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에서 장흥읍 군청옆의 구 곡자조합 자리에 봉명정을 건립하고 봉명정의 詩 들을 한글로 번역해서 편액으로걸다~
봉명정의 현판은 치인 이봉준 선생이 쓰셨답니다.
이명흠 장흥군수님의 행복숲가꾸기 차원에서 정각을짓고 봉명정 당호를 걸게된 계기를 설명하시다.
이승일 장흥군의회 의장님의 인사말씀.
백광철 기산이장의 봉명정 유래설명, 팔문장 전통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다가 부수적으로 봉명정에대한 詩를
김규정선생 박형상 변호사 정민교수 이하상선생 백수인 교수등 으로부터 원문과 번역등을 자료확보한 경위등,
기산마을에 1986년 봉명재서당 당호를 잊지않기위해 주민들이 사장나무밑에 기 봉명정을세웠으나 박형상 변호사
등과 인터넷상에서 기산문집 공람중에 장흥의 3대 봉명지지를 알게된 경위를 설명하고 자신은 한학자나 지역의
향토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短文한 사람이지만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 옳타고 생각되어 번역해주신
학자들의 양해를 구해서 박귀용 아저씨를 통해서 군청에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건산3구 마을 원로 어른들이
부동정 이라는 당호를 지으셨지만 역사적 자료들을 선택해서 봉명정으로 장흥군이 선택하고 보니 건산3구 어른들께는
대단히 죄송스럽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나 역사적 자료를 살펴볼때, 봉명정이 유지 되었을때 우리 장흥군이 가장 흥성 했다고 말하고 이제 시인 이시자
문화군수이신 이명흠 장흥군수님이 봉명정을 재건하셨으니 우리장흥의 중흥시대가 열릴것 같다고말해 큰 박수를받고
누구든지 봉명정에 올라보면 선산에 봉이 울듯이 크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덕담도 덧붙였다~
아울러 9분에 의한 12수의 봉명정 詩를 자료로 드렸는데 우선 4분만 편액을 걸게되어 서운 하다고 말하고
나머지 분들의 詩 작품과 번역해주신 박사님들의 소개를 정리해 드린 봉명정의 유래碑를 세워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선 4분의 봉명정에 대한 한시를 한글로 번역해서 걸어진 편액을 참석자들과 함께 읽어보다~
이명흠 군수님께서 추가로 나머지분들도 편액으로 만들어서 걸게 하라고 하시면서 송경래 마을원로 원로선생님이
오늘 기산이장의 소개를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봉명정의 역사적 자료를 잘 알았지만 객지에서오는 사람들이나
오늘 참석하지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소개비를 세워주실것을 부탁하자 흔쾌히 승락하시고 우리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을이자 문학관광 기행 특구라고 말씀하시고 반드시 빠른시일내에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답니다.
鳳鳴亭의由來
우리 長興은 본래에 文林義鄕 이라 칭송되는 고을로서 수많은 文人과 義兵이 많이 배출된 고장이다.
그 밑 바탕에는 長興의 세곳의 鳳鳴之址가 있었는데
1) 汭陽江 東岸의 鳳鳴亭
2) 岐山의 鳳鳴齋 書堂
3) 南山西麓의 鳳鳴坮
문헌상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조선초기 長興都護府 府使 卞袍에 의해 鳳鳴亭이 창건 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曺汝欽의봉명정 중수기(1555) 동국여지지(1656) 장흥읍지 정묘지(1747)
대동지지(1861~1866)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장흥의 선비들은 봉명정을 중국의 악양루, 황학정,등왕각에 빗댈정도로 예양강 봉명정의
풍광에 큰 자부심을 갖고 문학으로 노래 했던것 같으며
추강 남효온, 영천 신 잠, 기봉 백광홍, 점필재 김종직, 옥봉 백광훈, 반곡 정경달, 취곡 조여흠,
만수재 이민기 등이 鳳鳴亭 혹은 汭陽江 東亭에 대하여 읊은 漢詩들을 한양대학교 정 민 교수,
박형상 변호사, 한학자 김규정, 이하상 선생등이 한글로 번역 해놓은 자료들을
岐山마을 白光哲의 제공으로 김희태 문화재 전문위원의 감수를 받아
이곳에 장흥군이 도시숲 가꾸기 차원으로 건립해 주신 행복숲에 주민들의 합의로
亭號를 鳳鳴亭이라 이름하고 봉명정의 유래를 기록하는 바이다.
2010년 1월 일
密陽人 朴貴用 謹識
첫댓글 감사합니다..개인적으로 매형이 관여되었다고 하니 더 감사드리구요.. 항상 고향을 위해 노력하는 백광철이장에게도 감사드리며 더욱더 수고하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