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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관광
이 시는 동북쪽은 한강과 접하고, 서쪽은 경기만과 염하로 둘러싸인 반도이다. 그리고 서쪽은 문수산과 가현봉 · 장릉산 · 승마산 · 수안산 등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곳곳에 산재해 있고 동쪽에는 넓은 김포평야가 펼쳐져 우리나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해안에는 조석간만의 차가 심해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고, 해안에는 유도 · 율도 · 육도 등의 섬이 분포해 있어서 관광명소가 많은 편이다. 특히 김포는 노천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문화유적이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 김포평야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곡창지대로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후와 풍토가 개성과 비슷해서 인삼재배가 성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삼은 관광토산품으로 김포쌀과 더불어 상품성이 높다. 이 고장의 관광지로는 애기봉 · 문수산성 · 용홧 · 장릉과 서곶을 들 수 있다. 특히, 1983년 김포문화원이 발족해서 향토문화유적발굴을 통한 문예진흥에 앞장서고 있으므로 관광지 개발에 기대가 큰 지역이다. 그 중 애기봉은 하성면에 위치하고 있는 산봉으로, 북한땅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또한, 이북땅에서도 마주 건너다 보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대형 트리를 세워 성탄을 축하하고, 4월 초파일에는 법회를 여는 등 각종 종교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애기봉은 지형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문수산성은 월곶면 성동리에 있는 산성이다. 숙종 때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으로서 구한말 영 · 미함대가 습격했을 때 크게 효력을 발휘한 곳으로 유명하다. 산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는데,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타버렸다. 이곳에는 신라 진성여왕이 지은 문수사가 있다. 장릉은 조선 인조의 생부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으로 풍무동에 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마치 원시림 속을 거니는 느낌을 준다. 또한 입구에는 넓은 숲속의 빈터와 저수지, 그리고 금정사가 있어 경관이 아주 좋은 곳이다.
읍 · 면
고촌읍(高村邑)
시의 동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29.03㎢, 인구 2만 61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곡리이다. 1632년(인조 10) 인조의 생부 원종의 묘인 흥경원(興慶園)이 장릉(章陵)으로 승격되면서, 김포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관할하던 8개 면 중 고란태면(高蘭台面)과 임촌면(林村面)의 2개 면 지역으로 나뉘었다. 조선 후기까지 임촌면의 임(林)자가 임(臨)자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란태면 8개 리와 임촌면 4개 리를 통합해 5개 리로 개편하고 고촌면이라 하였다. 면 명칭은 고란태면의 ‘고’자와 임촌면의 ‘촌’자를 따서 붙였다. 당시에는 면사무소가 풍곡리에 있었다가 후에 신곡리로 옮겨왔다. 면의 동부를 굴포천(掘浦川)이 관류하며, 비옥한 토지와 함께 수리시설이 발달해 있는 평야답작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오이 등 각종 야채류와 대추 · 은행의 생산량이 많은 편이다. 축산업으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다수 분포한다. 교통은 48번 국도가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고, 39번 국도가 면 남동부를 경유하며, 352번 지방도가 한강을 접한 채 면 북단을 지난다. 문화유적으로 신곡리에 영사정이 있다. 신곡(新谷) · 향산(香山) · 풍곡(楓谷) · 태(台) · 전호(錢湖) 등 5개 리가 있다.
