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ma police, arrest this man
He talks in maths
He buzzes like a fridge
He's like a detuned radio
...
(Radiohead 'Karma police' 중에서)
오늘도 정확히 10시 55분. 저 아래서 낑낑거리며 올라오는 새파란 학교 버스가 보인다. 사회관 앞 정류장에 버스가 서고 이내 혹 지각할새라 학생들이 우루루 뛰쳐나온다. 나는 항상 3층 제일 첫 번째 강의실 제일 오른쪽줄 맨 뒤에서 8번째 자리에 앉아 그들을 지켜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겠지. 멀리서 헐레벌떡 계단 뛰어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칠판으로 돌린다.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울인다. 헉헉 하는 숨 고르는 소리에 나 또한 두근거린다.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안녕?"
어색한 웃음으로 답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웃을 수밖에 없다. 얼굴을 바라보고는 도저히 말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으니까.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어김없이 제일 오른쪽줄 앞에서 4번째 자리에 앉는다. 나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이때가 나의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월요일과 수요일 11시부터 12시 15분. 내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그리고 비록 뒷모습이지만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하지만 이제 이것도 얼마남지 않았다. 내일이면 마지막 수업이니까.
...
오늘도 정확히 10시 55분. 저 아래서 낑낑거리며 올라오는 새파란 학교 버스가 보인다. 이제 곧 학생들이 우루루 뛰쳐나오고 그녀 또한 헐레벌떡 올라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녕?" 하고 인사하겠지.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일게고.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 이제 보지 않는거야. 내가 알아서 피하는 것이 좋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지정석 제일 오른쪽줄 맨 뒤에서 8번째 자리 대신 제일 가운데줄 맨 뒤에서 10번째 자리에 앉는다.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안녕?"
어색한 웃음으로 답한다. 어제보다 10배는 더 어색한 듯. 괜히 혼자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제일 오른쪽줄 앞에서 4번째 자리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음?
없다!!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간걸까.
그녀를 절대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좀전의 결심은 눈녹듯 사라져버리고 나도 모르게 두리번 거리다 그녀가 내 뒤에 있음을 알고 다시 어색한 고개를 떨군다.
왜? 왜지? 왜 내 뒤에 있는거야?
어찌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이지만 그것이 마치 인연의 끈인마냥 덥석 잡아버린다.
도저히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마치 교실 안이 진공상태인 것처럼 멍해진다. 귀에서는 윙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 등뒤에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진다. 포근하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덩달아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궁금해진다.
그녀도 이랬을까. 그녀도 느낄 수 있었을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마 그녀는 내가 등뒤에서 수업 시간 내내 바라본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 그녀가 곧 나이길 수없이 기도한다.
수업이 끝났다. 나는 어떻해야 하는걸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 뛰자. 달리자. 도망가자. 말 할수 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곧 내게는 고통이니까.
가방을 든채로 냅다 달려버린다.
쉬원하다. 상쾌하다.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데 왜이리 가슴 한 구석은 허전한건지.
...
이제 6월이다.
아. 6월의 교정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나도 나이를 꽤나 먹었나보다.
푸르른 나뭇잎사귀에 눈길을 가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건 어쩔수 없다.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간만이네요. 학교 아직 다니시는가봐요. 날씨 참 좋죠?
여전하시네요. 커피라도 한잔 하실래요? 남자친구는 잘 있나요?
몇 년간의 피나는 연습에도 불구하고 끝내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저 멀리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익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그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린다.
Karma police, arrest this man
He talks in maths
He buzzes like a fridge
He's like a detuned radio
...
첫댓글 젊은이만이 느낄 수 있는 경쾌함, 그리고 청춘의 수줍음, 난 가끔 아직도 이런 수줍음을 탄다. 내 안에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