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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자] 04
S#1. VIP 룸 / 낮
도영과 정희, 들어선다.
사월 : (놀라) 어? 안녕하세요.
도영 : 벌써 출근 시작했어요?
사월 : 아뇨, 이번 주까진 교육이예요.
도영 : 난 엄마랑 같이 쇼핑 나왔어요.
사월 :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최정희 교수님. (공손히 90도 인사)
정희 : .............
사월 : 신입 쇼퍼 윤사월입니다. VIP 명단에서 교수님 존함 외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
정희 : ....... 낯이 익네.
사월 : 제가 좀 흔한 인상이라서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도영 : 팀장님은?
사월 : 금방 오실 꺼예요. 그동안 음료 준비해 드릴께요. 커피보단 생과일 쥬스가 좋으시겠죠?
도영 : 엄마, 그러실래요?
정희 : 그래.
도영 : 쥬스로 주세요.
사월, 비행기 안의 갤리처럼 커튼이 쳐져 있는 탕비실로 들어간다. 오렌지를 냉장고에서 꺼내 쥬스 만들 준비를 하는 사월.
밖에선 문이 열리고 팀장, 들어온다.
팀장 : 어머! 교수님 나오셨어요. 도영씨도 같이 오셨네.
도영 : 제가 졸라서 데이트 신청 했거든요. 엄마 여름옷하고 구두 좀 봐주실래요?
팀장 : ....이를 어째.... 미리 전화를 좀 주고 오시지.... 오늘 예약도 꽉 차고 브랜드 쇼도 하나 있는데......
도영 : 다른 쇼퍼 분 계시잖아요.
사월, 귀가 솔깃해 커튼 쪽으로
팀장 : 저 친구는 신입 막내라 오리엔테이션 중이예요.
사월 : (안에서 혼잣말) 나 할 수 있는데.....
팀장 : 그럼 차 한 잔 하면서 기다리실래요? 한 시간내로 금방....
정희 : (까칠) 됐습니다. 다음에 하죠. (일어서는데)
도영 : 엄마 우리 매장 좀 구경하고 차 마시면서 기다려요. 그럼 한 시간 금방 갈 꺼...... (예요)
정희 : 넌 내 시간이 그렇게 우습니? 내 한 시간 허투루 써도 된다고 왜 니 맘대로 정해?
도영 : ..........
정희 : 이런 데 오면서 예약전화를 하는 건 기본 아니니. 남이 써 주는 원고나 앵무새처럼 읽을 줄 알았지. 머리를 안 써, 머리를.
사월, 놀라 안에서 숨죽이고 있다.
사월 : .....(흡).............
팀장 : (난처) 교수님, 잠깐만 계세요. 제가 약속을 조정해 보겠습니다.
정희 : 다음에 합시다. 차나 좀 내줘요. (나간다)
팀장 : 교수님!
도영 : 죄송해요. 다음에 올께요. (따라 나간다)
두 모녀, 나간다. 썰렁한 정적.
사월, 커튼 안에서 살그머니 나온다.
사월 : .......... 가셨어요?
팀장 : (전화 들어) 운행부죠? 나 박팀장인데, 1층에 차 좀 대기시켜 주세요. 최정희 교수님 내려가실 꺼예요, 네.
오늘 심기 불편하시니까 잘 모시라 전해주세요. 부탁해요. (끊고)
사월 : 아니 남들 앞에서 어떻게 자기 딸한테 그런 말을 한대요? 신도영 아나운서 똑똑한 건 4천만이 다 아는 데 어떻게....
그 분 성격이 원래 그러세요?
팀장 : 윤사월, 고객에게 호기심 절대 금지! 담에 오셨을 때도 묻지 마. 먼저 말씀 하시기전엔 절대 묻지 마.
사월 : ........알겠습니다.
S#2. 백화점 1층 일각 / 낮
정희,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뒤에서 도영 따라간다.
1층 입구로 가는 정희, 입구에 선 멋진 가드가 문을 열어 준다. 검은색 승용차, 와서 선다.
정희, 차 문을 여는데
도영 : 엄마........죄송해요.
정희 : 넌 언제쯤 내 맘에 들래?
도영 : 엄마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아서 예약전화 한다는 걸 깜빡했어요. 우리 팀에서 계속 전화도 오구....
정희 : 너 그렇게 변명, 설명 많은 거. 누굴 닮았는진 모르지만 참 구질구질 해. 그냥 잘못했다하고 말어.
도영 : 네, 잘못했어요 엄마. (애교) 한번만 봐주세요.
정희 : 회사로 들어가니?
도영 : 네. 오늘은 좀 늦을꺼예요.
정희 :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겠네.
정희, 차에 타고 차 떠난다.
차를 보고 미소로 손 흔들던 도영, 손도 내리고 점점 굳은 표정으로 변한다. 멀어지는 차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도영.
도영 : .........지영이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꺼예요.
쌩한 눈빛으로 걸어가는 도영.
S#3. 아나운서실 / 낮
화이트 보드 가득 시간대 별 뉴스 배당 아나운서들의 이니셜이 쓰여져 있고 확인했단 싸인이 옆에 있다.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도영.
도영 : 안녕하세요...
선배 : 야, 신도영.... 너 얼굴 보기 힘들다. 잘나가도 좀 이런 데 와서 놀고 그래.
도영 : 저 맨날 와서 비비적 거려요. CCTV 확인해 보세요. 맨날 저기 앉아서 졸고 있지.
선배 : 아이구, 여우. 오늘 22기 3분 스피치 니 차례지?
도영 : (씩씩하게) 예!
선배 : 애들 기죽이지 말고 살살해.
도영 : (뉴스 보드판 보면서) 근데 4시 뉴스엔 왜 체크가 안 돼 있지? 장시은이가 모르는 거 아녜요?
S#4. 화장실 안 / 낮
변기에 앉아있는 시은.
시은 : 어머! 아까 보고 그냥 지나쳤나봐요. 깜빡하고 있었어요. 금방 갈게요, 선배님.
S#5. 아나운서 실 / 낮
도영, 책상에 앉아 정리 중.
선배 : 목소리 울리는 거 보니 화장실이네.
시은 : (E) ....그게 좀......
선배 : 당장 일어나, 나머진 뉴스하고 해. 스튜디오 가 있어. 원고 그리 보낼게. 여기 와서 받아갈 시간 없다.
S#6. 복도 / 낮
원고를 든 아나운서 여자 후배,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걷고 있다.
도영, 뒤에서 걸어가다
도영 : 지금 그거 스튜디오에 가져가는 뉴스원고 아닌가?
후배 : (핸드폰에) 잠깐만... (도영에게) 네, 맞는데요.
도영 : 뛰어야 하는 거 아냐?
후배 : 빨리 걷고 있는데요.
도영 : 아나운서가 한번 읽어 볼 시간은 줘야지. 뛰어도 모자랄 판에 전화까지하면서 걸어가?
후배 : .....죄송합니다. (핸드폰 닫는다)
도영 : 그거 벗고 뛰어가.
후배 : 네?
도영 : 하이힐 벗고 얼른 뛰어가라구.
후배 : .........
도영 : 이렇게 벗고 뛰어가라구.
도영, 하이힐을 벗고 후배의 손에 들린 원고를 잡아 채 뛰기 시작한다.
후배 : ......(어벙).........
하이힐과 원고를 들고 뛰어가는 도영, 복도를 지나던 많은 사람들 의아한 듯 돌아본다.
PD와 이야기하며 걸어오던 한 기자, 카메라에 도영의 모습을 따라가며 담는다.
S#7. 스튜디오
초조하게 동동거리며 앉아있는 시은.
숨이 치받혀 달려와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도영. 시은에게 원고를 준다.
도영 : 여기!
시은 : 자기가 가져왔어? 고마워. (얼른 원고를 읽어보는데).........
도영 : (가쁜 숨 돌리며 힐을 다시 신는다)
시은 : ...............구두 벗고 뛰어온거야?
도영 : 늦음 안되잖아. 수고!
시은 : ......(못마땅한) 허!..... 저 쇼맨쉽........
라디오 PD 소리친다. ‘30초전입니다’
S#8. 대회의실 / 낮
이름표를 단 막내 기수 아나운서들 앉아있다.
도영, 앞에 서서
도영 : 오늘의 3분 스피치, 주제는........ 어머니입니다.
아나운서들 서로 쳐다보며 웅성웅성....
도영 : 원래 예상 주제는 여름이었죠? 미리 준비하고 외워서 하는건 누가 못하나. 먼저 이강현아나운서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남자 아나운서, 쭈삣거리며 나온다.
