● 혼돈의 코스모스, 절제의 美學 ‘수록곡’
▲ 론 브랜튼은 무한한 짜임새 속 신비로운 비밀을 연신 탐색한다.
1. Damn the Flood 망할 홍수 ∇ 2011년 폭우로 엄청난 물과 산사태가 서울을 휩쓸었습니다. 홍수의 기세는 저항할 수 없으리만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피아노와 색소폰이 첫 주제 마디를 연주하면 거친 기타가 A 섹션을 반복하며 엄청난 분노를 표출합니다.
2. Water Field 물의 들판 ∇ 한국에서는 5월이 되면 모를 심기 위해 논에 물을 벙벙하게 가둬둡니다. 이때 논길을 걸어보면 논물 속에 하늘이 둥둥 떠 있고, 사방에 아카시아 냄새가 가득합니다.
3. The Source 샘 ∇ 모든 물줄기에는 샘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이 땅에서 솟아나오는 그 시작점 말입니다.
4. Wanderlust 방랑벽 ∇ 이 곡은 색소폰과 기타가 이끄는 멜로디로 시작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피아노, 색소폰, 기타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동시에 같은 악구를 연주합니다. 이 곡은 피아노와 색소폰이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5. And Then 그리고 난 다음 ∇ 저 아래 어딘 가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전 차가운 전율을 느꼈습니다. 어떤 문, 어떤 순간들은 일생에 단 한번 밖에는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6. Downstream(When We Meet Again) 하류(우리 다시 만날 때) ∇ 때로 우리는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잃고 그걸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 아래 강 하류 어딘 가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7. Temple Rain 산사의 비 ∇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백련사는 그 날 하늘에서 내리는 물과 바다의 물이 합쳐져 온통 물로 둘러싸였습니다.
8. Dorongi 도롱이 ∇ 도롱이는 짚이나 띠 같은 풀로 촘촘하게 잇달아 엮어 들이치는 빗물이 스며들어가지 않게 만든 재래식 우비입니다. 전 비옷에 모자를 쓰고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9. Tears 눈물 ∇ 이 물은 그 어떤 언어로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음악만이 담아낼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세월호 참사로 어린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께 바칩니다.
● 야생의 벌판에 만드는 정원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 속에 담긴 음악가의 사유를 듣는 것이며, 그의 정신구조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美워싱턴 포스트는 론 브랜튼을 ‘매우 시적(詩的)인 피아니스트’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의 음악을 시에 비유한 것은 그의 강하고 간결한 표현양식을 염두에 둔 것일 것이다.
김진묵 음악평론가는 “론 브랜튼의 음악은 예리한 지성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음악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튼의 음악은 차갑다. 맑다. 탄탄하다. 그리고 론 브랜튼은 무한한 짜임새 속 신비로운 비밀을 탐색하고 그리고 사색한다!
이어 김진묵 선생은 론에게 “당신이 한국에 있음으로 해서 우리 재즈가 훨씬 탄탄해졌다.”고 격찬의 말을 여러 번 했다. 플레이만 있고 음악이 없는 한국재즈의 맹점을 그가 보완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음악에 담는 데에 대한 찬사였다.
브랜튼 음악 세계의 근원적 DNA는 과연 어디에 궁극적 지향점을 삼고 있는 것일까? 관조적이고 사색적인 그는 이에 대해 ‘야생의 벌판에 정원을 만드는 일’이라며 미소 짓는다. 론 브랜튼은 올 8월 2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음반출시 기념 콘서트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