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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 37:4절
제 목 :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일 시 : 2020. 6. 14.
시37: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소원을 주십니다(시21:1-2). 그리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가지고 일하게 하십니다(빌2:13절). 마음속에 소원을 가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소원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소망과 소원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잠13:1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고 했으며, 잠13:19/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소원성취가 빨리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악을 행하면 소원성취는 그만큼 멀어지고 요원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언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까? 내가 여호와를 기뻐할 때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소원성취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이 온통 긍정적이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나쁜 것이나 부정적인 것이나 불신앙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오직 좋은 생각들만 가득할 때 우리는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항상 좋은 이미지만을 가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 속에는 온갖 아름답고 선하고 좋은 것들과 기쁨으로 충만할 때 드디어 하나님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마음속에 나쁜 것, 악한 것, 부정적인 것, 불신앙, 의심과 회의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창세기 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1:1-5/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태초에(우주만물이 시작되는 때를 태초라고 함)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은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행하시기 전의 세상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무질서하다는 뜻입니다. 공허하며, 텅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깊은 흑암만이 가득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무질서한 그 땅을 감싸 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절 말씀은 창조이전의 이 세상을 말씀하고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온통 흑암으로 가득한 세상 위에 성령님이 운행하고 계시듯이 온갖 어두움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 위에서 성령님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상태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성령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언제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까? 3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자 성령님은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시면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에서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2절 말씀을 보시면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수면 위를 감싸 돌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 드디어 최초의 창조사역이 시작되었고, 처음으로 무엇인가가 만들어졌습니다.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빛이 만들어진 그 시점이 언제인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시고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 드디어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맨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빛인데 그 빛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아름답고 긍정적인 생각과 이미지를 그리시다가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혼돈하고 공허하고 온통 흑암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좋은 것이라고는 0.0001% 없었기 때문에 기쁘거나 감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안타까움이나 아니면 진노하고 심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찬 악마같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분노하며 악마와 같은 사람들은 죽이고 싶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체포해서 경찰이 압송하게 되면 그 주위에서 저 놈을 죽여라!! 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2절과 상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좋아하거나 기뻐하거나 호감을 가질만한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질서하고 공허하고 음흉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드디어 긍정적인 생각과 아름다운 생각들과 좋은 이미지가 그려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그리며 품고 있던 아름다운 생각을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입니다. 그랬을 때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성령님은 드디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에 드디어 성령님께서 일하심으로 빛이 만들어졌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시면 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일하셨습니까? 성령님께서 일하셨습니다. 물론 성자 예수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주체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데로 모든 것을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영적원리가 있는데 성령님은 언제부터 일하시기 시작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항상 살아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아름다운 생각과 이미지를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 드디어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일 동안도 날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령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일하시던 성령님은 항상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좋은 생각과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실 때 일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시던 성령님은 지금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했는데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아름답고 좋은 생각과 이미지를 그릴 때 드디어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름답고 좋은 생각과 이미지라는 그림을 우리의 현실에서 그대로 만들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135:6/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기도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얼마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잘 그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성령님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릴 때만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천사들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릴 때에만 반응하고 일을 합니다.
예수님과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기도하고 구할 때 마음속에서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막11: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으며, 약1: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100%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99.9%만 믿습니다. 0.1%의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의심입니다. 그렇지만 의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99.9%의 믿음을 가진 채 0.1%라는 작은 의심을 품고 나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성령님은 일하시는 것을 그만 두십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이고 어두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을 아름답고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로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만 그려야 합니다. 거기에 조금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면 성령님은 일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아이처럼 매우 단순해야 합니다. 생각이 복잡하고 이해타산에 밝은 계산적인 사람들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과 마음속에서 그리는 이미지가 일치해야 합니다. 말하는 것과 마음속에서 그리는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두 마음을 품는 자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약1: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세밀하시고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대충대충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말이 100% 일치했을 때, 즉 믿음으로 충만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때 드디어 성령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아의 홍수심판을 통해서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창6:5-10/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물로 지면에서 쓸어버리시려고 마음을 먹고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악한 것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보실 때 쓸모 있는 생각은 0.1%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물로 다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반면에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아모스 3:3/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아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하나님과 뜻이 같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악한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노아는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의롭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자의 차이점입니다.