남자 : 여러분 어머니란 말을 들으면 어떤 감정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초등학교 때 어느 날 집으로 날아온 등기 한통에....
도영 : 등기가 맞아요, 등끼가 맞아요?
남자 : ......(우물쭈물) 등기.....가 맞습니다.
도영 : 땡! 등끼가 맞습니다. 계속 하세요.
남자 : 등끼 한 통을 보시고 어머니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제 할머니, 친정 어머님께서 보내신.....
도영 : 이럴 땐 그냥 친정어머니, 라고 하는 게 낫죠.
남자 : ......죄송합니다.
도영 : 계속하세요.
남자 : ..........어디까지 했죠?
도영 : 방송 사고 내셨군요. 들어가세요.
남자 아나운서, 머리 긁적이며 들어오고
도영 : 3분을 애드립으로 채우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아직 실전 경험이 없는 막내 기수라 해도 이건 아니죠. 어떤 주제가 나와도
3분동안은 혼자 떠들수 있어야지.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 국내외 연예계소식까지 업데이트 해놓는 게 기본자세 아닌가요.
일동 : .............
도영 : 저는 신도영 아나운서입니다.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이고, 큰 행사의 사회는 대부분 제가 맡죠.
안팎으로 인정받는 아나운서입니다. 그런데 저도 불과 1시간전, 남이 써준 원고나 읽을 줄 아는 앵무새란 소릴 들었습니다.
아나운서들 모두 기막히고 기분 나쁜.... 웅성웅성.
여자아나운서 : 누가 감히 선배님한테 그런 말을 했습니까?
도영 : 아주 고고하신 교수님께서요.
남자아나운서 : 그 무식한 교수가 누굽니까?
도영 : 우리는 백 대 일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와서도 종종 이런 소릴 들어요. 여러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과 책을 읽고
논리적인 사고를 말로 옮기는 연습을 하세요.
일동 : ....(받아 적고)
도영 : 그리고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그 프로그램을 최고로 만들겠단 욕심을 가져요. 원고만 기다리고 앉아 있지 말고
회의도 같이 하고 밤도 같이 새주세요. 그러다보면 기획이 뭔지 감도 오고, 제작진과도 신뢰가 생깁니다.
그럼 개편 때마다 섭외 1순위 진행자가 되는 것이고, 세상을 향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여자아나운서 : 선배님 지금 원더우먼쇼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도영 : 그럼 박수 한번 쳐야지.
일동 : (와.......박수)
도영 : 전 아까 그 무식한 교수님에게 변명 대신 근사한 펀치를 한방 날릴 겁니다. 그 분은 결코 받지 못할
근사한 상을 한 번 더 받아볼까해요. 여러분도 행운을 빌어주세요.
일동 : (와..... 박수)
남자아나운서 : 원더우먼쇼에서요.... 무조건 격려하고 응원한다는 막무가내 컨셉은 어떻게 잡으신건지 궁금합니다.
도영 : 제가 필요했으니까요. 나를 무조건 격려하고 응원하고 무식하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제가 배고파서 그랬어요. 아직도 그렇구요. (미소)
S#9. 사월의 반지하 집 / 낮
변두리 주택가. 반 지하 방. 옹색한 살림이지만 질서가 있고 주인의 칼라가 느껴지는 반 지하 방.
책으로 가득한 방이다. 철학, 소설, 연애, 심리, 건강 등등....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꽉 찬 방.
외국 잡지에서 오린 멋진 패션사진도 벽에 가득 붙어있다.
달력엔 비는 날 없이 꼬박 체크돼 있는 일정들. (시장, 백화점 조사, 광장 시장 원단 가게, 헬스비 입금일.....)
다양한 옷들과 소품도 가득한 방.
용자, 박스에 주섬주섬 사월의 짐을 싸고 있다. 사월, 들어서다 화들짝 놀라
사월 : 야! 너 남의 집에서 뭐하는거야.
용자 : 니 뽕브라 장난 아니다. 이 정도면 사기야.
사월 : 얘가 미쳤나! 남의 방은 왜 뒤져.
용자 : 이삿짐 싸는거야. 너 백화점 취직하면 우리 집 들어와서 살기로 했잖아.
사월 : 내가 언제?
용자 : 월세 받을꺼야, 걱정말고 짐 싸. 여기서 직장 다니기 너무 멀어.
사월 : 됐어. 여기서 다녀도 괜찮아.
용자 : 우리 집에 방 많아. 재벌 2세가 좋은 일 좀 한다는데...
사월 : 괜찮다니까 글쎄.
용자 : (버럭) 난 너 그러는 거 정말 싫더라. 이럴 때 남들은 고마워, 성공해서 나중에 갚을게...... 이러구 만다.
너는 왜 남이 그냥 주는 걸 못 받아? 왜 남들 보다 두 세배 더 자존심 상해하고 꼭 갚으려고 해? 받을 땐 한번 받아 봐.
사월 : .........
용자 : 남이 주는 거 못 받는 것도, 무조건 바라는 거지근성만큼 후진 거야.
사월 : 너 나가.
용자 : 너 나랑 싸울래? (일어나 두 주먹 불끈) 일어나! 붙어!
사월 : .........속옷은 내가 쌀게 너 나가라구.
용자 : .....(마음 풀린다....미소)..기집애........
사월 : 아 비켜. 남의 짐은 다 헤집어 놓고. (바락) 이게 뭐니 이게!
용자, 사월을 쿳션으로 한 대 친다.
용자 : 좋으면서 내숭이야.
사월 : 어쭈 이게!
사월과 용자, 서로 툭탁툭탁..... 이상한 모자 꺼내 씌워놓고 깔깔 웃는 사월과 용자.
사월, 박스 정리하다 안에서 털실 목걸이를 꺼내 걸어본다. 거울 보며 미소.
도영 : (E) 보육원에 4월에 들어와서 이름이 사월이가 됐대요. 거기 원장님 성을 따서 윤사월.
S#10. 방송사 사무실 / 낮
회의 시간. 도영, 팀원들에게 이야기중.
도영 : 그날 회식 때 다들 봤죠? 그 당돌함과 용기. 비록 나랑은 안 좋게 만났지만 난 윤사월한테 관심이 생겼어.
이 친구의 부모 찾기, 얘기 될 것 같아요.
고훈PD : 도영씨라면 친부모가 궁금하겠어? 만나고 싶고?
도영 : ..........네.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겠어요.
은비 : 의외로 꺼려하는 경우도 많던데.....
도영 : 본능 같은거 아닐까. 먼발치에서라도 그냥 한번 보고싶어. 아무리 좋은집에 입양을 갔어도, 지금 부족한거 없이 살고있어도
나한테 뼈와 살을 준 친부모가 누구인진 당연히 알고 싶지. 그 그리움이 지금까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됐을수도 있고.
조연출 : 상당히 설득력 있게 얘기하시네... 꼭 자기 얘기처럼.
도영 : 분장실에서 도둑으로 오인 받고 날 한 대 친 것부터 얘길 시작하는 거야.
은비 : 그럼 오프닝은 이렇게? (멘트 해보는) 여러분 얼마 전 인터넷에 떴던 제 부은 얼굴 기억하실 겁니다.
조명 때문에 그렇네, 화장품 독이 올랐네....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도영 : 저 그날 분장실에서 도둑으로 오해받은 한 여자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습니다.
조연출 : 채널 절대 안 돌아가는데요. 그 다음이 너무 궁금해.
도영 : 친엄마를 만났을 때의 그 느낌도 어떤지.... 알게 해주고 싶어요.
고훈 : 난 이거 반대.
도영 : 잘 만들면 시청률도 올리고 다시 한 번 상도 탈 수 있어요. 뉴욕 페스티벌에 이걸로 출품하면..........
고훈 : 아시안 페스티벌에서 받은 걸로도 난 대만족이야. 괜히 불쌍한 사람 이용해서 시청률 올리는 거 나 싫어.
도영 : ............
S#11. 시사 교양국장실 / 낮
국장, 반갑게 도영을 맞는다.
국장 : 어서 와요, 도영씨.
도영 : 저희 팀 방이 다른 층에 있다 보니까 뵙기도 힘들어요.
국장 : 그러게 말야. 신도영 단짝 김은비 작가도 보고 싶네. 담엔 같이 와. 내가 점심 살테니까.
도영 : 지난 번에 놀라셨죠? 저 얼굴 부어서 방송 했을때요.
