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 5. 4. 12:27
■ 29世 이적의(李適意)
[생졸년] 1652년(효종 3)∼1725년(영조 1) / 수 73세
[세계] 국당공 후 제정공 달충의 11대손
[문과] 숙종(肅宗) 16년(169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2[亞元]위(02/40)
[생원] 숙종(肅宗) 8년(1682) 임술(壬戌) 증광시(增廣試) [생원] 2등(二等) 20위(25/100)
-------------------------------------------------------------------------------------------------------------------------------------------------------
1652년(효종 3)∼1725년(영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이달(以達), 호(號)는 송사(松沙),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장수면(長壽面) 갈산리(葛山里)에서 살았고, 부인은 오경기(吳慶基)의 딸이다. 증조는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 조부는 학유 이휘음(學諭 李徽音), 아버지 추재 이숭언(追齋 李崇彦)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이상백(李尙白)이다.
형으로 이달의(李達意)· 이원의(李遠意) · 이수의(李遂意) · 이술의(李述意)가 있고, 동생으로 이첨의(李添意)가 있다. 가학정훈(家學庭訓)으로 경전(經典), 사자서(四子書)를 탐독하여 임술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넷째 형(兄) 술의(述意)와 연방(聯芳)합격하고, 서형(庶兄)으로 이철의(李哲意)가 있다.
1690년(숙종 16) 경오 식년문과 갑과 2위로 급제하였다. 그 후 사옹원직장『司甕院直長=조선시대 임금의 식사 및 대궐안 음식물의 공급 등에 관계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7품 관직으로 옹(甕)은 음식물을 잘 익힌다는 뜻』, 무장현감, 1706년(숙종 32) 경산 자인현감(慶山慈仁縣監)을 역임 후 애민교화(愛民敎化)하여 1741년(영조 17) 2월에 이금휼민비(弛禁恤民碑)가 세워지고, 유고로 『송사집(松沙集)』이 있다고하나, 현재 소장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산 자인현감 이적의 이금휼민비(縣監李適意弛禁恤民碑)
비문내용
금령 내려진 한 구역
면리의 함정되니
우리의 현감께서 혁파를 하시어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리셨네.
1711년 숙종 2월 세우다.
비석을 다시 세우다.
중수 감정 이효영
9세손 이주필 - 1902년 2월 건립
소재지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72-1.
[비문내용]
금령 내려진 한구역
면리의 함정되니
우리의 현감께서 혁파를 하시어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리셨네.
1711년(숙종 37) 2월에 세우다.
-------------------------------------
비석을 다시세우다(중수)
중수 감정 이효영(李孝榮)
9세손 이주필(李周弼) 1902년 2월에 세우다.
[휼민비 정보]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계정숲’ 內에 있다. 碑의 前面에 「縣監李侯適意弛禁恤民碑」가 前面 우측에 「辛卯二月 日」이 刻字되어 있다. 碑身은 폭 51㎝, 높이 108㎝, 두께 25㎝이다. 字徑은 6.8×7㎝이다.
현감이후적의이금휼민비(縣監李侯適意弛禁恤民碑) 1706부터~1711년 까지 5년간 자인현감을 지낸 이적의(李適意)의 선정비로 1711년(숙종 37)에 처음 건립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비는 이적의의 9세손으로 경산현령을 지낸 이주필(李周弼) 등이 1902년(광무 6) 2월에 중수(重修)한 것이다.
비석 받침 크기는 높이 8㎝, 너비 71㎝, 두께 45.5㎝이며, 비신 크기는 높이 108㎝, 너비 51㎝, 두께 25㎝이다. 비신의 일부가 박락되어 있다
집필>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