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먹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새벽에 일어나서 찬찬히 봤습니다. 예전에도 TV로 보기는 봤는데 집중해서 보지 않으니 헷갈려서 왜 이 영화를 그렇게 칭찬할까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보니 왜 예전에 헷갈렸나 알게 되었습니다. 여주인공 나까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맡아서 똑같은 얼굴로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니 헷갈렸던 것입니다.
오늘 영화를 보니 그 유명한 "오겡끼데스카? 아타시와 겡끼데스"라고 히로코가 외치는 장면은 가장 중요한 장면이 아니었고, 그 다음에 나오는 중학교 때의 남자 이츠키가 중학교 때의 여자 이츠키의 얼굴을 그린 도서카드를 지금의 여자 이츠키가 보게 되는 장면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부분이 아릿한 설레임과 첫사랑의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겡끼데스카? 아타시와 겡끼데스"를 외치는 히로코가 주인공이 아니라 지금까지 남자 이츠키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도 잘 모르다가 이번에 비로소 알게된 여자 이츠키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남자 이츠키가 히로코에게 프로포즈할 반지까지 준비했으면서도 끝내 프로포즈하지 않은 것은 수줍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히로코와 똑같은 얼굴을 한 옛 중학교 때의 첫사랑 여자 이츠키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남자 이츠키가 등산하다가 조난당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부른 마지막 노래 '푸른 산호초'가 여자 이츠키를 그리워 하는 노래라는 것을 알고 뭉쿨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떠올린 것이 중학교 때의 첫사랑 그 여자라는 사실이 애절한 마음이 되게 합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담임 선생님이 반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후지이 이츠키!"라고 하니 남녀 두명이 동시에 대답합니다. 일본에서는 성의 개수가 수만개이기 때문에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한 반에서 만나는 경우도 드물어서,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을 같은 학급에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름이 같으니 그야말로 영화적 장치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같으면 담임선생님들이 사전에 조정해서 다른 반으로 배치할텐데 3년이나 같은 반이라니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도서관 사서를 하고 있는 여자 이츠키가 모교를 찾아가서 지금도 모교에 근무하고 있는 하마구치 선생님을 보게되는데, 하마구치 선생님은 십년이나 지난 여자 이츠키의 반 출석부를 줄줄 외우더니 이츠키의 출석번호가 24번이었다고 말해줍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30년이 넘게 근무했지만 재학중인 학생들 이름을 1번 부터 끝까지 외웠던 것은 양화중학교 때 반 학생 인원이 4명이었을 때 빼고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졸업생들 이름은 1년만 지나도 대부분 잊어버려서 어쩌다 졸업생을 만날 때마다 곤란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