국장 : 정신병자가 분장실에 왔었다면서...
도영 : 그 때 말씀드린다 하고 깜빡했어요. 절 때린 그 친구, 물건이예요.
국장 : 어떻게 물건인데?
도영 : 뉴욕 페스티벌에 출품할 만큼 물건이예요.
S#12. 방송국 사무실 / 낮
은비,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 쓰느라 바쁜. 고훈, 들어온다.
고훈 : 생각해 봤는데 그 친구 부모찾기 프로젝트 괜찮은 것 같아. 국장님이랑 방금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했는데 대찬성이더라구.
은비 : 국장님이 좋다니까 갑자기 생각 바뀐 거 아니셔?
고훈 : 날 너무 비굴한 월급쟁이로 치부 마셔.
조연출 : 나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고훈 : 이거 빨리 만들어서 뉴욕 페스티벌 출품기간에 맞추래.
조연출 : 아자, 뉴욕! 거기서 상 타면 선배는 승진, 우리는 보너스!
고훈 : 그 친구가 오케이 안하면 꽝인거구.
은비 : 신도영이 못하는 게 어딨어요. 당연히 설득하겠지.
S#13. 용자네 옷가게 / 밤
물냉면과 비빔냉면에 겨자치고 초치는 용자와 사월. 일회용 용기 아닌 제대로 된 냉면 그릇에 담겨 있다.
사월 : 더울 때 야식은 냉면이 왔다야.
용자 : 토요일까진 이삿짐 옮기는 거 약속했다.
사월 : 몇 번을 말해. 귀찮아 죽겠네. 너나 정신 똑바로 차려. 다음 주 부턴 너 혼자 가게 끌어가야 돼.
용자 : 걱정마. 이래뵈도 나 준비된 CEO야.
사월 : CEO가 뭐의 약자인지나 알어?
용자 : 아우, 시끄러. 냉면 불어.
도영, 들어서며
도영 : 어머, 이게 뭐야! 내가 냉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도영, 달려들어 비비대고 앉는다.
도영 : 마침 젓가락도 세 개네. 고마워라.
사월 : 누구세요?
도영 : 겨자 좀 팍팍 쳐 봐요. 물냉면도 같이 먹을래.
용자 : 이거 드세요. 옆 집에서 바로 하나 더 시킴 돼요. (나가는)
도영 : 비빔 사리 하나 더 추가요. 내가 쏠께요.
사월 : 웬일이세요?
도영 : 아까 울 엄마 땜에 쪽팔려 죽을 뻔했네.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마요.
사월 : 아나운서가 쪽팔리단 말을 쓰네.
도영 : 난 뭐 사람 아닌가. 식초 좀 더 넣지. 새콤해야 맛있는데.
사월 : .......낮엔 예약을 하고 오시지 그랬어요.
도영 : 그러게 말예요. 동우씬 언제 와요?
사월 : 내일 온대요.
도영 : 한 턱 낼꺼죠?
사월 : 동우가 내지, 내가 내요?
도영 : 사월씬 동우씨 오는 거 안 반갑나보네. 오지 말라고 전화해야지. (핸드폰 꺼내는데)
사월 : (핸드폰 치우며) 어허! 냉면이나 드세요.
도영 : 동우씨 오니까 반갑죠?
사월 : 반갑죠. 헤어졌던 피붙이를 다시 만나는 느낌인데.
도영 : 그러니까 이 참에 부모님도 같이 찾아봐요.
사월 : ........안 내켜요.
도영 : 왜?
사월 : 날 버린 거였음 어떡해요.
도영 : 만약 그렇대도 사정이 있었겠죠. 이젠 시간이 흘러서 어떤 사정인지 얘기하실 수 있을테구.......
그리고 아이를 잃어버린 경우일 수도 있잖아요.
사월 : ...........
도영 : 우리가 도와줄께요.
사월 : 지금 나 꼬시러 온거죠? 방송 나와서 엄마찾고 울고 불고 하라구
도영 : 싫음 말구. 원더우먼쇼 출연하고 싶단 빅스타들 줄 서 있어요. 사월씨 같은 동그랑땡이 나와서 시청률 까먹음 나도 싫어.
사월 : 왠 동그랑 땡?
도영 : 동그랗잖아, 얼굴.
사월 : 나름 브이라인 턱선이거든요.
도영 : 내 아는 사람이 얼마 전에 친엄마를 만났어요. 30년 만에.
사월 : ..........
도영 : 친엄마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인생이 다른 것 같대요.
사월 : 어떻게요?
도영 : 나중에 얘기해 줄께요. 사월씨가 결심을 굳히면.
사월 : ...........
도영 : (열심히 물냉면 먹는) 음.... 이집 꺼 너무 맛있다. 그것도 줘봐봐.
사월 : (냉면 그릇 안고 돌아 앉는)
도영 : (푸하하)
S#14. 도영네 거실 / 밤
도영, 들어선다.
정희 : 많이 늦진 않았네.
도영 : 네....... 아빠는 오셨어요?
정희 : 술 약속 있다고 늦으신댄다.
도영 : 저녁은 드셨어요?
정희 : 입맛이 없네.
도영 : 입맛 돌게 비빔국수 만들어 드릴까요?
정희 : 됐구,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옷 갈아입고 내려 와.
S#15. 부부 침실 / 밤
정희, 앉아있고 도영 들어온다.
정희 : 앉아.
도영 : (앉으면)
정희 : ...............
도영 : .............(지레 짐작으로 엎드리는).....아까 낮엔 죄송했어요, 엄마. 전 정말 엄마랑 있는 게 좋아서 들떠 있다보니
깜빡한 거 있죠. 다음부턴 예약 꼭 .....(하고 갈께요)....
정희 : (말 끊어) 너 결혼 좀 미루면 안되겠니.
도영 : ........결혼을요?
정희 : 그래, 조금만 미루자.
도영 : .........얼마나요? 준세씨는 늦어도 11월엔 하자고 하는데.....
정희 : 지영이가 온 후로 미루자.
도영 : .............
정희 : 올해로 20년이야. 20년이면 하늘도 움직일 때가 됐지. 내가 매일 눈물로 기도하는데. 이사도 안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지영이는 올꺼야. 점집에서도 그랬구, 아니 내가 알아. 내 피를 쏟고 낳은 걔 엄마로 알아.
어젯밤 꿈도 그렇잖니. 새 한 마리가 내 품으로 날아 들어왔어.
도영 : (E) .......그런 꿈은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게 꾸셨잖아요.
정희 : 너한텐 미안하지만 내 솔직히 말할게. 너 결혼한다는 소리 듣고부터 난 더 지영이가 밟히고 아프다.
도영 : ..............
정희 : 지영이도 이제 짝을 찾을 나이가 됐을텐데 이게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
어디서 건달 같은 놈 만나 뜯어 먹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도영 :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엄마.
정희 : 똑똑한척 하는 사람들 그러지. 이 세상 잠깐이라고, 시간 지나면 다 우스워 진다구. 난 아니다, 도영아...이승은 질기고 길어.
쑤시고 아파. 살면서 내려놓을수 있는게 있고, 아무리 버릴래도 버릴 수 없는게 있어. 난 우리 지영이 다시 찾을수만 있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가겠다. 가서 지영이 데려간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서,
불구덩이 속에 쳐 넣고 올꺼야.
도영 : ............
정희 : 앞으로 니 신혼집에 들여놓을 예쁜 접시, 새 냉장고, 니가 입을 웨딩드레스.......이 모든 게 다 나한텐 칼이야. 비수다.
도영 : ........그럼 어떡할까요, 엄마....
정희 : 기다려보자. 날 좀 이해해다오.
도영 : .........지영이가 언제 오는데요?
정희 : 곧 오지 않겠니.
도영 : 10년 후에 오면요.
정희 : .......(노려보는).......
도영 : (E) 영원히 안 돌아오면 전 그냥 늙어 죽을까요. 사랑하는 남자도 잃고.....
정희 : 10년 후에 오면 10년 후에 해.
도영 : .......네.
정희 : 네? 어디서 네야. 너 지금 속으로 웃었어. 겉으론 네 했어. 넌 왜 그렇게 의뭉스럽니. 니 속을 내가 모를 줄 알아?
내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는데 어디서 네야.
도영 : 엄마가 10년 후에 하라면 저 그렇게 할꺼예요.
정희 : ...... 아버지한텐 내가 알아서 얘기하마. 김이사는 네가 설득시켜. 일단 올해는 지나서 하자고.
도영 : 네.