대곶면(大串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78㎢, 인구 9,9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율생리이다. 본래 김포 · 통진(通津) · 양천(陽川)으로 분할되어 있던 지역으로, 조선 말 당시는 대부분이 통진군의 대파면(大坡面) · 고리곶면(古里串面)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진군의 대파면 전체, 고리곶면의 7개 리, 반이촌면(半伊村面)의 3개 리, 양릉면(陽陵面) 오라리(吾羅里) 일부를 통합해 14개 리로 편제하고, 김포군 대곶면이라 하였다. 면 명칭은 대파면의 ‘대(大)’자와 고리곶면의 ‘곶(串)’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983년가현리(佳峴里)가 통진면(현 통진읍)으로 이관되었다. 면의 북쪽에 오봉산(吾峰山, 105m), 남동쪽에 수안산(遂安山, 147m)이 있다. 그들 여맥이 면내로 뻗어 각처에 낮은 구릉지가 있으나, 대부분은 평탄한 지형에 가깝다. 북부지역에 석정천과 거물대천, 중앙을 관류하는 가마지천(可麻之川) 주변에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보리 · 콩 등의 잡곡과 두류가 많이 생산되며, 특히 도토리의 생산량이 많다.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도 적지 않아 동력어선의 절대 다수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석탄 · 고령토 · 규석을 생산하는 2개소의 광산이 있다. 교통편은 352번 지방도가 중앙을 관통하고, 6·7번 시도가 남부를 13·16번, 시도가 북부를 연결하는 등 촘촘한 도로망이 분포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안리에 덕포진(德浦鎭), 율생리에 김포수안산성(金浦守安山城)이 있으며, 약암리에 광은사(廣恩寺) · 약암온천이 있다. 그리고 대명리에 대명포구가 있다. 율생(栗生) · 대릉(大陵) · 대벽(大碧) · 상마(上馬) · 약암(藥巖) · 초원지(草元芝) · 거물대(巨勿垈) · 오니산(吾尼山) · 송마(松麻) · 석정(石井) · 쇄암(碎巖) · 신안(新雁) · 대명(大明) 등 13개 리가 있다.
양촌읍(陽村邑)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33.65㎢, 인구 2만 58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곡리이다. 본래 김포 · 통진(通津) · 양천(陽川)으로 분할되어 있던 지역으로, 조선 말 당시는 대부분이 통진군에 해당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진군 양릉면(陽陵面) 12개 리, 반이촌면(半伊村面) 10개 리, 상곶면(桑串面) 10개 리, 대파면(大坡面) 율생리(栗生里) 일부, 그리고 김포군 검단면(黔丹面) 금곡리(金谷里) 일부를 통합해 12개 리로 편성하고 김포군 양촌면이라 하였다.
면의 명칭은 양릉면의 ‘양’자와 반이촌면의 ‘촌’자를 합쳐 명명한 것이다. 1983년 마송리(馬松里) · 도사리(道沙里) · 수참리(水站里)가 신설된 통진면(현 통진읍)으로 이관되었다. 2011년 11월 양촌면이 양촌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동쪽 면계에 필봉산(筆峰山, 132m), 중앙에 학운산(鶴雲山, 112m)이 있으나, 면 전체는 대체로 평지에 가깝다. 서암천(西巖川)의 지류인 석모천(席毛川)이 누산 개간지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제일 넓은 경지면적을 자랑하는 김포평야의 중심지역이며, 특히 누산리 일대는 기름진 토지와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영지버섯 · 화훼 · 포도 등의 특산물과 밤 · 도토리 등 임산물의 생산량도 많다. 정기시장이 1개 있다. 교통은 48번 국도가 북부를 관통하며, 특히 양곡리 일대는 305번과 352번 국도가 교차하면서, 5·10번 시도가 지나는 등 교통의 요지이다. 양곡(陽谷) · 누산(樓山) · 석모(席毛) · 구래(九來) · 대포(大浦) · 학운(鶴雲) · 유현(柳峴) · 흥신(興新) · 마산(麻山) 등 9개 리가 있다.
