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수연 교수의 해설은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훌륭했다. 단순한 시집 해설이 아니라 김선우 시 세계를 체계적으로 접근한 논문 같았다. 그래서 해설을 바탕으로 공부하듯 시인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해설은 5개의 소제목으로 체계를 세우고 있다. 1)세 개의 시 세계, 2)시간, 3)몸, 4)연대, 5)하나의 선:"사랑은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시인의 7개 시집을 3개의 세계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사랑과 아브젝트(abject) 시기, 둘째, 상실과 기원의 시기, 셋째, 무애(無碍)의 시기이다.
출판사는 '인간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출현시키고, 대화하고, 인식하게 하는 시집'으로 소개한다. 시집 표지에 시인을 소개한 글 아래 적절하게 요약해놓았다.
"<<축 생일>>은 주체와 타자가 폴짝 건너 뛰고 평평해지는 상호 펼침의 노래이다. 주체와 타자는 '평평'한 존재이고, 서로 '폴짝' 건너뛰는 힘들이다. '평평'과 '폴짝'은 김선우 시집 전체에 대한 형상화이기도 하다. '폴짝'은 몸 비움의 방식이고 '평평'은 비운 몸의 형태이다. 앞의 시집들이 제각각 절망과 희망과 연대와 초월에 대한 그리고 그것들을 가로지르고 있었을 죽음들에 대한 비망록이었다면, <<축 생일>>은 그렇게 폴짝 건너가서 평평한 세상을 노래한다."
(2)
우선 3개의 시 세계에서 시적 인식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첫 시기는 사랑이다. 사랑의 감각과 몸의 경험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시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인이 사유하는 여성적 '몸'과 그로부터 길어 올려지는 건강한 베품, 연대와 공유의 의미론은 한국 시단의 소중한 자산으로 새겨져야 한다. 나아가 이 몸 사유를, 여성의 몸을 넘어 인간의 몸이라는 일반성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이 필요성은 이번 시집 <<축 생일>>에서 더 분명해진다"(p.149)는 지적에 적극 동감했고, 그래서 이렇게 해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는 시인의 펜 카페에 이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몸'에 대한 시인의 사색에 깊이 심취된 짧은 글을 쓰기도 했다.
둘째 시기는 상실과 기원의 시기로 상실을 통과하며 존재의 근원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 묻는 시적 탐색의 시기이다.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에게 신이 죽음을 가져왔던 암울했던 시대에 시인은 재생의 힘을 부활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해설자는 '花飛, 먼 후일'이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이런 긍정이 가능한 까닭을 '인간이 아닌 비인간의 세계의 출현'을 발견해내고 있다. 더우기 "<<축 생일>>의 비인간에 있어서는 삶의 수행공간에서 거둬들이는 직관과 예감의 차원을 우선하는 듯하다. 비인간에 대한 사유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무관하지 않을텐데, 김선우의 시편들에서 '나'가 빈번히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고 통찰력 있게 지적하고 있다.
셋째 無碍의 시기는 분별과 경계를 넘어 존재들을 바라보는 자유로운 시적 인식의 시기로, 말 그대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2021)>>에서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활달함과 넉넉함은 한 시기의 출발을 알리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요행히 대중강연을 온 시인을 직접 만나 사진도 같이 찍고 사인 본도 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언어들이 자유로워졌고 비인간의 사유가 넓어져 의성어들도 있어, 이렇게 유쾌한 상상력이 풍부해서 지구의 온 생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해설은 내게 새로운 시야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시에서 광장의 상상력은 이념보다 소중한 삶을 포괄하게 되었고 여전히 개별적 삶의 구체성 또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인은 이제 평등한 지구의 세상을 노래할 줄 알게 되었다...비인간과 인간이 어울리는 세계가 이렇게 준비되고, 몸의 아픔을 오래 겪은 후 비인간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채 <<축 생일>>을 읽어나가자."(pp.152-3)
(3)
이런 시 세계를 관통하는 키 워드가 바로 '시간', '몸', '연대'이다.
'시간'은 시 세계의 변화와 깊이, '몸'은 사랑과 존재를 경험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연대'는 타자와 세계를 잇는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함축적인 개념이다. 이렇게 3개의 범주로 구분된 시인의 시 세계가 바로 '하나의 선'으로 귀결된다. "사랑은 사랑하려 한다!" 그러나 세 시기는 서로 단절된 단계가 아니다. 사랑의 의미가 확장되고 심화된 과정이다. 사랑은 특정한 감정이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상실을 통과하며 존재와 타자를 향한 태도로 확장된다.
이 해설의 정수는 '불교적 사유와 사랑의 관계'이다. 3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몸은 사랑을 표현하는 대상에 그치는가, 아니면 세계를 경험하고 존재를 인식하는 근본적인 자리인가? 둘째, 상실은 단순한 결핍인가, 아니면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존재와 관계의 조건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인가? 셋째, 무애와 연대는 경계와 분별을 넘어선다는 것은 차이를 없애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존재들을 가로막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인가?
평소 나는 '無我와 緣起'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특히 무애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사랑을 소유나 집착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관계를 열어가는 태도로 확장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인연화합임을 깨달으면 '사랑은 사랑하려 한다'는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 감정을 나타나는 시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명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4)
이쯤해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 먼저 내가 시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것은 몸과 여성성을 통해 드러나는 생명의 감각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박수연 교수의 해설은 이러한 개인적 감상을 넘어 시인의 작품세계를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특히 시인의 불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존재와 관계를 바라보는 시적 인식의 변화를 읽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사랑은 한 시기의 정서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실을 통과하고 존재의 근원을 물으며, 마침내 경계와 분별을 넘어 타자와 세계를 향하는 태도로 확장된다.
'사랑은 사랑하려 한다!'는 이 문장이 갖는 여운이 깊다. 시집의 첫 시가 '폴짝인입니까?'를 묻는다. 폴짝 건너가서 평평한 세상을 노래하는 시편들, 그리고 시집의 마지막 시 '환절기'에서 "이 모든 우주가 다 좋은 환절기이 이르렀다'고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어느새 '환절기의 냄새'를 맡는 나이가 된 나는 시인과 함께 폴짝폴짝... 아! 좋다.^^(2026.10.18)
첫댓글 시집을 읽고 예전에 쓴 긴 글을 축약해서 옮겼다. 새 시집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 북콘서트 소식을 듣고 시집을 예약구매를 했다. 행사소식도 반갑고, 어느 새 주위에 떠나는 이들이 많은 나이가 되어서인지, 이 시집 제목에 숙연해진다. 늘 이런저런 인연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