S#16. 도영 방 / 밤
도영, 문 닫고 들어온다. 방구석에 가 멍하니 쭈그리고 앉는다.
도영 : (멍하니)...........
천천히 방문이 열린다. 문 쪽을 보면 어린 지영, 마지막 날 그 모습으로 들어온다. 손에 털실 목걸이를 들었다.
지영 : 언니..........
도영 : ...........
지영 : (문가에 서서) 언니, 나랑 놀아줘.
도영 : (눈물 핑글) 지영아............
지영 : 언니, 우리 나가서 놀자.....
도영 : 지영아, 너 죽었지? 너 안 올꺼지?
지영 : 언니.....
도영 : 오지 마 지영아. 넌 옛날에 죽었어, 그렇지?
지영 : 언니........이 목걸이 나줘.
도영 : (귀를 막고 눈감고 고개를 숙인다) 미안해 지영아. 넌 옛날에 죽었어.
핸드폰 벨이 울린다. 도영, 정신 차리고 핸드폰을 본다.
도영 : (밝게) 은비씨? 대본 잘 써져? 밤참 사다줄까?....... 살이 찌긴, 이 사람아.... 참, 윤사월은 내가 작업 들어갔어.
내일부터 바짝 붙어서 설득할꺼야. 뉴욕에서도 상 한번 타야지. 그래, 수고!
도영, 전화 끊고 방문 바라본다. 닫혀 있는 방문.
멍하니 있다 버튼을 누른다. ‘김준세’ 뜨고.
도영 : 준세씨, 너무 보고 싶은데..... 이리 와 줄 수 있어?
S#17. 준세 사무실 / 밤
통화중인 준세.
준세 : 미국이랑 화상 회의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무슨 일 있어?
도영 :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준세 : (픽 웃으며) 싱겁긴....
도영 : 회의 취소하고 오면 안돼?
준세 : 내일 아침 같이 먹자. 점심 저녁은 미팅이 있어.
S#18. 도영 방 / 밤
도영 : .........아침에 뉴스 있어. 회의 잘 해. (전화 끊는)
외로운 도영의 표정에서 F.O.
S#19. 도영네 부엌 / 아침
F.I. 꽃병과 팬 케익과 계란 후라이, 소세지와 과일 쥬스가 놓인 식탁.
아줌마와 정희, 식탁을 차리고 있다.
수호 : 야.... 여행와서 아침 뷔페 온 것 같잖아.
정희 : 오늘은 이게 땡기더라구요. 당신껀 북어 해장국 따로 해놨어요.
수호 : 다행이오. 나 사실 속으로 철렁했어. (밖에 부르는) 도영아, 아침 먹자!
도영, 수호, 정희 앉아있는 식탁.
거실에선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아침 식탁.
정희 : 음.... 커피 맛있네. 에스프레소 기계 바꾸길 잘했어요.
수호 : 도영이 넌 눈이 왜 그래?
도영 : .......눈이 왜요?
수호 : .... 눈이 부었는데...... 울었니, 밤에?
도영 : 아뇨.
수호 : (정희를 본다)
정희 : 왜 날 쳐다봐요?
도영 : 사실은 어제 DVD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있어서.......
수호 : 녀석두..... 나이가 몇인데 영화를 보고 혼자 울어.
정희 : 도영이가 결혼을 좀 늦추겠대요.
도영 : .............
수호 : 왜?
정희 : 이왕이면 온 가족의 축복 속에 하는 게 좋잖아요. 지영이가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겠대요.
수호 : (못마땅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늘이 해주는 일이 있는거요. 하늘이 해주는 일은 사람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거구. 우린 지영이를 꼭 다시 만날꺼야. 다만 그게 언제인지 모를 뿐이지. 도영이 넌 예정대로 그냥 진행 해.
정희 : (도영을 빤히 본다)
도영 : ...... 아직 정확한 날짜도 안 잡았는데요 뭐.... 엄마, 걱정마세요. 제 결혼 전에 지영이 꼭 찾을 수 있을 꺼예요.
정희 : 니 생각에도 그렇지?
도영 : 그럼요.
S#20. 공항 / 낮
사월과 용자, 서 있다.
용자 : 출근시간이라 비행기도 밀리나.... 왜 이렇게 안 나와.
사월 : 벌써 나왔는데 내가 몰라본 거 아닐까.
용자 : 아까 멋진 남자 하나 지나갔는데 그럼 걘가?
사월 : 차동우 별로 안 멋져.
용자 : (실망으로 시큰둥) 그래? 그 친구 어디서 지낸대? 우리 집에 빈대 붙는 건 아니겠지?
사월 : 걱정마. 유스호스텔 잡아놨대.
용자 : 그럼 다행이구.
사월, 입국게이트 문만 주시하고 서 있다.
동우, 걸어 나온다. 저 만치 서 있는 사월을 본다.
동우 : 사월아!
사월 : ..........동우?
동우 : 그래 나 차동우.
사월 : 와!
동우, 사월을 와락 껴안는다. 두사람, 껴안고 마주보고 펄쩍 뛰고.....
용자 : 완전 멋져!
S#21. 거 리 / 낮
달리는 용자의 차. 조수석엔 사월. 뒷자리엔 동우.
운전석의 용자, 설레고 업되어 있다.
사월 : 여권 줘봐. 진짜 차동운지 확인하게.
동우 : (여권 주며) 자!...... 엉덩이에 점도 보여줄까?
사월 : 좋지, 까 봐!
용자 : 어머어머..... 난 몰라..... 동우씨, 지낼 데는 정하셨어요?
동우 : 예, 남산에 있는 유스호스텔 예약해 놨습니다.
용자 : 그럴 필요 뭐 있어요. 저희 집에 방 많으니까 저희 집에서 지내세요.
사월 : .........??
용자 : 사월이도 같이 살 꺼 거든요. 한 집에서 셋이 지내면 참 재밌을꺼예요, 하하하.
사월 : 박용자, 너 아까랑 얘기가 좀 다르다?
용자 : 특별 정식 준비해 놨으니까 출출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고고씽!
S#22. 용자 아파트 / 낮
용자, 부지런히 왔다갔다 진수성찬의 식탁을 꾸민다. 용자가 왔다갔다 할 때마다 꽃이 피는 식탁.
거실에선 사월, 동우가 가져온 선물을 풀어보고 있다. 꽃 슬리퍼를 신어보고 티셔츠도 입어보고 인형도 보고.....
사월 : 별 걸 다 사왔네.
동우 : 그동안 못해준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등등등....
사월 : 잘 왔다! 서울에 있는 동안 이 누나가 책임질께.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데 다 말해!
용자 : 드시죠.
진수성찬의 식탁. 가운데는 연포탕이 든 냄비. 세 사람,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용자 : 재주 좀 부려봤는데..... 입에 맞으세요?
동우 : 네, 아주 맛있습니다. 연포탕, 진짜 오랜만에 먹어봐요.
사월 : 제대로 인사 못했지? 피붙이 같은 내 친구 박용자야.
용자 :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공손히 인사)
사월 : 자칭 신흥 귀족. 할아버지네 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재벌 2세의 반열에 오르셨어.
용자 : (수줍게 말 흐리는) 이 아파트도 제 명의.... 45평.....
사월 : 나 고2때 우리반 수학여행비 훔쳤다고 누명써서 학교짤렸거든. 그때나서서 애들 서명 받아주고 지금까지 날챙겨준 친구야.
동우 : ..........(너 그렇게 살았구나.... 마음 아린).....
사월 : 넌 어떻게 살았니.
동우 : 니 생각하면서 살았지.
용자 : (일어나며) 흠! 숭늉이 다 됐나.... (가스레인지로)
사월 : 그래서 안 늙었구나.
동우 : 너도 그대로야. 엊그제 보고 다시 만난 거 같다.
사월 : 고1땐가.... 아버지가 불러서 미국 갔잖아. 근데 왜 홍콩에서 잡혀왔니.
동우 : 새엄마랑 이복동생들 사이에서 잘 적응이 안되더라구. 학교만 졸업하고 그냥 나왔어. 미국에서 유도사범으로 일하다가
작년에 친구 소개로 홍콩에 간거야.
용자 : (숭늉 들고 오며) 이젠 정착하셔야죠.
동우 : 홍콩에 간 것도, 우연히 신도영씨를 만난 것도 다 하늘의 뜻 같아.
사월 : 신도영은 어떻게 만난거야?
동우 : ......우연히..... 그냥 거리에서.....
사월 : 무작정 날 찾아달라고 했어?
