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어디세요? 한 분이 이력서 들고 찾아왔는데요. 예. .... 예. ....”
눈이 땡그랗게 크고 예쁘장한 경리 아가씨는 일엽이 들고 온 이력서를 대충 살피고는 사장을 부르는 전화를 걸었다. 경리의 안내로 소파에 앉아 얼마쯤 기다릴 즈음에 사무실로 들어선 사장은 자그마한 키에다 홀쭉한 체격에 삼 단 우산을 말아쥔 채로 일엽과 눈길을 맞춘다. 사장은 소파 안쪽에 있던 일엽과 악수를 하고는 자리를 바꾸자면서 자신이 안쪽 자리에 앉은 다음에 탁자 한구석에 있던 ‘사장 오찬진’의 명패를 자기 배 앞으로 끌어당긴다. 봉투 안에 입사서류를 형식적으로 살피고는,
“안동 공고라……. 우리 회사에 전에, 안동 공고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월급은 125만 원이에요. 요번에 인상을 과감하게 십만 원 올린 거지요. 임금이 오르자 요즘은 마을버스도 사람이 더러 찾아와서 그리 딸리지가 않아요. 여기 지도를 보자면 여기서 여기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구로 10번, 여기가 11번, ..... . 12, .... 13번이 개봉동 산동네를…….”
사장은 꽤 성의 있게 노선 설명을 하였으나 일엽의 눈에는 들지 않고 우선 낭패의 기운이 스쳤다.
(125만 원이라, 영락없는 마을버스이로구나. 어떻게 먹고 살지?)
“미스 리? 오부장, 어디 갔나? 불러서 이분 회사 소개 좀, 이리저리 시키라고 해요.”
사장은 다시 외출하고 축축하게 검은색 계통의 낡은 운동복 차림의 갓 마흔쯤 보이는 사내가 오고 앞니가 툭 불거진 입술로 이런저런 규범이나 규칙을 설명하고, 근무 교대하는 사무실 앞의 버스 정류소에서 장소나 요령 등등을 설명을 마친 그는,
“점심땐데 밥 먹으러 갑시다! 우리 밥, 맛있습니다?”
버스회사의 식당은 2층의 사무실 아래층의 세탁소 앞, 정류소에서 한 오십 발자국 떨어진 건물의 지하실에 있었다. 천장이 낮은 식당에 들자 오 부장은 주모인듯한 중년의 여인에게 일엽을 인사시킨다.
“서 여사요, 새로 온 기사님입니다.”
눈망울이 크고 풍채가 있는 여인은 인자하면서도 강인함도 엿보이는 인상이다.
오 부장과 식탁에 마주 앉아서 된장찌개에 비빔밥을 먹으면서 오 부장의 그 불거져 나온 입술 사이로 밥알과 함께 튕기는 음식 솜씨 자랑을 들어야 했다.
“어때요? 맛있죠? 주방장님이신 서 여사 음식은 소문이 쫘~ 합니다! 심지어는 회사를 나갔던 사람도 이 맛이 그리워서 다시 들어온다니까요.”
일엽은 서먹한 점도 있고 긴장도 되고는 해서 솔직히 음식의 맛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서 여사의 음식 솜씨의 진가를 느끼게 되는데, 그녀는 달걀부침을 하여도 라면 하나를 끓여도 여느 맛과는 다르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떻게 똑같은 달걀이나, 똑같은 라면에서 다른 맛이 날 수 있을까? 흔한 말로 손맛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다음날, 일엽의 첫 출근이다.
사무실에 올라가서 출근부 서명을 하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좀 이르게 출근을 한 것은 어제의 그 맛있다는 음식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전 반이에요?”
“이제, 막 출근했습니다.”
다소 의아해하는 느낌이 드는 표정의 서 여사의 물음에 답하고 일엽은 그 지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물쯤이었는데, 옆구리에 조그마한 가방을 낀 안경 쓰고 나이 든 사내가 말을 건다.
“새로 온 사람이지요?”
“이 건 조심해야 할 일이라 내가 이야기하는데, 오후 반은 출근하자마자 밥을 먹으면, 안됩니다! 이따 저녁 시간에 먹어야지 조심해야 해요. 점심은 오전반 근무를 마친 사람만 먹습니다. 나는 오전 반 마치고도, 밥 안 먹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지요. 집이 요기 바로 앞인 데다가 마누라가 식당을 하거든요.”
“아, 그래요? 잘못됐네요. 아침은 몇 시에 먹습니까?”
“구로동 마을버스 중에 아침을 주는 회사는 소복 교통 밖에는 없어요.”
“아침을 안 줘요? 그럼, 굶고 일합니까?”
“굶던가, 차고지에 가면 컵라면 있는데 그걸로 때우던가 아니면, 도시락을 싸 다니기도 하고요.”
“무슨, 개발도상시대도 아니고, 일꾼에게 일을 시키자면 밥부터 줘야지, 굶기고 일을 시키는 데가 어데 있습니까?”
“그런 말, 막하면 큰일 나요! 여기는 간첩들이 있습니다. 곧바로 회장님께 보고되니 조심해야 해요. 저쪽에 개봉역 쪽으로 가면 아예 밥시간이라는 게 없어서 기사들이 정류장에 가서 대기 시간에 얼릉 김밥 한 줄, 편의점에서 사서 운행 중에 식사를 하는갑만요.”
“아니, 이 작은 회사에 회장도 있습니까?”
“사장, 아버지가 회장이신 오 회장 어르신이지요.”
“하하하 그렇군요. 하여간 말씀 고맙습니다.”
일엽은 마을버스 회사인 여기 소반 운수에 일을 시작하면서 모호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식당 주방장인 서 여사에 관한 것이었다.
소반 운수는 구로구 오 씨 종친회 회장인 오 회장 밑으로 맏아들이 사장이고 셋째가 오 부장이다. 모습을, 잘 들어내지 않는 둘째 아들이 상무라는데 그 상무의 부인이 서 여사라는 거다. 그러나 시아버지인 오 회장이나 시 동생인 오 부장이나 또 오 사장까지도 서 여사를, 며느리나 형수, 제수씨로 대하지는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식당에 고용한 직원 이상으로는 존칭이나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 서 여사가 거처한다는 식당에서 통로로 이어지는 다락방에서 그 오 상무라는 작자가 러닝셔츠에다가 반바지 차림으로 내려와서는 밥 한 그릇 받아먹는데 일엽이 처음 목격하는 그자에게 식사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아이코, 상무님 오랜만입니다.”
도무지 회사 일을 보는 사람의 행태는 아니었다. 서 여사와 오 상무가 서로 대하는 모습도 데면데면한 것이 서로 부부간의 분위기는 나지를 않았다.