월곶면(月串面)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51.95㎢, 인구 567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군하리이다. 본래 김포 · 통진(通津) · 양천(陽川)으로 나뉘어 있던 곳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진군의 월여곶면(月餘串面) 9개 리, 보구곶면(甫口串面) 5개 리, 군내면(郡內面) 9개 리, 질전면(迭田面) 4개 리의 일부를 통합해 15개 리로 개편하고 김포군 월곶면이라 개칭하였다. 면의 명칭은 월여곶의 ‘월’과 보구곶의 ‘곶’을 합해 만든 이름이다. 1983년 고정(高亭) · 서암(西巖) · 귀전(歸田) · 동을산(冬乙山) · 옹정(瓮井) 등 5개 리가 신설된 통진면(현 통진읍)으로 이관되었다. 면의 북서단에 있는 문수산(文殊山, 376m)을 제외하면 높은 산을 찾기 힘들다. 포내천이 면의 중앙을 관류하면서 형성한 평야지대에서 양질의 미곡을 산출한다. 그러나 시 전체에서 농경지 면적이 제일 적은 준산간 답작지대이다. 민통선과 접해 있어 개발제한이 많고, 시 전체에서 도시화 정도가 매우 더딘 곳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두류와 각종 채소, 특산물로 인삼의 생산량이 많고, 과일류로 배가 산출된다.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도 일부 있다. 고령토를 생산하는 2개의 광산이 있다. 교통편은 48번 국도가 남동쪽에서 면의 중앙을 횡단하면서 포내리의 강화대교를 통해 강화로 연결된다. 그리고 면소재지인 군하리를 중심으로 12·14번 시도가 사방을 연결하며, 면 북부에도 15·16번 시도 등 도로망이 정비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성동리 · 포내리 일대의 문수산성(文殊山城), 성동리의 문수사와 문수사풍담대사부도(文殊寺楓潭大師浮屠) 및 비(碑), 군하리의 통진향교(通津鄕校)가 있다. 관광자원으로 2개의 청소년 수련장과 문수산 산림욕장 등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군하(郡下) · 고막(古幕) · 갈산(葛山) · 고양(高陽) · 포내(浦內) · 성동(城東) · 보구곶(甫口串) · 용강(龍康) · 조강(祖江) · 개곡(開谷) 등 10개 리가 있다.
통진읍(通津邑)
시의 북쪽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29.50㎢, 인구 2만 757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마송리이다. 고려시대 이래 오랜 연원을 가진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도 통진부 · 통진군 등의 행정구역 명칭으로 남아 있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진 · 김포 · 양천 등 3개 군이 김포군으로 통합되면서 통진이란 명칭은 사라졌다. 그러다 6·25 이후인 1953년 7월부터 현 통진읍의 중심지역인 마송리 · 서암리 일대에서 5일장의 개설로 점차 인구가 증가하자, 주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면 설치운동을 전개하였다. 1972년 통진연락사무소가 설치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1983년 옛 명칭을 살려 통진면이 신설되었다. 이때 양촌면의 마송 · 도사 · 수참 등 3개 리, 월곶면의 옹정 · 고정 · 서암 · 귀전 · 동을산 등 5개 리, 그리고 대곶면의 가현리를 병합해 9개 리가 되었다. 2004년 1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100m 이상의 산이 없어, 대표적인 평야혼작지대이다. 주요 농산물로 쌀 · 잡곡을 비롯해 인삼 등이 산출된다. 특히, 귀전리 일대를 중심으로 재배되는 자광미(紫光米)는 전국에서 유명하다. 이 쌀은 ‘밀다리쌀’이라고도 불리며, 이천의 ‘자채쌀’과 함께 진상미로 알려질 정도로 그 품질이 우수하다. 이 밖에 비닐하우스 채소, 특용작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 전체에서 제일 큰 규모의 정기시장 1개가 위치해 있다. 교통은 48번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관통해 강화로 연결되며, 마송리에서 305번 지방도와 만나고, 9·11·12번 시도가 면의 남북을 이어준다. 문화유적은 옹정리에 심연원신도비(沈連源神道碑), 그 아들인 심강신도비(沈鋼神道碑)가 있고, 고정리에 지석묘가 있다. 마송(馬松) · 서암(西巖) · 도사(道沙) · 수참(水站) · 가현(佳峴) · 동을산(冬乙山) · 귀전(歸田) · 고정(高亭) · 옹정(甕井) 등 9개 리가 있다.