동우 : 응.
사월 : 찾아 달란 너나, 찾아주는 신도영이나 둘 다 대단해.
동우 : 그럼 검정고시로 대학 간거야? 서울엔 언제 왔어?
용자 : 자, 쌓인 얘기는 천천히. 일단 식사하세요. 한 집에서 살면서 길고 긴 얘기 풀어 내시자구요.
(E) : 핸드폰벨
사월 : (핸드폰으로 달려가 전화 받는) 여보세요. ....네, 동우 만났구요 지금 점심 먹고 있어요...밥 먹고....
서울구경 스케줄이 잡혀있는데요. 네.... 그러세요 그럼 (끊는)
동우 : 누구?
사월 : 신도영씨가 같이 끼고 싶다고.
S#23. 카 페 / 낮
조용하고 고급스런 카페. 준세, 들어온다. 창 가 쪽 테이블로 다가가는 준세.
준세 : 죄송합니다 어머니, 좀 늦었죠.
정희 : 바쁜 데 보자고 해서 미안해요.
준세 : 아닙니다. (앉는)
정희 : 이 집은 밀크티가 유명해요. 그걸로 하실래요?
준세 : 전 그냥 커피로 하겠습니다.
찻잔 놓고 마주 앉은 정희 준세.
정희 : 오늘 도영이랑 통화했어요?
준세 : 그럼요, 아침 저녁으로 꼭 통화하죠.
정희 : ........얘기 안하던가요?
준세 : ......무슨 얘기 말씀이십니까?
정희 : .......내 이럴 줄 알았지. 네네 대답만 잘한다니까. 내가 도영이한테 결혼을 조금만 늦췄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준세 : ...........
정희 : 우리 집엔 좀 상처가 있어요. 얘기 들었죠?
준세 : ...........어떤.........?
정희 : 동생 잃어버린 얘기 안하던가요?
준세 : ......처음 듣습니다. 그런 얘기 안하던데요.
정희 : ................
준세 : 힘들고 아픈 얘기라 안했나 봅니다.
정희 : 내가 유학시절에 신교수 만나서 결혼하고,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어요. 내 앞에서 자식 얘기하는 사람들한텐
불같은 적대감이 솟고.....하다못해 바퀴벌레도 새끼를 까는데 왜 나는 안되나.... 고통스러웠죠,
그러다 포기하고 보육원에서 도영이를 입양했어요.
준세 : .........!
정희 : 왜, 입양됐단 소리도 처음 들어요?
준세 : .........네.
정희 : .......굳이 떠들고 다닐 필욘 없겠지. 하지만 결혼할 사람한테까지 숨길 필요가 있나.....
준세 : ..............
정희 : 여하튼 도영이를 입양해 친 딸처럼 이뻐했어요. 그러다 내가 아이를 갖게 됐고 동생 지영이가 태어났죠.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때가 그 때 아니었나 싶어. 집에선 두 애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난 걔들을 위해서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싶었지. 뭘해도 신이 나고 몸이 펄펄 날았어요.
준세 : ...........
정희 : 지영이가 다섯 살 때, 우리 부부가 해외세미나를 간 사이 애가 없어 졌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지영이 소식을 몰라요.
시간가면 잊혀진다는 거, 거짓말이야.
준세 : .........
정희 : 도영이 결혼얘기 나오면서 난 하루하루가 덴 것처럼 아파요. 지영이가 밟혀서 미칠 것 같아.
김이사, 난 지영이를 올해 꼭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결혼을 조금만 더 늦춥시다.
준세 : .........어머니 마음 얼마나 아프실 지..... 제가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일정은 도영이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정희 : 고마워요.
준세 : 하지만 저희도 저희의 계획이 있습니다. 무조건 기다릴 수 만은 없습니다.
정희 : ...........설마 내가 10년 후에 하랄까봐.
준세 : 그리고 도영이가 그 댁의 친 딸이건 입양된 딸이건 제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도영이를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어머님도 오늘 저한테 그 얘기를 하셨다고 도영이한테 알리지 않으셨음 합니다. 나중에 도영이가 얘기 할 때가 있겠죠.
안해도 상관없구요.
정희 : 도영인 참 복이 많은 애 같네..........
준세 : 도영이 동생 지영이..... 꼭 찾았음 좋겠습니다. 저도 이쁜 처제가 생기면 좋지요.
정희 : (환해지며) 그렇죠? 우리 지영이 돌아올꺼야.
S#24. 창경궁 / 낮
신나게 뛰어가는 사월과 동우. 궁을 둘러보며 구경하고 문 앞에 서서 ‘마마’ 부르며 장난치고.....
사월 : 옛날에 왔던 기억 나지?
동우 : 내가 여기서 너 업어줬잖아, 다리 아프다고 찡찡대서.
사월 : 이 사람 참 베풀어준 것만 기억하네. 못 써!
동우 : 아, 또 떠오른다.
사월 : 뭐?
동우 : 내가 저 안에 살던 시절. 넌 궁에서 제일 속 썪이는 무수리였구.
사월 : 너 좀 맞아야겠다.
사월, 달려들어 동우를 치는데 동우 막는다. 두 사람, 성룡의 코믹영화처럼 치고 막고 돌려차고 피하고 합이 착착 맞는다.
동우 : 와우! 내가 가르쳐 준 거 다 기억하네.
사월 : 그러게. 몸이 기억하고 있다야.
용자 : (E) 여기 보세요! 웃어! (웃음 유도) 헤헤헤헤헤.....
복고풍 선글래스에 양산 쓴 용자, 저 멀리서 두 사람 사진을 찍는다.
동우 : 저 친구 진짜 재밌다.
사월 : 좀 희귀한 캐릭터야.
용자, 카메라 들고 가이드처럼 지시한다. 용자의 지시대로 따르며 사진 찍는 동우, 사월.
용자 : 자, 하늘 보고 웃는다. 큐! ..... 걸어가다 돌아본다, 큐!
웃긴 포즈로 사진 찍으며 깔깔대는 세 사람. 동우, 사월의 웃음을 보고 더 밝게 웃는다.
도영, 걸어오며
도영 : 너무 하는 거 아냐. 힘들게 찾아 준 사람은 쏙 빼놓고!
동우 : (반갑게 달려간다) 도영씨!
도영 : 동우씨...... 얼굴이 활짝 폈네. (손 내밀며) 축하해요!
동우 : (손잡아 악수하다가 도영을 껴안는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고마워요.
용자 : (질투) 왜 저러는건데!
S#25. 야외 카페 / 낮
팥빙수 먹고 있는 사월 동우 용자 도영.
도영 : 두 사람 재회에 나도 일조했는데 당연히 좀 끼어서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그래야하는 거 아니예요?
사월 : 지금 드시고 있잖아요.
도영 : 빙수 갖고 되요? 파무침에 삼겹살, 그리구 쏘맥도 한잔 해야지.
동우 : 쏘맥이 뭐예요?
용자 : (엄지 세우며) 술중의 술!
도영 : 오늘 저녁에 뭔지 알려줄께요. 저녁 내가 쏘게 해줘요.
사월 : 오늘 저녁은 좀 힘든데....
도영 : 왜요?
사월 : 담주부터 오리엔테이션 끝나고 정식출근이잖아요. 그 전에 가게 재고정리도 해야하고 물건도 떼러 가야돼요.
도영 : 내가 도와줄께요.
용자 : 그럼 동우씨랑 나랑은 방 치우면 되겠다. 동우씨 지낼 방. 우리 셋 한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사월이도 토요일까지 이사올꺼예요.
동우 : 전 유스호스텔이 더 편해요.
용자 : 그동안 밀린 얘기도 많을텐데 한 집에 지내면서 매일매일 푸세요.
도영 : 그럼 동우씨랑 용자씨는 방 정리하고 우리 둘은 가게 정리하면 되겠다. 갑시다!
S#26. 용자네 가게 / 낮
옷 보따리 잔뜩. 겨울옷 여름옷 섞여있다.
도영과 사월, 옷 정리중.
도영 : 너무 이쁘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인데.
사월 : 입어보세요. 잘 맞으면 선물로 드릴께요.
도영 : (입은 옷 위에 걸쳐본다) 어때요?
사월 : 안 어울려요.
도영 : 주기 싫으니까.
사월 : 어떻게 알았지. 큭큭.....
도영 : 동우씨 만나니까 어때요?
사월 : ..... 좋죠.... 짠하기도 하구....
도영 : ..........
