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 무표정한 사람들의 표정이 삭막하게 느껴질 때, 회색 빛 도심 속 한가운데서 갑자기 길잃은
아이가 될 때, 주름진 할머니의 전단지 나눠주는 손길을 매몰차게 무시하는 나를 인식하게 될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주저 없이
찾게 되는 곳이있다.11월 찬 바다 바람에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마치 고향 땅인 듯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
변산반도. 어느덧 난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다른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치 그곳에 잃어버린 내가 있다는 듯.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 정도 달려 부안IC나 줄포IC를 빠져나오면 부안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생명력이 꿈틀대는 듯한 황톳빛 땅, 비릿한 바다 내음과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있는 곳. 겨울빛을 머뭄기 시작한 변산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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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의 은은한 향기 내소사
부안 읍내에서 줄포항 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달려 멀찌감치 흰
바위가 단단히 박힌 돌산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내소사에 다다른게다. 사계절 늘 좋고 채석강과 내소사로 이어지는 코스가 당일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보니 넓직 하게 마련한 주차장엔 항상 차량들로 만원이다. 사찰입구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구리로 만든
풍경, 동자스님 인형, 납작하고 큰 나무주걱, 새 깃털로 만든 닭 인형 등 고만고만한 볼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다. 사찰 앞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 탁주 한 사발에 맛보는 해물파전 한 입.. 요즘 이곳에 전어가 제철인지 온 사방에 전어 굽는 냄새로 가는 발걸음을힘들게
한다. 돌아가는 길에 꼭 들리리라 다짐한다.
일주문 앞엔 할머니당산이 서있다. 일주문 옆 늘 분주한 매표소때문에 무심히 지나치기
싶지만 내소사를 찾는 이들을 제일 먼저 맞는 내소사의 주인장이다.
일주문에 첫발을 디딛는 순간 초록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5백여 구루의 전나무가 뻗어있는 6백여 미터의 숲길. 한발한발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본다. 천천히 천천히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을
한숨 크게 들이마셔 보면 어느덧 속세에 지친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킬 수 있다. 한걸음 내딛고 심호흡 한번, 또 내딛고 심호흡…이 길을 걷고 싶어
그리도 내소사가 그리웠나 보다. 하늘이 안보일 만큼 빽빽이 늘어선 숲길을 지나면 낮은 기와담장위로 흰 바윗산에 소담히 안긴 내소사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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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쪽으론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숲길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벚나무와 단풍나무를 교대로 심어 봄에는
분홍빛 벚꽃터널로, 가을엔 빨간 단풍숲길이 되어 피안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하늘이 안보일 만큼 빽빽이 늘어선 숲길을 지나면 낮은
기와담장위로 흰 바윗산에 소담히 안긴 내소사의 모습이 보인다. 내소사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일주문 앞 할머니
당산나무의 서방님,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1천 살이라는 거대한 자태를 뽐낸다.