여러분이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의롭고 완전하고 거기에 어두운 것이라고는 전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만큼 항상 마음의 생각이 선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금지하신 추하고 더럽고 나쁘고 악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을 가질 때 거기에는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는 일에만 성령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창1:2절을 보시면 어떤 가능성이나 희망이나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은 일을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드디어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심으로 새 일을 행하시고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과 같은 아름답고 좋은 생각을 품고 그것을 입으로 말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의 사무실로 50대 여성 한 분이 찾아와서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집은 완전히 폐가 망신했습니다. 울음을 그치시고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하니까.
저희 집에 아들은 여럿인데, 딸은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 애가 글쎄, 히피족처럼 되어서 제 아버지의 친구나 제 오빠 친구와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이 댄스홀에서 저 댄스홀로 전전하고 있습니다. 그 애는 우리 집안의 망신거리입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남편은 사무실에 나갈 수도 없고, 아들들은 창피해서 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과 아들들마저 집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저는 온갖 방법을 다해 봤지만 안됩니다. 심지어 그 딸을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조 목사님, 저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조 목사님은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님께서 왜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겠습니다. 자매님은 그 동안 항상 잘못된 청사진을 하나님께 제시했습니다. 자매님은 딸의 행동 때문에 항상 딸을 창녀처럼 생각하고 계셨지요? 하나님께 딸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도 자매님은 언제나 딸을 부정적이고 자매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짓만 하는 나쁜 딸로 생각하고 계셨지요?
네. 그래요. 그러나 그 애는 사실 창녀나 다름없어요.
그렇지만 진정으로 부인께서 딸이 변하는 것 보고 싶으면, 지금과 전혀 다른 마음의 청사진을 하나님께 제시해야 합니다. 자매님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지금의 딸의 영상을 깨끗이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딸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딸의 모습을 새로 그리셔야 합니다.
그러자 부인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애는 더럽고 추하며 천박해요.
조 목사님은 그 부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용서해야 된다고 권면했습니다.
자매님,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자, 딸의 모습을 새로 그립시다. 여기 무릎을 꿇으세요. 저도 당신과 함께 무릎을 꿇겠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주님 발 앞에 나아갑시다. 두 손을 드세요.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으시고 피 흘리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바로 자매님의 딸 때문입니다. 딸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뒤에 두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딸의 변화될 모습을 쳐다보십시오. 자매님은 딸이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받고 깨끗하게 되어서 성령충만 받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 안 보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은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흘리신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제 예수님이 흘리신 용서의 보혈로 딸이 영원히 새롭게 된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까?
네. 목사님,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그 부인은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딸을 다르게 생각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딸에 대한 저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지금부터 자매님의 딸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립시다. 그런 다음 새롭게 변화된 딸의 분명한 그림을 날마다 마음속에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간직하십시오. 바로 그 모습은 성령께서 보시는 모습이기 때문에 자매님의 딸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비전은 성령과 대화하는 언어입니다. 딸이 깨끗하게 되고 거듭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긍정적인 비전입니다. 그 모습이 성령께서 지금 자매님의 딸을 바라보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믿음으로 성령께서 보시는 그대로 딸의 그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자매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시고 변화시킨 그 딸의 모습을 지금 바라봅니다. 성령님이시여,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잉태케 하신 새 이미지와 새 비전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넘치게 역사하옵소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 비전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옵소서.