사월 : 어릴 때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새장가 들려고 보육원에 버린 거잖아요. 그런 아버지가 미국에서 불렀다길래
전 동우가 하버드 대학도 가고 아주 크게 출세하길 바랬거든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아시죠?
우리들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나.... 싶은 게 좀 그래요.
도영 :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사월씨나 동우씨 둘 다 훌륭해요. 그래서 내가 두 사람 좋아하고 서로 만나게 도와준건데.
사월, 옷을 거는데 티셔츠가 올라가 허리에 흉터가 나온다.
도영, 옷을 개 옆으로 놓다가 사월의 흉터를 본다.
도영 : ...........!!!
2부 플래쉬 백.
어린 지영의 옷에 붙은 불. 정희, 도영을 때리며 ‘저 흉터를 어쩔꺼야’ .......
도영 : (멍하니).........
사월 : 그것 좀 던져주세요.
도영 : .........네?
사월 : 옆에 있는 티셔츠요.
도영 : (티셔츠를 건네주며) 볼려구 본 건 아닌데...... 허리에 흉터......
사월 : 돈 벌면 없앨려구요. 성형외과에서 없앨 수 있대요.
도영 : .........그 흉터........뭔지 물어봐도 돼요?
사월 : 어릴 때 덴 거요.
도영 : .....어디서 어떻게.......?
사월 : 전 기억이 잘 안나는데.....
도영 : ........
사월 : 어릴 때 보육원에서 목욕시키다 이렇게 됐다는 것 같아요. 목욕시키던 선생님이 막 혼나고 저 울고
그랬던 기억은 확실하거든요.
도영 : 확실해요?
사월 : 네.
도영 : (긴장 풀어지며) 아팠겠다.......
S#27. 동대문 / 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힙합 스타일로 옷 바꿔 입은 도영과 사월, 커다란 보따리 들고 다닌다.
도영 : 아우 다리야, 우리 시원한 것 좀 마시고 가요.
사월 : 잘 나가는 집은 금방 물건 다 빠져요. 꾸물거릴 시간 없구만.
도영 : 댁은 나보다 젊잖아.
사월 : 짝퉁 목걸이 파는 데도 가보실래요?
도영 : 사람 무안하게 왜 또.
시장통에서 도영을 알아본 상인들, 손을 잡고 땡기고 인사한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신도영 아냐’ ‘원더우먼 신도영이다’
도영, 사람들에게 잡혀 오도 가도 못한다.
사월 : 괜히 따라 나와 가지구 일 더디게 만들어.
도영 : 사월씨! 같이 가요. 사월씨!
사월, 와서 옷가방을 휘둘러 사람들을 떼놓는다.
사월 : 놔줘요. 놔!
도영 손을잡고 같이뛴다.
S#28. 용자네 아파트 / 밤
동우의 가방을 번쩍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용자. 전신거울과 옷들, 다리미판, 상자박스 등등으로 가득한 방.
용자 : 이 방을 쓰시면 되거든요. 같이 정리하면 금방 끝날 꺼예요.
동우 : 이 방을 저 혼자요?
용자 : 왜요, 저랑 같이 쓰고 싶으세요?
동우 : 아니 이렇게 넓은 방을 제가 써도 되나 싶어서....
용자 : 딴 방은 더 넓으니까 걱정마세요.
점점 깨끗해져 가는 방. 두 사람, 같이 들고 나르고.....
용자 : 이제 내일 1인용 침대랑 간단한 것들 몇 개 사면 되겠네요. 오늘은 그냥 요 깔고 주무세요. 아님 거실 소파에서 주무시던가.
동우 : 사월이는 늦네요.
용자 : 사월인 오늘 자기 집에서 잘지도 몰라요. 이삿짐도 싸야 하구.
동우 : 그럼 저도 오늘은 밖에서 자겠습니다.
용자 : 살짝 기분 나빠질려고 하네. 내가 뭘 어떻게 한대요?
동우 : 아니 그건 아니구요....
용자 : 제가 무서우세요? 그럼 문 잠그고 주무세요.
동우 : 아뇨. 그게 아니구.... 그럼 담에 뵙겠습니다. (후다닥)
용자 : ............
S#29. 동대문 일각 / 밤
포장마차에 앉아 열무 비빔밥 비비고 있는 두 사람. 도영, 크게 한 입 떠먹는다.
도영 : 음...........이 집 열무김치 진짜 맛있다.
사월 : 이모! 여기 열무김치 리필이요.
도영 : 아까 나한테 언니라고 했죠? 듣기 좋더라.
사월 : ..... 동생이 없으세요?
도영 : .......네, 없어요.
사월 : 그럼 오빠나 언니는?
도영 : 없어요 나 혼자예요.
사월 : 사랑 듬뿍 받으면서 자라셨겠어요.
(E) : 핸드폰 벨
도영 : 어, 자기!
사월 : ?
S#30. 준세 사무실 / 밤
준세, 서류더미 잔뜩 늘어놓고 통화중.
준세 : 뭐해? 주변이 소란스럽네.
도영 : 응.......나 지금 일하고 있어.
준세 : 오늘은 회의하는 날이잖아.
도영 : 회의 끝나고 다른 일. 자긴 아직 사무실인가봐?
준세 : 응... 이제 퇴근할려구. 잠깐 얼굴 볼까 싶어서 전화한거야. 내가 그리 갈까?
도영 : 여기 동대문 시장이야. 내일 보자. 내가 이따 전화할게. 자기야 미안.
S#31. 동대문 / 밤
가방매고 하드 하나씩 빨면서 걸어가는 두 사람.
사월 : 아까 전화 애인이세요?
도영 : 네.
사월 : 애인 엄청 멋지다고 들었어요, 용자한테. 공항에서 봤대요.
도영 : 사월씨랑 동우씨도 잘 어울려요.
사월 : 동우는 가족 같은 친구예요.
도영 : 동우씨 섭섭하겠다.
사월 : 동우도 제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아요.
도영 : 정말?
사월 : 10년 넘게 좋아하고 있는 사람 있어요.
도영 : 누군지 궁금하다.... 나중에 꼭 보여주세요.
사월 : 오늘 나한테 왜 이런 거예요?
도영 : 뭐가?
사월 : 방송 출연 안한다고 부모님 안 찾겠다고 했는데 왜 날 따라다니면서 잘해주냐구요.
도영 : 그냥 그러구 싶어서요. 이런 데도 와보면 다 취재고 좋은거지.
사월 : .........그 때 말한 친엄마 만난 사람 있잖아요. 만나기 전이랑 후가 어떻게 다르대요?
도영 : .........그건 친엄마 찾을 생각이 들면 말해줄께요.
사월 : 먼저 말해줘 보세요.
도영 : .......친엄마를 만나기 전엔 내가 가짜 같았는데 엄마를 만나고 난 후엔 이 세상에 사는 진짜 사람 같았대요.
누군가 날 낳아주고 그리워하고 멀리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난 투명인간이 아니었구나. 이 세상에 끈이 있었구나.
사월 : .......그 사람 딱하네요. 외로웠나부다.
도영 : 마음 바뀌면 말해요. 내가 도와줄께요.
사월 : ..........하드 녹아요.
S#32. 백화점 / 아침
백화점 매장. 사월, 옷을 잔뜩 들고 열심히 뛰어간다.
S#33. VIP 매장 / 낮
수십 켤레의 백과 구두 진열돼 있다.
여걸 같은 중년의 여자, 이것저것 들고 거울에 비춰본다.
사월 : (E) 싱싱해운 마영자 회장. 구두, 빽 매니아. 잦은 출장으로 외국체류 기간이 일 년에 6개월 이상.
명품 브랜드에 빠삭, 절대 먼저 아는 척 하지 말 것.
마회장 : 음........ 젊은 감각으로 잘 뽑아왔네....
사월 : 감사합니다. 회장님 스타일과 잘 어울릴만한 걸 고르다보니까...
팀장 : 우리 신입 막내인데 물건 고르는 감이 아주 뛰어나요.
마회장 : 음........ 이건 파리에서 작년에 한참 유행 돌고 끝난 것 같은데...
사월 : 아, 그건 그 회사 수석 디자이너가 런칭한 다른 브랜드구요, 이건 올 봄에 새롭게 뜨기 시작한 겁니다.
마회장 : (들고 있던 백 던지며) 담에 올께요.
팀장 : 회장님!
사월 : ...........
S#34. 카 페 / 낮
동우, 앉아있다. 도영, 다가온다.
동우 : 바쁜데 나오신 거 아니예요?