내소사는 이름만큼이나 아담하고 소담하다. 마치
자그마하고 단정한 20살 시골처녀 같은 느낌이다. 뒤로는 호젓한 능가산과 잘 어울려져 마치 이쁘장한 꽃처녀 뒤에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정내가
턱하니 버티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성스런 내소사지만 이런 내소사의 미를 더욱 자아내게 하는 것은 여느 절집처럼 원색의 화려한 단청을 입히지
않은 나뭇결 그대로 살아있는 소지단청으로 단정한 가운데 소탈한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혹 이번에 가면 단청을 칠해놓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을
하지만 수백년간 햇살과 비와 바람에 닳고 닳아 무색으로 바래진 오랜 풍상의 흔적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 신통하면서도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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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함 가운데 화려한 멋! 그 극치는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창살에서 극대화된다. 부처님이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설화를 상징화한 창살로 문살 전체를 꽃으로 조각하였다. 연꽃, 국화를 꽃봉우리 약간 핀 꽃, 만개한 꽃등 여러 꽃모양을 한짝의
문에 세심히 조각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대웅전 부처님 뒤 벽면에 백의관음보살님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후불벽화로 고개를 높이
쳐들어도 그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어 눈을 마주치면 신비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못하나 쓰지않고 기둥을 끼워 맞춤 식으로
지은 건물인 만큼 내소사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서 다시 중건을 하려고 하는데 목수가 몇 날 몇 달이 지나도
법당을 지을 생각은 않고 좋은 목재만을 골라 내어 목침을 깎는 습을 본 스님이 그 목침 하나를 몰래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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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삼년이나 목침 깎는 일만 계속하던 목수가 마침내 법당을 짓겠다고 나섰다. 그리고는 깎아놓은 목침재목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세고 또
세고 수 십번을 계속하더니 크게 탄식하며 '스님 저는 이 법당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만 돌아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스님이
이유를 묻자 '소인이 삼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목재를 다듬었다고 믿었는데 이제 헤아려보니 하나가 모자랍니다. 이런 부족한 정성으로 어찌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연장을 챙겨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스님이 깜짝 놀라 감추었던 목침 하나를 내
놓으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목수가 웃으면서 '그것은 이미 부정탄 목재이니 내 그것을 빼고 지으리라' 하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빠진
목재의 자리를 찾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대웅전 천장 위를 목 빠지게 쳐다보며 찾은 사람들은 "저기 있다..저기" 하며 손가락을 가르키며 재미있어
한다.
창건당시 내소사의 이름은 소래사(蘇萊寺)로 태어나 다시 찾아 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들어갈 땐 세상의 온갖 욕심을 갖고
가도, 나올 땐 한 짐 덜고 나올 수 있는 맑고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곳.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 찾아오고 싶은 곳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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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깊이 파고드는 비릿한 항만의 정취 곰소항
30번 국도를 타고 달리는 해안도로. 시리도록 푸른 동해와는 달리 나에게 잔잔하고 차분하며 따사롭다. 30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곰소만이다. 변산반도와 전라북도 고창 땅을 갈라 놓고 있는 곰소만은 물이 완전히 빠져 뻘 밭을 이루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염전과 작지만 정겨운 포구, 어수선하도록 분주한 수산물 재래시장, 점점이 이어지는 작은 어촌마을, 햇빛에 널려있는 이름 모를 생선들.
개펄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파고 있는 갈매기, 썰물로 펄 위에 매여있는 작은 고깃배, 비릿한 바다 내음과 갯 내음, 사람 사는 내음이
풍겨나오는 곳…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곰소만은 주변의 육지가 300여 미터의 산지로 되어있고 큰 강물이 유입되지 않으며
인근에 공장이 없어 갯벌이 아주 깨끗한 편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이들 각종 잡어들은 대부분 곰소항으로 들여와 바로 소금에 절여져 젓갈로
가공되는데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잡기 때문에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신선도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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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업의 세월의 흔적-채석강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성 이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뜬 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여 그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전한다. 채석강의 진면목은 서해 낙조의 붉은 빛에 서서히 물드는 일몰 풍경으로
우리나라 3대 일몰중의 하나이다. 채석강은 물때를 잘못 맞추면 물이 들어 차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썰물시간대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채석강 해수욕장에서 격포항까지 돌아갈 수 있는데 억업의 세월 속에 수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바위길에 앉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 막혔던 숨통까지 확 트이는 기분이다.. 격포항 방파제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야외 포장마차에서 싱싱한 굴, 해삼, 멍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먹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부안과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만 생겼음 한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고 그리움을
주는 변산반도가 평화로왔음 좋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내리면 내소사 전나무 숲길엔 사박사박 눈밟는 소리가 나겠지. 내소사 대웅전
지붕위엔 하얀 눈이 아담하게 쌓이겠지.. 해안반도를 따라 눈꽃이 무리지어 피어나고 갯벌 바다는 더욱 잿빛으로 물들겠지.. 그땐, 꽃같이
지는 붉은 해를 꼭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