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23> 명법품(明法品)
십바라밀로 중생을 만족시켜라
자기관리 위한 서원을 통해
중생교화 길이 열리고 나면
더 청정한 수행의 길 가야…
부처님이 제3회 도리천궁에서 불자로서의 가치관을 성립하게 하는 십주법문을 통해 청정한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처음 발심하던 그날부터 중생이 만족할 때까지 수행을 멈추고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들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불퇴전의 정진을 다시 한 번 맹세하게 하는 품이 바로 제18 ‘명법품’이다.
발심의 공덕이 아무리 크다 한들 스스로 만족하고 멈춰버린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이 매일 기본기에 충실한 자세로 연습하지 않고 경기장이나 무대에 오른다면 그들의 경기나 연주는 결코 대중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중생교화라는 무대에 등장할 때 연습 없이 오르지 말라는 것이다. 매일 일과정진으로 중생교화의 수행을 하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수행자가 아니라는 가르침이 무뎌진 우리들의 정신을 확 들게 하고 있다.
묘승전에서 정진혜보살이 초발심한 후에 올바른 보살의 길을 가기 위한 수행법에 대해 법혜보살에게 묻는다.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일들을 법혜보살에게 봇물 터지듯이 질문을 엄청 하고 나중에 잊을까 싶어 게송으로 다시 할 때까지 법혜보살은 웃음을 띠고 천천히 기다려준다.
“저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 교법 중에 무엇을 닦으면 모든 부처님이 환희하시고 청정함을 얻고 부처님의 큰 서원을 만족하여 보살의 광대한 안목을 얻을 수 있을까요? 또 무슨 수행을 해야 여래와 더불어 공덕을 평등하게 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수행을 해야 여래가 오랜 세월동안 수행하신 정법의 모든 것을 다 보호하고 연설할 수 있으며 방해가 되는 마군중은 어떻게 깨우쳐야 할까요? 어떻게 수행해야 정법을 설하던 그날에 모든 팔부신중들의 옹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불자여, 저 모든 보살들이 무슨 방편을 써서 능히 일체법을 원만케 할 수 있을까요? 원컨대 저희를 위해 말씀해주소서, 여기 모인 대중들은 모두 다 듣고 싶어 합니다.”
정진혜보살이 중생의 이익을 위해 보살이 닦는 청정한 수행방법을 묻자 법혜보살은 먼저 원력을 지니라고 한다. 처음 발심한 이는 정진으로 자기 관리를 통해 보살의 길을 가야한다. 성불은 완전행복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도 행복한 수행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고행만이 수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정한 수행자는 행복하고 행복한 수행자는 타인을 위해 원력의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보살의 삶이 원력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중생을 교화하는데 게으름피우지 말고, 스스로 선행을 하고, 정법에 목숨을 걸고, 간절히 불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며, 보살들을 본받고, 일체법을 통달해서 모두 이익을 얻어 행복하기를 원하며 보현행을 통해 차별 없는 마음을 갖도록 자기 관리하라는 것이 법혜보살이 말하는 보살의 서원이다. 이처럼 수행하여 만족하면 공덕이 엄청나게 많으니 이 인연으로 반드시 10무진장을 성취해 복덕과 지혜가 청정해져 설법할 때 자연히 중생의 근기를 알게 된다고 한다.
보살의 자기관리인 서원을 통해 중생교화의 길이 열리고 나면 중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더 청정한 수행의 길을 가야하니 바로 십바라밀의 실천이다. 바라밀은 중생에게 힘들지만 참아야 하는 예토 사바세계에서 파라다이스인 정토 니르바나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어서 ‘도피안(到彼岸)’이라고 부른다.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십바라밀은 바로 보시바라밀로 재물과 법을 희사하고, 지계바라밀로 청정하게 만들고, 인욕바라밀로 부드러운 모습을 갖추고, 정진바라밀로 물러서지 않으며, 선정바라밀로 마음이 지혜와 조화를 이루며, 반야바라밀로 문사수(聞思修)수행을 통해 지혜의 길로 나아가며, 방편바라밀로 중생교화의 수단과 방법에 집착하지 말며, 원바라밀로 흔들리지 않고 수행하며, 력바라밀로 모든 중생을 건지며, 지혜바라밀로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것을 아는 지혜를 완성하는 것이다. 보살은 모름지기 중생이 보리심을 내어 부처님의 종성을 간직하고, 정법의 세계에 머물며, 가르침을 이어가게 하는 것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대중과 화합하여 삼보의 종성을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중생이란 밭에 부처님 씨앗을 뿌렸으니 잘 길러 지혜의 밝은 꽃, 자비의 아름다운 꽃, 교화의 향기로운 꽃, 원력의 힘찬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
[불교신문34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