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맞는 기분으로
글: 우병택
지난 일요일에 올 들어 처음 불곡산을 올랐습죠. 혼자라 적적하리란 마련해선 이것저것 제 자신만의 충일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많은 길손들이 남긴
자국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 잔설이 있어 겨울이 다 간 건 아니더군요.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푸른데,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훈훈했습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봄은 이미 와 있더군요. 나뭇잎에 덮여 새싹들도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고요. 양지 바른 곳에선 물기 오른 잎 새가 움을 틔울 준비로 한창이구요.
나는 힘들어하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힘차게 숨을 몰아쉬며 순식간에 내 앞을 지나는 젊은이를 감동스럽게 쳐다봅니다. 그 뒤를 이어 일흔은 족히 되어 뵈는 말라깽이 노인도 나보란 듯이 뛰어 오르더군요. 저만치 앞서서 너 댓 살쯤 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부자의 도란거리는 대화의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부자와 보조를 맞춰 걷는데 아이의 말이 귀에 들렸습니다.
“아빠, 나뭇잎은 겨울에도 죽지 않네?”
이 말에 아기 아빠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좀 더 산 듯이 느꼈는지 도움을 청하듯 날 보고 씩 웃었습니다.
“아가야, 그건 나뭇잎이 죽지 않은 게 아니라. 죽은 나뭇잎이 불쌍해서 엄마 나무가 꼭 붙들고 있는 거란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아이한테 말한 것뿐인데, 아이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더군요. 난 순간 아기에게 너무 어렵게 얘기했나하고 생각하는데,
“아항, 그래서 나무가 힘들어 보이는구나!”
앙증맞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나뭇잎을 쳐다봅니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내가 조카들이 어릴 때 들려주기 위해서 손수 만든 이야기와 막내딸을 키우면서 들려주려고 만든 얘기들을 하며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합니다. 아이는 숨을 고르고 점심까지 먹은 뒤 내려간답니다. 나는 일요 특강이 계획되어 있어서 내려가야 하구요. 아이는 내게 악수까지 청하며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아빠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난 혼자 반대편 길을 택해서 내려오면서 크게 한 번 숨을 들여 마셔봅니다.
휴일이라 내려다보이는 도로에는 한가롭게 차량이 오갑니다. 백화점 주변에만 승용차들이 나고 들뿐 도심 전체로 본 건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제 곧 나는 저 군중들 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측근 비리를 다루는 검찰의 발표를 들을 것입니다. 또, FTA 비준 동의안 소식과 야당에게 재벌이 준 선거 자금 문제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 모든 오염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 방금 헤어진 사내아이에게 들려준 얘기처럼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지난겨울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내 더렵혀진 심신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습니다.
첫댓글 아직까지 샘의 꼬리를 아무도 잡지 못했군요. 아마 봄맞이 산행하신 불휘샘이 부러웠는지도. "지난겨울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내 더렵혀진 심신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습니다."......벌써 깨끗이 씻어낸거 아닌가여?...오늘 수업중 뵈니 깔끔해 보이던데.
^히^
좋은 시간 이셨네요. 꼬마도 꼬마 아빠도 산에서 만난 좋은 (?)아저씨 얘기를 기억 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