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Croatia
11 문명과 자연이 만나는 곳, 크로아티아(4)
렉토르 궁전으로 향하였다. 많은 여행객들은 길에 여러 자세로 앉아 있었다. 걸어 올라가다가 엘레나가 렉토르 궁전 앞에 있는 동상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 동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세요?”
나는 그녀를 보고 말하였다.
“이 동상의 주인은 르네상스 시대 코미디 작가인 마진 드리시치입니다. 그는 이 도시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작품을 썼죠. 그리고 베네치아로 도망간 후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여름 축제 기간에는 그의 많은 작품들이 공연되죠. 그때는 그리스 비극, 르네상스 코미디, 셰익스피어 작품 및 현대 미술 작품 등이 공연, 전시되는데 주로 음악과 연극 등입니다. 전시는 야외극장이나 요새에서 열린다는 군요.”
플라차 거리 끝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70미터-1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렉토르 궁전 앞에 왔다.
렉토르 궁전은 그 당시 ‘이곳을 지배하였던 자들’리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궁이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정면을 보세요. 15세기의 모습입니다. 정면은 15세기 모습으로 르네상스 고딕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12세기에 지어진 건물인데, 그 후 15세기에 재건되었고 지진 후에는 특히 내부는 바로크 스타일로 장식되었습니다. 1435년 이곳 두브로브니크의 수로와 분수를 건설한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건축하였습니다.”
엘레나에게 궁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궁전 내부 입구 오른쪽에서 티켓을 구매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 내부는 안에 뜰이 있었다. 뜰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우리가 서 있는 곳에는 조그만 박물관이 있었다. 이곳 뜰에서는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나는 안으로 들어와 뜰에서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이 도시는 귀족 국가였습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죠. 35인의 남성으로 이 도시의 정부는 구성되었고 귀족들은 18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대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답니다. 이 대위원회의 위원은 350명의 귀족을 대표하는 의회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도자 또는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렉토르를 선출했습니다. 렉토르는 경험 많은 사람을 선호했기에 50세 이상이어야 했고 2년 임기에 연임이 가능했으며 매월 교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제도는 949년에서 1806년까지 900년 가까이 지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형태는 소위원회 11명, 대위원회 3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소위원회는 가장 힘 있고 중요한 기구로 주요 사안을 결정하여 대위원회로 회부했답니다.”
나는 엘레나를 보며 계속 이야기하였다.
“참 재미있는 것은 명예와 많은 권력을 가졌을 거라 생각되는 렉토르에게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선 렉토르는 궁전 밖으로의 출입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도 떨어져 살았습니다. 외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 그 이유라는군요.”
우리가 있는 1층 즉 유럽식으로 하면 0층에는 그 당시 주로 중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 머물던 감옥과 조사실이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0층 정원에 있는 동상을 가리키며 이야기하였다.
“저기 보이는 동상 있죠. 저 동상은 ‘미카엘레 프리자또’라는 사람의 동상입니다. 그 당시 이 도시국가에서는 인물 동상을 세우지 않았는데 예외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저 동상입니다. 그는 플리비아인이었고 배의 선주였으며 대단한 부자였지만 슬하에 자식이 한 명도 없었다는군요. 그는 상인이기도 하였습니다. 무적함대라 불리던 스페인 해군에 음식과 물자를 운송해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사후 모든 재산을 기부하였고 의회에서 그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으나 그의 사후 31년간 동상을 어디에다 놓을까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워진 곳이 바로 이곳 렉토르 궁입니다.”
엘레나와 나는 한국에서는 2층 이곳 유럽식으로 하면 1층으로 올라갔다. 1층은 공무에 사용되는 방이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박물관으로 사용되었고 2차 대전 이후 기증받은 물건과 구입해온 물건들이 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엘레나에게 설명하였다.
“첫 번째 방은 루이 15세의 가구와 15,16세기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방입니다. 책상은 너도밤나무 재질로 로코코 스타일이고 마감은 라커로 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귀족들의 그림인데 이곳에는 아직까지 세 명의 귀족가문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으로 조상이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군요. 귀족 중엔 보스니아 상인이 있었는데 12세기와 13세기에 부를 축적한 후 재력으로 귀족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알바니아 상인 출신도 있답니다.”
엘레나는 주위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그림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림 좋아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많은 그림들은 1667년 지진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몇 점만 남았답니다. 최고의 작품들은 도미니크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고요.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여유가 되는대로 작품을 구입해 왔다는군요. 라파엘로의 마돈나와 당시 많이 알려져 있던 티치아노의 작품도 두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당 안에 또 다른 작품은 도미니크 수도원 내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탈리아에서 구입해 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화가들이 외국으로 가 그림을 배운 뒤 돌아와 그린 그림들도 있습니다.”
나는 엘레나에게 벽의 색을 보라고 하였다.
“벽의 색은 전형적인 다크 레드(Dark Red)죠. 이것은 두브로브니크의 문장 색깔이기도 합니다. 크로아티아는 레드(Red)와 화이트(White) 부족으로 나뉘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수메르문명 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카르파티아 고원과 아드리아 해 쪽으로 넘어왔는데, 그들 중 주요 두 부족은 레드와 화이트 부족이었습니다. 레드 부족은 크로아티아의 해안가에 정착했고 화이트 부족은 북쪽에 정착합니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에서 붉은 색은 그 부족의 역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엘레나와 나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렉토르 궁은 ‘ㅁ’ 자 모양이어서 동선을 따라 도니 보기 쉬웠다. 렉토르의 서재는 바로크 스타일이었고 중후함이 느껴졌다. 캐비닛은 17세기 것으로 상부는 나무 재질, 하부는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카라치 유파의 그림과 이탈리아 파도바 파 화가인 안드레냐 만테냐의 제자인 함치니의 그림이 있었다. 그는 15세기 이 지역 최고의 화가 중 하나였으며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은 만치니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으나 나중에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방의 한쪽 테이블 위에 커다란 열쇠가 보였다.
엘레나는 나에게 “저 열쇠가 무엇인지 아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엘레나를 보며 이야기하였다.
“저 열쇠는 필레게이트 문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테이블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거죠.”
“그리고 저 그림은 마지막 지도자였던 사보조르지치의 초상화입니다. 프랑스 군이 쳐들어왔을 때 시장에 임명되었던 사람이죠. 그리고 시계는 나폴레옹 휘하의 제독인 마르몬이 준 시계입니다. 저 그림은 루벤스의 ‘사빈느 여인의 약탈’을 카피한 것이고요. 저 포르테 피아노는 1790년대의 것이죠. 모차르트 기념 행사 때 짤츠부르크에 빌려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짤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에 가면 거기에도 있습니다. 피아노의 전신이라고도 합니다. 모차르트가 작곡할 당시 이용했던 것과 같은 시대의 피아노랍니다.”
우리는 건물을 나오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엘레나가 말했다.
“당시에 이곳 사람들은 두 개의 성(姓)을 사용했답니다. 하나는 라틴어이고, 다른 하나는 크로아티아어였습니다. 크로아티아 성의 뒤에는 ‘ci’가 붙는다는군요.’
밖으로 나가기 전 쓰여 있는 글귀를 보았다.
엘레나는 나에게 “저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하고 물어 보았다.
“저 글귀의 뜻은 ‘이곳에 들어올 땐 모든 개인사는 다 잊고 공무에만 전념하라’라는 것이죠. 두브로브니크의 가장 중요한 모토라고도 합니다. 읽을 줄은 모르고 간신히 뜻말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