도영 : 바빠도 만나고 싶었어요. 셋이 사는 거 재밌어요?
동우 : 아직 딴 데서 지내요. 사월이도 짐을 다 못 옮겼구요. 보증금도 받아야 하고 일이 좀 많은가 보더라구요.
도영 : 오늘부터 사월씨 출근했죠? 심심하겠다.
동우 : 근처 도장에서 운동도 하고, 서점도 가고.... 저도 할 일 많고 바빠요.
도영 : 언제 방송국 구경 한번 오세요. 우리팀 사람들도 동우씨 보고 싶어해요.
동우 : 사는 게 참 묘하죠.... 그날 신도영씨를 안 만났으면 이 모든 게 일어나지 못했을텐데.
도영 : 그러게요. 재밌는 인연같아요.
동우 : (선물꾸러미 하나 내민다) 선물이예요. 나중에 풀어보세요.
도영 : ...........
S#35. 도로 / 낮
꽉 막혀 서 있는 차. 운전중인 도영, 조수석에 놓인 선물을 풀어본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포춘 쿠키. 하나를 깨뜨려 본다. 작은 쪽지에 자잘하게 쓴 글씨가 나온다.
동우 : (E) 어머니는 건강해 지실꺼예요. 울지 마요. 힘내세요.
도영 : ............
도영, 다른 쿠키를 깨뜨려 본다.
동우 : (E) 술 취한 당신은 너무 매력적이라 위험해요. 음주 금지!
도영, 계속 여러 개를 깨뜨려 본다.
동우 : (E) 당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옆에 있을 겁니다.
동우 : (E) 내가 끓인 콩나물국 잘 먹어서 예뻤어요. 이젠 토하고 울지마요.
도영, 미소..........
S#36. 교도소 앞 / 낮
교도소 문 열리고 가방을 든 추레한 사내들 몇 명 나온다. 앞에서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 두부를 들고 와 준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은섭. 아무도 다가와 반기는 이가 없다.
은섭 : ..............
쨍한 햇살. 은섭, 가만히 서 있다.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은섭.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혼자 쓸쓸히 서 있는 은섭. 표정에 분노와 서글픔이 떠오른다.
S#37. 변두리 동네 / 낮
걸어오는 은섭. 다세대 주택들 즐비한 동네.
한 집으로 들어가는 은섭. 1층의 문을 거칠에 열고 들어간다. 이사 간지 얼마 안된 듯 지저분한 쓰레기와 신문지가 널려있다.
비어있는 집. 한 쪽에 쓰레기를 넣어둔 라면 박스 옆에 뜯지 않은 편지봉투 수북이 쌓여있다.
보내는 사람 홍은섭, 받는 사람 이미선. 은섭, 편지들을 뒤적여 본다. 뜯지 않고 봉투와 함께 찢어진 것도 있고....
은섭, 편지를 찢어 뿌리고 벽을 주먹으로 치다 털썩 주저앉는데.........
옆에 나뒹구는 신문지에서 도영의 웃은 얼굴 보인다. ‘신도영 아시안 TV페스티벌 대상 유력’ 1부 첫 씬에 나왔던 신문 사진.
은섭 : ...............
S#38. VIP 룸 / 낮
정희, 들어선다. 사월, 공손히 인사한다.
사월 :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정희 : 이젠 정식 출근인가봐요?
사월 : 네.
옷 수 십벌이 걸린 두 대의 행거 놓여있다.
팀장 : 막내 실력도 한번 보시겠어요? 이 쪽은 제가, 이쪽은 윤사월씨가 골라놓은 겁니다.
정희 : .......내 취향을 알지도 못하면서.....
사월 : 그날 입으셨던 옷을 기억해서.... 제 느낌대로 골라봤습니다 교수님.
정희 : .......저거 한번 보여줘요.
사월 : 네, 알겠습니다.
정희, 사월이 고른 옷을 입고 서 있다.
사월 : 잘 맞으시네요. 참 멋지세요 교수님.
정희 : (사월을 본다)............
사월 : ............
정희 : 지난 번 부터 드는 생각인데.... 인상이 낯설지가 않아요. 학교는 어딜 나왔나.
사월 : 교수님이 계시는 좋은 대학은 못 다녔습니다.
정희 : 나이를 물어도 될까?
사월 : 스물 다섯입니다.
정희 : ......음...... 우리지영이 또래 같았어...... 부모님은?
사월 : 부모님은........
팀장 : (얼른 끼어들어) 지방에 계시구요, 여기선 친구랑 같이 산답니다.
사월 : .................
정희 : 음........ 아주 눈썰미가 야물어. 감각도 젊구.
사월 : 감사합니다.
정희 : 박팀장, 이 친구를 당분간 내 전담 쇼퍼로 해줬으면 하는데.
팀장 : 우리 막내가 아주 맘에 드셨나보네요.
정희 : 잘 부탁해요.
사월 : 영광입니다 교수님.
S#39. 준세 사무실 / 낮
준세, 통화중. 바쁘다. 파란색이나 짙은 회색의 셔츠 입고 소매를 걷고 일하는 중.
준세 : 그러니까... 대주주한테 30퍼센트 지분이 있는 것 말고 숨겨진 15퍼센트가 또 있단 소문이 있어요. 펀드로 전환해서
갖고 있단 설도 있고..... 일단 그걸 찾아내는 게 급선무고 외국인들이 매수한 주식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봐줘요.
수호, 들어온다.
비서 : (일어서며) 고문님, 오셨습니까.
준세 : (수호 보며) 그래요... 다시 통화합시다.
수호 : 어때, 진척이 좀 있나?
준세 : 예, 상장사라서 좀 작업할 게 많으네요.
수호 : 올해 까지가 목표니까 너무 급하게 서두르진 마.
준세 : (웃으며) 서둘러야죠 아버님, 저는 장가도 가야하는데....
수호 : 그런가?
준세 : 지금까진 무리 없으니까 잘 될 것 같아요,
수호 : 엄 회장이 오늘 만났으면 하던데.
준세 : 그러시죠. 저녁시간 괜찮은데요.
수호 : 엄 회장 만날 땐 그런 색깔 있는 셔츠는 좀....
준세 : ......... 지금 셔츠 고르러 갈 시간이 없는데.... (하며 비서를 보는)
비서 : 이 백화점엔 퍼스널 쇼퍼 서비스가 있지 않나요?
S#40. 백화점 / 낮
셔츠 여러 벌을 들고 뛰는 사월.
S#41. 준세 사무실 / 낮
사월, 들어와 인사한다.
사월 : 안녕하세요. 셔츠 준비해 왔습니다. 일단 입어보시구요, 맘에 드시는 걸 고르시면 새 상품으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비서 : (안쪽에 부르는) 김이사님!
준세, 회의실에서 나온다.
사월 : ..............!!
준세 : 감사합니다. 여러 장도 챙겨 오셨네.
사월 : .............
준세, 사월 손에 들린 셔츠를 한 장 고른다.
준세 : 이걸로 입어볼께요.
준세, 셔츠를 들고 안 쪽 회의실로 들어간다.
사월 : .........
비서 : 주스 한잔 드시겠어요?
사월 : ...............
비서 : (사월보며) ??
사월 : 이사님 성함이.....
비서 : 김준세 이사님이세요.
사월 : .........
준세, 셔츠 입고 단추 채우며 나온다.
사월, 준세의 손가락을 유심히 본다. 반지가 보이질 않는다. 사월, 미소 새어나온다.
준세 : 잘 맞네요. 이걸로 하죠.
사월 : ..........
준세 : .......?
사월 : 네! 새 걸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후다닥 나가는데)
준세 : 저기 혹시..........
사월 : (기대감으로 뒤돌아보면)
준세 : 얼마 전에 탈의실 문 열고 들어왔던.... 그 분 맞죠?
사월 : 네, 그 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얼른 셔츠 갖다 드릴께요.
S#42. 백화점
매장 통로를 춤추듯이 뛰어가는 사월.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 사월, 혼자 우와...... 소리 지르고 뛴다.
CC-TV 인서트. 사월 혼자 춤추고 손바닥에 뽀뽀해 키스날리고.
S#43. 준세 사무실 / 낮
포장된 셔츠 위에 명함(퍼스널 쇼퍼 윤사월)을 놓고
사월 : 다음에 또 연락주시면 편안한 쇼핑이 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준세 : 수고하셨습니다.
준세, 셔츠를 건네받아 명함 안 본 채 책상에 둔다.
사월 : ..............
사월, 꾸벅 인사하고 나온다.