하성면(霞城面)
시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54.85㎢, 인구 8,65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곡리이다. 본래 김포 · 통진(通津) · 양천(陽川)으로 나뉘어 있었고, 조선 말까지도 통진군의 4개 면으로 각기 나뉘어 있던 상태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진군 하은면(霞隱面) 3개 리, 봉성면(奉城面) 5개 리, 소이포면(所伊浦面) 15개 리, 질전면(迭田面)의 일부를 통합해 12개 리로 개편하고 김포군 하성면이라 개칭하였다. 면 명칭은 하은면의 ‘하’자와 봉성면의 ‘성’자를 합친 것이다.
한강 하류인 애기봉(愛妓峰)을 중심으로 북한과 최단거리에 있으며, 양택천(楊澤川)이 동쪽으로 흘러 양택저수지를 이루고, 후평리 · 석탄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그 주변의 드넓은 농경지에서 양질의 미곡을 생산하고 있다. 석탄리 일대는 통진읍 귀전리와 함께 김포쌀을 대표하는 ‘자광미’가 산출되는 옥토로서 유명하다. 그 밖의 농산물로는 채소 · 인삼 · 버섯과 시설원예 · 화훼 등인데, 특히 인삼의 생산량이 많다. 1개의 정기시장이 열리고 있다. 교통은 마곡리를 중심으로 9·12·14·15·17번 시도가 면 전체를 사통팔달로 연결하며, 기타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가금리에 장만선생영정(張晩先生影幀) 및 공신녹권(功臣錄券), 이목(李穆)의 위패를 봉안한 한재당(寒齋堂)이 있다. 마곡(麻谷) · 석탄(石灘) · 후평(後坪) · 시암(枾巖) · 마조(麻造) · 신(新) · 가금(佳金) · 양택(楊澤) · 원산(元山) · 하사(霞沙) · 봉성(奉城) · 전류(顚流) 등 12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김포시통계연보』(김포시,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경기연감』(경인일보사, 1997)
『경기도 역사와 문화』(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7)
『문화재안내문안집』Ⅰ·Ⅱ(경기도, 1997)
『전통사찰현황』(문화체육부, 1997)
『김포군 지명유래집』(김포군, 1995)
『금포군지』(금포군, 1993)
『지명유래집』(경기도, 1987)
『한국행정제도사』(정시채, 법문사, 1986)
『경기도지』(경기도지편찬위원회, 1955·1956·1957)
김포시(www.gimpo.go.kr)
김포교육청(www.gpoe.kr)
김포군읍지급지도성책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애기봉전망대
애기의 슬픈 사랑
병자호란 당시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愛妓)의 슬픈 일화가 어린 곳이라 해서 애기봉이라 이름 붙은 155m의 산이다. 한양으로 함께 피난을 오던 평양감사와 애기는 이곳에서 적군에게 붙잡히는데 애기는 풀려났으나 평양감사는 북쪽으로 끌려갔다.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 평양감사를 기다리던 애기는 병들어 죽었고 사랑하는 이가 끌려간 북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워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전설을 들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친 휘호로 ‘애기봉’이라 쓴 비석을 세워주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애기의 심정과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들의 아픔이 함께 서려 있는 이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고 망배단도 마련되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지점에 있어 해질녘 풍경이 아름답고 크리스마스에는 대형 트리가 세워져 많은 이가 찾는다. 군 주둔 지역이라 출입 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므로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애기봉전망대
애기봉[愛妓峯]
요약 : 서부전선 최전방인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에 위치한 해발 155m의 봉우리로, 1971년 높이 30m의 등탑이 설치됐다.
6ㆍ25 전쟁 당시 남북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애기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휴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이곳의 소나무를 이용해 성탄 트리를 만들었으며 1971년 현재의 높이 30m 등탑을 설치했다. 이 때문에 애기봉은 북한 동포를 향한 자유와 평화의 발신지이자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의 상징이 됐다. = 한편 군 당국은 2010년 12월 21일 오후 5시 45분 높이 30m의 등탑의 불을 7년 만에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에 따라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신청한 애기봉 등탑 점등을 허용함에 따른 것이다. 애기봉 등탑 점등은 앞서 2004년 6월 군사분계선 (MDL)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 수단을 모두 제거키로 한 제2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었다.
출처:(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2026-05-03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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