그 부인은 목사님의 사무실을 나갈 때 얼굴에 더 이상 슬픈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밝은 미소를 띠기까지 했습니다. 변화된 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가슴에 품게 되자. 더 이상 낙심하고 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지난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아름다운 숙녀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자매님 반가워요, 이 숙녀는 누구죠? 하고 묻자. 부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목사님, 애가 바로 제 딸이에요. 그래요? 그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나요? 그러면서 부인은 간증을 했습니다.
그 딸은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호텔에서 한 남자와 동침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그녀는 문득 자신의 모습이 정말 추하고 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매우 불행하다고 느끼자 불현듯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으나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집에 돌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한 번만 더 가 보자. 만약 이번에도 날 내쫓으면, 그 때는 우리 가족과는 마지막이 되겠지.
그녀는 집으로 가서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마침 그녀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러 나왔는데 딸을 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는 햇살처럼 환해졌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반갑게 맞이하며, 어서 오너라 내 딸아! 하고 목을 껴안았습니다. 딸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감격하여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성령의 언어로 변화된 딸의 모습을 그리며 기도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딸은 어머니와 함께 두세 달 동안 교회에 잘 출석하였습니다. 그녀는 설교를 듣고서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그녀에게 훌륭한 남편을 주셔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미지에 우리의 생각과 말을 맞추었을 때,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변화의 기적이 실제로 일어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어머니는 성령께서 보여 주신 대로 자신의 딸이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딸이 구원받고 성령 충만받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비전과 꿈이 성취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비전과 꿈을 잉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이러한 비전과 꿈은 다름 아닌 성령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대해 이미 응답된 그림을 보여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삶과 환경에 이미 역사하셔서 그것을 변화시켜 구원의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관여하시는 한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비전과 꿈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보시는 대로 여러분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4차원의 영적세계에 사는 삶입니다. 아주머니의 딸은 세 자녀를 둔 착실한 주부요, 교회에서는 아주 믿음 좋고 가장 열심히 전도하는 구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그녀의 어머니가 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성령의 이미지로 바꾸어서 4차원의 성령의 법칙을 적용할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족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다 버리고 예수님의 피로 변화되고 새롭게 된 좋은 이미지만을 그리시고 날마다 그것을 상상하시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 순간부터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도할 때 전도대상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이미지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날마다 전도하는 전도의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일들은 좋은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세지를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교회도 나오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기능성이나 좋은 일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새로운 일을 계획하시고 좋은 일을 상상하시고 믿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런 일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전도자는 원수 마귀가 포기하고 물러가고 떠날 때까지 포기하지말고 계속해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전도대상자들이 변화여 새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잘 믿고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잘 하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마음속에 상상하십시오. 그럴 때 성령님은 역사하시고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 일에 나도 동참하여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시편 37:4절을 읽고 소원성취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2.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곧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창세기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언제, 어떻게 할 때 시작되었습니까?
4.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5.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6. 조목사님의 간증에 나오는 자매님의 딸은 어떻게 했을 때 변화되었습니까?
아멘
아멘
1. 하나님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것.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이 온통 긍정적이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는 뜻.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항상 좋은 이미지만을 가지는 것.
3.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시고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
4. 긍정적인 이미지를 잘 그리는 것.
5.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의롭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함.
6. 그녀의 어머니가 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성령의 이미지로 바꾸어서 4차원의 성령의 법칙을 적용했을 때.
1. 하나님
2.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이 온통 긍정적이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는 뜻
3.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시고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
4. 얼마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잘 그리느냐에 달려 있다.
5. 노아는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의롭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했다.
6. 어머니가 성령의 언어로 깨끗하게 되고 거듭난 모습의 변화된 딸의 모습을 그리며 기도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아멘
1.하나님
2.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이 온통 긍정적이고 한껏 고무되어있다는뜻
3.하나님께서 그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시고 그것을 입으로 말씀하셨을 때
4.긍정적인 이미지를 잘그리는것입니다
5.생각하는 모든것이 항상 의롭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눌수있을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했다
6.어머니가 성령의 언어로 변화된 딸의 모습을 그리며 기도했을때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