S#44. 유도 도장 / 밤
도복입은 동우, 연습 중. 사월, 들어온다.
동우 : (반가운) 어! 사월아!
사월 : 으라차차차.... (동우에게 달려든다)
동우 : 어.... 어......
사월, 동우를 들어 메친다.
동우 : 와.... 너 내가 가르쳐 준 거 다 기억하고 있구나....
사월 : (동우 옆에 펄썩 눕는다).........아.... 좋다.
두 사람, 누워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벽에 걸린 달력을 날린다.
사월 : 동우야.....
동우 : 응?
사월 : ........아냐.
동우 : 뭔데?
사월 : 아냐. 나중에 얘기할게.
동우 : 싱겁긴.
사월 : ......음.... 근처에 아카시아 있는 집이 있나 부다.
동우 : 옛날 우리 살던 데도 라일락이랑 아카시아 많았는데.
사월 : 그래 기억나.
동우 : 우리 살던 목포 집에 가보고 싶다. 주말에 한번 같이 갈래?
사월 : 넌 거길 다시 가보고 싶니?
동우 : 넌 싫어?
사월 : 원장님은 보고 싶은데..... 별로 가고 싶진 않아.
동우 : 그동안 많이 힘들었니?
사월 : 아니, 난 잡초잖니. 괴로워도 슬퍼도 늘 씩씩해야지. 안 그럼 누가 거들떠나 봐주나, 누가 와서 달래주나.
동우 : 너 요즘도 일기 쓰니?
사월 : 안 써. 재미없어서. 내용이 매일 똑같으니까 나부터 질리더라.
동우 : 나 옛날에 니 일기장 훔쳐보고 혼자 운 적 있어.
사월 : 동우야.
동우 : .............왜.
사월 : 나 갑자기 울 엄마가 누군지 너무 보고 싶어졌어.
동우 : ..........
사월 : 보고싶은 사람, 하고싶은 일, 가보고 싶은 나라...점점 많아져. 사는 일에 욕심이 팍 생겼어.
나도 근사하게 멋지게 살아보고 싶어.
동우 : .........(미소로 사월을 바라보는).....
사월 : .........?
동우 : 뽀뽀해도 돼?
사월 : (발로 동우를 퍽 차는)
S#45. 분장실 / 낮
분주한 분장실. 조연출과 은비, 왔다갔다 정신없고.
메이컵중인 도영. 경미,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은비 : 인트로는 아까 바꾼 걸로 가는거야. 까먹지 마.
도영 : 걱정 마. 의상 아직 안 왔어?
조연출 : 오고 있대요.
도영 : 정신 나간 친구 아냐. 리허설까지는 갖다 줬어야지.
코디, 의상 두 벌을 들고 뛰어들어온다.
코디 : 죄송합니다.
도영 : 보여 주세요. (의상을 보다가 버럭) 뭐하자는 거야, 지금!
조연출, 은비, 경미 모두 놀라서 보면
도영 : 이건 UBN에서 황지나 앵커가 입었던 거구, 이건 얼마 전에 비타민에서 정은아씨가 입었던 거 아니예요?
잘나가고 바쁜 코디인 건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은비 : 인터넷에 두 사람 비교해서 옷 뜨는 거 굴욕이지.
조연출 : 그럼 어떡해. 선배 의상으로 가시겠어요?
도영 : 나 오늘 청바지 입고 왔거든.
S#46. 백화점 매장 / 낮
매장을 달리는 사월.
도영 : (E) 사월씨.... 나 급한 데 30분 내로 의상 좀 갖다 줄 수 있을까? 사월씨 안목을 믿어볼께요. 알아서 갖다 줘.
매장에 뛰어들어가 이것 저것 고른다.
S#47. 거 리 / 낮
헬멧 쓰고 달려가는 사월의 오토바이. 쌩하니 자동차 사이를 헤쳐 달려간다.
S#48. 방송국 / 낮
옷을 열 벌 정도 들춰 메고 뛰어가는 사월.
사월 : 비켜요 비켜!
분장실로 들어간다.
S#49. 스튜디오
도영, 멋진 의상을 입고 무대로 뛰어나온다. 객석 환호와 박수. 뒤에 서서 구경중인 사월도 박수.
도영 : 오늘도 원더우먼쇼, 여러분을 무조건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오늘은 장애를 딛고 산티아고를 두 달간 걸어서 다녀오신
용감한 순례자를 초대했습니다. 용기가 뭔지 행복이 뭔지, 이 분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S#50. 방송국 일각 / 밤
자판기 앞에서 쥬스 뽑아주는 도영.
도영 : 오늘 사월씨 덕분에 살았다. 정말 고마워요.
사월 : 별 말씀을요.
도영 : 오토바이도 탈 줄 알아요?
사월 : 네.
도영 : 자긴 못하는 게 뭐야?
사월 : 없죠.
도영 : (쥬스마시다 큭큭).... 아우, 자기 땜에 나 사래 들겠다.
사월 : 나 찾아주세요.
도영 : ...........
사월 : 우리 친 엄마 아빠 찾아주세요. 방송에도 나갈께요.
도영 : 사월씨.....
사월 : 대신 그 분들이 날 만나고 싶지 않다면 저한텐 알리지 말고 그냥 못 찾았다고 해주세요...... 나 그럼 죽어요.
도영 : .....
사월 : 약속!
도영 : 약속!
S#51. 몽타주 / 낮
사월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카메라.
지하철로 출근, 지하철에선 MP3꽂고 책보는 모습. 서점에서 책 뒤지기.
백화점, 행거를 끌고 매장을 다니며 고객과 동반 쇼핑중인 사월.
백화점 VIP 룸에서 수십 벌의 옷을 진열하는 사월, 도영 옆에서 돕고 있다. 돌아가는 카메라.
팀장과 실랑이 중인 도영.
팀장 : 사월씨를 내면서 우리 백화점인걸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단 거죠. VIP손님들한테는 사월씨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거
굳이 말하지 않았거든요.
도영 : 그게 뭐 어때서요?
팀장 : ......그게 또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백화점은 밝히지 말아주세요. 사월씨, 이해해 줘.
사월 : 그럼요, 팀장님.
도영 : .........(측은한 듯 사월 머리 한번 쓰다듬는)
S#52. 방송국 사무실 / 낮
6m카메라 챙기고 부산한 사람들.
조연출 : 편집실에서 찍어 온 거 보니까 그림 되던데요. 윤사월 그 친구 카메라도 잘 받더라.
은비 : 느낌이 좋아. 뭔가 될 것 같아.
고훈 : 목포 미카엘의 집은 내일 가는 걸로 정해졌슴다. 상구 너 출장서류 올렸지?
FD : 네!
도영 : 나도 느낌이 좋아. 오늘밤엔 자취방 이사하는 거 찍을꺼야.
은비 : 자기는 수상소감 미리 준비해 둬.
도영 : 자기가 써줄래?
은비 : 이 모든 영광을 남자도 사귀지 않고 일에만 몰두해 준 김은비 작가에게 돌립니다. 이 모든 상금도 함께!
고훈 : 됐거든요.
S#53. 사월 반지하 방 / 밤
짐 싸는 사월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 옆에선 돕는 도영.
도영 : 아직 카메라 불편하죠?
사월 : 네. 자꾸 V자 그리고 싶어요.
도영 : 그냥 나랑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짐 싸자구요.
사월 : 이상한 건 알아서 편집해 주세요.
도영 : 암만!
카메라, 열심히 찍는다.
도영 : 책이 참 많아요.....
사월 : 책 읽는 거 좋아해요.
도영 : 철학책도 많네...
사월 : 어려워서 읽어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도영 : 그 상자는 뭐예요?
사월 : 제 보물들 모아놓은 거요.
도영 : 하나만 보여줘요.
사월 : 별 거 없어요. 옛날 사진이랑 성적표..... 편지.....
도영 : 귀걸이도 있네?
사월 : 이게 왜 들어가 있지 이건 보물 아닌데. (귀걸이 빼놓고)
도영 : 잡동사니 상자네 보물상자가 아니라.
사월 : 짠! (털실로 짠 목걸이를 꺼낸다)
도영 : !!!!!!!!!!!!!
카메라, 목걸이로 줌인.
사월 : 제가 이걸 걸고 있었대요. 다섯 살 때. 절 발견했을 때요.
도영 : .............
사월 : (목걸이 걸어본다. 밝게 미소) 이쁘죠?
도영 : ...............
도영, 놀란 얼굴. 억지로 웃는 어색한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