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우리은행
1909년 7월 3일 건립된 우리나라 은행 최초의 근대건축물입니다.
광통관
이 건물은 1909년 탁지부에서 금융 관련 기관의 집회소로 쓰기 위해 지은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이다. 같은 시기에 창립했던 천일은행의 어음조합에서도 사옥이 필요하게 되어 이 건물을 대여하였다.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전면에 화강석으로 이오니아식 주두의 붙임기둥을 설치하여 건물의 중심을 강조하였다. 그 윗부분에는 삼각형 페디먼트를 두고 바로크 풍의 돔을 얹었다. 1914년 화재 후 지붕과 각 부위를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하면서 각 부의 장식, 창문 주위, 지붕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현재 우리은행에서 영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내부에는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외관만 화재 이후 수리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홍영식(1855-1884)
한국 우정의 아버지 홍영식은 개화기의 선각자로서 우리나라의 근대 우편제도의 창시자이다.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을 창설하여 초대 우정총판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18일 서울 인천간에 최초로 우편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새로운 우편시대를 열었다. 이 동상은 우정총국을 창설하라는 고종의 교서를 충심으로 받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을 통하여 백성들을 위해 선진문명과 개화사상을 널리 펼쳐 나가려는 굳은 신념과 실행의지를 표상화하였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7:00
휴관일: 월요일, 12월 29-다음해 1월2일, 설 연휴와 추석연휴
입장료: 무료
휠체어 이용 가능(02-759-4881)
숭례문
정기휴무: 매주 월요일
관람시간: 09:00-18:00(광장)
-동절기: 09:00-17:30(12월~2월)
-하절기: 09:00-18:30(6월~8월)
관람요금: 무료
수선전도
수선전도는 1850년대 조선시대의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한양 지도로, 바닥포장으로 재해석한 수선전도는 19세기 후반의 채색 필사본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현재 서울의 모습을 이해하는 기본이 되는 지도이다.
서울 성곽길 안내도
서울 숭례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 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아침 파루(4시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 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하였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숭례문 내부
조선통신사 출발지
국사시간에 배운 조선통신사 ㅎㅎㅎ
남지터
도성의 숭례문 밖에 있었던 연못의 터란 말이군요~~
서울 한양도성 보존관리 협조요청문이 붙어 있습니다.
현재의 성벽이 한양도성의 품격에 걸맞게 온전히 보존 될 수 있도록 한양 도성 성벽 앞에서 흡연을 자제하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문제야 흡연후 꽁초들...ㅎㅎ
수렛골
이곳 서소문동 서북쪽 전 배조고교 자리와 이화여고 부지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수렛골 또는 차동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 마을에 숙박 시설이 많아 관청의 수레들이 많이 모여든 데서 연유한 것이다.
수렛골은 영조가 인현왕후 탄생지인 이 지역에 인현왕후 추모비를 세워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다.
배재학당
우리나라 개화기 신문화의 요람지
배재공원
이 터는 1885년 8월 3일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배재학당을 설립, 이 땅에 최초로 서양문물을 소개한 신교육의 발상지요, 신문화의 요람지이다. 1895년에는 독립협회가 여기에서 태동하였고 독립신문도 발간되었다. 또한 1897년 맨손체조를 비롯하여 각종 구기운동이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체육의 산실이기도 하다.
배재학당 뒷쪽
고 이영훈 작곡가 추모터
가수 이문세씨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작곡했네요
중명전 일원
중명전과 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에 경운궁(현 덕수궁)을 확장할 때에 궁궐로 편입되었다.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잉에 이미 미국 공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중명전은 왕실 도서관으로 지은 2층 벽돌 건물이며, 정관헌과 독립문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했다. 중명전 이외에도 환벽정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에 이 일대가 덕수궁에서 제외되면서 다른 건물들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현장인 동시에,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
문화재청이 지정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입니다.
등록문화재 제 402호
구 러시아공사관
이 건물은 1890년에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한 르네상스식 건물로 러시아공사관으로 사용됐다. 벽돌조 2층의 본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이 남아 있다. 탑의 1층은 본관과 이어졌고, 2층에는 창을 하나만 내어 단순하게 만들었다. 3층에는 네 면에 반원 아치형의 창을 냈고, 지붕은 삼각형 페디먼트로 구성했다. 현재 탑의 동북쪽에 있던 지하 밀실의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지하 밀실은 비밀통로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사관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1896년 2월 1일부터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당시 국제정세에 휩쓸려 자주 정변을 겪어야 했던 조선의 현실이 드러나 있다.
첫댓글 우왕..역시..자네...대단하네... ㅋ
ㅎㅎ 고맙습니다.
대다나다..!!
서울구경 잘했어요^^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서울구경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